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29)
129_네덜란드 독립 전쟁(6)
“···저놈들은 지칠 줄 모르는군.”
알바로 제독이 뒤편은 바라보며 말했다.
갑판 너머 해안에서 영국의 추격 선이 보였다.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우리를 추격하고 있지 않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긋지긋하군요.”
그때, 제독과 부관의 대화에 한 병사가 끼어들었다.
“저, 제독 각하.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제독은 잠깐 차가운 눈길로 그를 훑어보았다.
뼛속까지 에스파냐 귀족인 그였다.
일개 병사가 감히 자신에게 말을 건 게 썩 달갑지 않았다.
“이상하다니, 뭐가 이상하다는 말인가?”
“그게, 놈들이 꼭 우리를 유도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병사는 쩔쩔매면서도 말을 이어갔다.
“어쩐지 우리가 서쪽으로 항해하지 못하게 막는 것 같지 않습니까?”
“쯧,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제독이 혀를 찼다.
기껏 참고 들어주었더니,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적들이 우리의 방향을 유도한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애초부터 서쪽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작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군.”
“히익,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제자리에서 대기하라.”
“옙!”
제독은 병사를 돌려보낸 뒤 지도를 펼쳐보았다.
영국의 해안선이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영국을 약탈하면서 서쪽, 칼레 해협으로 갈 수는 없지.’
거긴 이미 쓰라린 아픔을 맛보았던 곳이다.
해협이 좁아 포위당하기도 쉽고, 적의 수도도 가깝다.
‘그렇다고 스코틀랜드를 습격하기엔 너무 멀어.’
제독이 타고 있는 배는 갤리선이었다.
인간의 노동력으로 움직이는 배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느려진다.
적들의 범선이 추격하는 와중에 먼 곳을 택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강이나 만의 안쪽은 습격당할 걱정이 심하고, 그렇다고 산지에 정박하면 약탈할 수 있는 민가가 없겠지.’
제독이 습격할 수 있는 후보지는 그렇게 추려졌고,
지금 배는 원활히 그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적에게 유도당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대로 항해해 적들을 따돌린다!”
오래지 않아, 제독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추격은 진작에 완전히 따돌린 채였다.
제독이 도착한 곳은 그레이트 야머스.
영국 노퍽주에 속한 목가적인 마을이었다.
“좋아, 이곳에 정박한다! 여기서 빠르게 식량을 조달하고, 해가 저물기 전에 떠난다!”
제독은 힘차게 외치곤 배에서 내렸다.
그는 식량을 마련한 곳을 찾아 마을을 살폈다.
“···이거 이상하군.”
제독은 당황스러움에 턱을 쓰다듬었다.
마을의 풍경이 그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석탄 난로에선 아직 뿌연 연기가 오르고 있었고,
흙밭엔 급하게 내던진 것 같은 농기구가 쓰러져 있었다.
마을 어귀엔 쌓인 눈을 긁어모아 만들다 만 눈사람도 보였다.
어딜 봐도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풍경.
그러나 사람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우리가 오는 걸 보고 도망친 모양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인가?”
“아직 낮이니 멀리서부터 우리 함선이 보였을 겁니다. 게다가 해안 마을이니 해적에 대한 대비도 확실했겠지요.”
“으음, 그런가.”
부관의 말은 일리 있었으나, 찝찝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집 안의 식량엔 손대지 말게. 적의 함정일지도 몰라.”
“예? 그러면 식량 보급은 대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유감스럽지만, 이곳에서의 식량 보급은 포기해야 할지도···.”
그때, 저편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여기! 식량을 발견했습니다!”
“와! 널린 게 먹을 겁니다!”
제독이 병사들의 외침을 따라가 보았다.
그러자, 그곳엔 파릇파릇한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 3월인데 이렇게 푸른 밭이 있다고?”
정말 낯선 풍경의 연속이었다.
아직도 안 녹은 눈이 길 곳곳에 쌓여있건만,
이처럼 푸른 밭이 보이다니.
“풀이 무성한 게, 보기엔 당장이라도 수확할 수 있을 듯하군.”
처음 보는 작물이었으나, 그 파릇함은 무척 탐스러워 보였다.
“겨울에도 잘 자라는 희한한 작물인가 봅니다. 게다가 이것 좀 보십시오.”
병사가 밭의 어귀를 손가락질했다.
거기엔 작물이 뿌리 뽑혀 눕혀져 있었다.
“이 작물은 지금이 딱 수확 철인가 봅니다.”
“으음···.”
제독은 잠깐 망설였다.
식량을 위해 왔고, 식량을 찾았다.
오랜 시간 굶주린 병사들은 당장 밭에 뛰어들듯 했다.
엄격한 성품의 제독이 아니었다면, 진작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가?’
갑자기 배에서 병사가 한 말이 걸렸다.
유도당하듯 이끌려 도착한 육지.
사람 하나 없는 이상한 마을.
눈 녹지 않은 계절에 푸른 밭.
혹시, 이 모든 게 함정이라면?
