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2
정도마신 191화
쑤컹! 쑤컹!
섬광조차 베어 낸다는 건곤파섬검의 검기가 천마신장을 갈라 버렸다.
“…….”
거침없이 장법을 전개했던 종천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놀라운 방법이군.”
종천의 감탄은 진심이었다.
무공의 조예가 누구보다 높은 그는, 지금 사완악이 보여 주는 수법이 어떤 방식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상대의 초식에 맞춰 가장 적절한 두 가지의 무공을 동시에 펼쳐 내는 것.
말은 쉽지만 그야말로 과연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일까?
심지어 그 무공들은 하나같이 절학이라 불릴 수 있는 상승의 무공들이었다.
소림사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불렸던 종천조차 이와 같은 묘기는 불가능했다.
“아무 준비 없이 너를 쓰러뜨리러 왔겠어?”
“그래. 내가 너무 안일했다.”
종천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다가 문득 사완악을 보며 말했다.
“나는 설린 문주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사완악은 놀랍지 않다는 듯 답했다.
“현종이 막았겠지.”
종천의 눈이 의외라는 듯 가늘어졌다.
“알고 있었나?”
“너는 천마신공을 완전히 익히지 못하고 있었고, 나와의 싸움을 피해 도망갔었지. 그건 아직 현종이 네 안에 살아 있다는 뜻이겠지.”
“그럼 지금은 그가 죽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사완악의 표정이 종천을 만난 이후 가장 딱딱하게 굳어지며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그래. 그래서 널 반드시 죽일 생각이지.”
종천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어쨌든 현종이 말하더군. 널 죽이고 천하를 차지하고 나면 세상이 참 허무해질 거라고. 하지만 그녀를 강제로 취하지 않는다면 허무함을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 말에 제법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현종의 말을 듣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 같은 적수가 죽는다는 건 참 허무한 일이겠어.”
“그럼 네가 죽으면 돼.”
“그럴 수는 없지. 결국 세상에 모든 일은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이 마지막 순간, 나를 최대한 즐겁게 하다 죽어 다오.”
“지랄도 참 다양하게 하는구나.”
“조심하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제대로 할 테니.”
제대로 하겠다는 말에도 사완악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종천이 아직 본 실력을 숨겨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시하게 끝날 놈이 아니니까.’
사완악은 그런 생각을 하며 전의를 다지듯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그 순간.
종천의 신형이 땅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
사완악은 깜짝 놀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눈앞에 당도한 종천의 주먹에서 거대한 경력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강맹함과 패도적인 기세는 가히 독보적(獨步的)이었다.
과거 현종이 보여 주었던 소림사의 절학 백보신권조차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거세무비(擧世無比)한 공격이었다.
사완악은 몸을 뒤로 빼냄과 동시에 이를 악물며 양손으로 빠르게 원을 그렸다.
그 원의 가운데에 강렬한 기운이 구(球)의 형태로 압축되어 맺혔다.
이는 바로 파신마장의 후반부 사 초식 중 하나인 파천마군(破天魔君)이었다.
파신마장의 초식들 중에는 두 번째로 강맹한 위력을 지니고 있지만, 내공의 소모가 워낙 크기에 가급적 사용을 피하는 초식.
하지만 지금은 그런 뒷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사완악은 쌍장을 힘껏 뻗으며 압축된 기운을 쏘아냈다.
꽈아앙!
천둥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사람의 육체끼리 격돌하여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폭음이었다.
자욱이 피어오른 연기가 사라졌을 때.
종천은 뒷짐을 진 채 서 있었고, 사완악은 굳어진 얼굴로 세 걸음 정도 물러서 있었다.
‘밀렸다.’
파천마군은 사완악이 사용할 수 있는 무공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맹한 초식이었다.
그럼에도 밀렸다.
비록 세 걸음 정도뿐이지만.
그 작은 차이가 결국 이 싸움의 승패를 갈라놓을 수 있음을 사완악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완악이 진정으로 놀란 것은 천마신권의 위력이 아니었다.
“방금, 그게 천마군림보인가?”
“꽤 놀란 표정이구나. 하긴, 너는 언제나 너의 신법을 과신했었지.”
사완악은 잔혹신풍 구득소에게 천하제일의 경신술이라는 승광신법을 배웠다.
다른 초절정 고수들에 비하면 다소 무공이 떨어지는 구득소를 천하 칠대고수 중 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 절대의 신법.
실제로 현종 역시 소림사의 능공천상제(凌空天上梯)라는 상승의 신법을 익혔었지만, 속도로는 사완악의 승광신법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구득소는 그 승광신법을 가르쳐 주며 한 말이 있었다.
-승광신법은 천하제일의 경신술이자 보법이다. 하지만 승광신법과 비교할 수 있는 두 개의 신법이 있다면 바로 천마군림보와 소림사의 연대구품(蓮臺九品)이다.
-천마군림보와 연대구품이요?
-그렇다. 천마군림보는 마교의 교주만이 익힐 수 있다는 전설적인 보법이고, 연대구품은 소림사의 개파 조사인 달마 대사가 사용했다는 보법이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경신술의 기능으로만 본다면 승광신법이 뛰어나겠지만, 싸움에 필요한 보법으로는 천마군림보와 연대구품을 이길 수 있는 보법이 없다. 그 둘을 비교하자면…… 알 수가 없다.
-피, 그럼 승광신법은 천하제일 경신술이 아니네요…… 아얏! 왜 때려요?
