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30
정도마신 29화
오솔길은 생각보다 조금 길었다.
잠시 후, 몇 채의 초가집과 작은 밭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걸음을 빨리하여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모든 초가집은 텅 비어 있었고,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마치 귀신의 마을처럼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까지 느껴졌다.
구휘는 조금 긴장한 음성으로 말했다.
“왠지 모르게 오싹한 느낌이네요. 그런데 사람 사는 흔적이 전혀 없는걸요.”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스으, 스으, 하며 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옅은 안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설린과 구휘는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안, 안개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구휘의 말대로 뱀의 소리는 커지고 안개는 갈수록 자욱하게 짙어져서, 급기야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이목구비도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설린은 허리의 검을 뽑아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네 사람은 이것이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사완악은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진짜 기문진(奇門陳)이네.”
기문진이란 단순한 진법(陣法)이 아니라, 일종의 술법(術法)이었다.
어떤 강력한 힘을 지닌 매개체를 이용하여 특수한 공간의 환경을 바꾸거나, 결계를 만드는 신비로운 기술이었다.
사완악은 사부들에게 기문진이 실재한다는 말은 들었을 때 쉽게 믿기 어려웠다.
하지만 눈앞에서 점점 짙어지는 안개는 기문진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미세한 파공음이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사완악은 구휘의 허리에 매여 있는 검을 뽑아 번개같이 휘둘렀다.
깡깡깡깡!
금속음과 함께 네 개의 비수가 튕겨 나갔다.
누군가 안개 바깥에서 날린 암기들이었다.
‘흐음, 기문진은 기초적인 것만 배웠는데.’
사완악은 침착하게 기감을 끌어올렸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소림사의 현종이 아미타불을 외며 한 방향으로 바람같이 신형을 날렸다.
“엇! 스님!”
구휘가 놀라 외쳤다.
하지만 곧바로 현종이 사라진 안개 속에서 ‘우지끈’ 하고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악!”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었던 안개가 점차 흩어지더니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긴 나무 지팡이 한 개가 반토막으로 부러져 있었고, 키 작은 사내가 땅에 쓰러져 있었으며, 현종은 그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사완악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방향에 다섯 명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며 매서운 눈빛을 쏘아 내고 있었다.
다섯 명 중 네 명은 남자였고, 한 명은 여인이었다.
그들은 땅에 쓰러져 있는 키 작은 사내를 바라보며 상당히 놀란 얼굴이었다.
그중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인이 현종에게 소리를 질렀다.
“웬 놈들이냐!”
현종은 한 손으로 정중하게 합장하며 말했다.
“소림사에서 온 현종이라 합니다. 본사의 명을 받고 불법을 전파하러 왔습니다.”
현종의 음성은 높지도 낮지도 않았고,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어떤 평범한 일을 통보하듯 담담했고, 정중하고 겸손했지만 위축된 모습은 아니었다.
현종의 말에 다섯 사람은 황당한 표정으로 현종을 쳐다봤다.
“뭐? 불법? 네놈,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딴 말을 지껄이는 게냐?”
현종이 다시 말했다.
“그대들은 수많은 악행으로 여러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 죄를 참회해야 합니다.”
그러자 호리호리한 체형의 다른 사내가 기가 찬 얼굴로 말했다.
“보아하니 우리의 정체를 알고 왔구나. 소림사의 땡중이라고? 우리가 그딴 이름에 겁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중놈들이 떼거리로 몰려오면 모를까, 감히 네놈 혼자서…….”
그 사내가 험악한 표정으로 열심히 말을 내뱉을 때였다.
“아, 조용, 조용!”
갑자기 잔뜩 짜증이 섞인 하나의 음성이 사내의 말을 잘랐다.
바로 사완악이었다.
“뭐?”
호리호리한 체형의 사내는 이건 또 뭐 하는 종자인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꺾어 사완악을 노려봤다.
하지만 사완악은 도리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육사괴인지 육시랄인지 모를 놈들아, 잠깐 기다려라.”
“유, 육시랄?”
순간 다섯 명의 육사괴 얼굴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사완악은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현종에게 다가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도 막 찾아냈었어.”
현종은 크고 잘생긴 눈으로 사완악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랬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완악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랬을 수도 있는 게 아니고, 그랬다니까!”
현종은 사완악의 눈빛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누가 빨리 찾고 누가 먼저 행동한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구휘가 뒤에서 못 말린다는 듯 외쳤다.
“그래요, 사 공자님!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요?!”
하지만 사완악의 얼굴은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와락 일그러졌다.
“이 땡중아! 너 지금 나 약 올리는 거지? 네가 먼저 찾고 네가 먼저 잡았다 이거지, 지금?”
현종은 차분한 표정으로 사완악을 쳐다본 뒤, 고개를 아주 살짝 갸웃하며 말했다.
“사완악 시주께서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당신은 몇 살인데?”
“저는 이십삼 년 되었습니다.”
사완악이 피식 웃으며 자신의 나이를 일부러 높여 말했다.
“나는 스물다섯이다. 형이라고 불러라.”
그러자 현종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불문에 귀의한 지 이십삼 년 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섯 살 때 소림의 제자가 되었으니 속세의 나이는 스물여덟이겠군요.”
“뭐?”
사완악은 한 방 먹은 표정으로 멍하니 현종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말했다.
“나, 나도 어릴 때 사부님들을 만나 정확한 나이는 몰라. 아마 서른일지도 모르지.”
설린과 구휘는 사완악의 말에 입을 떡 벌렸다.
마치 저렇게까지 유치할 수 있구나,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현종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지 못하지만, 오직 사완악에게만 보일 정도로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그러십니까? 무공이 고강하셔서 그런지 상당히 젊어 보이시는군요.”
