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32
정도마신 31화
‘할아버지께 듣던 정유검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설린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초대 문주 설영충을 실제로 본 사람들이 대부분 사라졌을 시대부터, 정유문은 사람들에게 많은 조롱을 받아 왔다.
보기에는 좋지만 실전적이지 못한 검법.
정수가 소실되어 껍질만 남은 검법.
그것이 정유검법을 수식하는 말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대협 설영충의 무명(武名)조차 과장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사완악이 펼치는 정유검법은 달랐다.
봄바람이 불어오듯 부드럽지만 어느 순간 벼락이 치듯 빨랐고, 동작은 유려하지만 칼끝은 매섭게 상대의 급소를 노려 갔다.
사완악은 연달아 일곱 번의 초식을 펼쳐 내며 현종을 공격해 갔다.
“흐음!”
현종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신형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종은 보법을 밟으며 양팔을 휘두르면서 손바닥으로 사완악의 검을 쳐 냈다.
현종은 사완악의 힘을 흘려보내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의 손은 심후한 내공으로 감싸여 있어, 검날에 부딪혀도 손이 상하기는커녕 오히려 사완악의 검이 무쇠와 부딪친 것처럼 튕겨 나갔다.
사완악은 입술을 깨물며 검에 변화를 주었다.
가슴을 찌르던 검이 목을 찔렀고, 허리를 베던 초식은 현종의 다리를 노렸다.
이 같은 변화는 어떠한 전조(前兆)도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현종은 놀란 얼굴로 더욱 빠르게 손과 발을 움직였다.
“과연 훌륭한 검법입니다.”
사완악의 검을 막아 낸 현종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사완악의 얼굴은 오히려 일그러졌다.
“이 땡중이 누굴 놀리는 거야?”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웃기고 있네.”
설린과 구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완악의 검술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무서웠다.
물론 그것을 피하고 막아 낸 현종도 대단하지만, 반격 한번 하지 못하고 방어에 급급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무예 수준이 낮기에 그리 보이는 것이었다.
직접 비무에 임하고 있는 사완악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현종의 방어는 매우 직선적이었고, 단조로웠다. 하지만 사완악이 어떤 변초를 사용해도 결국에는 모두 정확하게 현종의 손에 막혀 버렸다. 심지어 몇 번의 초식은 제대로 검을 뻗기도 전에 미리 차단을 당했다. 마치 현종은 가만히 기다리는데, 사완악의 검이 미련하게 가서 부딪치고 튕겨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현종이 사완악의 동작을 모두 예측하고 꿰뚫어 봐야만 가능한 재주였다.
“지금까진 봐준 거다. 이제 제대로 간다?”
현종이 한 손으로 합장하며 말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사완악은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누군가와 말을 하면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거참, 묘하게 열 받게 하는구먼.”
사완악은 자신이 새로 만든 정유검법의 후반부 초식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십 년 전, 정도제일의 후기지수였던 도백천의 군자신검이 정유검법의 옷을 입고 번쩍였다.
그와 함께 현종의 손에서는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불가무공의 정수가 하나씩 웅혼하게 펼쳐졌다.
사완악의 검광이 현종의 몸을 감쌌고, 현종의 강맹한 권법은 용이 구름을 뚫고 나오듯 사완악의 검을 튕겨 냈다. 반대로 현종의 장법이 파도처럼 사완악을 몰아칠 때면, 사완악의 검은 흩날리는 꽃잎처럼 현종의 전신의 요혈들을 노려 가며 물러서게 만들었다.
이때 설린과 구휘는 굉장히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산천초목이 떨릴 만큼 격렬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광경이 무섭거나 위험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두 명의 뛰어난 화공(畫工)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설린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사완악과 현종의 눈과 입가에 떠오른 옅은 미소였다.
‘두 분은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구나.’
사완악은 언제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니고 있었고, 여유가 넘치는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순수한 느낌의 미소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또한 현종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엄숙하고 진지하며, 절제된 표정과 감정만을 보여 왔다. 하지만 지금은 사완악과 똑같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도 있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백여 합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현종의 기세가 사완악을 압박하며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대결은 처음부터 현종의 권법이 사완악의 검법을 미세하게 앞서 나갔고, 그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인 결과였다.
이때 사완악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뒤로 한 발자국 뛰어 몸의 중심을 한껏 낮췄다가, 그 반탄력을 이용해 전광석화와 같이 앞으로 튀어 나가며 검을 쭉 뻗어 찔러 넣었다.
눈부실 정도의 쾌검(快劍)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종 또한 돌연 범의 포효와 같은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
현종은 보법으로 몸을 옆으로 돌리며 사완악의 검광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그리고 사완악의 검이 거두어지는 순간, 발을 뻗어 검의 옆면을 강하게 차 버렸다.
사완악은 날아오는 거대한 바위와 충돌한 것 같은 위력을 느꼈다.
사완악은 굳이 그 힘에 대응하지 않고, 팔을 크게 돌리며 검으로 전해진 현종의 힘을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 동작으로 인해 사완악의 가슴은 무방비로 드러났다. 그리고 현종은 기다렸다는 듯 왼쪽 발을 땅에 쾅 찍으며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바로 소림사가 자랑하는 절학,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다.
‘이런!’
