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17
정도마신 116화
십만대산의 한 마을.
절이나 도관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십만대산의 어느 마을에, 한 명의 승려가 나타난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승려는 큰 키에 넓은 어깨를 지니고 있었고, 승복은 잿빛 바탕에 왼쪽 어깨에서부터 붉은 가사(袈裟)를 길게 걸치고 있었다.
천하에 이런 승복을 입는 절은 단 한 곳.
바로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이었다.
승려의 정체는 바로 소림사의 현암 방장의 밀명, 혹은 원로원의 입김으로 마공의 흔적을 조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났던 현종이었다.
‘아이들이 유괴되고 시체가 발견된 곳은 이곳 십만대산 근처의 도시가 마지막이었다.’
현종은 개방의 정보원들과 꼼꼼히 조사하다가 결국 몇 개의 주인 없는 오두막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오두막마다 두세 구의 어린아이들의 시체들이 발견되었는데, 그보다 끔찍한 것은 모두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고 심장이 사라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에 현종은 태어나 가장 큰 분노와 혐오를 느꼈다.
그리고 현종의 범천항마금강심공(梵天降魔金剛心功)은 아이들의 시체에서 아주 불쾌하고 사이한 기운을 느끼게 해 주었다.
‘틀림없는 마공이다.’
현종은 비록 원해서 이 조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제는 반드시 이 천인공노할 세력을 찾아내야겠다는 사명감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곳은 평범한 화전민 마을이군.”
현종은 마을을 한 차례 둘러보고는 중얼거렸다.
“이곳은 너무 넓어서 모든 마을들을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만약 마교가 중원의 눈을 피해 존재한다면 이 십만대산만큼 적합한 땅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때 현종은 누군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마을의 아낙네 중 한 명이었다.
여인은 현종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스님. 이곳은 스님들이 방문하시는 경우가 없는 곳인데, 혹시 어느 절에서 오셨는지요?”
현종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숭산에 있는 소림사에서 나왔습니다.”
“소림사요? 처음 듣는 곳이네요.”
“하하, 이곳에서 굉장히 먼 곳에 있으니까요.”
소림사는 꼭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중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절이었다.
하지만 이 십만대산은 중원에서 가장 최남단에 있으며, 화전민 마을은 세상과의 교류도 극히 드물기에 이 여인이 소림사를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현종에게 부탁했다.
“다름이 아니고 부적 하나만 써 주세요.”
“부적이요?”
“네, 조금 불안해서요. 이 옆 마을에 제가 아는 언니가 있는데, 늦둥이가 올해 네 살이거든요. 그런데 글쎄, 얼마 전에 그 아이가 실종됐다고 하네요.”
현종의 눈이 번뜩였다.
“아이가 실종됐다고요?”
“예에. 귀신이나 짐승이 물어 간 게 아니고서야 이런 외지에서 아이를 잃어버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사실 제게도 다섯 살 아이가 있거든요. 언니네 이야기가 안타깝기는 한데, 듣자마자 우리 애는 그런 일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먼저 들지 뭡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아 주세요, 지 새끼부터 챙기는 게 어미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당연한 말이기에 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여인이 간곡히 재차 부탁했다.
“그래서요. 스님이시니 부적 하나만 써 주세요. 우리 아이에게 별일 없도록…… 뭐 그런 부적 없을까요?”
현종은 무겁게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불가부적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러한 공부를 아직 다 하지 못했습니다.”
“그, 그런가요? 그래도 그냥 하나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까막눈이지만 스님이시니까 뭐 좋은 글귀라도 적어 주시면 효험이 있지 않을까요?”
현종은 그녀의 마음에서 간절함을 느껴 품에서 하나의 부적을 꺼내며 말했다.
“이건 제 사형께서 만드신 부적입니다. 액을 막고 복을 부르는 제액초복(除厄招福)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드릴 테니 아이의 몸에 지니게 하십시오.”
여인은 크게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부적 값으로는 부족하겠지만 삶은 감자입니다. 여정이 출출하실 때 챙겨 드시지요.”
현종은 웃으며 감자를 받았다.
“마침 출출하던 차인데 잘 먹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
“그 아는 언니 분이 계시는 마을이 어디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이 길을 따라서 쭉 가시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현종은 여인과 헤어진 후, 그녀가 알려 준 길을 따라 걸어갔다.
개방의 무인들을 제외하면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해서 그런지 한 사람이 생각났다.
‘설 문주님은 잘 지내고 계시련가. 대환단의 복용을 도와드리고 왔어야 했는데.’
한 달 동안 매일 무공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두 사람은 전보다 훨씬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현종은 내공이 부족한 설린을 위해 소림사의 보물인 대환단을 주면서, 혼자서 복용하면 온전히 효과를 보기가 어려우니 자신이 도와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하지만 현암 방장의 호출이 갑자기 내려와 어쩔 수 없이 정도맹을 떠났던 것이다.
동시에 또 한 명의 그리운 이름도 떠올랐다.
‘완악. 너는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참으로 위험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립구나.’
사완악이 그랬던 것처럼, 현종 역시 태산에서 목숨을 건 사투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뛸 정도로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어쩌면 소림수호승의 운명으로 길러진 자신이, 소림사 원로들의 결정에 처음으로 반대하고 대항까지 했기에 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때였다.
