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0
정도마신 69화
또 한 번의 폭탄 발언이었다.
“사령문의 후예라고?”
“사령문이라면…….”
몇 명의 후기지수들은 그 이름을 굉장히 낯설어했다.
구휘는 그들에게 말했다.
“삼백 년 전, 수많은 사술과 술법으로 무림에 큰 재앙을 불러왔던 집단이지요.”
삼백 년 전이라면 너무나 오래된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쯤은 들어 본 이름이기도 했다.
청운이 구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구휘는 사완악을 한 차례 쳐다본 후 말했다.
“과거 저희 문주님은 어느 괴한에게 납치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사완악 저자의 도움으로 문주님은 무사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괴한과 괴한의 일당이 정유문으로 찾아왔고, 사완악은 그들을 정유문의 문도로 받아 달라고 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갱생을 시키겠다는 것이었지요.”
후기지수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한 문파의 수장을 납치한 자와 그 일당을 오히려 문도로 받아 달라니?
구휘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청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설린 문주님은 그것을 허락하셨습니까?”
구휘가 말했다.
“저희 문주님은 순수하고 정의로운 분입니다. 저자는 문주님의 선조이신 설영충 대협이 흑도인들을 문도로 받아 들여 개과천선시켰다는 사실을 들먹이며 문주님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인 저자의 말을 반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청운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휘가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저자와 그 새로 오게 된 괴한 일당을 은밀히 감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고, 그들이 모두 사령문의 무공을 이어받았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마, 말도 안 돼…….”
구휘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설린의 표정을 보고는 덧붙였다.
“이 역시 증좌가 있습니다.”
“증좌가 있다고?”
“사완악 저자는 왼쪽 소매 안에 붉은 팔찌를 차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령문의 신물이라고 하며, 그 괴한 일당은 사완악 앞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양천상은 사완악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사대악인 중 잔혹신풍 구득소와 요희요검 채보령은 사령문의 내공을 익혔지. 자네가 사령문의 사람이 맞는지 아닌지는 그 소매를 걷어 보면 되겠군.”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집중되고 있을 때, 사완악은 문득 고개를 들어 태산의 맑은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사완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솔직히 이번 일은 정말 내 예상을 뛰어넘었어.”
사완악은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아직은 그의 사부가 사대악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또한 그의 정유검법이 도백천의 군자신검이라는 것을 이들이 증명할 방법이 없었고, 팔찌가 있는 것은 맞지만 사령문의 신물이 아니라고 우기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그런 말들을 늘어놓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이유는 정도맹주 양천상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양천상은 천기자 측의 인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오늘 완전히 작정을 하고 왔다. 맹주의 말은 거짓도 진실로 만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사완악은 허를 찔렸다.
천기자는 지금까지 사완악의 존재를 강호에 극비로 처리해 왔다.
만약 사대악인의 제자이거나 사령문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폭로할 생각이었다면, 진즉에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완악은 천기자가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당장 그 사실을 세상에 알릴 생각이 없다고 계산했었다.
사완악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슬슬 짜증이 나는군.”
그러고는 자신의 왼손을 올려 백의장삼의 소매가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다음 순간, 후기지수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사완악의 손목에는 청호단 무인의 말처럼 화염처럼 붉은 팔찌가 있었던 것이다.
사완악은 양천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가지 오해를 바로잡아 주고 싶군.”
“오해?”
양천상이 되묻자 사완악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군자신검 도백천은 요희요검의 술법에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건 이미 세상이 모두 아는 일이다.”
“아니. 정확히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지.”
양천상의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사완악은 이어서 말했다.
“당시 목숨을 잃은 것은 정도 제일기재 도백천과 무당파의 장문인이었지.”
순간, 한쪽에 있던 청운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하지만 사완악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했다.
“하지만 다들 생각해 봐. 천하에서 알아주는 고수인 무당파의 장문인과, 군자신검 도백천의 내공을 한 번의 방중술로 모두 빼앗을 수 있었겠어? 요희요검의 탈정미혼공은 굉장히 무서운 수법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라고. 하물며 그들 같은 절정의 고수가 쉽게 당할 리도 없고. 만약 그렇게 간단하다면 요희요검이 혼자서 강호를 지배하고도 남았겠지.”
후기지수들은 지금의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그 와중에도 사완악의 말이 매우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요희요검이 그 두 사람에게 미혼술을 사용했던 것은 맞지만, 그건 딱 한 번일 뿐이야. 그 후로는 그들의 자발적인 의지였지. 하하, 젊은 도백천은 몰라도 팔십 넘은 도사의 마음을 그렇게 흔들어 버리다니, 대단하긴 해.”
그 순간.
“그 입 닥치시오!”
