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02
정도마신 101화
사완악은 노인의 기세를 느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기운이었다.’
사완악이 시장통에서 아무 이유 없이 노인과 소년의 대화를 엿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완악은 음식을 기다리던 중, 창밖에 보이는 한 노인이 상당히 고강한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세상에 무공을 익힌 사람이야 모래알처럼 많을 것이고, 그런 자들 한 명 한 명에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사완악은 노인의 몸에서 한 줄기의 아주 특이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운은 찰나지간 나타났다 사라졌지만, 그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사완악은 그 기운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게 마교의 마공인가?’
노인의 기운은 지금까지 사완악이 경험했던 중원의 어떤 내공심법과도 확연하게 달랐다.
그것은 마치 며칠을 굶은 맹수가 먹이를 보고 달려들기 직전의 느낌이었고, 뜨겁게 끓어오르고 폭발하기 직전의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불안정하지만 흉폭하고 파괴적인 느낌의 기운.
그런 패도적인 기운이 노인의 전신에서 흘러나와 사완악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사완악은 그런 노인의 기운을 담담하게 받아 내며 말했다.
“내상을 입었다면서, 그렇게 기운을 막 써도 되는 거야?”
노인이 조소를 머금었다.
“흐흐, 그거야 본교의 장로들을 상대할 때나 그런 것이고. 네놈 따위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사완악이 재밌다는 듯 노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호? 당신 설마 마교의 장로인 건가? 정리하자면 어떤 내상을 입어서 장로의 위치가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마공을 익히려는 것이었군.”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소리쳤다.
“정말 세 치 혀가 요망한 놈이구나. 나머지는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물어봐라!”
노인은 더 이상 사완악의 언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물고 땅을 박차며 경신술을 펼쳤다.
노인의 움직임은 내상을 입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눈 깜짝할 새에 사완악의 앞에 다다른 노인은 지체 없이 일장을 내질렀다.
폭발적인 위력의 장력이 사완악의 머리 위로 벼락같이 떨어졌다.
노인은 이 공격으로 사완악의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사완악의 손이 밝게 빛나며 스르르 움직임과 동시에 노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꽝!
“아니! 이, 이건?”
노인의 장력은 사완악이 내뻗은 일장과 격돌하며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하지만 노인이 놀란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곤륜파의 옥심장력? 네놈, 곤륜파의 사람이었더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무공을 봤기 때문.
사완악은 인정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벌레처럼 숨어 사는 마교 늙은이 주제에 눈이 좋군. 이걸 알아보다니.”
놀랍게도 사완악이 펼친 것은 바로 정도맹주 양천상의 무공이었던 옥심장력이었다.
곤륜파의 무공은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뜨려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 사완악도 이 옥심장력을 상대할 때 꽤 고생을 했었다.
노인은 당황을 가라앉히고는 코웃음을 쳤다.
“흥, 믿는 구석이 있었구나.”
노인이 옥심장력을 바로 알아본 것은 마교의 역사에서 비롯됐다.
오백 년 전, 마교의 침공을 막아 내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곤륜파였다.
당시 곤륜파는 문파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강호를 구하겠다는 협심으로 마교를 막는 데 앞장섰다.
곤륜파의 무공은 마교의 무공과 맞서기에 좋은 상성을 지니고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곤륜 도사들의 대쪽 같은 기개에 마교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곤륜파 역시 피해는 막심했다.
문파의 핵심 고수들이 하나둘씩 목숨을 잃었고, 장문인까지 큰 중상을 입어 문파의 존망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다른 구파일방을 일깨웠다.
소림과 무당, 화산파와 개방은 물론 공동파의 동굴에 은거했던 전대의 고수들과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유명한 아미파의 여승들, 그 외에 종남과 점창, 청성과 형산파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합심하여 마교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구파일방이 그렇게 분연히 일어나자 오대세가도 가세했고, 그로 인해 정도맹이 탄생했다.
물론 마교가 강호에서 사라진 결정적인 이유는 교주의 사망과 내분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주가 주화입마에 걸린 이유가 새로운 마공을 연성하기 위해서였으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마교에는 곤륜파와 다른 구파일방의 무공에 관한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애송이는 고작 약관이 겨우 넘었을 뿐이다. 평생을 연마한 나의 마공을 막아 낼 수는 없으리라!’
노인은 사완악이 곤륜파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는 아까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완악은 눈을 빛냈다.
‘저게 저자의 본래 무공이로군.’
노인은 내상을 입어 그 무공을 감추어 두고 있다가, 이제는 모든 힘을 쏟아붓기로 결심한 듯싶었다.
“죽엇!”
노인의 손에서 뻗어 나온 장력은 가공할 기세로 사완악을 향해 쏘아졌다.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라도 모두 파괴해 버릴 것 같은 맹렬한 기세의 장력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돌연 사완악이 두 팔을 크게 회전시키며 쌍장을 앞으로 내밀자, 마치 태산도 무너뜨릴 것 같은 장력이 쏟아졌다.