‘……!’
현종은 별안간 매우 이상한 기분에 어느 한곳을 바라봤다.
사삭!
그와 동시에 검은 그림자가 수풀을 헤치며 황급히 도망가는 것이 느껴졌다.
“서라!”
현종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어느새 그 그림자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사완악의 신법이 빛살이나 질풍 같다면, 현종의 신법은 빠르게 흐르는 구름 같았다.
현종은 순식간에 검은 옷의 도망자의 등 뒤까지 따라붙었다.
“아미타불.”
현종의 손에서 금빛 장력이 쏘아져 나와 흑의인의 등을 가격했다.
“쿨럭!”
흑의인이 기침을 내뱉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십만대산에 어찌 이런 무공을 익힌 자가 검은 옷을 입고 돌아다닌단 말인가?
또한 이자는 왜 자신으로부터 도망을 친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현종은 혁혁한 안광을 쏘아내며 흑의인에게 물었다.
“어째서 당신에게 마공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오?”
흑의인은 눈과 입만 빼고는 얼굴도 흑색 천으로 가린 상태로 오히려 현종을 쏘아봤다.
“네놈이야말로 누군데 감히 우리의 뒤를 쫓는 것이냐?”
현종이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마교도인가?”
하지만 현종은 질문과 동시에 눈살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현종이 서 있던 자리에 하나의 검광(劍光)이 스쳐 갔다.
복면인이 소매에 감춰 두었던 단도를 빼내 암습을 가했던 것이다.
굳어진 현종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맞다는 뜻이군.”
현종의 손에서 은은한 금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림사의 절학, 대력금강장의 전조 현상이었다.
한 줄기 막강한 기운이 그의 장심을 통해 뿜어져 나갔다.
“끄악!”
흑의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며 땅에 처박혔다.
그는 어떻게든 일어서려 했으나, 내상을 입은 듯 다시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현종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 말했다.
“너는 마교도가 확실하구나.”
“그 승복은…… 소림사? 소림사가 왜 이곳에…….”
사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현종은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 나는 소림사의 현종이다. 마교는 어디에 있는가?”
흑의인은 현종을 바라보다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
“킬킬, 내가 그것을 말할 것 같으냐?”
현종이 담담히 말했다.
“당신이 말하게끔 만들어야겠지.”
“그래? 할 수 있다면 마음대로 해라.”
흑의인은 잠시 입을 씰룩이고는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현종은 그가 갑자기 도주하거나 반격할 것을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이 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라 빠르게 손을 뻗었다.
“그만둬!”
현종은 흑의인의 턱을 움켜쥐고 강하게 눌렀다.
흑의인의 입이 절로 열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흑의인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였다.
“하하, 이미…… 늦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흑의인이 눈을 까뒤집으며 발작을 일으켰다.
“마존이시여……!”
“이런…… 자결을 하다니!”
현종은 내공을 불어넣어 그를 살리려 했다.
하지만 흑의인이 온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고 숨을 거두는 것까지, 그야말로 눈 몇 번 깜짝일 사이에 끝이 나 버렸다.
그는 입안에 독단을 물고 있다가, 위기의 상황이 오자 스스로 그것을 깨물었던 것이다.
만약 복면이 없었다면 바로 알아차렸을지 모르나, 표정조차 볼 수 없었기에 그 찰나의 순간을 놓쳐 버렸다.
현종의 얼굴에는 큰 불안함과 안타까움, 씁쓸함이 복잡하게 떠올랐다.
‘이런 혹독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다니…… 이게 마교인가.’
마교.
과연 어떤 자들이기에 일개 교도가 이렇게 망설임 없이 죽음을 택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역사 속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 끔찍한 단체가 명맥을 이어 내려오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에 흑의인이 내뱉은 ‘마존(魔尊).’이라는 호칭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이런 자들이 죽는 순간까지 지존이라 부르며 추앙하는 존재는 과연 얼마나 강할 것인가?
현종은 자신이 손쓸 틈도 없이 죽어 버린 흑의인을 보며, 어쩌면 이 강호의 운명도 그와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어떤 일을 꾸미기 전에 먼저 알아내야 한다. 반드시!’
현종의 눈은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정도맹의 회의실.
실내에는 열네 명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절정을 뛰어넘은 고수들이었고, 눈빛과 표정은 제각각 달랐다.
어떤 이는 강직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고, 어떤 이는 부드러웠으며, 어떤 이는 날카롭거나 깐깐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단순히 무공의 고하(高下)와는 다른, 고상한 기품과 위엄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이 회의에 다른 열세 사람을 초대한 정도맹의 임시맹주,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화검(千香華劍) 연천도가 입을 열었다.
“모두 아시겠지만, 이십 년 만에 십오대문회(十五大門會)를 열게 된 이유는 사완악, 그자 때문입니다.”
십오대문회!
천향화검 연천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정도 무림을 이끌어가는 열다섯 개의 명문대파의 수장들, 즉,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이 한곳에 모이는 회의였기 때문이다.
십오대문회는 일정한 주기에 따라 열리는 것이 아니라, 강호에 정녕 큰 일이 있다고 판단될 때 합의하여 모이는 회의였다.
그리고 이번 십오대문회는 이십 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