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66
정도마신 165화
낙담한 사람처럼 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현종이 고개를 들었다.
“알아낸 거라도 있는 건가?”
“조금은.”
현종의 눈에서 반가운 기색이 반짝이며 어서 말해 보라는 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사완악은 입을 열기를 주저하며 머뭇거렸다.
이는 매우 사완악답지 않은 행동이었기에 현종의 얼굴에 의아함과 일말의 불안함이 떠올랐다.
“심각한 일인가? 혹시 설린 문주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사완악은 현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교는 천의문의 제자들이 제갈세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현종의 안색이 살짝 바뀌었다.
“뭐라고?”
사완악은 담담히 말했다.
“애초에 그들의 목적은 제갈세가가 아니라 천의문의 제자들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오대세가와 달리 세 개의 칠대마가가 동시에 공격을 한 것이었지.”
“그들이 어떻게?”
“천의문의 이군이라는 녀석이 죽기 전에 그러더군. 그를 암살한 칠대마가의 가주는 그의 특기가 진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즉, 그들은 천의문의 제자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고…….”
사완악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 갔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이목이 남궁세가와 사천당가, 하북팽가로 쏠려 있을 것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지. 그들 입장에서도 천의문의 제자들을 제거하지 못하고 세 개의 가문이 희생되면 상당한 피해일 테니까.”
현종은 사완악의 말을 듣고는 더욱 심각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우리 내부에 마교의 간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였다.
“정황상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
현종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하지만 내부에서 마교에게 정보를 흘렸다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사완악은 현종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물었다.
“너무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진다는 거지?”
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정보를 흘리려면 적어도 정도맹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각 명문대파의 수장 중 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내부 사정을 모두 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회의를 하기 전에 미리 남궁세가와 사천당가를 공격하지 않았을까? 혹은 만약 그들이 완악 네가 남궁세가를 지키러 떠나고, 나를 비롯한 소림이 사천당문을 지키러 갔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마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은 굳이 우리와 싸우기보다 하북팽가를 공격하는 것이 더 올바른 판단이었을 거다.”
현종의 말이 옳았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대표들 중 간자가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설령 그렇게 내부 사정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간자가 있다면, 사완악과 현종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도 익히 알고 있을 터.
굳이 칠대마가 중 두 곳이 희생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남궁세가와 사천당가를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구파일방의 수장들이 모여 있는 하북팽가를 공격한다면, 간자도 합세하여 정도맹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일이었다.
“맞아. 마교에서 정보를 듣고 움직인다면, 우리가 마치 짜인 각본처럼 운 좋게 남궁세가와 사천당가에 가까스로 도착해서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겠지.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아무런 의심을 하지 못했어.”
현종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완악의 말은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다시 의심하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니까 모든 게 맞아 떨어지는 거야.”
“반대로?”
사완악은 묘한 표정으로 하늘을 잠시 올려다본 뒤 말했다.
“애초에 내가 남궁세가에서 귀검마가와 싸우고, 네가 사천당문으로 향하고, 정도맹은 하북팽가로, 천의문은 제갈세가로 가는 것이 모두 마교의 계획이라면 어떨까?”
“뭐?”
현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완악,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그들이 왜 그런 계획을 세운다는 말인가? 그리고 설령 그것이 그들의 계획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 계획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있어?”
사완악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지막 질문부터 대답을 하자면…… 한 가지 방법이 있지. 누군가 정도맹 회의에서 전력이 약해진 남궁세가가 가장 위험하니, 그들을 도우러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하고. 마교도 사천당가의 독을 무서워하니 두 번째로 위험한 곳이라고 말해 주며, 제갈세가는 뛰어난 기관진식으로 안전하니 정도맹은 하북팽가를 지켜야 한다고 알려 준다면. 참으로 그럴듯한 말이고, 또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자라면, 그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움직이지 않았을까?”
……!
사완악의 말이 끝났을 때, 현종의 표정은 마치 청천벽력을 맞은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 온몸이 돌처럼 굳어져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묵묵히 현종을 응시할 뿐이었다.
한밤의 싸늘한 적막과 달빛 아래서 두 사람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히며 부딪쳤다.
잠시 후, 현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건가?”
사완악은 다시 약간의 시간을 보내고 대답했다.
“말했잖아. 정황상 그렇다고.”
“정황…….”
현종은 자신이 마교의 사람이라고 의심받는 것에, 그리고 그 의심을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사완악이라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현종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련해 온 소림수호승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완악이 정황이라는 말을 강조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자신에게 어떤 변론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완악 역시 이와 같은 사실을 결코 믿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현종은 깊게 숨을 내뱉으며 다시 눈을 떴는데, 이때 그의 눈빛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처럼 당당했다.
“정도맹과 마교는 전쟁에 돌입한 것과 다름없다. 전쟁에서는 상황에 따라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의심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완악. 너의 생각에는 잘못된 점이 있다.”
사완악은 조용히 현종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현종이 말했다.
“내가 만약 마교의 사람이라면, 어째서 남궁세가로 칠대마가 중 한 곳을 보내 너의 손에 그들이 모두 죽게 만들었을까?”
