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59)
59화
3.
‘망했다!’
그것이 내가 그 나뭇가지를 보고 나서 떠올렸던 첫 번째 생각이었다.
교단의 성유물 보관실에는 귀한 성유물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성유물 정도는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뭇가지는 그곳에서 본 기억이 없다.
즉, 교황청에는 없던 성유물이란 뜻이다.
“이게 뭐야.”
그건 루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루나는 나뭇가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신성력이 느껴지는 걸 보면 성유물은 맞는 것 같은데…… 성하께서 소환하신 거예요?”
“……일단은.”
“다른 것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아니지, 그래도 리멘님의 성유물이니까 뭐 괜찮지 않을까요?”
“내가 원하는 걸 소환한 게 아니야.”
뽑기에서 이게 걸린 거지.
그렇게 나와 루나가 나뭇가지를 바라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쯤이었다.
레오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만, 레오의 심각함은 우리의 심각함과 종류가 달랐다.
“이럴 수가!”
당황하고 있던 우리와는 달리, 레오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평소에 감정을 잘 비추지 않던 레오가, 얼굴이 붉게 상기될 정도로 흥분하고 있던 것이다.
“성하! 혹시 이것이 꿈은 아닌지요!”
“진정해, 레오야.”
“진정하려야 진정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시작의 나뭇가지입니다! 500년 전에 사라졌던 교단의 성유물, 시작의 나뭇가지란 말입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500년 전에 사라진 성유물이라고? 저 나뭇가지가?
“아득히 먼 옛날, 리멘께서 처음 이 땅에 강림하셨을 적. 필멸자들에게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하며, 그 증거로 한 거대한 나무에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훗날 신목이라고 불리는 나무였지요.”
레오는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신목은 500년 전에 있었던 증오의 전쟁에서 식탐의 군단에 의해 불타 소멸하였습니다. 신목을 지키고 있던 이들 중 하나가 급히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겨우 도망칠 수 있었고, 그 나뭇가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레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곧 눈앞에 나뭇가지에 관한 정보 창이 떠올랐다.
시작의 나뭇가지>
●아이템 종류: 성유물 – 리멘 교단
●출신 차원계: 에덴
●설명: 한때 리멘의 약속을 상징하던 신목(神木)의 나뭇가지. 비록 신목은 악마들에 의해 불타 사라졌지만, 신목에 깃들어 있던 의지와 성스러운 힘이 나뭇가지에 남아 있다. 신목이 남긴 씨앗이기도 하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목을 수호하는 신수가 잠들어 있다고 한다.
●사용 효과: 신성력>으로 충만한 대지에 나뭇가지를 꽂을 경우, 신목의 묘목>으로 변화한다.
“이래서 나뭇가지를 꺾어서 도망친 거구나.”
나는 성유물의 사용 효과를 바라보면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즉, 이 나뭇가지를 심으면 그 신목이라는 것으로 자라난다는 소리였다.
“신목은 주위의 신성력을 더 정순하게 만들어 주며, 땅을 기름지게 만듭니다. 또한 신목과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높은 치유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나 중요한 걸 도대체 어쩌다가 잃어버린 거냐?”
“……그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교황청에 보관된 역사서에는 의문의 습격으로 인해 탈취당했다 정도로만 적혀 있었습니다.”
도대체 옛날의 리멘 교단은 어떤 교단이었던 걸까?
성유물을 탈취당할 정도였으면 아주 그냥 갈 데까지 갔던 모양인데……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꽝이라고 생각했던 성유물이었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꽝이 아니었다.
어쩌면.
“대박이네.”
“대박이네요.”
“이보다 더 큰 경사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희를 보살피시는 리멘님의 은혜입니다!”
1등 상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유물에 당첨된 것일 수도 있다.
500년 전에 유실된 교단의 역사, 신목.
신목의 효능에 대해 들으니 레오가 저렇게 흥분하는 것도 대강 이해가 갔다.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나뭇가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루나와 레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길게 잴 것도 없이, 앞 정원에 심도록 하자.”
레오는 내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요. 지구에서 이곳만큼이나 신성력이 풍부한 곳은 없으니,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삽 챙길까요?”
“삽은 또 언제 사 뒀어?”
“아침에요. 혹시 뭔갈 묻을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요.”
도대체 뭘 묻어 버리겠다는 걸까.
나는 루나가 선보이는 매운맛을 고개를 흔들어 떨쳐 낸 다음, 손을 내저으면서 답했다.
