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4
정도마신 193화
웅웅웅!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마기가 묵색광검에 맺히며 기이한 검명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주변의 공기를 진동시키며 점점 커져 갔고, 그에 따라 가공스러운 마기가 종천의 몸 주위를 빠르게 선회하며 회오리를 만들었다.
콰드드드득!
종천이 서 있던 자리 주변의 대리석 바닥들이 회오리의 힘에 뜯기고 바스러지며, 가루가 된 파편들이 그의 몸 주위를 함께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듯 묵생광검을 중심으로 한 종천의 마기는 점점 강해졌고, 회오리는 전각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거대해지고 있었다.
‘천마신공과 묵색광검, 그리고 초월마신검법. 이게 저 녀석의 진짜 힘이구나.’
사완악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마른침이 꿀꺽 삼켜질 정도로 긴장됐다.
그만큼 종천의 전신을 휘감으며 하늘로 치솟는 회오리의 기세는 가공스러웠다.
‘이길 수 있을까?’
사완악은 강호로 나온 이래 처음으로 두려움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기이한 일이었다.
종천의 엄청난 힘을 마주하며 불안한 마음이 생기자, 동시에 짜릿한 전율이 스쳐 갔다.
호승심.
그것은 무인의 본능이었다.
사완악은 문득 현종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당시 사완악은 내심 이 강호에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소림사의 백년기재라는 염라대사 영환조차 사완악의 무재가 본인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했을 정도였으니, 매우 타당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현종을 처음 만나는 순간, 그 자신감이 자만심이었음을 깨달았다.
비록 승려의 복장을 하고 있으나 눈빛과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현종의 호랑이 같은 위상은 사완악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사존의 힘을 얻고 수호성의 금제가 풀린 사완악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경지를 이룬 상태였다. 바꿔 말하면 중원의 천하 팔대고수들, 그리고 마교의 칠대마가 가주들이나 호법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 누구도 사완악과 무공으로 함께 겨루고 논할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단 한 사람.
현종의 다른 인격, 종천만이 사완악에게는 유일무이한 적수였다.
‘현종.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언제나 너와 전력을 다해 싸워 보고 싶었다. 너 역시 그랬겠지.’
자신의 유일한 벗, 현종이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너의 육신이 다른 인격에 지배되는 것을 원치 않겠지.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설령 이 싸움에서 내 손으로 너를 죽인다 할지라도.’
스으으으으!
돌연 사완악의 전신에서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는 사악한 기운과, 오색의 빛줄기가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사존의 힘이었고, 또 하나는 수호성의 기운이었다.
종천의 눈에도 이채가 떠올랐다.
사존과 수호성의 기운은 상극이고, 공존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러나 양의심공으로 인해 두 가지 기운이 동시에 발산되고 있었다.
“지금 너의 방식은 마선이 추구했던 마공과 매우 닮아 있군.”
“뭔 소리야?”
“하늘이 정한 세상의 법칙을 순리와 진리라고 하지. 그 법칙을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힘을 발휘하기 마련. 산군이 남긴 무공들은 그러한 자연의 힘을 따르고 있지.”
종천은 미소를 요동치는 마공의 회오리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마선은 그 순리와 진리가 깨어질 때, 더 강력한 힘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순히 무공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순리를 벗어나고 금단의 영역에 가까워질수록 더 파괴적인 힘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고. 네가 머리를 길러서 다행이다.”
“음?”
“땡중 머리였으면 현종이랑 싸우는 기분이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을 테니까.”
“훗. 나약한 말이로군.”
“인간적이라고 하는 거다. 비인간적인 새끼야.”
“이제 그 입을 다물게 해 주마.”
그 순간.
쿠구구궁!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주변의 땅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자금성의 상징, 태화전의 건물도 통째로 흔들렸다.
“끝이다, 사완악. 본좌의 초월마신검을 받거라.”
콰아아아아!
종천의 주위를 맴돌던 마기의 회오리가 무섭게 선회하며 사완악을 덮쳐갔다.
동시에 사완악이 끌어 올린 사존의 기운과 수호성의 기운도 쏘아졌다.
꽝! 꽈광!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천둥 같은 폭음이 울려 퍼졌다.
사완악은 사존의 힘으로는 소림사의 절기 달마검법을, 수호성의 힘으로는 태극혜검을 펼쳤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경력의 대결로 주변 일대가 초토화되고 있었다.
콰아앙!
또 한 번의 격돌.
입신의 경지에 다다른 두 사람의 충돌이 일으킨 여파(餘波)는 상상을 초월했다.
놀랍게도 뒤로 튕겨 나간 것은 종천의 신형이었다.
종천은 사존의 힘과 수호성의 기운이 섞인 사완악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콰콰쾅!
튕겨져 날아간 종천의 신형이 태화전의 지붕을 관통하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종천을 날려 버린 사완악의 표정이 오히려 더 어두워져 있었고, 하늘 위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완악의 시선이 향하는 그 끝에는 종천이 어느새 신형을 바로하고 공중에서 흑의장삼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는 전혀 사완악에게 내상을 입은 흔적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고, 오히려 그의 전신에서는 더욱 강력한 마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종천은 자신의 묵생광검을 하늘을 찌르듯 힘껏 들어 올렸다.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고오오오오오!
