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우리는 8성 던전에 갑니다.”
푸확.
비수는 대답 대신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내 쪽으로 뿜었다.
덕분에 아주아주 불쾌한 물방울들이 얼굴에 닿았다.
“……야.”
“어머. 미안. 근데 내가 뭔가를 잘못 들은 거 같아. 8성 던전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어. 제대로 들었네.”
“홀리 씻. 너 그때 8성 던전에서 죽을 뻔했던 거 잊었어?”
그러자 마리아가 귀를 쫑긋 세운다.
“8성…… 이요? 최근에 그런 기록은 못 본 것 같은데…….”
마리아가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이언트 트레저를 잡았던 8성 던전.
그건 도이수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미리 감지했던 장소였고, 소리 소문 없이 해치웠기 때문에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흠.
아무래도 이런 식이면 대화가 이어지기가 어렵겠군.
“실은 오픈해야 할 정보가 있어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길래 가만있었지만.”
엄브렐라 인더스트리와의 관계.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은 모든 동료들에게 오픈해야 한다.
자신들이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고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 그러니까…… 사전에 감지되는 파장만으로 던전의 생성을 알 수가 있다는 건가요? 특히나 포이즌 던전을……?”
내 말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당연히 강정현이었다.
게다가 웃프게도, 그는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관심을 전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피는 못 속인다 이건가.
그에게도 지식을 탐구하는 과학자의 성향이 조금은 남아 있는 듯하다.
“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저와 비수, 그리고 육철완 아저씨와 힘을 합쳐서 자이언트 트레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맙소사…….”
마리아가 깊은 탄식을 뱉는다.
“8성 난이도는 글로리 길드에서도 팀을 합쳐서 공략해야 하는 어려운 장소예요. 게다가 자이언트 트레저는 악명 높기로 유명한 몬스터인데…… 그걸 단 세 분이서…….”
“운이 좋았죠. 실제로 죽을 뻔하기도 했구요.”
기분 탓일까.
셋이서 던전을 공략했다는 말에 육철완을 향한 시선이 살짝 바뀐 것 같다.
그전에도 믿지 못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정말 육철완을 신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육철완조차 얼굴에 수심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8성 던전은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손발을 맞출 시간도 필요하고…….”
“돈 벌어야죠. 벌어서 여러분들의 티어에 맞는 소득을 얻고, 정현 씨의 대출도 한 방에 갚고.”
“그건 그렇지만…….”
“정 안타까우면 던전 대신 철완 아저씨가 대신 갚아 주는 방법도 있는데.”
“그래서 던전 공략일은 언제지요?”
“…….”
보아라 강정현.
세상은 이렇게 비정한 것이다.
육철완이 반 농담으로 한 말에 강정현이 입을 헤 벌렸고, 그 모습을 본 비수가 깔깔대며 웃었다.
“공략은 다음 주에 이루어질 겁니다. 셋이서도 클리어했던 8성 던전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여차하면 저 혼자 해결해도 됩니다.”
“오올……. 듬직한데?”
“물론, 그렇게 되면 수익은 다 제 겁니다.”
“이 악독한 놈……!!그 꼴은 못 보지!!”
8성이라는 이름에 다들 긴장한 듯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네 명의 ‘S’랭커로 이루어진 조합이 그 정도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왠지 누구 한 명이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에이.
기분 탓이겠지.
* * *
“그래서?”
구건이가 심각한 얼굴로 연구소장에게 묻는다.
“결과적으로…… 이 물질의 분자 구조를 해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연구소장이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떨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구건이는 꽤나 인내심을 가지고 이번 연구를 기다려 주었다.
암흑 물질(Dark matter).
키메라가 되어 버린 유지원의 사체 현장에서 발견된 검은 덩어리.
글로리 길드의 직원들이 현장을 정리하며 발견한 정체불명의 물질이, 강남 연구소에 보관되어 있다.