“나뭇가지 하나 심는 건데 삽은 무슨. 그냥 따라와.”
“네에.”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신목이란 게 그렇게 좋은 거면 하루라도 빨리 심는 게 맞다.
그렇게 우리 셋은 곧바로 신전 옆 정원으로 향했다.
4.
신전을 두르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
“와아! 교황님이다!”
“폴더좌랑 누나도 있어!”
그곳에는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신청을 통해서 이곳에 들어온 추모객들이었다.
지난주부터 하루 1,500명까지 받기로 했었는데, 신청이 열리면 30초 이내로 마감된다고 들었다.
그만큼이나 이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나마 추모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우리를 발견한 그들은 저마다 우리에게 다가와서 감사를 전했다.
그들 역시 아침에 만났던 사람들처럼 우리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진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아침에 만났던 사람들처럼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진 않았다.
아마도 그건 그들이 이곳에 우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추모를 하러 왔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추모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신청을 해야만 들어오실 수 있지만, 아마 곧 있으면 자유롭게 오고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내 말에 추모객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곳, 서울 그라운드 제로의 정화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거든요. 여러분들도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잠든 곳에 와서 자유롭게 추모할 수 없다는 건 분명 불행한 일이다.
그 마음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에덴에서는 우리 부모님을 모신 납골당에 갈 수 없었으니까.
정부에서 우리에게 준 권한이라면 우리 교단의 사람들 말고는 출입할 수 없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나나 리멘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곳.
에덴의 리멘 교단이 그러했듯, 지구의 리멘 교단도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편하게 오고 가실 수 있도록 저희 교단에서도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여러분들과 이곳에 잠든 분들에게 리멘의 평안이 있기를.”
나는 그들에게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고, 이런 나를 따라 레오와 루나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짝짝짝.
그렇게 우리는 추모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천천히 옆으로 물러났다.
“성하.”
나뭇가지를 심으러 가는 길, 루나가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왜?”
“아니다.”
“말해.”
“그냥, 방금 전에는 좀 교황 같으셨다구요. 평소에는 교황 같지 않다가도, 이럴 때 보면 참 교황 같으시다니까?”
“성하께서는 언제나 교황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레벤톤 경.”
교황 같다는 뜻이 도대체 뭘까.
루나는 내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짓자, 다시 한번 크게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리멘께서 우리 사랑스러운 교황님을 끝까지 지켜 주시기를.”
“……낯간지럽게. 아, 도착했다.”
“말 돌리시는 것 좀 봐. 귀여우셔라.”
나는 루나가 뭐라고 하건 말건, 눈앞을 바라보았다.
아까 나뭇가지를 심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떠올렸던 장소.
정원 한쪽에 위치한 넓은 잔디밭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서 휑한 느낌이 있어서 뭐라도 심을까 고민했었는데, 어쩌면 리멘은 여기까지 내다봤던 게 아닐까?
그녀에게는 예지력이 있으니 말이다.
나는 잔디밭의 중앙으로 걸어간 다음, 품속에 고이 모셔 둔 나뭇가지를 꺼내면서 숨을 뱉어 냈다.
그러자 곧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 창 두 개가 떠올랐다.
[현 위치에는 신성력>이 풍부합니다.] [성유물 시작의 나뭇가지>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리멘의 증표>가 신전의 지하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신성력은 풍부할 수밖에 없다.
“자, 심어 볼까.”
나는 신성한 빛을 내뿜고 있는 나뭇가지를 조심스럽게 잔디밭에 꽂아 넣었다.
잠시 후.
“오.”
나뭇가지에서 흘러나온 빛이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내 허리 정도 되는 높이까지 나뭇가지가 자라난다.
그것은 더 이상 ‘나뭇가지’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이것이 신목의 묘목…… 과연, 성서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묘목임에도 불구하고 감히 성스럽다 부를 수 있겠습니다.”
“그러네.”
레오의 말대로 어엿한 ‘묘목’이었다. 그리고 강력한 신성력이 느껴지는 중이기도 했다.
“성서에 기록되기로, 신목에는 신목을 수호하는 동물, 즉 신수가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신수?”
“예. 한데 어쩐 일인지 신수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묘목에서 갑작스럽게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곧 묘목 앞 잔디 위에 무언가의 형상을 이루었다.
이게 방금 전에 레오가 말한 그 신수라는 동물인 모양인 듯한데, 어째 크기도 작고 귀가 뾰족 튀어나와 있는 걸 보아하니…….
“고양이?”
딱 고양이 같았다.
그러나 루나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말했다.
