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8
정도마신 117화
청성파의 장문인 하령 진인은 심기가 매우 불편한 듯 중얼거렸다.
“이십 년 만에 열리는 회의가 이번에는 그들의 제자 때문이라니…….”
점창파의 장문인 오향자도 혀를 차며 그 말을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때 그들을 놓친 것이 이런 화근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이때 아미파의 장문인, 종인 사태가 천향화검 연천도를 보며 물었다.
“맹주님, 그런데 남궁세가의 일은 사실입니까?”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연천도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서신을 통해, 분명히 사완악에게 남궁세가가 패했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그것을 글자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일 년 전의 사건으로 소악마 사완악의 무위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그가 남궁세가를 무너뜨렸다니?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천향화검 연천도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각 문파 수장들의 얼굴에 표정의 변화가 일어났다.
하북팽가의 가주,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팽일해가 따지듯 말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자가 혼자서 남궁세가의 모든 무인을 다 때려눕히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팽일해는 점잔빼는 성격이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천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남궁세가의 가주께서 제게 서신을 보냈었습니다. 사완악이 정유문에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있다면 그를 잡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무애신검께서 직접 나서 주신다면 그보다 더 확실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무림공적인 사완악이 정유문에서 당당히 지내고 있을 가능성은 적었습니다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연천도의 입장이라 하더라도 같은 생각을 했을 터였다.
그리고 연천도의 말이 이어졌다.
“남궁 가주께서는 참혼중검을 포함한 가문의 장로 다섯 분과 창궁호검대를 이끌고 정유문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설마 했던 사완악이 정말 그곳에 있었다는군요. 남궁 가주는 사완악을 제압하기 위해 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모용세가의 가주가 황망한 음성으로 물었다.
“무애신검과 참혼중검, 그리고 다른 장로들과 창궁검호대까지, 모두 사완악 한 사람에게 패배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경악이 스쳐 갔다.
무애신검과 참혼중검은 이 회의에 모인 수장들과 비교하면 강한 편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 두 사람을 한 번에 상대해야 한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소림사의 방장과 무당파의 장문인, 그리고 개방 방주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버틸 수 있을까?
게다가 창궁검호대가 펼치는 창궁검진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약관 남짓한 사완악이 무애신검과 참혼중검, 거기에 다른 남궁세가의 장로들과 창궁검호대까지 한꺼번에 쓰러뜨렸다는 말이었다.
남궁세가의 원로들까지 가세했다면 모를 일이지만, 그 정도만 하더라도 혼자서 남궁세가를 무너뜨렸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임시맹주 연천도의 말은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행이면서도 믿기 어려운 것은…… 남궁세가의 무인들 중 사망자는 아무도 없다더군요. 다만 남궁세가의 가주와 참혼중검께서는 큰 중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
“그, 그런……!”
이번의 놀람은 아까의 경악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공의 고수였기에 상대를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것이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무인들끼리의 싸움에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그 많은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상대로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개방의 방주 방욱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최소한 염라대사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오. 어쩌면 이미 그를 뛰어넘었을지도 모르겠고.”
명문대파 수장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과거 사대악인이 얼마나 무서운 자들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의 강호 칠대고수였던 잔혹신풍 구득소는 세상의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신법을 지니고 있었고, 염라대사 영환은 같은 칠대고수들조차 피할 정도로 엄청난 무공을 지닌 자였다.
무당파의 장문인은 차마 말하기 힘든 사실을 털어놓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거기에 요희요검과 신천마뇌의 제자라면 어떤 사술을 익히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요.”
임시맹주 연천도가 그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십오대문회를 열게 된 이유입니다.”
잠시간의 침묵.
다들 서로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가운데, 제갈세가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요. 지금 모두들 같은 생각이리라 믿습니다.”
오대세가의 가주들은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처럼 도사나 승려가 아니었기에 대화가 빙빙 도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또한 오대세가는 내부에서 그들끼리 경쟁을 하지만 외부의 적에게는 한 가족과 같이 뭉치는 성격이 있었기에, 남궁세가의 패배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가주가 말했다.
“옳습니다. 이제야말로 사대악인으로부터 내려온 강호의 화근(禍根)을 제거할 때입니다. 어설프게 공격하여 그를 놓치는 우를 범해서도 아니 되고요.”
임시맹주 연천도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여……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할 때입니다. 일반 제자들은 어차피 괜한 희생만 될 터.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서 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완악, 그자를 상대하기 위해 각 문파에서 누굴 보낼지 말입니다.”
구파일방과 남궁세가를 제외한 오대세가의 수장들.
열네 사람의 눈에서 마침내 결심이 빛이 번쩍였다.
* * *
사완악은 설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흐음. 확실히 필요하긴 해.”
설린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가요?”
사완악이 바로 말했다.
“내공.”
“내공? 저 말인가요? 아, 당연히 사 공자님 얘기는 아니겠지만요.”
사완악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문주의 실력은 나쁘지 않아. 순수하게 검술로만 붙는다면 그때 붙었던 남궁세가 놈들 중에서 가주 형제 빼고는 절대 밀리지 않을 거야.”
“서, 설마요.”
