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마지막 심사를 앞두고, 나는 손을 들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요.”
“……??”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나는 정말 우려된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번 응시생 타입이 뭐죠?”
헌터 협회 기획부 주진해 차장이 재빨리 대답한다.
“응시 지원서에 보면 기타 타입으로만 기재가 되어 있습니다. 다른 능력은 없는 걸로 확인됩니다만…….”
“아. 다행이네요.”
은근한 눈빛이 가열찬과 다른 에스퍼들을 넘어 연지선에게 도착한다.
“이번 몬스터까지 레벨업이 된다면 정말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요.”
“……!!”
연지선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두 눈에 귀화가 피어오른다.
내가 하는 말이 무슨 의도인지 눈치챈 것이다.
강정현의 에테르 수치는 비수보다 높았고, 응당 비수를 테스트할 때보다 강한 몬스터가 나올 것이다.
쉬는 시간에 슬쩍 물어보니 헌터 협회에서 감금(?) 중인 몬스터 중 가장 강한 녀석을 풀 것이라고 했다.
비수 때에도 갖은 힘을 다 써 가며 버프 된 몬스터를 저지했는데, 만약 강정현을 상대하는 몬스터가 ‘버프’로 파워업을 한다면?
지금의 연지선으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몇 단계로 버프를 받든 자신이 모두 저지할 수 있다는 말이 공허한 허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너 이 자식……!!”
안다.
강정현이 기타 타입이라는 건 진작에 파악한 뒤다.
게다가 버프는 그렇게 흔한 스킬도 아니다.
하나 일부러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단순히, 글로리 길드 소속 최강의 에스퍼를 놀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꽤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 불안한 얼굴은 연지선에게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 되었다.
‘네가 불안하니 확인을 좀 해 봐야겠다’는 의도가 명백히 담겨 있었으니까.
“거, 걱정 마십시오 천해선 헌터님.”
연지선의 입에서 험한 말이 흘러나오자 주진해 차장이 중간에 나섰다.
“강정현 응시생의 데이터는 충분히 확인해 두었습니다. 만약 ‘버프’ 같은 에스퍼 능력까지 보여 줄 요량이었다면 다중 능력 테스트도 함께 보았을 겁니다.”
“아. 그래요. 정말 안심이 되네요.”
“하, 하하하. 그렇죠?”
주진해는 알고 있을까?
나를 안심시키려는 행위가 연지선의 속을 박박 긁어 놓는 일이라는 걸.
“지금 뭐가 그렇다는 거예요?”
연지선의 표정에 ‘노기’를 넘어 ‘살기’가 비치기 시작한다.
이 자리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협회 관계자는 물론이요 다른 길드의 최강 에스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있으니 연지선의 심정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나를 찢어 죽이고 싶겠지.
“아……. 연지선 헌터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됐으니까 빨리 마무리나 하죠.”
연지선이 차갑게 뱉으며 다리를 반대편으로 꼰다.
그 쌀쌀맞은 모습에 난 참지 못하고 질문 하나를 던지고 말았다.
“정말 유리 벽 없이 괜찮을까요?”
“괜찮다고 이 씨……. 천해선 헌터님? 10성 몬스터가 나와도 내가 다 죽여 버릴 테니까 그만 불안해하지?”
“씹성이요?”
“씹성이 아니라 10성!!!!!”
연지선이 참지 못하고 고함을 빽 지른다.
낄낄.
놀릴 만큼 놀렸으니 이제 본격적인 하이라이트를 지켜보실까.
내가 연지선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팔짱을 끼자, 다른 심사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세를 고쳐앉는다.
“천해선, 자네.”
“네?”
가열찬의 동공에 경탄의 빛이 가득하다.
“대한민국에서 연지선 헌터를 놀려 먹는 사람은 자네가 유일할걸세.”
“가 대표님도 은근히 즐기시는 눈치던데요.”
“……들켰나?”
가열찬이 머리를 살짝 낮추며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글로리 길드가 국내 톱이라고는 하나 연지선은 직책은 일개 팀장.
다른 길드의 대표에게는 당연히 예의를 차려야 한다.
그러나 연지선이 ‘비숍’ 대표인 가열찬에게 하는 행동에는 일말의 존중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대놓고 무시나 안 하면 다행이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연지선을 만날 때마다 쌓인 게 많았을 것이다.
“글로리 길드는 인성 시험을 거꾸로 보는 게 아닐까요? 어째 한자리하는 사람들마다 다 저런 건지.”
“그, 그게 지금 자네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네? 제가 왜요.”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연지선보다 자네의…….”
