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59)
259화
3.
석대만 의원이 레오에 의해 지하실로 향하게 되고, 집무실에는 나와 김석훈 의원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라파르트 대주교가 다시 따라 준 국화차를 여유로운 표정으로 들이켰다. 그리고 은근한 눈빛으로 김석훈 의원을 바라보았다.
김석훈 의원은 여전히 뇌물수수 명단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에게 어떤 변명을 할지 궁리하고 있는 걸까?
그에게도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주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탓이겠지요.”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건 변명도, 그렇다고 분노도 아니었다.
목소리 끝이 떨리는 걸 봐서는 분명 치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치욕감은 나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자 말도 안 되는 궤변일 겁니다.”
그는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틀렸다.
나는 김석훈 의원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예?”
“김석훈 의원님께서는 모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유력한 대선 후보시기도 하지만…… 사실상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시잖아요.”
내가 오늘 김석훈 의원 말고도 석대만 의원까지 불렀던 이유.
그것은 바로 석대만, 그놈이 현재 야당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김석훈 의원은 비주류 출신이었거든.
내 말이 충분히 모멸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석훈 의원은 그저 씁쓸하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교황님께서는 정치에 관심이 아예 없으신 줄로만 알았는데, 아주 많은 걸 알고 계시는군요.”
“저는 딱히 관심 없는데, 알고자 하면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부하 직원들이 상당히 유능한 편입니다.”
그 정도 정보를 알아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김 실장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아도 되는 거였고, 라파르트 대주교가 이쪽으로 아주 빠삭한 상태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에덴에서도 교황청의 외교를 담당했었기에,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아주 많았다.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명단을 보시면 여당 쪽 의원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단이 발표될 경우, 피해를 입는 건 야당뿐만은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이 명단은 대통령님께서도…….”
“먼저 확인하셨죠. 아마 지금쯤이면 여당도 자체적으로 조사에 나서고 있을 겁니다. 썩어 문드러지기 전에 잘라 낼 계획이겠죠.”
김석훈 의원은 침음성을 흘리면서 명단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교황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정치인들은 이런 게 참 좋다.
대충 둘러 말해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를 챈다.
이 바닥에서 굴러먹으면 다 저렇게 되는 걸까?
“김석훈 의원님께도 잘못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밑의 사람들이 잘못된 길을 걷는 걸 막지 못한 것. 리더로서 당연히 짊어지셔야 하는 책임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야당이 무너지는 것?
그런 그림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게 내 여전한 신념이다.
리멘도 그런 모습을 바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하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조치로 해결해야만 한다.
썩어 들어간 부위를 스스로 도려내게 만드는 것.
지금 나는 김석훈 의원에게 그 ‘기회’를 제공해 줄 생각이었다.
“제안을 드리기 전에 백명교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잠시 실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회색빛 신성력을 끌어 올린 후, 김석훈 의원의 몸속으로 흘려 넣었다.
그러자 잠시 후.
“크으으.”
김석훈 의원이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신음성을 애써 삼켰다.
내 신성력이 그에게 내가 본 것들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까지 백명교가 벌여 왔던 짓들.
지난번 초대형 S급 게이트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나에게 들려주었던 목소리들.
거기에 테라가 나에게 보여 주었던 일부 미래까지.
이건 내가 펜리르를 흡수하면서 얻게 된 능력 중 하나였다.
내 신성력을 통하여 상대방의 정신을 나와 일순간 동조시킬 수 있는 능력.
“아아.”
김석훈 의원은 다시 눈을 떴고, 떨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도 나에게 무슨 질문을 할지 머릿속으로 고르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힘겨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희가 저 괴물들을…… 이 땅 위로 다시 끌어들인 겁니까?”
“정신력이 대단하시네요.”
보통 일반인이면 방금 내가 보여 준 것들을 보자마자 기절했을 텐데.
정말 초인적인 정신력이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
“어째서…… 어째서 저런 끔찍한 것들을…….”
“그들은 잘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권력욕에 눈이 멀게 되면 쉽게 보이는 것도 안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뭐…… 이건 어디까지나 제 추측입니다. 자세한 건 지금부터 알아 가 봐야죠.”
백명교가 단순히 뇌물만 뿌려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닐 거다.
아마 정치인들 일부는 백명교의 신도라거나, 그들에 의해 강제로 개종당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지점부터 빠르게 파고들 생각이다.
석대만 의원을 구금한 것도 그 때문이고.
나는 김석훈 의원을 향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김석훈 의원님은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반드시 인정받아야 할 정치인이라고. 의원님께는 제가 충분한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잃는 게 많은 싸움이 되겠지만, 그래도 모든 걸 잃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잘못된 선택을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진실을 보고서도 외면할 사람처럼은 안 보이거든.
여태까지는 그의 눈앞을 가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을 뿐이다.
그 그림자를 모두 걷어 냈을 때, 이 사람은 어떤 그림을 그려 나가게 될까?
개인적으로 궁금하긴 했으나 잠시 그 궁금증은 접어 두기로 했다.
“그럼, 남은 차는 천천히 들고 돌아가세요. 라파르트 대주교, 김석훈 의원님과 논의하고 싶었다는 사안들, 적극적으로 논의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성하.”
이제 김석훈 의원은 라파르트 대주교에게 넘겨주도록 하고.
나는 슬슬 메인 디시를 먹으러 가야겠다.
지금쯤이면 잔뜩 공포에 질려 있으려나?
4.
잠시 후, 신전의 지하 심문실.