“커헉!”
노인의 입에서 거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경악한 표정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이 무공은 설마…….”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맞아. 개방의 항룡십팔장.”
강맹함으로 따지면 소림사의 백보신권과 견줄 수 있다는 항룡십팔장.
타구봉법과 함께 개방의 이대절학이며, 칠결 제자인 장로급 이상만이 배울 수 있는 무공.
노인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곤륜파의 제자인 네가 어떻게 항룡십팔장을…… 그리고 어떻게 그 나이에 이런 엄청난 내력을…….”
“글쎄. 그건 당신이 알 필요가 없겠지.”
“빌어먹을,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무공을 완성할 수…….”
아쉬움 가득한 노인의 음성은 거기서 끊어졌고, 그의 온몸이 축 늘어지며 쿵 쓰러졌다.
사완악의 항룡십팔장에 심장을 적중당한 탓에 그대로 절명한 것이다.
사완악은 무심한 눈빛으로 노인을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이게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면…….”
사완악의 표정에는 약간의 심각함이 떠올라 있었다.
그는 단 두 번의 격돌로 노인을 쓰러뜨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인의 무공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노인의 무공은 생각보다 더 고강했고, 오히려 사완악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무공을 펼치게 만들었다.
“마교라…… 적이 된다면 쉽지 않은 상대일지도.”
하지만 사완악은 곧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강호에 마교가 다시 나타나든 말든, 그들이 어떤 짓을 하든 말든 사완악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완악이 잡아야 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강호제일기인 천기자,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 늙은이였다.
오늘은 그저, 우연히 저 소년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뿐이었다.
사완악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년에게 다가가 내공을 주입했다.
잠시 후, 소년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안녕?”
소년은 눈앞에 불쑥 보이는 사완악의 모습에 겁을 먹은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누, 누구세요? 아까 그 할아버지는…… 헉!”
소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가 땅에 쓰러져 있는 노인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사완악이 말했다.
“저 늙은이는 나쁜 사람이었다.”
“나쁜 사람이요?”
“그래. 널 엄마한테 데려다주는 게 아니라 죽이려고 이곳에 데려온 거지.”
“예에?”
소년은 노인이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충격적인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완악은 그런 소년을 안심시키기 위해 부드럽게 말했다.
“널 아까 그 시장까지 데려다주마.”
“정말요?”
“그래.”
소년은 사완악에게도 두려움을 느꼈지만, 빨리 시장으로 돌아가서 엄마를 찾고 싶은 마음에 그를 순순히 따랐다.
“빨리 돌아가야 하니 잠시만 참거라.”
사완악은 소년을 옆구리에 끼고 경공을 펼쳤다.
“와아!”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사완악은 아까 그 노인보다 더 빠르면서도, 이상하게 무서운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객잔으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일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객잔으로 들어섰을 때, 한 여인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훈아!”
“엄마!”
여인은 소년의 어머니였고, 두 사람은 서로 와락 껴안았다.
천화가 사완악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창밖에서 열 살 소년을 본 적 없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애타게 물어보고 있길래 데려왔어요.”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소년의 엄마까지 찾아준 셈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별 말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아닙니다. 그래도 제가 뭐라도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꼬르륵.
이때 사완악의 뱃속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났다.
그는 잊고 있었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까 밥을 못 먹었군.”
여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밥값을 하고 얻어먹는 밥은 아주 꿀맛이지.”
사완악이 미소를 지은 것은 문득 정유문에 처음 방문했던 날이 떠올라서였다.
‘이런 게 추억이라는 건가.’
여인은 사완악이 원하는 요리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주문하고 대신 값을 치렀다.
“죄송합니다. 제가 돈이 모자라서…….”
여인은 굉장히 민망한 듯 보였다.
기껏 은혜를 갚겠다고 해 놓고 원하는 요리도 다 못 시켰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상관없어. 잘 먹을 테니 이제 그만 가. 계속 그러고 있으니 부담스럽군.”
“아,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공자님.”
“잠깐.”
사완악은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모자를 멈춰 세웠다.
“생각해 보니 나도 그 꼬마에게 빚진 게 있군.”
“네?”
“그런 게 있어. 나 때문에 꼬마가 정신을 잃었거든. 며칠간 몸이 좀 아플 수도 있을 거야. 내공을 넣어 놨으니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보상은 해야겠지.”
사완악은 품속 주머니에서 금덩이 하나를 꺼내 소년에게 주었다.
소년과 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됐어. 이제 그만 가 봐.”
소년은 그 자리에 서서 물었다.
“공자님 성함을 알려 주세요.”
“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만, 은인의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싶어서요.”
사완악은 소년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 미소를 지었다.
“사완악. 내 이름은 사완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