‘아니, 하지만 이건 의심할 여지 없는 농민의 밭이다.’
저 멀리까지 펼쳐진 밭은 단시간에 조작할 수 없었다.
작물들이 열을 지어 정성껏 심겨 있었고,
농민들이 성심성의껏 가꾼 티가 났다.
수레엔 둥글게 생긴 작물의 뿌리도 잔뜩 실려 있었고,
밭의 저편에서 돼지가 우는 소리도 들렸다.
어딜 봐도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 그 자체.
‘그래, 영국군이 이 밭에 조작을 가했을 수는 없어.’
마침내 결론을 내린 알바로 제독이 명령을 내렸다.
“좋다. 이 채소들을 수확해서 식량을 보충하도록 하지. 하지만 혹시 모르니, 깨끗이 씻은 뒤 데쳐 먹도록.”
“와아!”
병사들이 빠르게 수확에 나섰다.
푸릇한 이파리와 줄기를 양손 가득 들고 날랐다.
밭은 무척이나 넓었기에, 수확할 채소는 충분했다.
굳이 흙 묻은 뿌리 따위는 챙기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였다.
“저기 묶여 있던 돼지와 양은 어쩔까요?”
“먹음직스럽지만, 일단 내버려 두지. 사순절이지 않나.”
굶주린 병사들의 눈엔 아쉬운 티가 역력했으나,
감히 제독의 명령을 거스를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그들은 고기를 대신하기라도 하듯 푸른 작물을 주워 삼켰다.
“에이, 뭔가 아리고 맛이 없는데.”
“영국 놈들은 이런 걸 먹고 사는 거야?”
투덜거리지만, 시장이 반찬 아닌가.
굶주린 병사들은 정신없이 채소를 먹었다.
‘쯧, 한심하긴.’
물론 알바로 제독은 평소처럼 귀족들을 위한 특별식을 먹었다.
영국에서 키우는 맛대가리 없는 채소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해가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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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그날 밤의 비극은, 한 병사의 비명으로 시작되었다.
“배가, 배가 너무 아픕니다!”
“어이구,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탈이 났나 보군.”
“한심하기는.”
웃으며 병사를 놀리던 이들의 표정도 이내 급변했다.
“잠깐만, 나도 배가 아픈데?”
“나는 어지러워, 으윽. 토할 것 같아.”
“혀바다기 마비 된거 가타. 마를 모타게써!”
알바로 제독은 그제야 상황을 인지했다.
“이런, 식량에 독이 있었나?”
하지만 철저히 감시 감독했을 텐데?
깨끗이 씻은 채소였고, 제대로 익혀 먹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제독은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프다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이들,
바닥에 주저앉아 토를 해대고, 먹은 걸 싸대고 있는 이들.
이곳저곳에 쓰러진 병사들.
“제기랄, 이래서야 출항할 수 없지 않나!”
제독은 어떻게든 병사들을 배에 태우고 출항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가 이끌고 온 함대엔 갤리선이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범선이라면 몰라도, 인력이 많이 필요한 갤리선이다.
그런 배를 독에 중독된 병사들로 운행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되면···.”
제독은 어느새 해가 져가는 바다를 노려보았다.
과연, 노을진 바다 너머로 낮에 본 추격 선들이 나타났다.
“그대는 포위되었다!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지!”
선두에서 외치는 겁 없는 애송이.
그자는 제독이 그토록 무시하던 존 호킨스였다.
“···에스파냐는 항복하지 않는다!”
그 대답이면 되었다는 듯, 호킨스가 손을 들었다.
그와 함께, 대포 포격이 시작되었다.
-쾅! 콰앙!
이걸 과연 전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상대 전함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포병들이 전부 쓰러졌으니, 포격도 불가능했다.
오직 가만히 멈춘 채 사격 당하는 게 전부 아닌가.
“히익! 우리라도 도망가자!”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었다.
운 좋게 중독을 피한 일부 선원들.
그들은 범선을 타고 탈출을 시도했다.
작은 상선 한 두 척 정도는 운 좋게 포위를 뚫을 수 있었다.
“선장님! 저놈들 도망가는데요? 쫓을까요?”
호킨스는 그 물음에 잠깐 어깨를 움찔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 쫓을 필요 없다. 그보단 포위망을 좁혀 더 이상의 도망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데 집중한다.”
호킨스는 작은 전과보다 전반적인 전투에 더욱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호킨스는 적들 대다수를 사살하거나 사로잡았다.
적장인 알바로 제독을 생포하였고, 에스파냐 해군을 궤멸했다.
그는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공적을 세운 것이다.
“도망자들 대다수는 칼레 해협에서 사로잡았네. 나머지는 영국을 멀리 돌아가려다가 차가운 북해 바다에 휩쓸린 모양이고.”
여왕이 따스하게 말했다.
“수고했네.”
호킨스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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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사용한 작전이 잘 먹혀서 다행이야.”
호킨스의 전투 보고를 들은 뒤에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급조해낸 계획이라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말이지.”
신대륙에서 들여오기 시작한 감자.
