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21
정도마신 20화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는 놀랍게도 백의장삼의 사완악이었다.
설린은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져 눈을 끔뻑이며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것은 뒤쪽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비무를 지켜보고 있던 총관 황임과 관일성, 소년 구휘도 마찬가지였다.
사완악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나를 아주 염치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더군.”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게 훌륭한 식사를 대접받고 밥값도 내지 않았는데 그만 떠나라니. 이거야말로 나를 무시하는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이지.”
“그, 그건…….”
설린은 일순 당황하여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때 그녀의 맞은편에서 분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뭐 하는 놈인데 끼어드는 것이냐!”
설린은 궁화종의 호통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사 공자님, 지금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위험하니 어서 비키십시오.”
사완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위험하다고? 내가? 아니면 설 문주가?”
설린은 다시 한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 남자는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나 있는 것일까?
“네? 그거야 당연히…….”
그런데 이때, 궁화종이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사완악의 등을 향해 자신의 검을 그대로 찔러 갔다.
“감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니!”
설린은 깜짝 놀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 순간이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설린을 바라보고 있던 사완악이 한쪽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빙글 몸을 돌려 다른 손으로 일장을 내뻗는 것이었다.
사완악의 일장은 궁화종이 찌른 검의 옆면을 때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게 만들었고, 궁화종은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충격에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사완악은 설린을 다시 부드럽게 놓아주었다.
이것은 비록 한 번의 공방이었지만,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사완악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궁화종은 가까스로 붙잡은 검을 한 바퀴 돌려 자세를 가다듬은 뒤, 사완악을 노려봤다.
“네,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사완악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난 사완악이다.”
“사완악?”
궁화종은 잠시 머릿속으로 사완악이라는 이름을 생각해 봤으나,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러는 넌 누구냐?”
궁화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건방진 놈이로군. 난 흑사방의 궁화종이다.”
궁화종은 자신이 삼방주의 아들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흑사방의 이름이라면 이 하북성에서 우는 아이도 뚝 그칠 만큼 모든 사람들이 무서움에 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건 흑사방과 정유문의 일이니 네놈이 감히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오늘은 내 기분이 좋은 날이니 한 번의 아량을 베풀겠다. 목숨이 아깝다면 썩 꺼져라.”
하지만 이어지는 사완악의 반응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궁화종? 설마 네가 그 개망나니라는 흑사방 삼방주의 아들 녀석이냐?”
설린을 포함한 정유문의 사람들과 구경꾼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고, 흑사방의 사람들은 놀람을 넘어 헛웃음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개망나니…….”
사완악은 뭐가 이상하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아비를 믿고 천방지축 날뛰고, 아랫사람을 개처럼 부리고, 여색을 탐해 아무 여자들한테나 껄떡대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에게는 칼부터 들이민다는 소문이 무성하던데? 그걸 개망나니 말고 뭐라고 표현할까?”
궁화종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어 안달이…….”
“쉿!”
사완악이 갑자기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갖다 대며 궁화종의 말을 막았다.
궁화종은 도무지 상상도 못 했던 상대의 행동에 황당함과 분노를 넘어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런데 사완악은 그것을 보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개망나니치고는 말을 잘 듣는군.”
“이, 이 미친 새끼가……!”
그러나 사완악은 궁화종의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설린을 돌아보며 물었다.
“정유문의 대표로 내가 나서는 건 어때?”
“네에?”
“저런 개망나니 정도는 내 상대가 안 되거든. 그 정도면 밥값이 되지 않겠어?”
물론 그가 비무를 해서 흑사방을 이겨 준다면?
밥값이 아니라 목숨 값이라고 해도 모자랄 만큼의 일이었다.
하지만 대관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이 사람은 도대체…….’
사완악이 다시 한번 물었다.
“왜? 싫어?”
“시, 싫은 건 아닙니다만…….”
“아닙니다만?”
설린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저희 때문에 공자님께서 피해를 보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완악은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 저 녀석은 상대도 안 된다니까. 그럼 허락한 것으로 알지.”
그러고는 궁화종에게 말했다.
“들었지? 이제 내가 정유문의 대표다.”
궁화종이 설린을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정말 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을 정유문의 대표로 하겠다는 소리요?”
설린은 그의 말에 다시 한번 사완악을 쳐다봤다.
‘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어차피 정유문에는 흑사방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흑사방과 대신 싸워 줄 방수를 구하고 다니지 않았던가.
‘하지만 상대는 흑사방이야. 저 사람이 괜히 이 싸움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다면…….’
그때, 설린의 눈에 사완악의 입가에 맺혀 있는 여유 있는 미소가 보였다.
그 장난스러운 표정에는 스스로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묘한 신뢰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설린은 사완악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분은 우리 정유문의 손님이에요. 손님에게 문파의 일을 부탁드리는 것이 송구스럽지만, 이번에는 신세를 지려 합니다.”
궁화종은 기가 막힌다는 듯 하, 하고 소리를 내뱉었다.
‘이년이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게다가 저 계집처럼 생긴 놈의 얼굴을 쳐다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은데, 이제 보니 아주 음탕한 년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줘야겠지.’
