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
정도마신 10화
사완악은 도무지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어느새 사마소와 채보령이 등 뒤로 날아와 함께 흉흉한 초식들을 펼쳐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치겠네. 왜 이렇게 강한 거야?’
사부들을 속이고, 구득소의 내공을 빼앗는 것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던가.
사완악의 유일한 착오라면 사부들의 무공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마땅히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잔머리로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사대악인은 녹록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지자, 사완악의 손발이 조금씩 엉키기 시작했다.
“흣!”
요희요검 채보령의 검을 쳐 내느라 염라대사 영환의 장풍을 완전히 막아 내지 못했다.
사마소의 판관필이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혈도 열두 곳을 노려 왔다. 하지만 사완악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승광신법.
구득소가 없는 한 사완악의 속도를 따라잡을 사람은 없다. 사완악은 경신술을 발휘해 뒤로 쭉 빠져나갔다. 빛살처럼 빠른 속도에 사마소는 또다시 헛손질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놈아, 내 그럴 줄 알았다!”
별안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음성이 들려왔다.
‘구 사부!’
잔혹신풍 구득소였다.
어느새 운기조식으로 약간의 기력을 되찾은 걸까?
구득소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진기를 바닥까지 끌어올려 사완악의 등에 힘껏 내리꽂았다.
“크헉!”
사완악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오며 힘없이 십여 장의 거리를 날아갔다.
털썩.
땅에 떨어진 사완악은 발작하듯 몸을 몇 차례 움찔거리고는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흐흐, 망아지 같은 놈, 드디어 잡았구나.”
염라대사 영환은 자신의 발 앞에 날아와 쓰러진 사완악을 바라보며 득의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사대악인은 일평생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배신한 적은 있어도, 배신당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십수 년을 공들여 키워 낸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자 그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영환 대사는 사완악의 뒷목을 잡고 들어 올렸다.
사완악의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 공중으로 떠올랐다.
영환 대사는 그런 사완악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놈을 어떻게 한다?”
정이라도 들어 버린 걸까?
그냥 죽여 버리자니 좀 아쉬웠다.
강제로 말을 듣게 할 방법은 없을까?
염라대사 영환이 천신마뇌 사마소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 순간, 영환 대사는 의아함을 느꼈다. 천신마뇌 사마소가 자신을 바라보며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것이다.
뒤이어 사마소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 녀석을 내려놔!”
“음?”
영환 대사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사완악의 웃음 섞인 음성이 동시에 들려왔다.
“드디어 성공.”
염라대사 영환의 내공이 썰물처럼 사완악에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크읏!”
염라대사 영환은 사완악의 목덜미를 놓으며 손을 빼 내려 했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었다. 구득소가 어째서 그렇게 속절없이 당했는지 영환 대사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손아귀가 사완악의 목덜미에 찰싹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으으으!”
일평생 쌓아 두었던 내공이 물을 쏟아 내듯 콸콸 사라지고 있었다. 이대로 둘 수는 없었다. 염라대사 영환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런데 웬걸?
붕- 붕-!
팔을 마구 흔들어 대자 사완악의 몸은 영환 대사의 팔과 함께 허공에서 휘둘러졌다.
“흐흐, 영환 사부, 아무 소용없을걸!”
나뭇가지에 매달린 인형처럼 공중에서 대롱거리며 웃음을 흘리는 사완악의 모습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억지로 힘을 쓰자 내공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의 심후한 내공이 순식간에 칠 할가량 사라져 버렸다. 영환 대사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의아했다.
‘도대체 이 녀석이 이런 수법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탈정미혼공은 방중술을 통해서만 상대의 내공을 섭취할 수 있다. 그러니 사완악이 펼치는 수법은 전혀 다르다. 강호에서 상대의 내공을 흡수하는 무공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전설로만 회자될 뿐, 실존하지는 않는 무공이었다.
“떨어져라!”
요희요검 채보령이 뒤늦게 달려와 사완악에게 검을 찔렀다. 그 순간 사완악의 눈동자에서 검은빛이 번쩍이더니, 영환 대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큭…….”
영환 대사는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때 구득소의 외침이 들렸다.
“사마소, 조심해라!”
구득소가 본 것은 사완악의 신형이 공중에서 시위를 당긴 활처럼 허리가 휘어 버리는 모습이었다.
보통 이런 자세로 허공에서 아무런 디딤 없이 앞으로 쏘아가는 수법을 궁신탄영이라고 한다.
하지만 구득소는 지금 사완악이 펼치려는 신법이 평범한 궁신탄영과 다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완악에게 직접 가르친 승광신법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세 단계 중 하나인 궁탄광영(弓彈光影)의 동작이었기 때문이다.
쌔애애액!
사완악의 신형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눈 깜짝할 새에 사마소 앞에 떨어진 사완악이 일장을 내질렀다. 사마소는 있는 힘을 다해 방어하려 했지만, 영환 대사의 내공을 흡수한 사완악의 파신마장은 이미 조금 전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컥!”
신천마뇌 사마소의 판관필이 공중에 날아갔다.
사완악은 신형을 휘청거리는 사마소에게 다가가 일말의 지체도 없이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사마 사부한테는 시험해 본 적 없지만.”
“으윽……!”
사마소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며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의 내공이 속절없이 사완악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이노옴……!”
사완악은 분개하며 외치는 사마소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사마 사부 내공도 생각보다 상당한데?”
그러나 사완악이라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양손과 이마에는 시퍼런 핏줄이 굵게 올라와 있었다.
어느새 사완악을 막는 것을 포기했는지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던 채보령이 말했다.