나는 감자 농사 보급에 힘썼고, 최근엔 그 성과가 알차게 나타나는 중이었다.
특히나 노퍽 공작은 앞장서 감자 보급에 노력해주었고,
그의 영지 대부분엔 감자가 퍼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겨울철엔 영지 어디에서나 감자를 키울 정도였다.
“감자를 먹고 중독된 에스파냐 해군은 전멸했다.”
기쁘기 그지없는 승전보였으나,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 계획에서 희생한 걸 생각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본토에 해군의 상륙을 허용해버렸지.”
다행히 사순절이라 농민의 재산상 피해는 크지 않았다.
미리 위험 지역의 농민들을 대피시켰기에 인명피해도 없었다.
그런데도, 에스파냐군이 이 땅에 상륙했다는 건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한 소식이었다.
‘남의 전쟁에서 헛된 피를 쏟았단 여론이 생길 거야. 내 지지도도 깎일 거고.’
그러니까.
“내 피의 대가는 그 곱절의 곱절로 받아야만 하겠다.”
영국 해군이 알바로 제독의 해군을 맛있게 쌈 싸 먹었다.
그렇다면, 이다음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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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곤란해진 것은, 물론 에스파냐의 육군이었다.
“뭐라고? 제독의 군대가 전멸했다고?”
그간 없는 게 마찬가지라고 투덜거리던 해군이었다.
하지만 막상 정말로 없어지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본국과의 연락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육로론 프랑스가 버티고 있고, 해로는 칼레 해협이 완전히 막혔으니, 사실상 단절되었다고 할 수밖에.”
해군이 없으니 네덜란드와 영국의 해군도 견제할 수 없었다.
바다를 통해 이동하며 군의 허점을 찔러대니, 견디기가 어려웠다.
“이런, 망할! 본국의 추가 지원은 대체 언제 온단 말인가!”
그러나 알바 공작의 바람과는 달리,
에스파냐에서 추가 지원이 오기는 어려웠다.
사실 해군의 궤멸로 더 큰 타격을 받은 건 에스파냐 본토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펠리페의 땡깡을 참아주던 이유가 대체 뭐요?”
어느 저택의 가장 깊은 방, 회의실.
자본가들이 모여서 열띤 회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 전쟁에 상선을 강제로 압류당했소!”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나 역시!”
“전쟁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 상선을 돌려받을 가망도 있으니, 가만히 참고 있었소. 그런데 이게 뭐요? 그 상선이 영국군의 손에 반파되지 않았나!”
“내 상선엔 영국의 국기가 그려졌다고 하더군.”
먼저 상선을 잃어버린 이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우린 더 이상 전쟁에 자금을 댈 이유가 없소!”
다음으로 나선 건, 펠리페를 찾아갔다 협박을 당한 이들이었다.
“우리가 고작 펠리페의 호위군이 무서워서 돈을 바친 건 아니지 않소?”
“그렇지!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이거요!”
상인이 손을 높이 들고 손에 들린 책을 팔랑거렸다.
그건 펠리페가 출판한 그의 해군 작전 계획서였다.
“이만한 해군 전력을 동원해 적을 짓밟는다고 하니 무서워서 살 수가 있나!”
“저 해군이 우리 상행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러워도 참고 그 같잖은 국채를 사줄 수밖에 없었지요!”
“이자도 탕감해주고! 하, 내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러나, 그 해군은 이제 몰락했다.
“그리되면, 이제 우리가 참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자본가들의 눈이 빛났다.
다음 날 아침, 펠리페는 수십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에스파냐의 무역, 금융, 유통. 전 방면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푸거 가문의 회계사들은 이후 에스파냐 행정을 돕지 않겠습니다.”
“제노바에선 더 이상 카스티야의 양모도, 안달루시아의 농작물도, 바스크 지방의 고래기름과 소금도 수입하지 않습니다.”
펠리페가 이를 바득 갈았다.
“이 더러운 돈놀이꾼들이 감히!”
그러나, 이들을 혼쭐내줄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국의 금융인이 없으니 대체할 수 있는 존재도 없었다.
“···타협하지, 나와 얘기해보세. 전쟁만 끝나면 모든 돈을 갚아줄 테니. 응?”
그러나, 펠리페의 애원에 돌아온 답변은 냉정했다.
“안타깝지만, 저희는 겁이 많아 감히 그러질 못하겠군요.”
“폐하의 호위가 얼마나 무서운지 오줌을 지릴 뻔했답니다. 허허허.”
상인들이 꼼짝하지 않고 파업을 선언하니, 방도가 없었다.
당장 유통을 맡아줄 사람이 없으니 식량 보급도 불가능했다.
추가 무기 보급도, 화약 보급도 불가능했다.
무기의 8할이 외국산 수입품인 에스파냐였기에.
내부 상업 기반이 없는 에스파냐는 상인과 틀어지는 순간 팔다리를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되었다.
“···알겠네, 알았다고.”
며칠간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았으나,
펠리페는 어떠한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부활절 오기 전.
“···휴전 협상을 하도록 하지.”
펠리페는 항복했고,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