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3
정도마신 192화
“정신 나간 놈. 싸우다가 왜 웃고 난리야?”
웃음을 터뜨린 종천과 달리 사완악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영향이 없지는 않군.’
이곳 태화전으로 오면서 치렀던 몇 번의 전투.
수십 명의 마교도들은 둘째 치고, 원독마가의 가주와 소면살마 왕주봉과 철혈검마 무위백까지 초절정의 고수 세 사람을 상대한 사완악이었다.
물론 사완악의 내공이 매우 심후하여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으나.
문제는 상대가 종천이라는 것.
그의 천마신공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령문의 주술과 양의심공을 동시에 운용해야 했고, 그 내공의 소모는 확실히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반면 이곳에서 사완악을 기다리고 있었던 종천의 상태는 여전히 활기가 가득했다.
또한 그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즐거운 기색이 만연했다.
“사완악. 솔직히 네가 이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사존의 힘을 얻었으니 본교의 호법들보다야 강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너는 정녕 나와 비슷한 경지에 이르렀구나.”
사완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도 네가 이렇게 만만할 줄은 몰랐다. 현종을 보면 언제나 넘기 힘든 벽 같았거든. 그런데 넌 아니야.”
“훗…… 실망할 것 없다. 이제 네 기대를 충족시켜 줄 테니.”
“아까도 제대로 한다고 하지 않았냐?”
사완악은 여유롭게 웃었지만, 내심은 그렇지 못했다.
‘또 뭘 보여 주려는 거냐, 이 괴물 같은 놈아.’
그때였다.
스르릉!
소름 돋는 금속성과 함께 종천의 허리춤에서 하나의 장검이 뽑혀 나왔다.
그 장검은 몹시도 특이했다.
검신 전체가 마치 흑요석처럼 짙은 검은색이었는데, 검날만은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하얀색 광채를 내뿜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저 검이 거슬렸단 말이지.’
소림사 시절의 현종도 그랬지만, 종천 역시 지금까지 검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종천의 허리에는 하나의 장검이 매어져 있었고, 사완악은 처음부터 그 검의 존재가 신경 쓰였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사완악은 흑색 검신에 흰색 광채날을 보는 순간, 그것이 범상치 않은 병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검의 이름은 묵생광검(墨生光劍)이다. 본교의 신물이자 오직 천마신공을 대성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검이지. 어둠으로 빛을 발하는 검. 이 종천과 매우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겠는가.”
“색깔 칠해 넣고 이름 멋있게 지어 봤자 검은 검이지.”
사완악의 빈정거림에 종천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 그냥 평범한 검이었다면 내가 평생을 수련해 온 권각술 대신 검을 잡았을까.”
“…….”
“마선이 남긴 무공은 총 일곱 가지다. 세 개의 내공심법과 천마군림보, 권법과 장법, 그리고 마선이 모든 심득을 담아 창안한 검법. 바로 이 묵생광검을 이용한 초월마신검(超越魔神劍)이지.”
“이름 한번 거창하네.”
사완악은 대수롭지 않게 답하면서도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종천의 장검에서 흘러나오는 예기와 검날에서 번뜩이는 하얀 광채에 심장이 섬뜩해지는 기분이었다.
또한 종천이 내공을 일으켜 초월마신검에 불어넣자, 마치 수백 마리의 원혼들이 깨어나는 듯한 엄청난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완악. 이제 너와 나의 인연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다.”
대화는 길었지만 종천의 신형이 사라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천마군림보를 밟으며 날아오는 종천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사완악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
묵생광검의 흰색 광채가 폭발하듯 번쩍였다.
그것은 마치 어두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백색의 번갯불 같았고, 지금까지 종천이 펼쳤던 무공과는 다른 차원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완악은 재빨리 양손을 모아 파천마군의 초식을 쏘아냈다.
꽈르릉!
그야말로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울려 퍼졌다.
자금성의 상징인 태화전이 흔들릴 정도로 엄청난 경력의 충돌.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사뭇 대조적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위엄이 가득한 종천의 모습과, 낭패한 듯 일그러진 사완악의 표정.
조금 전, 일 합의 격돌에서 누가 더 우위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역시 양의심공 없이는 상대할 수 없는 건가.’
파천마군은 사완악이 익힌 무공 중에서 손에 꼽힐 만큼 강맹하고 내공의 소모도 큰 초식이었다.
하지만 그 파천마군을 사용하고도 밀릴 정도로 종천의 일검은 강력했다.
사완악은 별수 없이 다시 사령문의 주술로 뇌의 능력을 상승시키며 양의심공을 운용했다.
종천의 검도 다시 움직였다.
가공할 마기가 사완악의 전신을 덮치며 날아왔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기세 속에서도 사완악의 눈은 냉철하게 빛났다.
‘마룡일효, 그리고 마운부!’
사완악의 좌수에서 뻗어 나온 마룡일효의 초식이 종천의 검기를 상쇄시키고, 오른손으로는 화산파의 마운부라는 독특한 도끼 무공을 검법으로 변형하여 종천의 허리를 베어 갔다.
하지만 그 순간.
서컹!
“……!”
사완악의 눈이 당황한 듯 커졌다.
종천이 묵생광검을 세워 사완악의 검을 막는 순간, 마치 두부가 잘리듯 사완악의 검이 두 동강 나 버린 것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
검이 반토막 나며 사완악의 오른손이 허공에 헛손질을 하는 순간, 종천은 왼손으로 일장을 뻗어 사완악의 심장을 노려 갔다.