“아들, 마교에 존재했었다는 흡성대법(吸星大法)은 어디서 배웠지?”
사완악도 물론 흡성대법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흡성대법이 아니야.”
“아니라고?”
사완악은 축 늘어진 사마소를 멀리 밀어내고는 말했다.
“응. 난 사부들 무공 말고는 배운 거 없는데?”
뒤쪽에서 염라대사가 외쳤다.
“그럼 그 해괴한 수법은 도대체 무엇이냐!”
사완악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모른다고?”
“그냥, 누가 나한테 말해 줘서 사용한 거야. 내가 원하면 사부들의 내공을 흡수할 수 있다고.”
사대악인의 얼굴에 더욱 짙은 의아함이 떠올랐다.
“누가 말해 주다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사완악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모른다니까. 그냥 어떤 놈이 계속 말해 줘. 목소리도 더럽게 음산하고 자꾸 킬킬대고. 이 녀석 말로는 사부들이 자기를 만들었다는데? 이름이 영겁사령존(永劫邪靈尊)이라고 하더군.”
“……!”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사대악인은 동시에 한 가지를 떠올렸다.
‘영겁사령환!’
사완악에게 복용시켰던 사령문의 보물!
설마 그 안에 어떤 영혼이 깃들어 있기라도 했던 것일까?
“흡성대법이랑 달라. 사부들 내공이 아니면 흡수하지 못한다고 하니까.”
채보령이 질책하듯 말했다.
“지금까지 왜 아무 말도 안 했던 거니?”
사완악은 사대악인의 표정을 살피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부들이었군. 뭔지도 모를 이런 놈을 내 안에 욱여넣은 게 사부들이었어.”
“그건……!”
채보령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사완악이 사마소에게 날아갈 때보다 더 빨라진 속도로 그녀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헉!”
탈정미혼공이 영락없이 사완악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아아……!”
탈정미혼공의 특성 때문일까?
그녀는 어쩐지 야릇한 신음을 토해 내더니 곧 사마소와 같이 축 늘어졌다.
사완악은 멈추지 않고, 재빨리 구득소와 영환 대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남은 거 다 줘.”
잠시 후, 잔혹신풍 구득소와 염라대사 영환의 단전도 텅 비어 버렸다.
사대악인 네 사람이 평생 노력하여 성취한 내공이 모조리 사완악의 일신에 저장되어 버린 것이다.
“이놈…….”
온몸의 힘이 빠져 버린 염라대사 영환이 힘없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개의치 않고 그를 향해 검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뻗어 정확히 서른여섯 곳의 혈도를 점혈(點穴)했다.
그것을 본 사마소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너 설마!”
사완악은 사마소에게도 똑같은 수법을 전개하며 말했다.
“맞아. 군림혼혈공은 확실히 좋은 무공이야. 사부들을 제압해 놓을 수 있는 방법도 있고.”
사완악이 펼치는 것은 군림혼혈공의 폐맥폐공(閉脈閉功)이었다.
이 수법에 당하면 일반적인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일반인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
하지만 무인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무공 없이 이 산골짜기를 벗어나기는 어렵겠지. 물론 누가 온다고 해도 사부나 의왕 정도가 아닌 이상 군림혼혈공을 풀어 줄 수도 없겠지만.”
“감히……!”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사완악은 이미 목숨을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소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사완악은 채보령과 구득소의 혈도도 제압하며 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마 사부가 이렇게 분통해하는 모습을 보니까 묘한 쾌락이 있군. 헤헤.”
“이러고도 네가 무사할 것 같으냐!”
사마소와 달리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채보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아무런 악행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 그럼 강호로 나가서 무엇을 할 거니?”
사완악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몰라.”
“몰라?”
“응. 나가서 차차 생각해 보려고. 그리고…… 반드시 알아내고 싶은 것도 하나 있고.”
“알아내고 싶은 것?”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해 줄게. 알아내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그때까지 다들 건강하게…….”
네 사람의 혈도를 모두 제압한 사완악이 문득 말을 멈추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사대악인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사완악을 바라봤다가 깜짝 놀랐다. 사완악이 충혈된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완악아…….”
“조용히 해!”
사완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사완악의 눈동자는 실핏줄이 터지며 붉게 물들었다.
참으로 갑작스럽고 이상한 일이었다.
사완악은 그 상태로 약 일각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사대악인을 노려보기만 하다가, 급기야 이를 악물고 턱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기괴한지 사대악인조차 아무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후…… 가야겠다.”
어느 순간, 깊은 한숨을 내뱉은 사완악의 안색은 다시 평온해져 있었다.
“잘 있어, 사부들.”
사완악의 마지막 인사는 허탈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리고 사대악인이 뭐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그의 신형은 까만 점이 되어 산골짜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 * *
사완악이 떠나간 후.
“큭큭…… 큭큭큭…….”
구득소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혹은 절망 가운데서 하나의 기쁨을 발견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려 댔다.
그러자 염라대사 영환이 짜증 난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닥쳐! 뭐가 좋다고 이 상황에서 웃고 지랄이냐!”
구득소는 웃음을 멈추지 않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뭐가!”
“저 녀석이 악행을 진짜 안 하면 천기자한테 우리 체면이 뭐가 되냔 말이다. 사대악인이 악인 한 명을 제대로 못 키워 냈다고 비웃음을 사지 않겠냔 말이다, 이 땡중아.”
염라대사가 미친놈 바라보듯 구득소를 노려봤다.
“뭔 소리냐? 지금 제 입으로 악행 따위는 안 하겠다고 해 버린 녀석한테! 저놈은 천하의 호래자식이다!”
“클클…… 아니, 완악이는 그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