“내가 오해를 했네, 오해를 했어.”
나는 심문실 가운데에 위치한 의자에 묶여 있는 석대만을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지금쯤이면 공포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역시 인간은 참 재밌다.
“야당의 국희위원을 이렇게 강제로 구금하고서도 너희들이 무사할 것 같아! 조작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명단으로, 감히 우리를 구금을 해? 국회의원 임기 중에 이렇게 우리를…….”
“혐의점이 존재하는 범죄자일 경우, 이레귤러들은 스스로 판단하여 수사를 진행한다. 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건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뿐이다……라고 이레귤러 특별법에 명시되어 있을 텐데?”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가서 턱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비릿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 일개 국회의원 따위가 이레귤러한테 목소리를 높여? 나한테 이런 권한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켜 준 것도 너희였잖아.”
나쁜놈들은 자고로 이래야지.
아주 끝까지 뻔뻔한 게 보기가 좋았다.
“네가 이끄는 계파가 야당 최대 계파라면서? 그래서 그런가, 그 명단에 가장 많이 이름이 들어 있는 게, 여당 야당 통틀어서 너희 계파였어.”
“우리 뒷조사를…….”
“아, 어두워서 잘 안 보였나? 레오야, 불 좀 켜라.”
“예.”
레오는 내 말에 따라 심문실의 조명을 켰다.
그러자 곧 심문실 구석에 피를 떡칠한 채로 누워 있던 한 남자가 꿈틀거렸다.
나나 레오는 어두워도 잘 보이긴 했었다만, 석대만에게는 갑자기 누군가 등장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허어어어억.”
피로 물든 그 남자를 보고 나서야 석대만의 기세가 누그러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남자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 이거 실례. 저거 살짝 치료 좀 해 줘. 손님한테 좀 잘해 드리지 그랬냐?”
“죄송합니다. 녀석이 영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저 남자의 정체는 내가 직접 잡아 온 마약상 성준.
백명교의 마약인 ‘회개’를 유통하다가 잡혀 들어온 범죄자 녀석이었다.
레오는 성준을 적당히 치료해 줬다.
그러자 곧 녀석의 정신이 돌아왔고, 성준은 깨어나자마자 비명을 내지르면서 소리쳤다.
“제발! 아는 거 다 말씀드렸어요. 제발…… 차라리 그만…… 그만 치료해 주십쇼. 제발…… 아니면 교도소. 그, 그래! 교도소라도 보내 주세요.”
차라리 교도소로 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성준.
레오가 어떤 방식으로 심문을 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필요한 정보는 다 뽑았어?”
내 질문에 레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통책에 불과했던 놈이라 가지고 있는 정보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충분히 정보를 뽑아냈다고 봅니다.”
“그러면 경찰 측에 넘겨.”
“이대로 넘깁니까?”
“팔다리 하나씩 정도 불구로 만들면 괜찮지 않을까?”
“알겠습니다.”
레오는 성준을 자루처럼 끌면서 심문실 밖으로 나섰고, 그렇게 이 심문실 안에는 나와 석대만 단둘이 남게 되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길길이 날뛰던 석대만의 기세가 한풀 꺾여 있었다.
아니지. 한풀 정도가 아니라, 그냥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본인의 눈으로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으니 제정신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이야기가 좀 통하려나.”
구석에서 의자 하나를 끌어와서 석대만과 마주 앉았다.
그러자 약간 지린내가 올라온다.
“오줌까지 싸셨어?”
“나, 나도 저렇게 만들…… 생각……이십니까?”
“갑자기 존대로 돌아오셨네. 저놈은 마약 판매상이었어. 당신과는 죄질부터가 다르지.”
“다행…….”
“다행일 것까지야. 죄질은 당신이 더 나쁘다는 걸 말해 주려는 거야. 저놈은 기껏해야 마약쟁이들에게 약을 유통한 거지만, 당신은 달라. 괴물들을 이 땅에 들여오게 만든 일등 공신이거든.”
정치, 언론 등 본인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백명교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했던 주동자 중 한 명.
이 모든 것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서 저지른 짓들이다.
“모든 게 무의미해질 텐데 권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어.”
권력을 손에 넣으면 뭐 해.
권력을 누릴 세상이 없어지고 나서는 하등 쓸모없는 건데.
그럼에도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다.
나는 석대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할게. 백명교와 처음 접선했던 때가 언제야?”
심문을 시작했다.
녀석이 답변하기 가장 쉬운 질문부터 건넸다. 그러나 석대만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다리를 떠는 걸 봐서는 무섭긴 하지만, 아무래도 더 무서운 존재가 있나 보다.
백명교에게 돈만 받은 게 아니었군.
녀석들이 협박을 거들었던 걸까?
뭐, 이렇게 비협조적이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지.
“다시 한번 묻는다. 석대만. 백명교와 처음 접선했었을 때가 언제지?”
여전히 묵묵부답.
석대만은 몸을 덜덜 떨면서도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걸 말해 버리면 나는 죽을 거야. 진짜, 진짜 죽을 거라고.”
“무서워서 대답을 못 해 주겠다는 건가?”
“너는 몰라…… 너는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아무리 말해도 몰…….”
“좋아.”
아무래도 아직 심문에 제대로 임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인 다음, 주저 없이 석대만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그것째로 어깨를 함몰시켜 버렸다.
콰드드드득.
뼈가 부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석대만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석대만.
나는 그런 석대만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는 너를 안 죽일 것 같아?”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