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348)
이벤트 외전 6화
“던전의 룰이겠지. 괜히 힘 빼지 말자.”
식사를 넣어주는 구멍이 덜커덩거리며 열렸다.
틈 사이로 악마 토끼 인형이 우리를 보고는 히죽 웃었다. 맨 처음에 봤던 검은 녀석, 래비카토였다.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하아ㆍㆍㆍㆍㆍㆍ.”
“후우ㆍㆍㆍㆍㆍㆍ.”
익히 예상한 바였던 나와 테실리드는 한숨만 쉬었다.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아쉬운 건 우리였으므로 열의 없이 박수를 쳤다.
래비카토가 역할을 지정해주었다.
“언제부터 악마가 공평을 따졌다고.”
“이게 어떻게 좋은 역할ㆍㆍㆍㆍㆍㆍ. 하, 아니, 됐어. 빨리 끝내자.”
말씨름을 조금 하기 무섭게 호흡이 거칠어지는 스스로를 느끼고 관두기로 했다.
투박한 심문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의외로 착석감이 좋았다.
‘왠지 다시 일어나기 싫은 듯한ㆍㆍㆍㆍㆍㆍ.’
그때 식사가 들어오는 구멍을 통해 다음 지령이 떨어졌다.
선택권이 테실리드에게 돌아갔다. 조각 같은 얼굴로 진지하게 한참을 고심하던 테실리드가 한 장을 집었다.
뒤집은 순간.
[ 경고! 당신의 파트너가 29금 미션을 뽑았습니다!]정말 문제 있다, 저 손.
“ㆍㆍㆍㆍㆍㆍ.”
미션 카드를 정독하는 테실리드의 옆얼굴에서 충격이 전해져왔다.
급기야 그의 손끝이 종이 한 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카드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것을 본 제 눈을 멀게 하소서.”
“대체 무슨 내용인데 그래, 테리?”
“보면 안 돼.”
그가 29금 카드를 벽난로 속에 던져 넣었다.
카드가 화르륵 솟아오르는 불꽃에 재로 변하는 동안 테실리드는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실상 그가 씻어내고 싶은 건 붉어진 얼굴이 아니라 새빨개진 머릿속이었던 것 같다.
간신히 평소의 차분하고 절도있는 모습으로 돌아온 테실리드가 래비카토에게 말했다.
“재뽑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악마놈들. 시가를 등비수열로 올리고 있다.
나는 불안과 기대를 반씩 안고 테실리드의 두 번째 도전을 지켜보았다. 과연 그는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 것인가.
[ 경고! 당신의 파트너가 19금 미션을 뽑았습니다!]아무래도 테실리드는 강력한 천칭님의 가호를 입은 것이 분명하다.
“ㆍㆍㆍㆍㆍㆍ하.”
내용을 읽은 테실리드가 탄식 어린 날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번엔 카드를 바닥에 떨어뜨리진 않았다.
“한 번 더 뽑겠습니다.”
녀석은 인형 주제에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감당할 수 있겠냐는 뜻.
여기서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아이, 큰일이야.”
“왜?”
“금화가 부족해.”
“ㆍㆍㆍㆍㆍㆍ.”
“ㆍㆍㆍㆍㆍㆍ.”
토끼 인형의 눈이 번뜩였다.
악마놈이 퇴장함과 함께 덜커덩, 식사 넣는 구멍이 다시 닫혔다. 나와 테실리드가 있는 공간이 완벽한 밀실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결혼 2년 차 부부. 딱히 거리낄 것도 없었다.
우선 미션 내용부터 파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테실리드에게로 손을 뻗어 카드를 낚아챘다. 그런데.
“뭐야, 카드에 왜 아무것도 안 쓰여 있어?”
“아이, 네 눈에는 글씨가 안 보여?”
“응.”
“하ㆍㆍㆍㆍㆍㆍ.”
이마를 짚은 테실리드가 탄식했다. 구도자같이 성결한 얼굴이 시련과 고뇌에 휩싸이자 참으로 가학심을 자극ㆍㆍㆍㆍㆍㆍ.
‘정염 디버프, 이 미친!’
이건 내가 아니다. 아니야.
필사적으로 자아를 분리해낼 때였다.
테실리드가 얼굴을 반쪽을 가렸던 손을 떼고 천천히 고개를 정면으로 들었다. 깨달음을 얻은 듯 더 이상 고뇌가 없는 준수한 얼굴이 어쩐지 심상찮게 느껴졌다.
“그래,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몰라.”
“응?”
“세상에는 모르고 하는 게 나은 것도 있어.”
“네? 뭐라고요?”
“사전 지식이 공포를 부추기니까.”
“저기요, 여보?”
“응, 자기.”
내 목소리가 들리긴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내 부름에 돌려주는 그의 대답이 평소보다 유난히 농밀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역시 망할 디버프 탓인가.
그래, 분명 그 탓이다. 지금도 테실리드는 내게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걸.
“어쨌든 해야 하니까.”
“ㆍㆍㆍㆍㆍㆍ.”