묵색광검의 가리킨 하늘에 먹구름이 갑자기 모여듬과 동시에, 구름에서부터 그 검 끝으로 한 줄기 전광(電光)이 흘러들어가는 것이었다.
묵색광검의 검 끝에 번개의 힘을 담은 기운이 구 형태로 맺히기 시작했다.
치직! 치직!
세상에 무엇이든 태워 버릴 것 같은 전류가 묵색광검에서 넘실거렸다.
그 모습은 태화전 주변을 넘어 자금성 내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왔다.
정파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고, 마교의 사람들은 신을 영접한 듯한 경외심으로 종천을 바라봤다.
흑의장삼과 흑발을 휘날리며 검으로 번개를 생성하는 종천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 마신(魔神)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윽고.
콰지지지직!
“마신강림.”
그것이 이 공전절후한 초식의 이름이었을까?
종천의 신형이 번개를 머금은 묵색광검과 함께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사완악을 향해 내리쳐졌다.
꽈아아앙!
귀가 멀 것 같은 굉음.
충격의 파장이 자금성 전체를 뒤덮듯 퍼져 나갔다.
장내의 모든 무인들은 일순 사자후에 내상을 입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해졌다.
세상이 일시에 멈춘 듯한 느낌.
그 어떤 존재도 종천의 일검 아래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대단하군.”
종천의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 감탄이 흘러나왔다.
사완악의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봉두난발(蓬頭難髮)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엉망이었고, 내상을 입은 듯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머리 위로 두 개의 검을 교차하고 있었고, 눈빛에서는 꺾이지 않은 기세의 안광이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결국 종천의 번개를 막아 낸 것이었다.
“설마 이 초식까지 막아 낼 줄은 몰랐는데.”
종천은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또한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해져 있었는데, 이는 그 역시 조금 전의 공격에 무리해서 공력을 쏟아부었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사완악이 자신의 공격을 받아 냈으니,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고 있었다.
사완악은 몸을 일으켜 세우며 웃음을 터뜨렸다.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지. 각오한 것보단 별거 없던데?”
종천은 굳어진 얼굴로 검을 다시 들었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상태가 좋지 못해 보이는군.”
사완악은 백의장삼의 소매로 입가를 슥 닦으며 말했다.
“갑자기 공격하니까 놀라서 혀 깨문 거야.”
“그런가?”
“다음부터는 경고라도 좀 해. 초식 명을 미리 외쳐 달라고.”
“알겠다.”
“뭐?”
“초월마검. 마지막 초식이다.”
그 순간 종천의 몸에서 다시 한번 폭발적인 마기가 터져 나왔다.
“자,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천마군림보를 이용한 종천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사완악의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눈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한 검광(劍光)이 사완악을 뒤덮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사완악의 검에서도 어둠을 밝히는 유성 같은 검광이 일어나면서 종천의 묵색 검광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까가가가가강!
이전의 대결이 공력과 공력의 격돌이었다면, 지금은 그들이 익혀 온 무공과 검술에 대한 깨달음이 더해진 대결이었다.
사완악은 왼손으로는 검을 버리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각종 장법과 권법 절학들을 쏟아냈고, 오른손으로는 검술을 펼쳐 종천의 묵색광검을 막아갔다.
그들의 손에서 펼쳐지는 초식 하나하나에는 초절정의 고수도 일 수에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강기가 담겨 있었으니, 실로 전무후무한 대결이었다.
실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공방.
하지만 어느 순간, 돌연 검을 들고 있지 않는 종천의 왼손에서 기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큭!”
사완악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오며 뒤로 나뒹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가슴이 격중당한 고통보다 조금 전 종천이 보여 준 한 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너…….”
종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였군. 생각보다는 어려운 기술이야.”
사완악은 말문이 막혔다.
싸움의 흐름이 끊기며 사완악이 그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이유는 종천이 초월마신검의 초식을 전개하는 동시에 왼손으로 장법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완악이 양의심공을 이용하여 두 가지 무공을 동시에 펼친 것과 같은 모습.
하지만 무당파의 신공절학인 양의심공을 종천이 익혔을 리는 없었다.
즉, 그는 양의심공을 익히지 않고도 두 가지 무공을 한 번에 펼쳤다는 거다.
또한 그가 마지막에 내뱉은 말의 의미는, 사완악의 양의심공을 보고 싸우는 도중에 즉흥적으로 따라했다는 뜻이었다.
‘이게 정말 인간이라고?’
자신과 대등한 상대를 만나 싸울수록 더욱 성장해 버리는 종천의 무재.
놀랍다 못해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리고 사완악이 넋을 잃을 정도로 놀라고 있을 때, 종천의 양손에서 각기 다른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천마신공 묵색 마기와, 천살성의 검붉은 기운이었다.
사완악의 오른손이 힘을 잃으며 매화신검이 땅에 툭 떨어졌다.
그는 처음으로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양의심공을 이용해 종천의 힘에 밀리지 않고 맞서 왔었는데, 만약 종천 역시 두 가지 무공과 내공을 함께 운용한다면?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넌 정말…… 내가 이길 수 없는 존재였구나.”
“너를 인정하는 의미로 편하게 죽여 주마. 이로써 천하의 주인은 나다.”
종천의 검이 사완악의 목을 찔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