가열찬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가 입맛을 다신다.
왜.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더 해 보시지?
그때, 마지막 시험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응시 번호 3279.
“……드디어 나오는군.”
에테르 스코어 41,987.
이번 분기 최고의 유망주가 시험장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안녕하세요. 강정현입니다.”
귓불이 달아오른 걸 보니 꽤나 창피해하는 것 같군.
강정현이 머뭇거리며 심사위원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적잖이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벼, 벽이 부서졌네요? 이대로 그냥 하나요?”
그의 순수한 질문에 연지선이 다시 한번 얼굴을 붉혔고, 모든 관계자들이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썼다.
음.
강정현 저 친구.
은근히 기특한 짓을 하는군.
“상관없으니 그냥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주진해 차장이 연지선의 눈치를 살피며 재빨리 시험의 재개를 알렸다.
덜컹.
주진해의 맞은편에서 커다란 문이 열렸고, 이내 조그마한 체구의 몬스터가 떠밀리듯 시험장 안으로 들어왔다.
양쪽으로 뾰족하게 솟아난 귀와 앞으로 툭 튀어나온 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피부가 청록색으로 뒤덮인 몬스터.
놈을 확인한 심사자들이 탄식을 뱉었다.
“이런…….”
“하필이면……!!”
반응이 왜 이래?
나는 고개를 돌려 가열찬에게 물었다.
“저놈이 그렇게 센가요? 생김새는 고블린이랑 비슷한데.”
가열찬이 민둥머리를 쓸어넘기며 대답한다.
“저렇게 보여도 꽤 강한 놈일세. ‘워 고블린’이라고 불리는 녀석인데, 난이도는 비수 씨가 상대했던 놈과 같은 5성(★★★★★)이지만 전투력은 더 뛰어나다고 봐야 하지.”
“그 무식한 트롤보다 더 세다구요?”
“그렇네. 일단 몸의 근력이 굉장히 탄탄하고, 파괴력까지 갖추었지. 인간보다 작은 크기로 트롤과 엇비슷한 힘을 낸다면 어떻겠나.”
“와우. 그거 상대하기 꽤 힘들겠네요.”
“게다가 트롤의 느린 공격과 달리 ‘워 고블린’의 스피드는 웬만한 ‘A’랭크 나이트보다 빠르네. 방심하다가는 억 소리 나는 거지.”
“아. 그래서 다들 저렇게 긴장하고 계시구나.”
나는 피식 웃으며 전투 태세에 돌입한 다른 에스퍼들을 둘러보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태연히 관망하겠지만 지금은 시험장과 심사위원 사이의 유리 벽이 부서진 상태가 아니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등장한 셈이다.
“뭐, 걱정하지 마세요. 누군가가 잘 막아 주겠죠.”
나는 일부러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 목청을 높인 뒤 눈에 힘을 주었다.
뒤에서 주먹이 부들거리는 느낌이 나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지금까지는 사전 여흥에 불과하다.
이제 몬스터까지 나왔으니, 강정현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때다.
최근 몇 년간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기타 능력’ 계열의 유망주.
그는 과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몬스터를 제압하는 걸까?
쉬이익.
워 고블린이 혀를 낼름거리며 몸을 앞으로 웅크린다.
“흡……!”
강정현이 잔뜩 긴장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허……. 뒤로 물러선다고?”
가열찬이 실망스러운 듯 혀를 찬다.
나 또한 살짝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응시 시험장은 웬만한 풋살 구장보다도 더 컸고, 강정현은 몬스터와 수십 미터의 거리를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정현이 뒤로 물러났다는 건, 단순히 기세에서 밀려났다는 의미다.
혹은 겁을 잔뜩 집어먹었거나.
누군가가 보기에는 단순한 한 걸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해석하기에 따라 그건 꽤나 큰 의미를 담기도 한다.
“어쩌면 싱겁게 끝날지도 모르겠군.”
“왜요?”
“자네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나는 수년간 헌터 시험 심사자로 참여했지. 강정현만큼은 아니더라도 에테르 수치가 높았던 응시생들은 아주 많아. 하지만 그들 모두가 좋은 등급을 받지는 못했네. 왜인 줄 아나?”
가열찬이 손가락으로 강정현을 가리켰다.
“두려움 때문이지.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마수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면 가진 능력의 일 할도 발휘할 수가 없네. 커다란 뱀 앞에서 쥐가 굳어 버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지.”
“흠.”
“아까 잠깐 봤을 때도 대범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해지는군. 이대로 ‘구속구’가 바로 발동될지도 모르겠어.”