언뜻 보면 타 버린 쓰레기 같은 형상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위화감이 드는 물건이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검은색과는 확연히 다른 것은 물론이요, 놀랍게도 녀석은 살아 있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몸(?)을 꿈틀거렸다.
마치,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서는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강남 연구소장은 코피를 쏟아 가며 며칠 밤을 암흑 물질의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얻게 된 결론은 단 하나.
이건 분석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다.
그것이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 준 구건이에게 보고할 수 있는 전부였다.
‘좆됐네.’
연구소장이 마음속으로 울상을 지었다.
구건이가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강남 연구소 전역에 퍼졌다.
그래서 연구소장은 더욱 마음이 타들어 갔다.
그가 어떤 이유로 이 물질에 관심을 보이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
구건이는 이례적으로 글로리 길드 극비 보고서를 연구소장에게 오픈했다.
이 암흑 물질이 유지원의 키메라화와 관련이 있다 여겼고, 그 무한한 가능성에 관해 조사해 보라 시켰다.
고작해야 ‘E’급 힐러였던 유지원이 구건이의 절대 방어 스킬, ‘통곡의 벽’을 깨부쉈다는 내용은 연구소장으로서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만약, ‘S’랭커인 구건이가 이 암흑 물질의 가능성을 이용할 수 있다면?
상부의 지시 이전에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할 만한 연구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아니지.”
구건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런 게 아니야.”
“네…… 네?”
“누가 만든 건지, 분자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는 내 알 바 아니야. 이걸 내 몸에도 넣을 수 있는지가 궁금할 뿐이지.”
“……!!”
그건 미친 칫이다.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이미 유지원이 어떤 몬스터가 되었는지 겪지 않았는가.
‘무모해…….’
연구소장은 구건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 지나치게 감정적일 때가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신중한 스타일이었다.
어떤 물질인지 파악도 되지 않은 녀석을 함부로 집어넣을 얼간이가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그의 판단력을 흐리고, 이토록 절박하게 만든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에테르 앰플에 이 녀석을 섞어.”
“대표님!”
연구소장이 발작적으로 소리친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하면…….”
“자칫하면 뭐.”
구건이가 연구소장의 말을 자른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런 말인가?”
“…….”
“걱정하지 마. 내가 뒤져도 월급은 꼬박꼬박 나올 테니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긴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물론 나도 자살할 생각은 없어. 용량을 0.1%만 섞어서 진행해 보자구.”
낮게 가라앉아 있던 구건이가 갑자기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연구소장의 어깨를 툭 두드린다.
‘그래……. 0.1% 정도라면…….’
천 분의 일.
모든 약물이 그러하듯, 투약하는 성분이 미비하면 효과도 적다.
아니, 천 분의 일이라면 투약을 했는지조차 모르게 지나갈 수도 있겠지.
에테르 앰플은 몬스터에서 추출한 코어를 헌터의 몸에 주입할 수 있도록 가공한 용액이다.
당연히 헌터들이 구하지 못해 안달인 물건이고, 원재료인 코어의 가치가 높을수록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물론 ‘S’랭커인 구건이가 앰플 하나 투약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이미 에테르가 충만한 상태에서는 앰플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가, 구건이가 생각한 미친 짓의 근간이 되었다.
최소 효율에 더해진 최소 효율.
영향이 끼칠지 의심스러울 만큼의 극미량부터 테스트는 진행될 것이다.
“넣어.”
구건이가 무심한 얼굴로 연구소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 * *
촤아아아아아아악.
붕대를 푼 강정현의 오른팔에서 식물 다발이 펼쳐진다.
놀랍게도, 녀석(?)은 이전 시험장에서 보았던 굵은 형태가 아니었다.
신경 다발처럼 흉측하게 생긴 식물들이 이리저리 뻗어 나갔고, 그럴 때마다 녀석들은 꼬챙이 신세가 되었다.
