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01
정도마신 100화
사령문의 수하들은 사완악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왜소한 체구의 노인은 이미 아이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씀입니까?”
사완악은 조금 전에 들었던 노인과 아이 사이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사령문의 수하들은 눈에 이채를 띠며 놀랐다.
노인과 아이 때문이 아니라, 객잔 안에서 저 맞은편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사완악의 능력 때문이었다.
절정의 고수라 해도, 이 복잡하고 떠들썩한 시장통에서 그런 능력을 보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화가 조용히 말했다.
“아이를 유괴한 것 같군요.”
“그렇지?”
“엄마를 찾아 주려는 목적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만사무가 물었다.
“구하러 가실 생각입니까?”
그러자 사완악은 고개를 돌려 만사무를 빤히 바라봤다.
“내가 왜?”
“예?”
“내가 왜 저 아이를 구해야 하지?”
만사무는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지존, 아니 사 공자님께서 저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계셨던 이유가 저 아이에게 도움을 주시고 싶은 줄 알았습니다.”
사완악은 팔짱을 끼더니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하고 싶지?”
사령문의 네 사람은 서로를 마주 봤다.
사완악이 덧붙여 말했다.
“내 눈치는 볼 필요 없이, 너희들의 생각을 말해라.”
먼저 입을 연 것은 의외로 언제나 과묵한 묵영이었다.
“구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습관이 된 것 같습니다.”
“습관?”
묵영이 말했다.
“정유문에 있을 때 매일 하던 일이라 그렇습니다.”
사완악은 흥미롭다는 듯 묵영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사령문의 수하들에게 정유문에 있는 동안 각자 하루에 다섯 개씩 선행을 베풀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그것은 사완악이 정도맹의 비무 대회를 위해 정유문을 떠났을 때도 멈출 수 없는 일이었고, 덕분에 하북성의 힘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유문의 명성은 구파일방을 넘어설 정도였다.
“그 일이 나쁘지는 않았나 보군.”
“…….”
묵영은 다시 평소처럼 침묵을 지켰다.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나는 지금 고민 중이다.”
사령문의 수하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르자, 사완악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저 아이를 내가 구하고 싶어진 이유를 모르겠거든.”
사완악은 진심으로 그것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노인이 아이의 손을 잡는 순간,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경공을 펼쳐 그 앞을 가로막을 뻔했다.
하지만 그 본능적인 움직임을 멈추게 만든 것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 때문이었다.
‘왜 나는 저 아이를 구하려 하는가?’
사완악은 노인과 아이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때 가종후가 말했다.
“저…… 사 공자님?”
“왜?”
“이유는 나중에 생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사완악은 힐끗 고개를 돌려 가종후를 바라봤다.
“사 공자님께서 저 아이가 필요하신 이유가 생각났을 때, 상황이 너무 늦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혹시 지존의 주술에 필요한 중요한 재물이라면 너무 아까운 노릇이지요.”
가종후는 다소 엉뚱한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완악의 눈에서는 이채가 흘렀다.
“웬일로 아주 그럴듯한 말을 하는군.”
가종후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사완악을 만난 이후로 무려 처음 듣는 칭찬이었기 때문.
“감사합니다! 영겁사령존이시여! 만세! 만세! 만만……!”
사완악의 숟가락이 가종후의 이마에 번갯불을 튀기고 지나갔다.
“윽!”
“밖에서 그 난리 좀 치지 말랬지. 호칭도 똑바로 하고.”
가종후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시무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 공자님.”
사완악은 탁자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일어났다.
“너희는 이곳에서 기다려라.”
“혼자 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보통 놈은 아닌 거 같거든. 따라잡으려면 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만사무가 대답하는 그 순간, 사완악의 신형은 이미 객잔 밖을 빠져나가 사라지고 있었다.
* * *
“하, 할아버지, 무서워요.”
소년은 노인의 품에 안겨서 두 눈을 꽉 감으며 말했다.
“허허, 조금만 참아라. 엄마가 기다리고 계신단다.”
노인은 시장에서 빠져나와 인적이 드물어지자 돌연 소년을 품에 안고 경공을 펼쳐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소년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하늘을 나는 듯 빠른 속도에 두려움을 느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일다경 정도 경공을 펼친 노인은 어느 오두막집 앞에서 멈춰 섰다.
“할아버지…….”
“그래. 열 살이라고?”
“네. 그런데 여기는 어디죠?”
노인은 소년의 몸을 이곳저곳 만지고 주물러본 후 말했다.
“나이가 많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똘똘하고 생기가 맑으니 나쁘지는 않구나.”
노인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아까와 달리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할아버지, 저 그냥 갈래요. 다시 시장으로 데려다주세요.”
“흐흐. 생존 본능도 괜찮은 편이고. 여러모로 큰 수확이었다.”
“할아버지, 저 무서워요.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유는 알아야겠지. 너희가 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니까.”
소년은 점점 노인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노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익힌 내공심법은 동혈신신공(童血新神功)이란다. 열 살 이하 아이들의 피를 마시며 연성하는 무공이란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무조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건강한 몸과 맑은 피를 지니고 있어야만 하니, 적합한 대상을 찾아 수련하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구나.”