“미안해, 아이.”
다정하고 애처로운 음성이 나의 본능을 자극했다.
아니야, 테리! 네가 미안할 게 뭐 있어! 나는 괜찮아!
다짜고짜 그의 편을 드는 말들이 내 목구멍 밖으로 튀어 나가려 했을 때였다.
“후.”
우아한 남자의 손이 앞머리를 걷듯 쓸어올린 직후, 테실리드의 태도가 일변했다.
“지금부터 이단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지나치게 익숙한 듯한 대사.
그제야 잊고 있었던 내 남편의 경력이 떠올랐다.
그랬다. 내 남편은 소싯적 질서교 검사성부 이단심판국에 몸담았던 이단 심판관이었다.
팔걸이를 양손으로 짚은 그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애틋한 시선에 홀려가는 동안 부드러운 손길이 내 뺨을 쓸었다.
“협조해주시면 금방 끝날 겁니다. 누명을 벗으셔야죠, 나의 성하.”
아니, 근데. 아무리 경력직이라지만 굳이 이렇게 실감나게 역할극을 할 필요가 있ㆍㆍㆍㆍㆍㆍ.
그 이상의 생각 같은 건 사치였다.
“흐읍.”
원래도 그리 담백하지 않았던 손이 목선을 타고 미끄러져 옷깃을 벌렸다.
“통상적인 절차입니다.”
“이게?”
“저주를 받은 흔적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신체검사로.”
이제껏 사무적인 척하던 테실리드가 민망한 듯 귀 끝을 붉혔다. 물론 내 얼굴도 덩달아 발갛게 익은 것은 물론이다.
그는 나를 배려한답시고 속삭였다.
“다 벗기지는 않을게.”
“그게 더 부끄러운데. 그냥 내가 벗으면 안 될까?”
“심판관이 하는 게 원칙입니다.”
다시 돌아온 사무적인 존댓말이 타협의 여지를 불식시켰다. 미션 카드의 내용이 그런 모양이었다.
익숙한 손길에 의해 옷자락이 피부 위에서 걷혀 나갔다.
새삼스레 내외할 것도 없는 사이라지만 괜한 부끄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왠지 몸이 점점 간지럽게 달아오르는 듯하다. 참을성이 빠르게 바닥나는 것도 느껴졌다.
손길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데, 어째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의 손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힐끗 정면을 살폈더니 살짝 홀린 듯 멍하게 멈춰 있는 테실리드가 보였다.
“저기요ㆍㆍㆍㆍㆍㆍ?”
“아, 미안. 너무 예뻐서.”
그의 시선은 옷 사이로 드러난 검은 가죽에 고정되어 있었다.
딱 봐도 뜨거울 듯한 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린 그가 다시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실례.”
미션은 저주의 흔적인지 뭔지를 찾는 것인 듯했다. 이를 위해서는 눈으로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의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목덜미가 드러나도록 했다.
“여기는ㆍㆍㆍㆍㆍㆍ 없군.”
다시 정리해주려는 건지 그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어 살짝 빗겨 내려간다.
두피로 전해지는 감각이 지나치게 짜릿했다. 하마터면 작게 신음을 흘릴 뻔했을 정도로.
고작 이런 거에?
나 스스로 놀라다가 깨달았다. 망할 정염 디버프가 내 몸을 자극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테실리드의 손이 옮겨 갔다. 내 팔을 들어 올린 그가 드러난 부분을 살폈다.
“왜 안 보이지?”
의아하게 중얼거리며 그는 혹여 자신이 놓쳤을까 싶었는지 팔을 다시 꼼꼼히 확인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행동을 했다.
아, 제발, 테리.
습관대로 은근하게 주무르지 말아 줄래? 나 지금 미치겠다고.
턱에 잔뜩 힘을 주고 버텼다. 여기서 신음을 흘리면 왠지 그걸 기점으로 뭔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상체에 있댔는데 어째서ㆍㆍㆍㆍㆍㆍ. 아.”
그때 테실리드가 뒤늦게 발견한 사각지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제발 이번에는 정답이길 간절히 바라며 눈을 꾹 감았을 때였다.
“실례, 할게.”
살짝 분절된 말이 수상하다고 느낀 순간, 뜨거운 손바닥이 내 몸 중에서 아마도 가장 부드러울 부분을 감쌌다. 약간만 뭉그러지도록 쥔 상태로 무게를 들어 올려 아래를 확인했다.
“여기도 없는데.”
아, 이건 진짜 미치겠는데.
“반대쪽도.”
진짜 미치겠는ㆍㆍㆍㆍㆍㆍ.
“상체는 다 본 것 같은데.”
미치겠ㆍㆍㆍㆍㆍㆍ.
“혹시 허리 위의 의미가 상체가 아니라 다른 것이었ㆍㆍㆍㆍㆍㆍ. 음? 아이?”
그의 습관적인 손길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ㆍㆍㆍㆍㆍㆍ하아.”
신음으로 짙은 욕망을 실토해버린 그 순간이었다.
[ 경고. 정염이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