베놈 비(Venom bee) / type – poison, 비행형 / 처치 난도 6성(★★★★★★) / 물리 레벨 ‘B’ / 기타 레벨 ‘C’ / 전용 스킬 – 동귀어진: 수세에 몰린 베놈 비는 최후의 저항으로 꼬리에 달린 독침을 발사합니다. 일반적인 치유 능력으로는 베놈 비의 독액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죽는 와중에도 진상을 부리기로 유명한 놈.
그래서 일반 헌터들이 매우 까다로워한다는 몬스터 중 하나다.
게다가, 성체의 크기가 워낙 거대해 성인 남자의 절반 수준이 되었다.
1m는 되어 보이는 맹독 벌이 수십 마리씩 공중을 배회하니, 하나하나가 수준 낮은 던전의 보스 몹처럼 느껴질 정도.
그러나 까다롭기로 이름난 ‘베놈 비’는 단 한 명의 헌터에게 무력화되고 있었다.
강정현.
그의 팔에서 나온 식물들에 녀석들은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 하고 몸이 꿰뚫려 나갔다.
푹!!!!
몸이 꿰뚫리는 와중에도 ‘베놈 비’가 독침을 발사해 강정현의 팔, 즉 이종 식물에 박아 넣는다.
워낙에 기세가 흉흉하다 보니 식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비수가 절로 몸을 움찔한다.
“윽……. 정현아, 괜찮아?”
“예? 아 네……. 괜찮아요. 딱히 통증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아서…….”
“몸처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데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니……. 완전 사기잖아.”
비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쓰게 웃는다.
아무래도 저 식물은 비수의 버프빨을 꽤나 잘 받는 듯하다.
물만난 고기처럼 뻗어 나간 나뭇가지들이 전방 수십 미터를 장악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처음에는 귀가 울릴 만큼 날갯소리가 지천에서 들렸는데, 이제 남은 녀석은 채 몇 마리가 되지 않았다.
“위험합니다!”
푹.
‘베놈 비’의 진상 짓은 타깃을 가리지 않았다.
식물에 침을 박아 넣는 게 통하지 않자, 이쪽으로 독침을 날리는 놈들이 늘어났다.
그럴 때마다 육철완이 방패형 디바이스를 들어 우리를 보호해 주었다.
“크윽.”
그러나 독침의 위력이 강대한 탓에 일부는 방패를 뚫고 육철완의 몸에 박힌다.
그럴 때마다 마리아가 나타나 침을 뽑은 뒤 치유력을 불어 넣었다.
일반적으로는 ‘베놈 비’의 독을 해소할 수 없다지만, 힐러의 티어가 ‘S’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육철완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우리를 수호해 주었다.
날카로운 공격수와 지원가, 그리고 힐러까지.
의도치 않은 영입이었지만 의외로 손발이 잘 맞고 있었다.
“아주 좋아요! 이런 기세면 몇 분 안에 돌파할 수 있겠어요!!”
“다 좋은데…….”
비수가 뭔가 마땅찮은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본다.
“응?”
“넌 왜 아무것도 안 하냐.”
“무슨 소리야? 하고 있잖아.”
나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녀에게 대답했다.
“응원.”
“너 진짜 뒤질래?!”
소리를 지른 탓에 비수의 턱에 맺혀 있던 땀이 한 방울 떨어진다.
식물이 버프를 잘 빨아들이는 만큼 비수의 에테르도 금방 떨어지는 모양이다.
“이레귤러의 수장으로서 검증 시간을 갖는 거지.”
“검증?”
“그래. 너나 철완 아저씨야 몰라도, 정현이나 마리아는 나와 함께 싸워 본 적이 없잖아.”
던전을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호칭 정리도 깔끔하게 끝냈다.
클랜장과 오빠로 불렸던 육철완은 ‘철완 아저씨’로, 나머지는 각자가 알아서 편하게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오빠나 누나라는 호칭을 붙이는 건 각자의 자유.