궁화종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 선택, 내 기억해 두겠소. 그리고 네놈은…….”
그는 사완악을 향해 말했다.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무릎 꿇고 빌게 만들어 주마.”
사완악은 눈을 크게 뜨더니 마치 웃어른이 아이를 혼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이런 잔인한 놈을 봤나. 과연 개망나니다운 생각이구나.”
“미친놈!”
궁화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땅을 박차며 사완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처음 사완악의 등을 찔렀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렇게나 휘두른 것이었으나, 지금의 공격은 그의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사환검법(蛇幻劍法)의 초식이었다.
궁화종의 검이 꿈틀거리며 사완악의 가슴으로 파고들다가 갑자기 위로 꺾이며 검 끝이 목을 노려 왔다.
구경꾼들의 눈에는 궁화종의 검이 사완악의 목을 꿰뚫고 지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사완악은 마치 그 초식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처럼 살짝 고개를 틀어 피해 내고, 동시에 한 손으로 궁화종의 어깨를 잡고 잡아당기듯 돌리더니 그대로 그의 엉덩이를 발로 차 버렸다.
궁화종은 “억!” 소리를 내며 황급히 중심을 잡으려 했으나, 사완악의 발길질에는 내력이 담겨 있어 그 힘을 해소하지 못하고 얼굴부터 땅에 처박히며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모습이 충격적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해서 입을 떡 벌렸다.
사완악이 푸하하 웃으며 말했다.
“나를 죽이겠다더니 왜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자빠지느냐?”
궁화종은 별다른 부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수치심과 분노로 새빨갛게 물들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라! 이 새끼 가만두지 않겠다!”
그는 당장에라도 사완악을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사내 한 명이 나타나 한 팔로 궁화종의 앞을 가로막았다.
궁화종은 웬 미친놈인가 싶어 소리를 지르려다가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간신히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엽 대주, 이게 무슨 짓이오?!”
엽 대주라 불린 사내는 처음 궁화종과 함께 서 있던 맹수 같은 눈빛의 사내였다.
사내는 궁화종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공자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오.”
“뭐, 뭣이!”
궁화종은 이를 악물며 맹수 눈빛의 사내를 쳐다봤다.
하지만 사내가 힐끔 궁화종과 눈을 마주치자, 궁화종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대주라는 호칭은 흑사방에서 하나의 무력 단체를 통솔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었고, 공적으로는 방주 다음의 위치였다.
아무리 삼방주의 아들인 궁화종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특히 이 사내는 방주들조차 예우를 해 줄 정도로 대단한 자였기에 더욱 그랬다.
궁화종은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울컥 짜증이 올라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엽 대주가 이런 반응을 보이다니? 도대체 어떤 녀석이지?’
이때 맹수 눈빛의 사내가 말했다.
“허락해 주신다면 내가 나서겠소.”
“흠, 흠.”
사내의 허락해 달라는 말은 궁화종의 체면을 살려 주는 것이었다.
궁화종은 헛기침을 내뱉은 후 말했다.
“엽 대주가 그리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설 문주, 그쪽이 중간에 비무 대표를 바꾸었으니 우리도 바꾸겠소.”
설린은 반사적으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어. 그놈이 그놈이겠지만.”
그러나 사완악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궁화종은 오히려 비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하하, 네놈이 언제까지 그렇게 오만방자할 수 있는지 보도록 하마. 설 문주, 그럼 우리 흑사방의 대표는 여기 계신 광투견 엽응 대주로 하겠소.”
“과, 광투견?”
“설마 사대청부업자……!”
일순 장내가 매우 술렁였다.
그리고 설린을 비롯한 정유문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맹수 눈빛의 사내를 바라봤다.
광투견 엽응.
강호에는 다른 사람의 의뢰를 받아 대신 일을 처리해 주는 청부업자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복수나 암살 등 은원과 관련된 일을 하기에 당연히 무공이 강해야만 했다.
광투견 엽응은 그 청부업자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불리는 네 명의 청부업자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사대청부업자 중에서도 무공으로만 따지면 가장 강하다고 소문난 절정의 고수였다.
한마디로 강호에서 가장 강한 청부업자라는 뜻이었다.
‘광투견이 흑사방의 일방주와 밀접한 관계라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흑사방의 대주가 되었을 줄이야. 이 비무를 멈춰야 해.’
아무리 사완악이 예상외의 무예를 보여 주었다고 해도, 상대가 광투견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설린은 정유문 때문에 사완악이 희생되는 것을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
“사 공자님, 여기까지만…….”
그런데 그녀가 미처 말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사완악이 별안간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광투견? 개망나니 아래에 미친 개새끼라니. 이 얼마나 어울리는 조합이란 말인가! 어이, 거기! 짖어 봐.”
광투견 엽응이 고개를 살짝 꺾으며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사완악을 바라봤다.
그러자 사완악은 마치 엽응의 모습을 따라 하듯 똑같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안 짖어? 이상하네. 개새끼가 왜 짖지도 않는 거야? 오호라! 그래서 미친 개새끼인가?”
설린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