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31
정도마신 30화
사완악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패력쌍부 장웅과 독수호리 서문석을 쓰러뜨렸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림사의 현종 역시 이미 두 사람을 추가로 쓰러뜨리고, 마지막 남은 여인에게 신법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자식, 장난 아니네. 갈색 옷은 제일 강한 녀석이었는데.’
사완악은 현종에게 검은 옷과 갈색 옷을 맡으라고 했다.
검은 옷은 무영자객 한양이었고, 갈색 옷은 철혈귀조 원구교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현종은 사완악보다 더 빠르게 두 사람을 처리했다.
만약 마지막 남은 여인까지 현종이 제압한다면 그는 육사괴 중 넷을 상대한 셈이다.
한마디로, 진법도 현종이 파훼했고 제일 강한 철혈귀조도 현종이 쓰러뜨렸는데, 제압한 숫자까지 두 배가 되는 결과였다.
“기다려!”
사완악은 부리나케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현종은 이미 육사괴 중 유일한 여인인 구미검(九尾劍) 수수옥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현종은 손을 뻗어 소림사의 고절한 금나수법인 금룡십이해(擒龍十二解)를 펼쳤다.
수수옥의 손목을 낚아채 혈도를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사완악은 수수옥의 실력으로는 현종의 금나수법을 절대 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늦…… 지 않았나?’
사완악이 내심 포기하려는 찰나,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구미검 수수옥이 갑자기 어떤 말을 중얼거리자, 현종은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거두고 두 걸음 정도 물러서서 불호를 외는 것이었다.
물론 현종은 곧바로 평온한 호흡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사완악이 공격의 기회를 뺏기에는 충분했다.
수수옥은 사완악과 눈이 마주치자 말했다.
“공자님께서 절 도와주시겠어요?”
사완악은 비로소 현종이 물러선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구미검 수수옥의 눈에서는 사이한 기운이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일종의 섭혼술이었다.
특히 섭혼술 중에서도 여인이 남자의 본능을 자극하고 마음을 홀려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드는 종류였다.
사완악이 멍하니 말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
그 순간, 수수옥의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가 어렸다.
그녀는 앞서 현종이 자신의 미혼공(迷魂功)을 소림사의 정순한 내공으로 순식간에 떨쳐 버리는 것을 보고 매우 절망하고 있었다.
무공으로는 이 괴물 같은 소림사의 승려를 이길 재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나타난 청년의 반응을 보고 그녀는 쾌재를 불렀다.
불심(佛心)으로 수양을 쌓은 승려와 달리, 이 청년에게는 미혼공이 바로 먹혀들었다.
수수옥은 달콤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를 대신해 저 승려와 싸워 주세요.”
수수옥은 그 틈을 타서 도망갈 생각이었다.
그러자 멍해진 얼굴의 청년이 말했다.
“싫어.”
“고마…… 네?”
수수옥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청년을 바라봤다.
그러자 멍한 얼굴의 청년, 사완악의 눈빛에 장난스러운 기색과 미소가 떠올랐다.
“얼굴도, 실력도, 수준이 너무 떨어지는군.”
“뭐, 뭐라고?”
적어도 사대악인 채보령과 비교하면 그랬다.
천하에서 가장 요사하여 무림공적이 되어 버린 여인.
그런 채보령 밑에서 자라고 탈정미혼술을 대성한 사완악에게 그녀의 미혼공은 어린아이의 장난보다도 못했다.
“그래도 덕분에 체면이 살았으니 살살 해 주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미검 수수옥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움직일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사완악이 내공을 이용해 그녀의 혈도 열여덟 곳을 봉(封)해 버린 것이다.
설린과 구휘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더 이상 놀랄 힘도 없었다.
강호에서 악명이 자자했던 그 육사괴를 단 두 명의 젊은 무인이 순식간에 모두 쓰러뜨렸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나 있을까?
사완악은 몸을 돌려 득의만만한 표정으로 승려 현종에게 말했다.
“사이좋게 세 명씩 처리했군.”
“과연…… 뛰어난 실력이시군요.”
현종은 차분하게 대답했으나, 썩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진법을 파훼하고 적을 쓰러뜨리는 속도는 현종이 빨랐지만, 섭혼술에 대응을 잘한 것은 사완악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종 스님, 정말 대단하세요. 수고 많으셨어요.”
설린이 다가와 말했다.
현종은 설린과 눈을 마주친 후, 합장하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정유문 분들이 도와주셔서 무사히 본사의 명을 받들 수 있었습니다.”
설린은 정중하게 인사하는 현종을 보며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현종 스님은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겼구나. 마치 하나의 조각상을 보는 것 같아.’
또한 현종은 목소리마저 차분하고 감미로워서, 절로 호감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설린은 쓰러진 육사괴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종과 사완악은 손속에 사정을 두어 육사괴를 죽이지 않았다.
현종은 불가의 제자이기에 그러했고, 사완악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었다.
“남궁세가에 넘겨야지.”
“아!”
설린은 사완악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남궁세가는 육사괴에게 혈족의 원한이 있다.
그들에게 육사괴를 넘긴다면, 처벌을 어떻게 하든 그것은 도의에서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
“현종 스님, 그래도 괜찮을까요?”
“남궁세가와 인연이 있는 자들이니, 합당하군요.”
설린은 사완악에게 웃으며 말했다.
“남궁세가의 은원까지 도와주게 되었으니, 이번 일에 대한 소문이 확실하게 퍼져 공자님이 이름이 알려지겠군요.”
