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96
정도마신 195화
사완악의 눈에 놀람이 떠올랐다.
묵색광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광채.
번쩍!
츠츠츠츳……!
벼락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뇌전광(雷電光)과 함께 묵색광검에서 가공할 기운이 폭사됐다.
그것은 천마신공이 아니었다.
지옥의 악마(惡魔)가 검 속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지독한 마기였다.
사완악은 중단전에 자리 잡고 있는 수호성의 기운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종천을 바라봤다.
‘묵색광검이 천살성의 힘을 받아들이고 있다.’
종천은 분명히 많은 힘을 소진했다.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내상 또한 가볍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순간.
종천의 피가 묵색광검에 스며들며 천살성의 기운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마치 이것이 마교의 신물, 묵색광검의 진면모라는 듯.
증폭된 기운은 마치 갑옷처럼 종천의 전신을 휘감았고, 천마신공 역시 그에 반응하며 내상을 입기 전보다 오히려 더 강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종천의 입에서 한 가닥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큭큭큭…….”
사완악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 음성은 더 이상 종천의 것이 아니었다.
“네놈이 결국 나를 깨우는구나.”
사람의 목소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괴한 음성.
사완악은 언젠가 이러한 느낌의 음성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영겁사령존의 원혼.’
사부들이 자신의 안에 심어두었던 전대 영겁사령존의 악혼.
그 혼령과 음색은 다르지만 느낌은 매우 흡사했다.
이때 그 소름 끼치는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마선이 남긴 내공심법은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뛰어난 신체와 오성, 천부적인 무재를 지녀야지만 익힐 수 있는 천마신공. 두 번째는 모든 마공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는 흡마신공. 그리고 마지막은 천살성의 기운을 천마신공과 합칠 수 있는 마혼신공이다.”
“마혼신공…….”
“마선은 천살성의 기운을 지니고 태어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후대였던 천마들은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나지 못했지. 천살성의 기운과 이 묵색광검이 만나면 마혼신공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 즉, 나야말로 마선 이후의 진정한 천마라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갑주처럼 종천의 몸을 감싸고 있던 천살성의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다시 갈무리되며 천마신공의 기운과 융화되기 시작했다.
반경 오십 장의 넓이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공포스러운 기운이 팽배하게 퍼져 갔다.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운 악마의 기운이었다.
사완악은 굳어진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이번 격돌이 둘 중 한 사람에게는 마지막 순간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쫄았냐?”
사완악은 문득 들려온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빛에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
바로 자신의 분신이었다.
사완악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터뜨렸다.
“쫄긴 누가 쫄아?”
“쫄았는데, 뭐. 죽을까봐 무섭냐?”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 거거든?”
“난 한 시진 뒤면 어차피 사라지는데?”
“…….”
“주선이 남긴 팔찌가 나 같은 분신도 만드는데, 마선의 검이 평범할 리 없잖아. 천기자의 예언도 당대의 천살성이 수호성을 이긴다고 했고. 어차피 목숨 걸 생각으로 온 거 아니야?”
사완악은 순간 말문이 막혀 분신을 바라봤다.
“분신 주제에 건방지군.”
“누워서 침 뱉는 건가?”
“…….”
사완악은 입을 다물었다.
누구 분신인지는 몰라도 말대꾸 하나는 기가 막혔고, 말할수록 손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휘우우웅-!
천살성과 천마신공이 융합된 종천의 마공이 절정에 달해 있었다.
사완악은 자신도 모르게 분신의 말을 곱씹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뭘 복잡하게 생각하냐. 답이 정해져 있는걸.”
분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최선을 다해 싸운다.
그러다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
다른 방법 따위는 없다.
사완악과 분신 역시 각자의 모든 기운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쏴아아!
종천의 묵색광검으로 몰려들었던 먹구름에서 불현듯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치치치칙!
세차게 내리는 빗방울들이 종천과 사완악, 분신의 몸 주변으로 생겨난 기의 장막에 부딪쳐 증발하고 있었다.
사완악과 종천의 대치는 그렇게 한동안 침묵 속에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세 사람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흐아아아아아아!”
종천의 입에서 터져 나온 절대마성(絶代魔聲)이 천지를 뒤흔들며 검붉은 마기가 악마의 형상이 되어 사완악과 그 분신을 덮쳐갔다.
사완악과 분신 역시 양의심공을 이용하여 각자 최고의 절학을 쏟아 냈다.
사완악은 소림사의 백보신권과 개방의 항룡십팔장을 젖 먹던 힘을 다해 펼쳐 냈고, 그의 분신은 검과 하나가 되어 종천의 가슴을 꿰뚫듯 날아갔다.
꽈아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벽력굉음.
인간의 힘을 벗어난 내공들이 충돌하며 눈이 멀 것 같은 빛이 번쩍이고 공간이 어그러지는 듯한 환영이 일어났다.
그 엄청난 폭발 속에서.
사완악은 돌연 종천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재차 내질렀다.
하지만 이 주먹은 어떤 특별한 공격이 아니었다.
또한 사완악은 조금 전의 격돌로 인해 대부분의 내공을 소모해 버렸다.