남궁세가의 무인들 중에는 무애신검 남궁조와 참혼중검 남궁우 말고도 네 명의 장로가 더 있었다. 그 장로들 역시 평생 검을 익혀 온 사람들, 설린은 자신이 그들과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경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완악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실제로 설린 문주가 비무에서도 그 장로놈인가 뭔가, 이겼잖아?”
“그건 운이 좋았어요. 상대가 나이 어린 여인이라고 방심하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거든요. 다시 붙는다면 지겠죠.”
사완악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그가 방심했던 것은 사실이겠지만, 절정의 고수는 방심했다고 그렇게 쉽게 목을 내주지는 않아. 백 번 붙어도 결과는 똑같아. 심지어 문주는 현종이 가르쳐 준 초식들은 쓰지도 않았고.”
사완악의 확신에 설린은 민망하면서도 뿌듯했다.
‘사 공자님이 그렇다면 그렇겠지?’
사실 그녀는 뇌정검객 남궁문당과 겨룰 때 의아함을 느끼기도 했다.
상대의 검이 너무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한 달간 그녀가 싸웠던 비무 상대와 비교하면 어린아이 장난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그 비무 상대가 현종이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그녀의 검술 실력은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발전해 있었다.
“물론 내공을 사용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야.”
사완악은 냉정히 말했다.
“만약 그가 처음부터 모든 내공을 사용해서 싸웠다면 설 문주는 아무리 잘 싸워도 백 합 이전에 졌겠지.”
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남궁문당이 뒤늦게 내뻗은 장력에 그녀는 속이 울렁거리는 충격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깨달음을 얻어 발전할 수 있는 무공 초식과 달리, 내공은 원한다고 갑자기 증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때 사완악이 말했다.
“현종이 대환단을 줬다고 했지?”
“아, 네.”
“일단 그거라도 먹자.”
설린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현종 스님이 대환단은 약성이 너무 강해서 혼자 복용하면 제대로 기운을 흡수할 수 없다고 했는데요?”
“맞아. 그러니까 내가 있잖아.”
“음…… 하지만 현종 스님께 받은 물건이니 허락도 없이 먹기는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설린은 여전히 망설이는 듯했다.
사완악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현종이 그거를 줄 때 이미 문주가 먹으라고 허락을 한 거지. 그리고 현종과 어디에서 언제 만날 줄 알고 기다려? 문주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어. 다음에도 황 총관님이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건가?”
그 말에 설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완악의 말대로 그녀가 더 강했다면, 황임이 그런 수모를 겪거나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문주가 약하면 그 문파는 멸시를 받는 것이 무림의 이치였다.
‘그래, 사 공자님께만 의지할 수는 없어.’
설린이 결심한 듯 말했다.
“사 공자님의 말이 맞아요. 잠시만요, 대환단은 따로 보관해 놨어요.”
설린은 빠르게 그녀의 거처로 갔다가 돌아왔다.
대환단은 나무 목함에 들어 있었고, 그녀가 뚜껑을 열자 머리가 더없이 맑아지는 약향이 느껴졌다.
사완악은 향만으로도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에 감탄하며 말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과연 대환단이란 건가.”
“그렇죠? 저도 처음에 향을 맡자마자 온몸의 모든 불순한 기운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어요.”
사완악은 곧바로 가종후를 불러 왔다.
“운기조식을 해야 하니까 호법 좀 서라.”
“예. 걱정 마십시오.”
가종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떨어져 주변을 주시했다.
사완악은 설린을 쳐다보며 말했다.
“뭐 해? 어서 먹어.”
“그냥 먹으면 될까요?”
“응. 먹고 운기조식을 해. 내가 대환단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 빨리 먹어. 시간 없으니까.”
무슨 시간이 없다는 것일까?
설린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사완악이 워낙 재촉을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대환단을 그대로 삼켰다.
대환단은 입을 넘어감과 동시에 한 줄기 뜨거운 액체로 녹아내렸고, 설린은 기도가 타 버릴 것 같은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목이 타 버릴 것처럼 뜨겁네요.”
“그게 다야?”
“아니요. 이 뜨거운 액체가 가슴을 지나 단전으로 내려가는 것까지 생생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아! 너무, 너무 뜨거워요!”
사완악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서둘러 말했다.
“어서 운기조식을 시작해.”
설린은 사완악의 말대로 그대로 가부좌를 하고 앉아 두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때 그녀는 사완악의 그 미묘했던 표정이 왠지 마음에 걸려 마지막으로 물었다.
“사 공자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는 거죠?”
사완악이 말했다.
“몰라.”
“네?”
“내가 소림사 사람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아?”
두 눈을 감았던 설린은 너무나 황당하여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완악은 민망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약의 기운도 내공과 비슷하겠지. 그것만 몸에 잘 퍼지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설마 자꾸 재촉했던 게, 제가 이것저것 물어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죠?”
“에이, 설마.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이미 먹었는데.”
설린은 너무나 황당했지만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온몸이 뜨거워져 마치 불을 삼킨 듯한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입을 다물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사완악 역시 그녀의 안색에 지나친 홍조(紅潮)가 올라오고 뜨거운 숨결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오른손을 그녀의 등에 갖다 대며 생각했다.
‘이거 큰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