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4)
24화
8. 그라운드 제로
1.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위치한 한 낡은 건물의 2층.
영업을 중지한 지 꽤 오래된 것 같은 다방의 문 앞에서, 이능관리부의 김동식 팀장은 본인의 양복을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섰다.
딸랑-
문에 달려 있던 종이 소리를 내며 열렸고, 김 팀장의 눈에 내부의 풍경이 펼쳐졌다.
홀 내부에는 흰 머리를 올빽으로 넘긴 노년의 신사만 있을 뿐이었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내려둔 채, 창밖으로 보이는 그라운드 제로의 거대한 장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김동식 팀장은 노인의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 다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장관님.”
김동식 팀장의 인사에 노신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답했다.
“왔구먼. 앉게.”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김동식 팀장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노신사의 앞자리에 앉았다.
긴장을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눈앞에 있는 노신사야말로 지금의 이능관리부를 이끄는 존재이지 않은가.
이능관리부 장관 유선호.
비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정치 수완으로 현재의 대한민국 각성자들을 조율하는 거장.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능관리부는 진작에 유명무실한 조직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요새 김시우 각성자 때문에 고생이 많지? 퇴근도 제대로 못한다고 들었네. 애아빠가 고생이 참 많아.”
유선호 장관은 찻주전자에 들어 있던 커피를 김동식 팀장의 잔에 따라 주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김동식 팀장은 두 손으로 잔을 잡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제가 이능관리부 소속이 된 이래로, 근래만큼 보람찼던 적이 없습니다.”
“허허, 입에 침이라도 바르시게나.”
“진심입니다.”
“그래그래, 커피가 미지근하니 이걸로 목이라도 축이게.”
김동식 팀장은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고풍스러운 잔에 담겨 있었지만, 그 잔 안에 담긴 내용물은 믹스 커피였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그의 입안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간 밀려오고 있던 피로가 살짝은 뒤로 물러나는 듯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나는 요새 젊은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는 입에 안 맞더라고. 그 쓴 걸 굳이 왜 마시나 싶으이.”
유선호 장관은 인자하게 미소를 지은 다음, 김동식 팀장의 눈을 마주했다.
“듣자 하니 자네가 내 결정에 반대했었다고.”
“……죄송합니다.”
“문책하기 위해 부른 건 아닐세. 그냥 자네의 생각을 물어보려던 거야. 혹시 반대의 근거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겠나?”
장관의 질문에 김동식 팀장은 잠시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입을 열었다.
“최소 다섯 개의 길드가 다투고 있는 지역입니다. 저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위험 요소가 많습니다. 그런 지역에 대한민국 최초의 이레귤러를 투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레귤러는 저희가 5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존재이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측정이 완료된 디재스터급 귀환자나 S급 헌터들과는 달리, 이레귤러급 귀환자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레귤러 귀환자들끼리조차 서로 맞붙기 전에는 그 누구도 결과를 가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레귤러급의 귀환자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억제력을 지닌다.
마치 구시대의 핵무기처럼.
그 정도로 이레귤러 귀환자가 지니는 상징성이 막대했었기에, 김동식 팀장은 그를 불필요한 위협에 노출시킬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다.
“허허.”
유선호 장관은 김동식 팀장의 이야기에 잠시 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곧 그는 김동식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의 말대로 우리가 5년 동안 기다려 왔던 이레귤러일세. 그런데 그런 이레귤러가 고작 대형 길드들 간의 싸움이 무서워서 물러선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중국의 이레귤러들이 왜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된 이레귤러로 인정을 못 받는지를 생각해 보게.”
아무리 측정이 불가능한 이레귤러라고 한들, 비교를 통한 대강의 측정은 가능한 법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이레귤러들은 저마다 초대형 카오스게이트를 단독으로 해결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다.
유선호 장관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 다음,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대형 길드들이 주축이 된 전국 각성자 연합에서 김시우 각성자의 이레귤러 등급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어.”
“그건 여의도 게이트와 구로구 게이트에서 충분히…….”
“두 곳 모두 우리 이능관리부가 처음부터 통제하고 있는 지역이었으므로 조작의 가능성을 제기하더군. 보도 자료까지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네. 이게 다 우리 이능관리부의 힘이 부족한 탓이지.”