사완악은 재빨리 왼손으로 다시 한번 마룡일효의 초식을 출수했지만, 종천의 공격을 완전히 상쇄시키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큭!”
강호에 나온 이후 사완악의 입에서 처음으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내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충격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종천의 묵생광검은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으며 다시 움직였다.
사완악은 반 토막이 되어 버린 보검의 자루를 내팽개치며 황급히 보법을 밟아 비틀거리며 몸을 뒤로 빼냈다.
쉬익! 쉬익! 쉬익! 쉬익!
종천의 검이 연달아 간발의 차이로 사완악의 급소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는 또 취팔선보(醉八仙步)로군.”
취팔선보는 개방의 무공으로, 신선이 술에 취해 휘청이는 듯한 모습이라는 이름처럼 종잡을 수 없이 움직이는 보법이었다.
사완악은 검이 잘리고 당황한 그 순간에도 속도를 중심에 둔 승광신법대신 예측불허하고 변화무쌍한 취팔선보를 선택하여 종천의 공격을 피해 낸 것이었다.
하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에서 벗어났을 뿐, 사완악의 얼굴에는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보통 검이 아니구나.’
마교의 신물, 묵색광검.
사완악의 검 역시 북해빙궁에서 가져온 보검 중 하나였음에도 묵색광검의 칼날에 형편없이 잘려 나갔다.
또한 묵색광검의 능력은 그뿐만이 아닌 듯했다.
‘마기가 더 강해진다.’
종천은 권장술을 사용할 때와 검술을 사용할 때의 마기는 확연히 달랐다.
‘낭패군.’
적수공권으로 검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거리의 이점이 사라지고, 상대의 검이 예리할수록 그 칼날을 호신강기로 막기 위해 소모되는 내공은 더 많아진다. 특히 지금처럼 자신보다 더 심후한 내공의 상대와 겨룰 때는 병기의 이점이 매우 중요한 법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검은 이미 잘려 버렸고, 설령 다른 검을 구한다고 해도…….
그런데 그때였다.
“사 공자!”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
사완악이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중년인이 서 있었다.
사완악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노인은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도였고, 중년인은 종남파의 장문인 정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전고투를 끝내고 온 듯 창백해진 안색에 도복은 피로 물들어 있었으며, 온몸의 기력을 모두 소진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동시에 자신의 검을 사완악을 향해 던졌다.
“받으시오!”
두 사람의 마지막 내공이 실린 두 자루의 검은 손잡이를 머리로 하여 화살처럼 날아왔다.
사완악은 두 개의 검을 양손으로 하나씩 잡아챘다.
“이건……!”
사완악은 두 자루의 검을 쥐는 순간, 검이 손에 착 달라붙고 범상치 않은 예기가 번쩍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강호의 고수들이 말하길, 천하의 명검이 주인을 만나면 검명이 들린다고 했는데, 두 자루의 검이 사완악의 손에 잡히는 순간 미세한 진동과 함께 웅웅거리는 검명이 울렸다.
동시에 귓가에 천향도의 전음이 들려왔다.
-과연 명검은 주인을 알아보는 법이군. 화산파의 신물인 매화신검과 종남파의 신물인 영천검이오.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명검들이니 저자의 검에 잘려 나가지는 않을 것이오.
두 사람은 이미 사완악과 종천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사완악은 검신에 새겨진 매화신검과 영천검이라는 글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쓸 만해 보이네.”
그러곤 양손에 검을 단단히 쥐었다.
쌍검술을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어차피 양의심공을 발휘하면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이때 종천의 신형도 다시 움직였다.
쨍!째앵!
세 개의 검이 격돌하며 귀가 찢어질 듯한 금속성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매화신검과 영천검이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명검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두부처럼 잘려 나간 사완악의 검과 달리 두 검은 종천의 묵생광검과 부딪치고도 멀쩡했다.
아니, 오히려 더 격하게 싸우고 싶다는 듯 세 자루의 검에서 모두 검명이 울려 퍼졌다.
“검들도 우리의 싸움을 원하고 있구나. 좋다, 어디 받아 보거라. 나의 초월마신검을.”
종천은 그와 같이 말하며 검 끝으로 허공에 작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가 만들어 낸 원의 모양으로 검기가 응집되어 검은빛을 발산하는 것이었다.
“검환……!”
검환은 검강을 뽑아내 동그랗게 만든 기의 응집체를 뜻했다.
최소 삼 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녀야만 가능한 검도(劍道) 최상의 기예.
종천은 그런 묵색의 검환을 아홉 개나 만들어 냈고, 그것은 일제히 사완악의 전신을 덮쳐갔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태화전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위력.
탈진한 상태로 멀리서 지켜보던 천향도와 정옥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만큼 종천이 쏘아 낸 검환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자욱이 피어오른 연기가 걷어진다면, 사완악의 시체가 기다리고만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
두 줄기 검광이 연기를 갈라내며 종천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사완악의 매화신검과 영천검이었다.
째앵! 까까까깡!
두 사람의 검이 본격적으로 격돌하며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검격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무서운 기세가 사방을 휩쓸었고, 천지간에 두 사람 외에는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종천의 검은 밤하늘을 달리는 번개와 같이 내리쳐졌고, 사완악의 두 검은 수백 개의 칼날이 되어 폭사됐다.
“저, 저들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구나.”
화산파의 장문인 천향도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당금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인 그의 눈에조차 두 사람의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대결이었고, 무신과 무신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말처럼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법.
종천의 묵생광검에서 돌연 기이한 기운이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