이때 뒤에서 육사괴 중 덩치가 곰처럼 커다란 사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짓들이냐! 네놈들이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육사괴는 자신들을 마치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내버려 두고 자기들끼리 이상한 대화만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며,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치밀어 올라 온몸에서 내공의 기운을 스멀스멀 뿜어내기 시작했다.
사완악은 그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현종에게 말했다.
“내가 세 명이다. 넌 이미 한 명 쓰러뜨렸으니 두 명만 맡아. 저 검은 옷이랑 갈색 옷. 나머지는 내가 맡는다.”
현종이 말했다.
“소승은 최선을 다해 본사의 명을 받들 뿐입니다. 본사에서는 저들 모두를 소승에게 맡겼으니…… 시주는 가만히 계셔도 무방합니다.”
사완악은 고개를 까딱까딱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끝까지 해보자는 거지?”
“아미타불, 살생은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야.”
그 말과 동시에 사완악의 신형이 갑자기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사완악은 조금 전 소리를 지른 곰 같은 체격의 사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사완악이 그에게 나직이 말했다.
“네 목소리가 제일 거슬렸다.”
거구의 사내는 자신의 병기인 한 쌍의 도끼를 양손에 쥐고 버럭 호통을 쳤다.
“이놈! 내가 감히 누군 줄 알고…… 끄억!”
하지만 그는 미처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기도 전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사완악의 주먹은 이미 그의 명치 중앙에 꽂혀 있었다.
사내는 가슴뼈가 으스러지면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육사괴의 둘째 독수호리(毒手狐狸) 서문석은 눈을 부릅떴다.
방금 사완악이 쓰러뜨린 사내는 육사괴의 넷째 패력쌍부(覇力雙斧) 장웅이었다.
장웅은 타고난 천근역사(千斤力士)로, 그가 도끼를 휘두르면 절정 고수도 정면으로 받아 내기 버거워했고, 철퇴로 얻어맞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한 외공의 소유자였다.
그런 장웅이 고작 약관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별다른 초식도 없이 그냥 내뻗은 주먹 한 방에 고꾸라지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광경은 끝이 아니었다.
패력쌍부 장웅의 거구가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을 때였다.
다른 쪽에서 아까 육사괴의 막내를 쓰러뜨렸던 소림사의 승려가 한 마리의 범처럼 날아올라 이번에는 육사괴의 대형(大兄), 철혈귀조(鐵血鬼爪) 원구교를 덮쳐 갔다.
심지어 원구교의 뒤쪽에는 이미 쓰러져 있는 육사괴의 셋째, 무영자객(無影刺客) 한양의 모습도 보였다.
원구교는 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열 개의 손가락은 강철보다 단단하고 칼날보다 날카로웠다.
육사괴는 강호에서 몇 번의 위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최후의 순간에 그들을 지켜 주고 강적의 목숨을 끊었던 건 대형의 손가락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소림사의 승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며 원구교를 향해 삼장(三掌)을 내질렀다.
일장(一掌)에 원구교의 왼쪽 손목이 부러지고, 이장(二掌)에 그의 무쇠 같은 손가락이 뒤로 꺾여 나갔으며, 바람을 가르는 마지막 공격에 원구교의 신형은 뒤로 날아가 나무 기둥에 처박혀 버렸다.
원구교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했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거냐?”
순간, 독수호리 서문석은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의 눈앞에는 한 명의 준수한 청년이 미소를 보이며 서 있었다.
서문석은 그 미소가 너무나 해맑고 순수하게 느껴져서, 도리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저승사자를 본 것 같은 공포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문석의 몸은 위기의 순간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는 왼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오른손을 필사적으로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오른 소매 안에서 하얀 가루가 한 주먹 튀어나오더니 공기 중에 넓게 퍼지며 사완악의 얼굴에 뿌려졌다.
이것은 서문석이 일곱 가지의 극독을 섞어 가루로 만든 것으로, 명성 높은 절정의 고수들조차 육사괴를 피해 다니게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서문석은 사완악이 무섭기는 했으나, 드디어 웃을 수 있었다.
그의 백무칠독(白無七毒)은 소량만 흡입해도 목숨이 위험한 극독이었다.
이 독에 내성이 있는 서문석 본인조차 호흡을 멈추고 입과 코를 가릴 정도였다.
하물며 그는 당황하여 한 움큼의 백무칠독을 모두 하독했고, 사완악은 그것을 얼굴에 모두 뒤집어썼다. 이 정도라면 강호에서 손꼽히는 내공의 고수라 할지라도 열 걸음을 내딛기 전에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의 그 오만방자함이 명을 재촉한…….”
독수호리 서문석은 득의만만한 한마디를 내뱉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백무칠독을 뒤집어쓴 사완악이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흥미로운 얼굴로 입술에 묻은 가루를 핥아 삼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완악의 말은 더 경악스러웠다.
“만독불침(萬毒不侵)이라고 들어 봤지?”
세상의 어떤 독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만독불침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내공을 지녀야만 이룰 수 있는 신체였다.
불과 약관 남짓한 청년이 만독불침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사완악이 만독불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사부 채보령에게 배운 탈정미혼공 때문이었다.
탈정미혼공은 끊임없이 음기를 갈구하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서서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되면, 수화불침(水火不侵)과 만독불침(萬毒不侵)의 몸이 된다.
사완악은 사부들의 내공을 모두 받아들이고 하나로 합치면서, 이미 그 조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독수호리 서문석은 세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마, 만독불침이라고? 그, 그런 게 진짜로 있을 리가 없다! 네놈은 도대체…….”
독수호리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어느새 그는 땅에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수호리 서문석은 의식을 잃기 전, 한 가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귓가에 사완악의 다급한 비명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기,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