그녀는 현종에게도 말했다.
“현종 스님은 소림사로 돌아가시는지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기는 아쉬우니 산 아래 객잔에서 식사라도 함께 하시고 작별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자 현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설린이 속으로 이상하다고 느낄 때, 사완악은 쓰러진 육사괴를 한곳에 모아 모두 혈도를 제압한 뒤 말했다.
“설 문주, 그 스님은 별로 밥을 먹고 싶어 하지 않을걸.”
설린은 더욱 의아해진 얼굴로 사완악을 쳐다봤다.
사완악은 손을 탁탁 털고는, 갑자기 현종을 응시하며 말했다.
“내 말이 틀렸어?”
현종은 고개를 들어 사완악의 눈빛을 받아 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완악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쯤 되니 약간 의심이 드는데…… 당신 정말 소림사의 승려 맞아?”
설린이 깜짝 놀라 말했다.
“사, 사 공자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완악은 현종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그렇잖아.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소림사의 스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믿냐는 거지. 무슨 무공을 쓰는지도 제대로 못 봤는데 말이야.”
“그, 그건…….”
설린은 일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직감적으로 현종이 소림사의 승려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완악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설린이 어떤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현종이 불쑥 말했다.
“그렇다면 저 역시 당신들이 정유문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신할 방법이 없군요. 조금 전 사용한 당신의 권법은 정파의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괴이한 동작들이었지요.”
사완악이 사용한 것은 그가 스스로 창안한 광대권법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설린과 구휘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이때 사완악이 기가 막히다는 듯 웃음을 내뱉었다.
“갈수록 의심되는군. 소림사의 중놈은 원래 그렇게 가식적인가?”
설린은 크게 당황하여 속삭였다.
“사 공자님, 그래도 말씀이 너무 지나쳐요. 정말 소림사의 스님이면 괜한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현종에게도 말했다.
“사 공자님이 어려서부터 산속 깊은 곳에서 자라 예의범절에 조금 서툰 면이 있습니다. 현종 스님, 양해 바랍니다.”
하지만 현종은 묵묵부답으로 사완악을 쏘아볼 뿐이었다.
설린과 구휘는 분위기가 갑자기 왜 이렇게 삭막해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현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서로를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그러자 비로소 사완악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진하게 떠올랐다
“그래, 그 잘난 소림의 무공 좀 보여 달라고. 너도 그러고 싶어 미치겠지?”
“그런 것은 아니오나…… 정유문의 고절한 검법을 견식하겠습니다.”
현종은 이어서 설린과 구휘에게 말했다.
“두 분은 잠시 저들이 있는 곳까지 물러서 계시지요. 혹시 저들의 혈도가 풀리지 않는지 감시 부탁드립니다.”
구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설린을 쳐다봤다.
하지만 설린은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 조용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휘야, 따라오렴.”
“예?”
“어서.”
설린은 구휘의 손을 잡고 육사괴가 널브러져 있는 곳까지 물러섰다.
“아, 설 문주. 나 검 좀 빌려 줘.”
설린은 허리에서 검을 뽑아 사완악에게 건네주었다.
사완악은 검을 휙휙 휘두르고는 칼날을 들어 햇빛을 한번 반사시키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좋은 검이군.”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검이에요. 정유검법을 쓰기에 가장 이상적인 검이라고 하셨어요.”
“응, 딱 좋아.”
설린은 뒤돌아서는 사완악에게 말했다.
“조심하세요.”
사완악은 대답 대신 등 뒤로 손을 휘휘 저으며 걱정 말라는 손짓을 보냈다.
구휘는 설린에게 작게 속삭였다.
“문주님, 두 사람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설린은 처음과 달리 고개를 저었다.
“두 분의 표정을 보렴.”
구휘는 고개를 들어 사완악과 현종을 바라봤다.
사완악은 검을 들고, 현종은 한 손으로 합장을 하고 있었다.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대치하며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표정에는 묘한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아……!”
구휘는 그렇게 한마디를 내뱉고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순간, 사완악의 신형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현종에게 쏘아졌다.
번쩍!
검광이 번갯불처럼 번쩍이더니 한 줄기 강맹한 돌풍과 부딪쳤다.
쾅!
마치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흙먼지가 천지를 가리듯 피어올랐다가, 천천히 가라앉으며 두 사람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현종은 두 다리가 땅에 뿌리내린 듯 제자리에 굳건히 서 있었고, 사완악은 그로부터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다.
“역시 제법이네.”
사완악은 씩 웃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뭐 이런 괴물 같은 자식이 다 있지?’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니, 사완악은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중압감을 느꼈다.
사부인 사대악인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을 법한 엄청난 기운을,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젊은 승려가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은 현종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는 사완악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놀라고 있었다.
‘강하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현종은 본인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사형제들은 그와 비교 대상이 아니었고, 소년이 되었을 때 유례없이 소림사 원로들의 공동 제자가 되었다.
방장 대사는 현종에게 과거 소림사에서 파계된 저주받은 천재, 염라대사 영환의 재능조차 현종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종의 몸에는 소림사의 원로 고수 다섯 명이 합심하여 물려준 내공이 있었다.
한마디로 그는 소림사가 만약을 대비하여 키워 낸 비밀 병기이자 수호승이었다.
그렇기에 현종은 사완악을 보는 순간 그야말로 충격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또래에서 적수가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두 사람.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부터, 생전 처음 느껴 보는 하나의 감정에 마음이 불길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바로 호승심이었다.
“제대로 해보자고.”
사완악의 검이 다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