힘의 균형은 일찍이 대형 길드 쪽으로 넘어갔었다.
대기업들의 자본을 앞세운 대형 길드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규제뿐이었으나, 그들은 영악하게도 정치권까지 손을 뻗치면서 규제를 막았다.
유선호 장관이 없었다면 이능관리부조차 진작에 해체당했으리라.
“내 어제 전각련 회장과 통화를 했었네. 그자가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잘 모릅니다.”
“조작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을 각오를 하라더군. 그쪽에서는 이미 우리가 조작을 했다고 단정 짓고 있었네. 만약에 조작이 아니더라도, 강제로 그렇게 만들 셈이었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아나?”
“……설마?”
“오늘 김시우 각성자가 그라운드 제로에 들어갈 거라는 이야기를 해 줬지. 자네도 결과가 궁금하지 않은가? 이 늙은 놈의 가슴이 주책없이 뛰는구만 그래.”
김동식 팀장은 어째서 타고난 장사꾼이라 불리는 유선호 장관이 김시우의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역시, 세상에 공짜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김동식 팀장은 유선호 장관을 따라 거대한 장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유선호 장관에게 물었다.
“저희가 정보를 흘렸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 김시우 각성자가 화를 내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유선호 장관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커피를 마시면서 대답했다.
“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으이. 이미 김시우 각성자도 알고 있네.”
“……예?”
“내가 이래 보여도 양심은 있는 장사치거든. 껄껄.”
2.
이능관리부의 유선호 장관이라는 사람.
노익장이라는 표현이 그 사람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에덴에서도 그리 흔치 않았던 것 같다.
어젯밤. 나 혼자 조용히 조깅을 하고 있을 때쯤 불쑥 찾아왔던, 멋들어진 노신사.
이미 그와 한 번 인사를 나눴기 때문에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에게서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이능관리부의 위치와, 그가 나에게 그라운드 제로 출입을 허가해 줬던 이유까지.
그리고 그는 곧바로 나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김시우 각성자께서 그라운드 제로에서 얻어 낼 모든 것에 대해 우리 이능관리부에서 보증을 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저희들에게 힘을 조금 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흔쾌히 거래를 받아 주기는 했다.
어차피 나로서는 그라운드 제로에 이왕 들어가게 될 거, 더 많은 걸 얻으면 좋았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내가 호구를 잡혔던 건가.”
아무리 봐도 이건 내가 손해를 본 것 같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곳곳에 금이 간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5년 전에 최초로 게이트가 발생했던 지역이라 그런지, 멀쩡한 건물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한때는 미술관이었을 이 폐허 역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서는 싸그리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비교적 어느 정도 질서가 잡혀 있는 장벽 밖의 세상과는 달리, 그라운드 제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단어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다만, 풍경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까지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닮아 있었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지.
[패시브 스킬 기감>이 당신을 향한 뚜렷한 적의를 감지합니다.]나는 폐허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마력에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면서 말했다.
“서른 명쯤? 이거 진짜 손해 보는 장사 같은데, 레오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일단 말로 해결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무력은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낯설다.”
내가 그렇게 평범하게 입으라고 당부했건만, 끝까지 사제복을 고수한 레오였다.
당연히 몸에 쫙 달라붙은 사제복 위로, 녀석의 짐승 같은 상체 근육이 불끈거리고 있다.
레오는 본인이 쓰고 있던 외눈 안경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하지만 저희에게 무작정 적의를 품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같은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는 레오의 등을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인간이니까 저러는 거지. 에덴에서야 악마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지만, 지구에는 없거든.”
“지구 역시 마수들이 침공해 오는 상황인 걸로 압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런 상황에서도 저러는 걸 보면 참 대단해. 그만큼 아직 정신을 덜 차렸다는 거지. 원래 욕심이란 게 그렇잖냐. 멀쩡한 인간도 맹인 만드는 거. 뭐…… 그래도 네 말대로 이야기나 좀 해 볼까?”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다음,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을씨년스러운 폐허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날도 좋은데 얼굴이나 보고 이야기합시다!”
