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67
정도마신 166화
“그건…….”
현종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사완악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현종에게 있었던 사건들 모두, 오로지 현종 외에는 목격자가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종은 마교의 존재와 그들의 정보를 직접 알아내 강호에 알렸다.
정유문과 사천당가, 그리고 소림사를 지켰고, 그 과정에서 마교의 무인들 수십 명과 마교에 귀의한 초절정의 고수, 염라대사 영환을 직접 쓰러뜨리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즉, 소림수호승이라는 현종의 위치와 그가 마교를 상대하며 세운 혁혁한 공로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마교의 사람이라고 의심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완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종을 의심하기는커녕 이 강호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전우였다.
그와 함께라면 마교의 교주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전혀 두렵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완악의 생각에 작은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제갈세가에서였다.
어떻게 마교는 제갈세가에 천의문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천의문의 백신우가 죽기 전에 그러더군. 천의문과 제갈세가가 협력해서 마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진법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한 사람도…… 현종. 너라고.”
“…….”
백신우는 숨을 거두기 전, 현종을 의심해 보라고 말했다.
사완악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여기면서도, 그의 총명한 머리는 만약 현종이 마교의 사람인 경우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믿을 수 없게도, 아니 결코 믿고 싶지 않게도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사완악은 현종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는 현종의 입에서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는 어떤 변명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모든 정황이 현종을 의심하도록 만들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증거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사완악은 내심 그리 되뇌고 있었다.
현종은 사완악을 마주 보다가 돌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사완악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뭐라고?”
하지만 현종의 얼굴은 오히려 잔잔한 수면처럼 담담해져 있었다.
“정황상 내가 의심되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
“그렇지만 완악. 내가 마교의 사람이라면 마교는 실로 멍청한 집단이 틀림없다.”
사완악은 무슨 소리냐는 듯 현종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종은 전신에서 흐르고 있던 금빛의 기운을 모두 갈무리하고는, 사완악에게 뚜벅뚜벅 걸어와 바로 앞에 서서 말했다.
“당금 무림에서…… 이 현종과, 너 사완악.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마교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현종답지 않은 오만한 자신감.
하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만약 내가 마교의 사람이라면 태산에서 내가 왜 너를 도왔을까? 소림수호승인 내가 어째서 사문의 결정에 반기를 들면서까지 너와 함께 목숨을 걸었냐는 말이다.”
“…….”
“그것마저 내가 의심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그때 내가 너를 돕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심될 여지는 전혀 없었으니까. 내가 마교의 사람이라면 직접 너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그 상황을 방관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사완악이 침묵을 지켰다.
사완악 역시 현종과 태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완악은 현종이 그때 진심으로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종의 말대로, 그가 만약 마교의 사람이라면 유일하게 어긋나는 한 조각이 바로 태산에서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때, 현종이 사완악의 멱살을 잡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도.”
현종의 두 눈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소림사의 현종이다. 그 어떤 정황이 있든, 내가 모르는 어떤 증거가 나오든, 그래서 네가 어떤 의심을 하든, 그딴 건 아무 상관 없다. 나는 소림수호승 현종이다.”
“…….”
그 순간, 사완악은 강호에 나온 이후로 가장 크게 안도했다.
어쩌면 그가 듣고 싶었던 것은 논리적인 반론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현종의 입에서 자신은 소림수호승이고 마교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완악은 그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는 순간, 소림수호승 현종을, 자신의 유일무이한 벗을 오롯이 믿을 수 있었다.
사완악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미안하다. 너는 진짜 현종이 맞네.”
“……그래.”
현종은 손에 힘을 한 번 꽉 쥐었다가 조용히 사완악의 옷을 놓았다.
사완악은 그 손길에서 현종이 크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이해해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미안한 상황이 올까 봐 준비한 게 있는데.”
현종이 의아한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러자 사완악이 품에서 하나의 술병을 꺼내 현종에게 내밀었다.
“사과주. 참고로 엄청 비싼 술이라더라. 아니, 돈 주고도 구하기 힘든 명주랬다. 화산파 장문인한테 얻어 온 거야.”
현종은 사완악과 술병을 한 차례씩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없이 건네받아 꿀꺽 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사완악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야! 이거 돈 주고도 못 산다니까? 같이 마시…….”
하지만 현종은 어느새 텅 빈 술병을 다시 사완악에게 던져 주고 있었다.
“크! 그래. 확실히 맛있군. 이걸로 퉁쳐 주마.”
“아니…….”
사완악은 뭐라 말도 못하고 정말 다 마셨는지 애꿎은 술병만을 흔들었다.
“어떻게 한 모금도 안 남기고 다 마시냐? 네가 그러고도 스님이냐? 하…… 대신 확실히 해라. 이걸로 퉁이다.”
현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이만 가라. 혼자서 조금 걷고 싶으니까.”
* * *
사완악은 현종의 말에 다시 한번 술병을 흔들어 보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갔다.
현종은 사완악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다가 몸을 돌려 정도맹의 내부를 걸으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다.’