“에이, 성하. 신수라구요, 신수. 유니콘 같은 멋있는 게 등장하…….”
미야옹!
“꺄아아아! 진짜 고양이잖아! 성하! 얘 좀 봐요!”
“……먼치킨이네.”
어느새 우리의 눈앞에는 눈처럼 하얀 털을 자랑하는 새끼 먼치킨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녀석은 우리를 멀뚱멀뚱 바라보더니, 곧 나에게로 달려와서 내 다리에 자신의 머리를 마구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신수>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신수>는 신목>과 성장을 함께합니다. 신수>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당신의 교단에 여러 가지 효과를 부여해 줄 것입니다.] [신목>의 성장은 교단의 신도들이 쌓은 선행과 메인 퀘스트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한마디로 성장시키면 성장시킬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는 뜻이다.
나는 메시지 창을 닫은 다음, 어느새 내 품속으로 파고든 신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미소를 지었다.
기대했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지만, 성장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여워.”
치명적으로 귀엽다.
이렇게까지 귀여워도 되나 싶을 정도란 말이지.
“집으로 데려가도 되려나?”
인욱이로부터 시연이가 요새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연이에게 고양이 알러지가 있어서 입양을 못 했다는데, 신수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마 가능할 겁니다. 신수와 신목은 영혼으로서 연결된 존재니까요.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어야 신성력을 나눠 받을 수 있을 테니, 오랫동안 떨어트리면 안 될 겁니다.”
“레오야. 너도 신목 오늘 처음 봤다면서,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냐?”
그 질문에 레오는 왼손에 들고 있던 성서를 들어 올리면서 대답했다.
“성서에는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교과서로 공부했다, 뭐 그런 느낌이네.”
에덴에서 10년 동안 있으면서 성서를 제대로 읽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탓에 잘 모르겠다.
루나 역시 마찬가지.
“나도 몰랐는데.”
“그거야 레벤톤 경도 성서를 가까이하지 않으셨으니까요.”
“에이, 나는 성녀니까 괜찮아. 그 정도는 리멘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거야.”
……루나 얘는 가끔 진짜 성녀가 맞는지 의심이 간단 말이야.
나는 골골송을 부르고 있는 신수를 품속에 안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레오와 루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 먼저 퇴근한다.”
빨리 집에 가서 시연이에게 신수를 보여 주고 싶다. 그리고 이름도 지어 줘야지. 자꾸 신수라고 부르면 뭔가 정 없잖아.
“저희들은요?”
“너희 둘은 남아서 신전 지켜야지. 수도원이랑 성기사단 본부도 세워 줬으니까 가서 미리 세팅도 좀 해 두고. 아, 그리고 오늘 승우 아버님 퇴원하신다고 하시거든? 레오 네가 가서 좀 모셔 와.”
“그럼 성하는요.”
“내일 할머니가 귀국하시거든. 집에 가서 미리 청소도 좀 해 두고, 우리 신수에게 이름도 지어 주고. 할 게 너무 많다.”
둘은 곧 탐탁지 않게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명령에 불만이 잔뜩인 얼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그들을 당당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꼬우면 너희들이 교황 하든가. 그치?”
미야아아아옹-.
내 품속에 있던 신수가 내 가슴팍에 머리를 비비면서 소리를 내었다.
역시 신수라서 그런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걸 보니 참 영특한 녀석이다.
아무튼.
이제 대충 내실은 끝났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그런데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누가 내 이야기라도 하고 있나?
5.
같은 시각.
세종특별자치시에 위치한 신(新)청와대.
“자, 그럼 어디 한번 회의를 시작해 봅시다. 유선호 장관. 미국과 일본 측에서 무엇을 요청했다고 했습니까?”
대통령의 질문에 유선호 장관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본 미야기현 근방에 출현한 국가위기급 마수, 야마타노오로치의 토벌 작전에 대한민국 각성자들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국가위기급 마수라…… 두 번째 등급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국제마수 등급에서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등급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군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듯한데…… 추가 조건이 붙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미국 측에서는 파견단에 김시우 각성자를 포함시켜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흐음. 유선호 장관은 그들이 왜 그런 요청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유선호 장관의 말에 대통령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유선호 장관은 그런 대통령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국 측의 파견 명단에 그들의 이레귤러인 에이든 하워드, 일명 바바리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바리안? 설마…… 그 바바리안을 말하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유선호 장관은 잠시 말을 끊은 다음,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맺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대한민국 최초의 이레귤러를 시험해 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