집에 있는 누나가 떠올라서 그런가, ‘마리아 누나’라고 부르는 게 영 입에 붙지 않아 이름만 부르고 있다.
“피. 핑계가 좋아요. 그냥 단순히 놀고먹으려는 거 아냐? 어쩐지 이레귤러 가입을 전부 다 받아 준다더니만은…….”
“구시렁대지 마. 다 생각이 있으니까.”
겉으로는 능글거리며 농땡이를 부리고 있지만, 이쪽에도 사정은 있다.
이 많은 ‘베놈 비’를 상대하려면 ‘독염’을 발사하는 게 제일.
그러나 녀석들을 불태우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독염’의 원천인 블랙 에테르가 팀원들까지 다치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법.
나는 그렇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불로소득을 취하고 있었다.
절대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다.
암, 그렇고 말고.
“휴우.”
결국 강정현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벌들을 제거했다.
그는 완전히 탈진해 쓰러졌고, 남은 사람들이 ‘베놈 비’의 독침을 수거했다.
타우스르의 뿔만큼은 아니지만, 이 독침도 꽤나 단단한 재료로 쓰인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걸 자꾸 갈아 마셔서 보양식으로 쓰는 아저씨들이 많다고 한다.
눈앞에서 ‘베놈 비’를 직접 만난다면 절대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할 것 같은데.
어쨌거나 우리는 자리를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던전의 규모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
위이잉.
“헐. 시발.”
독침을 배낭에 쑤셔 넣던 비수가 단말마의 욕설을 뱉는다.
진절머리나는 날갯짓 소리.
강정현이 처치한 수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많아 보이는 벌들이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역시 8성은 8성이구만.”
“지금 그딴 말을 할 때야?”
비수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새어 나온다.
강정현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지만, 버프까지 받은 식물을 통제한 탓에 꽤나 힘에 부쳐 보인다.
무엇보다 그는 실전 감각이 부족하다 보니, 이런 긴장감 속에서 장기간 전투를 하는 게 익숙지 않을 것이다.
파박.
나는 망설임 없이 ‘독보’를 사용해 전방으로 달려 나갔다.
한편으로는 손목에 찬 프라셀에 출력 범위를 조정했다.
‘수가 많아. 50%는 필요해.’
조절되지 않는 화염 방사기처럼 다루기 까다로운 ‘독염’
하나 지금 내 위치는 일행과 상당히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이런 장소에서는 마음껏 능력을 개방해도 문제가 없다.
커다란 벌들이 진형을 막 펼치려는 순간, 오른손을 들어 올려 무리 전체를 겨냥한다.
프라셀의 인도에 따라, 손바닥의 아지랑이가 독염으로 변해 검은 화염을 쏟아 낸다.
화아아아아아아악.
펑! 펑! 펑! 펑!
공중에 떠 있던 벌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간다.
아무래도 저놈들의 몸속에 휘발성 물질이 있는 듯하다.
수백 마리의 벌들이 검은 화염에 공격 한번 하지 못하고 후두둑 떨어진다.
허무하게도 독염을 방출했던 수 초 만에, 습격했던 벌들이 몰살을 당했다.
“다행이다. 코어는 멀쩡해.”
벌이 터져 나갈 때만 해도 깜짝 놀랐다.
속 안의 코어까지 폭발하면 기껏 포이즌 던전을 온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
그러나 다행히 ‘베놈 비’는 죽어 남기는 것들이 있었다.
블랙 코어.
그리고 벌침.
겁나게 많았던 개체 수만큼, 지천에 노다지가 깔려 있었다.
저 멀리 벙쪄 있는 동료들의 얼굴이 보인다.
‘독염’의 위력을 눈앞에서 본 게 없어서 그런가, 모두 망치로 뒷머리를 맞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괴물…….”
다른 사람도 아닌 마리아가, 멍한 얼굴로 나를 그렇게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