내 말에 폐허 사이에 숨어 있던 자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 인내심은 그렇게 대단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그냥.
콰아아아아아앙!
발을 가볍게 굴려서 눈앞의 폐허들을 싸그리 무너뜨렸다. 그러자 곧 그 틈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좋게 말할 때 나오면 얼마나 좋아요. 피차 피곤하지도 않고, 안 그래요?”
마력으로만 감지했을 땐 잘 몰랐지만, 이렇게 육안으로 확인하니 특이한 점이 보였다.
“부끄럼들을 많이 타시나, 다들 복면을 쓰고 계시네.”
녀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저 복면이야말로 그라운드 제로에서 어떤 짓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증명해 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차마 얼굴을 깐 채로는 못 할 짓들.
그렇기 때문에 익명성 뒤에 숨어 있는 거겠지.
나는 그들을 슬쩍 훑은 다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저희는 그냥 신전 부지를 답사하러 왔습니다. 저희 리멘께서는 평화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비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형제자매님들.”
이런 내 부드러운 대화 요청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놈들 사이에서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더니 그자는 대뜸 복면을 벗어 던지며 본인의 흉악한 얼굴을 자랑스럽게 드러냈다.
살기가 번들거리는 좁쌀만 한 눈부터 시작해서, 얼굴 곳곳에 자랑스럽게 새긴 기괴한 문신까지.
저렇게 악당스럽게 생기기도 참 쉽지 않은 법이다.
아무튼, 누가 봐도 그 악당스러운 남자는 본인의 검을 나를 향해 겨누면서 말했다.
“못 비켜 주겠는데?”
“어째서입니까?”
“사이비 교주 새끼 따위를 귀한 곳에 들여보내 줄 리가 있나. 전각련에서 후하게 의뢰금을 치른다 해서 기대했는데, 막상 보니 별거 없는 애새끼였군.”
아무래도 내가 지금까지 보여 줬던 힘들을 전부 조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능관리부의 유선호 장관이 했던 말이 맞는 듯했다.
거기에 특이한 점은 저 남자가 보유하고 있는 마력량이었다. 그의 마력량은 지난번에 봤던 도깨비 길드의 최 대표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S급 헌터라는 건데, 내가 S급 헌터들에 대해서 아는 게 있어야지.
나는 어깨를 으쓱인 다음, 장갑을 손에 끼면서 넌지시 물었다.
“제가 별거 없는 애새끼라는 판단의 근거는 뭔가요, 형제님?”
“병신을 보고 병신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근거가 필요한가? 흐흐. 너 사기꾼 새끼들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거든.”
“얼굴이 엉덩이처럼 생기긴 했는데, 확실히 입으로 똥을 뱉는 재능이 있으시군요 형제님. 입이 항문인 모양이십니다?”
“팔을 잘리고도 그 혓바닥이 여전할 수 있는지 기대해 보겠다. 안 그래도 전각련에서 네놈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했어.”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녀석들은 사람을 꽤 많이 죽여 본 놈들이라는 거다. 그건 녀석들이 뿜어내는 질 나쁜 기세만 보더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훑은 후, 슬쩍 몸을 뒤로 돌리면서 레오에게 물었다.
“아직도 대화가 최선인 것 같아?”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적어도 스스로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놈들이 과연 죄를 회개할까?”
레오는 대답 대신에 허공으로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곧.
콰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우리들 주변에 마력을 두른 채로 숨어 있던 복면인 하나가 레오의 손에 의해 반으로 접혔다.
진짜 말 그대로 반으로 접혔다.
사람의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가 맞닿았으니, 그게 반으로 접힌 게 아니면 뭐냐고.
나는 난데없는 차력쇼를 펼친 레오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게 어떻게 회개할 기회를 준 거냐? 사람은 반으로 접히면 죽어.”
내 질문에 레오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스스로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입은 남겨 두지 않았습니까?”
“……대단하네.”
“과찬이십니다, 교황 성하.”
에라이 미친놈.
이놈의 의견을 물었던 내 잘못이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쉰 다음, 시선을 돌려서 어느새 석상처럼 굳어 있던 복면인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게 내가 말로 하자고 했잖아. 거절한 건 너희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