그런데 이때였다.
두려움에 물들어 있던 소년의 눈에서 묘한 이채가 번뜩이더니, 소년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대신 그만큼 뛰어난 능력을 얻을 수 있겠군요?”
노인은 흡족한 듯 말했다.
“물론이다. 이 동혈신신공은 십대마공(十大魔功) 중 하나란다. 그리고 이 무공을 익히면…… 흐흐,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단다. 너희가 지닌 그 싱그러운 생기 덕분이지.”
소년은 노인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십대마공? 혹시 할아버지는 어떤 문파의 사람인가요?”
노인은 눈에 이채를 띠며 소년을 바라봤다.
“너는 지금 이 순간이 무섭지 않으냐?”
소년은 말했다.
“어차피 제가 어떤 수단을 부려도 할아버지 같은 무공의 고수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죽기 전에 제가 누구에게 왜 죽는지만 알고 싶은 거예요.”
노인은 소년의 말에 감탄하며 말했다.
“넌 정말 담대하고 비범하구나.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다.”
소년이 얼른 물었다.
“그럼 제자로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노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다. 네가 비범한 만큼 내게는 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나는 하루빨리 이 내공심법을 대성해야만 한다.”
“왜요?”
“나는 큰 내상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혈신신공을 익히지 않으면 내 자리가 위태로울 수 있다. 원래 이것은 교주님이 허락한 자만이 익힐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해 봤자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
“제가 몇 번째 희생양이죠?”
“흐흐, 열두 번째다. 대성을 위해서는 약 백 명이 필요하니 갈 길이 바쁘구나.”
이때 소년이 불쑥 물었다.
“혹시 할아버지는 마교의 사람인가요? 자리가 위태롭다는 건 그곳에서 어떤 직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군요?”
소년의 말에 깜짝 놀란 노인은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살기를 뿜어냈다.
“너……! 보통 꼬마가 아니었구나. 네놈이 어떻게 마교를…….”
소년의 멱살을 틀어쥐려던 노인은 의아한 얼굴로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소년이 갑자기 눈을 까뒤집으며 그 자리에서 풀썩 혼절해 버렸던 것이다.
“이게 무슨?”
노인은 본능적으로 내공을 끌어 올리며 빠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노인의 얼굴에 큰 놀람이 나타났다.
그의 앞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청년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누군가 자신에게 이토록 가깝게 다가올 때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경각심을 느끼며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웬 놈이냐?”
“나는 사완악이다.”
“사완악?”
노인은 처음 들어 보는 이름에 사완악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약관을 조금 넘은 나이, 기생오라비처럼 곱상한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고급스러운 백의장삼은 영락없는 어느 부잣집 도련님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노인은 사완악을 보면 볼수록 의아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로 은밀하게 다가온 것은 둘째 치고, 그렇다면 매우 독특하거나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노인이 기감을 열어 아무리 살펴봐도 사완악에게서는 무공을 익힌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 사완악은 흥미롭다는 듯 노인에게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정말 마교의 사람인가?”
노인의 눈빛이 착 가라앉으며 혼절해 있는 소년을 힐끗 바라봤다가 다시 사완악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마 네놈…….”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했다.
“처음 써 본 건데, 생각보다 유용하군.”
노인은 사완악이 어떤 요상한 술법으로, 소년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던 소년이 갑자기 침착해지며 여러 가지 비상한 질문을 던진 것도 그러한 연유였던 것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일종의 섭혼술인가?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내 질문이 먼저다. 마교가 아직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던 건가?”
노인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사완악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이구나. 본교의 이름을 듣고도 그리 태연하다니. 하긴, 너무 긴 시간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사완악은 노인이 무슨 말을 하든 홀로 감탄을 터뜨렸다.
“정말인가 보네. 이야, 마교가 사라진 게 오백 년 전일 텐데, 도대체 어디에서 벌레처럼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걸까? 참 신기한 일이네.”
“버, 벌레처럼 숨어 있어?”
순간, 노인의 눈빛에서 광폭한 기운이 폭사됐다.
“정말 단단히 미친놈이었구나. 오냐, 네놈이 누구인지 상관없다. 감히 본교의 이름에 그딴 망언을 하다니,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그러자 사완악이 한쪽 눈을 찡긋 하며 말했다.
“에이, 어차피 나를 죽일 생각이었잖아? 보니까 당신은 내상을 입고 마교에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그 동혈신신공인가 뭔가 하는 괴이한 마공을 몰래 익히려는 거 같던데. 목격자인 나를 가만히 둘 리가 없지.”
노인은 순간 헛웃음을 지었다.
사완악의 말이 너무나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사완악이 다시 능글맞은 말투로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아까 그 마공은 교주의 허락이 있어야지만 익힐 수 있다며? 그런데 마치 지금은 교주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을 하던데? 혹시 마교의 교주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건가?”
하지만 노인은 소년에게 대답해 줄 때와는 달랐다.
“감히 본교에 대해 네놈이 무엇을 알려고 한단 말이냐? 여러 말 할 필요 없다. 네놈에게 진정한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 주마.”
그 말과 함께 노인의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