사완악은 이미 생각해 보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그 의문에 답했다.
“그래야만 마교가 제갈세가를 공격한 것은 허를 찔렸을 뿐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고, 그나마 네 덕분에 남궁세가와 사천당가는 지켰으니 네가 의심받을 일을 모두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 되지.”
현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완악. 어째서 나를 그런 식으로 몰고 가는 것이지? 단순히 내가 마교의 행보를 예측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마교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사완악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어찌 내가 그것만으로 너를 의심할 수 있을까?”
“그럼 무엇 때문이지?”
“남궁준휘.”
“……남궁준휘?”
남궁준휘라면 사완악과 무공을 겨루어 큰 창피를 당하고, 천의문의 백신우의 부추김으로 설린을 해하려 했던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아닌가?
갑작스럽게 그 이름을 다시 꺼낸 사완악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남궁준휘가 갑자기 기습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했지?”
“그래. 나는 그의 혈도를 봉하여 안심하고 있었는데, 산속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어떻게 점혈을 풀었는지 나를 기습적으로 공격했다. 그의 무공이 뛰어나고 등 뒤에서 갑자기 칼이 날아오니 황급히 반격을 가했는데, 그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물론 내가 그의 죽음을 숨긴 것은 사실이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면 소림과 남궁세가와의 관계는 크게 틀어질 것이고, 남궁세가의 분노가 완악 너에게도 향할 것이며, 남궁세가로서도 소가주의 만행이 천하에 알려지니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아니. 아니야.”
사완악은 고개를 저었다.
“현종. 나는 너의 무공을 누구보다 잘 알아. 지금은 더 강해졌지만, 그때 역시 너는 괴물 같은 놈이었지. 솔직히 나보다 더 강했으니까. 그런 네가……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고작 남궁준휘의 기습 따위에 어쩔 수 없이 죽였다고?”
현종은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내가 일부러 그를 죽였다는 건가? 아니,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마교의 사람이라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지. 하지만 현종. 내가 아는 네가…… 진짜 네가 맞는지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완악은 이어서 말했다.
“남궁준휘뿐만이 아니야. 마교의 흔적을 십만대산에서 찾은 사람. 그것도 현종 너였지. 그 넓은 십만대산에서 말이야. 일견 마교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 준 것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오직 너만이 그들을 찾을 수 있던 것 아니었을까?”
사완악이 말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현종이 마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정확히 증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반대로 현종이 마교의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원독마가라고 했던가? 사천당가를 공격해 온 칠대마가 중 한 곳. 그들은 어째서 다른 칠대마가와 달리 크게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을 쳤을까? 그리고 우리 문주님. 천하에 누가 있어서 현종 너를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게끔 쓰러뜨릴 수 있을까? 왜 하필 그때 주변에는 오직 너와 설린 문주뿐이었을까? 아니, 애초에 설린 문주는 어째서 너와 소림을 따라 사천당가로 갔을까?”
현종의 눈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불을 뿜었다.
“완악! 지금 내가 설린 문주님을 납치했다는 것이냐!”
사아아아-!
현종의 전신에서 황금빛 강기가 일어났다.
그 순간 사완악의 몸에서도 끈적하면서도 기묘한 기운이 일어났다.
북해빙궁에서 얻은 사존의 힘이었다.
사완악은 완전히 감정이 지워진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몇 번 말해? 정황이 그렇다고.”
현종의 호랑이 같은 눈빛과 사완악의 싸늘한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마치 번갯불이 튀는 것 같았다.
현종이 말했다.
“그럼 내가 마교의 정보 단체인 마접단의 단주를 죽이고 마교의 정보를 알아 온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한 집단에서 정보 단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전쟁을 준비하는 마교의 입장에서 마접단의 희생은 칠대마가 중 한 곳의 희생보다 더 큰 피해일지 몰랐다.
그런데 현종은 그런 마접단의 단주는 물론, 절정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그 호위무사들까지 모두 쓰러뜨렸고, 그들의 시체를 직접 정도맹에 가져왔었다.
사완악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교의 정보는 별로 대단한 내용이 아니었으니 네가 마교의 간자여도 의심을 피하기 위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다만 마교의 정보 단체인 마접단주와 그 호위무사들을 모두 죽인 것은 뜻밖이긴 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고육지책이라고 하기에는 꽤 큰 타격이니까.”
하지만 사완악의 이어지는 말에 현종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뭔지 알아?”
“……?”
“남궁준휘, 십만대산, 마접단, 설린 문주. 이 모든 사건들은 목격자가 아무도 없다는 거야.”
“……!”
현종은 순간 당황스러우면서도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사완악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남궁준휘가 어떻게 죽었는지, 십만대산에서 네가 어떻게 그들의 흔적을 찾았는지, 마접단도 시체 외에는 네가 그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혹은 그들이 정말 마접단은 맞는지, 설린 문주가 어떻게 납치를 당했는지. 모두 너의 증언 외에는 누구도 함께 있던 사람이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