응시생이 위험해질 때 몬스터에게 전기 충격을 일으키는 ‘구속구’.
가열찬은 그 장치를 언급할 만큼 이번 테스트를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조금 다른 게 보인다.
“실망이 크신가 봐요.”
“물론이지. 얼마 만에 나온 기타 타입의 유망주인가. 에테르 수치만 보면…….”
“아니요. 그게 아니구요.”
“으응?”
“한숨을 쉬시느라 그다음 동작을 놓치신 것 같은데요.”
“다음 동작?”
워 고블린의 위협적인 동작에 강정현은 겁먹은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가열찬의 말대로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나 한편으로, 강정현은 오른팔을 반대편 어깨에 가져다 대었다.
언뜻 보기에는 양팔을 웅크려 잔뜩 쫄아 있는 것 같지만, 아니다.
왼쪽 팔 전체를 칭칭 감고 있는 저 붕대.
강정현의 손끝은 정확히 그 붕대의 끝에 닿고 있었다.
탕!!탕!!!
워 고블린이 용수철처럼 몸을 튕기며 시험장의 이곳저곳을 도약한다.
“빠르다……!”
포이즈너 레벨이 오르지 않았다면 놈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 것조차 힘들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주변 에스퍼들 대다수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움직여 댔다.
강정현을 농락이라도 하듯, 놈은 위아래 좌우 할 것 없이 벽을 타고 날아다녔다.
왔다 갔다 하는 움직임만으로도 강정현이 입고 있는 옷이 사정없이 펄럭일 정도였다.
그 움직임 속에 조금이라도 살의가 있다면, 강정현의 몸은 당장에 찢어져 버려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위험하네. 완전히 겁을 집어먹은 표정이 아닌가. 당장이라도 구속구를 발동시켜야……!”
가열찬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시만요.”
“?!”
“좀 더 지켜보죠.”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강정현의 어깨에 메여진 붕대가 풀어져 내렸다.
스르륵…….
놀랍게도, 붕대가 풀린 그곳에 응당 있어야 할 팔이 보이지 않았다.
“뭐……!!!!!!”
“아니???????”
사람들이 놀라는 건 팔이 없어서가 아니다.
몬스터가 출몰한 이후 신체 일부분이 훼손된 사람이 한둘이던가.
문제는, 붕대를 풀기 전까지 강정현의 팔에는 분명 ‘뭔가’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술인가?”
나의 순진무구한 감상에 가열친이 이맛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붕대를 풀기 전에는 팔이 있었는데요, 풀어 보니까 없었습니다.
이런 기상천외한 일을 마술 이외에 설명할 길이 있을까?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두 개의 단어가 있었다.
[기타 타입]“설마…….”
내 중얼거림에 대답이라도 하듯, 강정현의 어깨에서 흉칙한 ‘무언가’가 뻗어 나왔다.
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악!!!!”
주변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기이한 발출 때문이다.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헌터 시험장에 들어서고 난 뒤 느꼈던 비릿한 내음.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포이즌 던전에서 맡았던 특정한 생명체의 냄새.
그건 바로, 식물의 향이었다.
당연히 일반적인 식물은 아니고, 포이즌 던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커다란 식물.
지나가는 벌레들을 잡아먹는 식충식물이 분명 저렇게 생겼었다.
눈앞에 보이는 놈(?)이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것만 제외하면.
몸의 몇 배는 되는 놈이 나오다 보니 강정현이 마치 씨앗(…….)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그리고 그 흉측한 식물의 줄기가, 줄기 끝에 달린 아귀가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덥석.
강정현의 주변에 일던 바람이 순식간에 멎었다.
바람을 일으키는 주체가 제압당한 것이다.
정확히는, 먹혔다는 표현이 어울리겠지만.
“해치웠…… 나요?”
그걸 니가 물어보면 어떻게 해?
강정현이 한 팔에 굉장한 것을 주렁주렁 단 채로 이쪽을 돌아본다.
가열찬이 설명해 준 내용들이 무색하게, 강정현은 ‘워 고블린’인지 뭔지를 한순간에 꿀꺽해 버렸다.
보아하니 무서워서 눈을 감은지라 자기가 뭘 했는지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이들의 턱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 고고하기 짝이 없는 연지선조차 목젖이 보일 만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을 정도였다.
저런 소심한 얼굴을 하고서, 눈 깜짝할 사이에 마수를 먹어치운단 말인가.
“와……. 뭐 저런 게 다 있지?”
나는 헛웃음을 삼킨 채 실실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