현종은 사완악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이 굳어져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사완악이 현종에게 사과를 하며 술병을 건네던 그 순간…….
‘남궁준휘가 무슨 초식으로 기습을 했었더라?’
그야말로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
분명히 남궁세가의 절학을 사용하여 자신을 기습했다는 것은 기억나는데, 그가 어떤 초식을 사용했는지, 자신이 어떤 식으로 반격을 가하여 남궁준휘가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게 십만대산에 있는 마교에 대해 말해 준 사람이 있었다.’
사완악이 목격자가 아무도 없지 않냐고 따질 때,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십만대산에서 만났던 한 사내.
그는 십만대산 어딘가에 마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고, 그를 따라 어떤 동굴에 들어가자 누군가 마공을 익힌 흔적도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강호에 그 사실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인데…….
‘그 사내가 누구였지? 그보다 왜 지금까지 그 사내에 대하여 잊고 있었을까?’
현종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어떤 섬뜩함이 느껴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예삿일이 아님을 깨닫고 있었다.
‘설린 문주의 일 역시 완악의 말이 틀리지 않다. 도대체 나는 어떤 수법에 정신을 잃었던 것일까?’
설린과 함께 있을 때 갑작스럽게 나타난 중년인.
아마도 마교의 인물로 추정되는 그의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그가 어떤 무공을 썼는지, 어떤 동작을 펼쳤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미 칠대마가의 가주들이나 중원 팔대고수들보다 강한 현종인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현종은 물론, 현종의 말을 들은 사완악은 그 중년인이 마교의 교주라고 짐작했다.
만약 그 중년인이 마교의 교주이고 그런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면, 사완악과 현종, 그리고 강호의 모든 무인들이 힘을 합친다 해도 과연 마교를 당해 낼 수 있을까?
‘마교의 교주…….’
마교의 교주에 대해 생각하던 중, 염라대사 영환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너는 교주와 어떤 사이냐?
염라대사의 표정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의문에 가득 차 있었고, 현종은 그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원독마가의 가주라는 자도 나를 보고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는 바로 도망갔다. 어째서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투둑, 투둑.
쏴아아아-!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삽시간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거친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꽈르르릉!
번쩍!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하얀 번갯불이 밤하늘에서 연달아 번쩍였다.
그 순간, 현종은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설린 문주에게 마음을 전하고 거절당했던 그날.
정유문을 떠나 어디론가 경공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어느 전각 앞에서 공손하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한 여인.
바로 마접단의 단주 나화연이었다.
순간, 현종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마접단이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 내가 마접단을 찾아갔었다고? 그들의 존재조차 몰랐던 내가?’
꽈릉!
천둥이 울림과 동시에 다음 기억도 떠올랐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나화연과 마접단의 호위무사들.
몹시 흉포한 모습의 현종, 자신.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나 자신을 진정시키는 한 중년 사내.
‘중년 사내?’
현종은 소나기에 온몸을 두들겨 맞으며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졌다.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에서 나타난 그 중년 사내는, 바로 설린을 납치해 간 그 중년 사내였던 것이다.
‘잠깐…….’
현종은 그 중년 사내의 얼굴을 골똘히 생각할수록 매우 낯이 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현종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는…… 십만대산에서 나에게 마교의 존재를 알려 주었던 사람이다!’
도대체 이 무슨 혼란스러운 일인가?
어째서 자신은 이 모든 것들을 지금까지 모두 잊고 있었을까?
아니, 이 기억들이 정말 사실인 것일까? 누군가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고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때, 한 줄기 청아하고 자애로운 음성이 현종을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아미타불. 사제, 이 시각에 무슨 일인가?”
현종은 퍼뜩 상념에서 깨어나며 고개를 들었다.
“방장 사형…….”
현종의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소림사의 방장이자 그의 사형인 현암 대사였다.
동시에 현종은 자신이 현암과 소림사의 원로들이 묵고 있는 전각 마당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현암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중얼거리는 현종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사제.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그때였다.
돌연 나지막한 웃음소리와 함께 현종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려왔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지.”
조소를 담고 현종의 귓가에 의미심장하게 울려 퍼지는 낮은 음성.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음성의 주인은…….
“마지막 인사라니? 무슨 말을……!”
걱정스럽게 말을 내뱉던 현암 방장의 눈이 부릅떠지며 입이 떡 벌어졌다.
천천히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는 현암.
믿기지 않게도 현종의 주먹이 그의 심장을 정확하게 가격하고 있었다.
“사제…….”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한 현암의 표정.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현종의 일권이 그를 즉사시킨 것이다.
허물어지듯 천천히 쓰러지는 현암을 보며 현종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드디어 끝낼 때구나. 그래도 네 마지막 뜻은 존중해 주마, 현종.”
기이하게도 현종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가며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이 소림사 원로들이 자고 있는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전각 안에서 경력이 휘몰아치고 맞부딪치는 굉음과 함께 소림사 원로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