현종의 주먹에는 가히 천근거암도 산산조각 낼 것 같은 강맹함이 담겨 있었다.
튕겨 나간 검으로 막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막는다 한들 그 위력을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사완악의 좌수가 흔들리더니 일장(一掌)으로 장풍을 내질러 현종의 백보신권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꽝!
천둥 같은 굉음이 울리고, 주변 거목들의 무성한 나뭇잎이 파르르 흔들렸다.
사완악의 신형은 허공으로 떠올라 뒤로 십여 장이나 날아갔다.
설린과 구휘가 깜짝 놀라 사완악의 안위를 확인했다.
하지만 곧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완악은 백의장삼을 휘날리며 두 발과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착지했다. 이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무표정한 얼굴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고 꼿꼿이 허리를 편 모습은 그가 조금도 부상을 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현종의 얼굴에는 은은한 놀람이 떠올랐다.
현종의 앞에는 발 넓이로 두 줄의 움푹 팬 흙길이 그어져 있었다.
사완악의 장력에 그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나며 생겨난 자국이었다.
현종은 자세를 바로 하며 조용히 말했다.
“방금 그 장법은…… 정유문의 무공입니까?”
사완악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냥 어릴 적 사부에게 배운 수법인데.”
“혹시 무공의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일심장법(一心掌法).”
물론 그것은 일심장법이 아니라 염라대사 영환이 소림칠십이예의 정수를 집대성하여 열네 개의 초식으로 창안한 파신마장(破神魔掌)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 사실을 감출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왜? 소림사의 무공과 비슷한 면이 있었나?”
현종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말에 깜짝 놀라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소림사의 승려가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라는 말도 못 들어 봤어? 과거 사부님께서 소림사의 속가 제자분에게 무공을 배운 적이 있다고 하셨지.”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
천하의 무공은 모두 소림사에서 출발했다는 뜻이었다.
물론 과장된 면은 있겠지만, 그만큼 소림사의 무공이 오래전부터 중원의 무공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현종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저희는 먼 사형제지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사완악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비무는 이쯤하지. 뭐, 전체적으로 내가 진 것 같군.”
현종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시주님의 진짜 실력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야 피차 마찬가지.”
그리고 사완악은 현종과 격돌한 손목을 다른 손으로 잡고 살살 돌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마지막에 그것이 그 유명한 백보신권이었지? 그런 무지막지한 권법을 받아 내니까 아파 죽겠다고.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 사완악은 설린과 구휘를 쳐다봤다.
현종은 아쉬운 표정이었으나, 확실히 이 정도로 마무리하는 것이 적당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무공을 겨루며 비교하는 것을 원했을 뿐, 전심전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비무는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굳이 말하자면 무승부이지요.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맞으려고 거의 발악한 거거든. 또 놀리는 거냐?”
“진심입니다.”
사완악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가 배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 힘썼더니 무지 배고프네. 같이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땡중님. 아, 그나저나 저놈들은 어떻게 데리고 가지?”
사완악은 자신이 탑처럼 쌓아 둔 육사괴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종은 사완악의 시선을 따라 그들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현종은 육사괴의 혈도를 일부 풀어 주고, 일부 봉쇄했다.
그러자 육사괴는 정신을 차렸고, 스스로 걸을 수는 있었지만 한 줌의 내공도 끌어올릴 수 없었고 어떤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다.
“소림사의 무공은 점혈법도 신통방통하군.”
물론 사완악도 사부 사마소에게 강호제일의 점혈 무공, 군림혼혈공(君臨魂血功)을 전수받았다. 하지만 군림혼혈공은 상대의 혈도와 혈맥을 파괴하는 데 특화된 무공이어서, 현종이 보인 재주 같은 것은 따라 할 수 없었다.
“이들을 계속 데리고 다니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개방의 분타에 맡겨 두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분타는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제가 부탁하면 흔쾌히 허락해 줄 것입니다.”
소림사와 개방의 친분이 두텁다는 것은 강호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설린은 현종의 의견에 크게 동의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 그러면 이들을 남궁세가까지 연행할 필요도 없겠군요.”
사완악이 명심하라는 듯 현종에게 말했다.
“내가 잡았다는 것은 꼭 알려 줘야 해.”
“여섯 명 중 세 명은 현종 스님이 잡았는데요? 아얏!”
옆에서 딴지를 걸던 구휘가 이마를 부여잡고서 사완악을 노려봤다.
현종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완악 일행은 현종의 말을 따라 개방의 분타에 잠시 들렀다.
현종이 개방의 분타주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분타주는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아마도 현종의 사부와 개방의 방주가 깊은 관계로 보였다.
개방의 분타주는 그들이 육사괴라는 것을 알자 깜짝 놀라며, 남궁세가에 전서를 보내겠다고 했다. 현종은 분타주에게 이들을 잡은 것이 정유문의 문도 사완악이라는 것을 확실히 말해 주었다.
설린은 사완악에게 허락을 받고 감사의 뜻으로 개방 분타에 약간의 지원금을 기부했다.
그런 후 네 사람은 근처에 객잔으로 가서 음식과 술을 주문했다.
사완악은 특별히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고기 요리를 시켜 술과 함께 현종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번엔 술로 붙어 볼까?”
설린과 구휘, 현종은 어이없는 얼굴로 사완악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