공간을 쩌렁 울릴 만큼 분노한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림일룡 청운이었다.
청운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양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감히, 감히,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오?!”
사완악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나쁠 수는 있겠지만, 사실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그게 협객의 도리 아닌가?”
“갈!”
청운의 신형이 시위를 떠난 활처럼 사완악에게로 쏘아졌다.
동시에 그의 손은 빠르게 원을 그리며 일장을 내질렀다.
태극권의 절초였고, 비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후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때, 사완악 역시 그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두 사람의 장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쾅!
굉음이 울렸다.
그리고 후기지수들의 눈이 부릅뜨였다.
청운의 신형이 달려갔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큭……!”
청운은 허공에서 몸을 뒤집으며 땅에 착지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약간의 창백함과 당황스러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의 귓가에 사완악의 비웃음 가득한 음성이 들려왔다.
“실전과 비무가 다르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나?”
“……!”
경악.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천하의 무림일룡이 정면 대결에서 단 일 합 만에 저렇게 날아가다니.
청운은 비록 무공에서는 밀렸으나, 조금도 꺾이지 않은 눈빛으로 사완악에게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누구보다 훌륭했던 그분을 욕되게 하지 마시오!”
사완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그렇다고 진실을 감추면 내 사부님이야말로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이지.”
양천상은 마치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말했다.
“지금 사부라고 했나?”
사완악은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양천상을 바라봤다.
“나는 그분을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하지.”
이때 한 줄기 차가운 음성이 울렸다.
“지금 당신은 스스로 사대악인의 제자임을 인정하는 것이오?”
그 청년은 바로 화산파의 대제자, 매화령검(梅花靈劍) 화진우였다.
화진우는 평소 과묵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의 눈빛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매서웠고, 전신에서는 독기 서린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완악은 그를 보고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
사람들은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사완악을 바라봤다.
사대악인의 제자.
그 말이 선사하는 의미는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거짓말…….”
순간, 사완악의 표정이 아무도 모를 만큼 미세하게 굳어졌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사 공자님. 아무리 화가 나도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지 마세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이건 문주로서의 명령이에요. 제가 대신 오해를 풀어 드릴게요.”
설린의 온몸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사완악은 그런 설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해. 이제 소꿉장난은 끝났어, 문주.”
“소꿉장난…… 이요?”
“그래. 문도 놀이는 끝났다고.”
“그만! 그만하세요, 사 공자님. 저는 사 공자님이…….”
사완악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모두에게 말했다.
“왜 다들 가만히 있지?”
사완악은 다시 말했다.
“날 길러 주고 가르쳐 준 분들은 너희들이 말하는 사대악인이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그, 그런……!”
너무도 당당한 사완악의 모습에 후기지수들은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때, 양천상이 음성에 내공을 실어 근엄히 외쳤다.
“모두 검을 들어라!”
후기지수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홀린 듯 각자의 병기를 고쳐 잡았고, 싸움을 대비하듯 모두 사완악에게서 몇 걸음씩 떨어져 대치했다.
양천상의 음성이 후기지수들의 귓가에 다시 울렸다.
“나 양천상은 정도맹주로서 말한다. 사완악, 저자는 강호에서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지른 사대악인의 제자이며, 삼백 년 전 강호를 피로 물들였던 사령문의 사이한 술법을 익혔다. 저자는 앞으로 무림에 어떤 피바람을 몰고 올지 모르는 인물이므로, 우리는 이곳에서 반드시 저자를 막아야 한다. 이곳은 진법이 펼쳐져 있어 저자가 도주할 수 없다. 강호의 평화를 위해 모두 목숨을 걸고 저자를 제압하라!”
후기지수들의 눈빛에 단호한 결의가 서서히 깃들었다.
그들은 모두 맹주 양천상을 흠모하고 존경했다.
또한 이들 중에는 사대악인에게 큰 피해를 입은 문파의 출신들도 있었다.
사완악이 사령문의 후예인 것은 둘째 치고,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들은 결코 사완악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후기지수들의 몸에서 날 선 기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사완악은 그 모습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래,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사완악은 마음속에서 슬슬 짜증이 나고 있었다.
애초에 사완악은 무엇이든 오래 참는 성격이 아니었고, 자신에게 적의를 드러내면 그보다 더 큰 적의로 돌려주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천기자를 수면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협객 노릇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귀찮아졌단 말이지. 너희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사완악은 양천상과 구휘를 보며 눈을 번뜩였다.
‘천기자, 네 수하들이 다 죽어도 쥐새끼처럼 숨어만 있을 것인지 확인해 봐야겠다.’
이때 양천상도 사완악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입에서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저자는 강호에서 금지된 술법을 익히고 있으니 모두 함께 공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