-이놈아,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라.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마교는 이미 오백 년 전에 자취를 감췄으니 멸문했다고 봐야 하고, 소림사의 연대구품 역시 소실된 지 오래다. 염라대사에게 확인했으니 확실하다.
사완악은 상념을 지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문제는 그 마교가 다시 나타났다고.’
사완악은 지금껏 강호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도 크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내공이 심후하고 무공이 강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절대적인 자신감의 저변에는 승광신법이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본 천마군림보는 사부 구득소에게 들었던 것 이상이었다.
“표정이 좋지 못하군. 믿었던 무기가 소용없어진 것이냐?”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딱히? 너한테 도망 다닐 생각도 없는데 신법이 무슨 상관이야?”
종천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런가? 하지만 본래 보법은 도망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천의 신형이 다시 한번 사라졌다가 사완악의 앞에 나타났다.
사완악 역시 이번에는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왼손과 오른손으로 각기 다른 장법을 펼쳤다.
좌수로는 지금까지 중원과 마교의 무인들을 상대로 여러 번 이득을 보았던 빙백신장을, 우수로는 개방의 항룡십팔장 중 가장 오묘한 묘리를 담고 있다는 용전어야(龍戰於野)를 펼쳤다.
용전어야는 본래 왼팔로 허초를 뻗어 내며 오른손으로 기이한 변화를 담고 있는 장력을 쏟아 내는 것인데, 허초가 아니라 빙백신장과 함께 펼쳐지니 그 효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쾅! 쾅!
권풍과 장풍이 격돌하며 연달아 폭음이 일었다.
“빙백신장?”
종천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이제 사완악이 어떤 무공을 익히고 있든지 그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사완악의 임기응변에 감탄할 뿐.
사완악은 종천의 천마군림보가 매우 뛰어난 것을 의식하여 빙백신장의 차가운 한기로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둔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하하, 좋다. 이래야 나의 호적수라 할 수 있는 법이지!”
종천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두 사람의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격돌하기 시작했다.
꽝! 쾅쾅! 꽈앙!
그것은 그야말로 일대장관이었다.
권풍과 장풍이 격돌하며 회오리가 일어났다.
사완악의 백의장삼과 종천의 흑의장삼은 그 중심에서 미친 듯 펄럭였다.
이때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종천의 천마신공은 확실히 사완악이 지닌 사존의 기운보다 더 뛰어났다.
또한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천마신권은 천마신장은 강맹함과 부드러움을 모두 갖추고 있어서 마치 소림사의 권법과 무당파의 태극권을 합쳐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또한 종천은 그런 두 가지의 특징을 너무나 뛰어나게 활용할 줄 알았다.
이는 그가 현종의 인격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영향이었다.
그는 소림수호승으로서 불가 무공의 모든 정수를 습득했다.
따라서 마교 무공에 존재하는 폭급함의 단점을 절제할 수 있게 만들었다.
‘초대 천마와 이대 천마가 마선과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던 이유지.’
만류귀종이라는 말처럼.
마선이 창안한 천마신공은 결코 한쪽에 치우친 것이 아니었다.
마도(魔道)와 역천(逆天)의 힘으로 신의 경지에 오르는 무공이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하지만 마교의 무인들은 그 중심을 잡지 못했고, 그것은 역대 천마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즉, 종천이기 때문에 마선이 만든 천마신공의 진정한 효용을 펼칠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런 종천을 상대하며 밀리지 않고 있는 사완악의 신위 역시 놀랍다 못해 경이로웠다.
‘정말 놀랍구나.’
종천은 사완악이 어떤 무공을 익히고 있든 더 이상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그가 몇 가지 무공을 익히고 있든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한계가 있는 법이다.
종천의 머릿속에도 사완악의 그런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사완악은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사완악의 손에서 펼쳐지는 무공은 그야말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소림사의 천수여래장, 아라한신권, 무당파의 태극권과 태극혜검, 점창파의 사일검법, 아미파의 금광도법과 적하신장, 청성파의 청운적하검, 종남파의 천하삼십육검, 개방의 황룡십팔장, 취팔선권, 그 외에도 빙백신장이나 오대세가의 무공들까지…….
그야말로 천하의 절기들이 적절한 상황에 맞춰 줄줄이 이어졌다.
또한 그 무공들이 양손에서 동시에 펼쳐지니 하나의 무공이 지닌 단점을 다른 하나가 보완하여 상승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종천은 마치 한 사람이 아니라 십수 명의 고수가 완벽한 호흡으로 펼치는 합공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종천은 자신의 등 뒤로 흐르는 땀을 느끼며 경탄을 터뜨렸다.
‘사완악, 너는 정말 끝을 알 수 없는 놈이구나.’
물론 이런 묘기에 가까운 싸움을 펼치는 사완악 역시, 속으로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네.’
타고난 오성에 사령문의 주술과 무당파의 양의심공의 효용을 합쳐 수십 가지의 무공을 펼치는 사완악이지만.
애초에 뇌의 능력을 크게 활성화시키는 사령문의 주술은 내공의 소모가 심할 뿐더러, 양의심공으로 두 개의 생각을 한꺼번에 돌리니 머리가 말 그대로 터져나갈 것 같은 상태였다.
게다가 종천은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상대.
만약 판단을 잘못하여 상성이 좋지 못한 무공을 펼친다면 크게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사완악은 마치 높이를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외줄을 타고 걷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종천은 돌연 사완악과 거리를 벌리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