확실히 그의 힘으로는, 종천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훗, 또 무슨 잔재주를 부리는 것이냐?”
그런데 이때.
종천의 눈에, 한 가지 이상한 반지가 들어왔다.
황금빛 문양이 생겨진 은색의 반지.
그것은 바로 천기자가 사완악에게 남긴 마지막 신기(神器), 봉신환이었다.
사완악이 내공을 주입하자 봉신환의 문양이 번쩍 빛남과 동시에 한 줄기 황금빛살이 종천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 이건?”
종천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금빛이 가슴을 관통했음에도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종천의 입에서 마치 혼령이 빠져나가는 듯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으아아악!”
종천은 부릅뜬 눈으로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반경 오십 장의 공기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그의 가공스러운 마기가 점점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설마 처, 천황신공(天皇神功)……!”
종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완악의 입가에 씩 미소가 떠올랐다.
“속이느라 힘들었다.”
사완악은 이 봉신환의 힘을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 두었다.
이것은 종천을 이길 수 있는 비밀 병기였고, 섣불리 시도했다가 실패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종천이 그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을 때, 사완악은 봉신환의 힘을 사용한 것이었다.
“사완아아아아악!”
종천은 자신의 내공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분노 가득한 음성을 터뜨렸다.
또한 이를 악물며 사라지는 자신의 내공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천하의 종천이라 할지라도 이미 사라지고 있는 내공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웃기지 마라! 천하의 주인은 바로 나 종천이다!”
종천의 입에서 처절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는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모아 묵색광검에 주입했다.
자신의 힘이 흩어지기 전에 사활을 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콰아아아아!
묵색광검이 어둠을 찢어발기며 사완악의 머리로 벼락같이 떨어졌다.
사완악의 남은 힘으로는 결코 막아 낼 수 없는 일검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무엇인가 사완악의 앞을 가로막았다.
촤악!
백의장삼을 입은 사완악의 허리가 일도양단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핏물이 흐르지도 않았고, 어떤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또한 두 개로 갈라진 사완악의 몸은 기체로 화(化)하여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부, 분신……!”
동시에 사완악의 신형이 아지랑이를 헤치고 튀어나왔다.
“끝이다, 종천.”
사완악은 전신에 남은 모든 힘을 장력에 담아 종천의 가슴에 격중시켰다.
“끄아아아악!”
종천의 입에서 심신을 가루로 만드는 듯한 혼령의 마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종천의 신형이 하늘에서 추락했다.
쿵!
종천은 몸은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전신을 갑주처럼 뒤덮었던 악마의 기운은 물을 끼얹은 숯불처럼 사그라졌다.
“컥!”
종천의 입에서 검은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의 생명은 점차 꺼져 가고 있었다.
사완악 역시 넝마가 된 모습으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사 공자님!”
뒤쪽에서 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완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로 설린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이겼군.’
설린을 구해 온 것은 사완악의 특명을 받고 황후의 방으로 향했던 사귀령들이었다.
그들은 일찍이 이곳에 당도했으나 사완악과 종천의 경천동지할 싸움에 멀리서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설린은 경공을 펼치며 날아와 쓰러지는 사완악을 부축했다.
“사 공자님, 괜찮으세요?”
설린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는 괜찮지. 쟤가 안 괜찮을 걸?”
사완악이 눈으로 가리킨 것은 물론 종천이었다.
그리고 이때, 어쩐지 사완악의 얼굴은 큰 슬픔에 잠겨 있었다.
“저 녀석에게 가 보자.”
사완악은 설린의 부축을 받으며 종천을 향해 힙겹게 걸어갔다.
기이하게도 종천의 기운이 모두 사라지자 하늘의 먹구름은 씻은 듯 사라져 있었고, 한 줄기 달빛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
종천은 창백해진 얼굴로 간신히 숨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사완악과 설린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종천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호수와 같이 담담한 기색이 담겨 있었고, 그것은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사완악과 설린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그리운 눈빛이었다.
“현종……?”
종천은 생에 남은 마지막 기운을 쥐어짜듯 고개를 움직여 사완악과 설린을 바라보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완악, 수고했다.”
“현종……!”
“고맙다.”
“…….”
현종은 이내 두 눈을 감더니 말했다.
“설린 문주님.”
“현종 스님…….”
“제가 설린 문주님에게 검법을 가르쳐 주었던 날들을 기억하십니까?”
설린은 물론 기억했다.
정도맹에 갇혀 지내던 시절, 현종이 찾아와 검을 가르쳐 주었던 한 달의 시간들.
“제게는 그 한 달이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었습니다.”
“…….”
“설린 문주님도 즐거우셨습니까?”
설린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물론이에요. 제게도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현종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그리고 미안합니다. 저로 인해…….”
설린이 말했다.
“현종 스님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현종은 고개를 저었다.
“이겨 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완악이 있어서. 그리고…… 한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여전히 좋은 친구…….”
현종의 음성이 점차 줄어들더니, 끝끝내 말을 마치지 못했다.
세상을 멸망시키는 천살성의 기운을 타고 난 천고의 기재, 현종.
사완악의 유일한 벗이었던 그가 결국 숨을 거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