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223)
223_[외전] 원점에 서다 (5)
하성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야인 여왕이 무슨 소리를 한 거지?
수군을 강화해야 한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하성군은 입술을 깨물었다.
아군이라 믿었던 자의 배신에 뒷통수가 얼얼했다.
‘수군의 강화라니, 최악 아닌가!’
수군의 강화와 비변사의 강화.
둘은 언뜻 비슷해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수군은 명종이 을미왜변 이후 가장 공을 들인 분야였다.
명종은 판옥선을 도입했고, 권관제를 개설했으며,
수군 정비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과의 무역을 통해 얻게 된 재물 역시,
수군의 강화를 위해 상당량을 사용했을 정도였다.
본래 천직으로 멸시받던 수군을 이렇게까지 챙겨준 왕은,
조선사 전체를 통틀어봐도 명종 밖에 없었다.
자연히, 수군에선 명종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
명종의 혈통을 이은 새 주상에게도 헌신적인 이들 뿐이었다.
하성군으로서는, 영 골치아픈 자들이란 말이었다.
‘저 야인 년이 설마 알고 한 짓인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하성군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럴 리는 없지.’
비변사를 알고 있던 건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야인 아닌가.
조선 내부의 사소한 알력 다툼을 알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여왕은 자신을 배신할 이유도 없었다.
자신과 손잡는 건 여왕에게 분명한 이득 아닌가.
‘그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니, 제게 가장 익숙한 해군을 말한 것이겠지. 내 말의 세부 사항을 전부 잊어버리고 말이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왜구와 어울리던 야인 추장 아닌가.
짜증스럽지만, 그 정도 실수는 할 법 했다.
하성군은 숨죽인 채, 여왕의 말을 수습할 기회만 기다렸다.
“그러니까, 왜구에 대비해 수군을 키워야 한단 말입니까?”
그 사이 여왕과 어린 주상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그렇습니다. 왜구는 통일 될 기미를 보이고 있으며, 조선과는 다른 경로로 우수한 무기를 손에 넣었습니다.”
“우수한 무기라면···.”
“영국이 조선에 판매하는 대포와 같은 것 말입니다. 영국에서 유출하진 않았으나, 비슷한 기술력을 가진 나라에서 유출한 듯 싶더군요.”
“으음···.”
어린 주상은 살짝 질린 듯했다.
물론, 왕은 왜의 위협을 크게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대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그도 알고 있었다.
조선에서 지난 몇 년 간 요긴하게 쓰던 물건 아닌가.
몸으로 그 위험성을 체득한 무기가 적의 손에 들린다니,
그 위협이 배가되어 들려왔다.
‘저 왜놈들의 손에 그 같은 귀물이 들려있다면, 확실히 위험해.’
어린 주상이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킬 때,
하성군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달려 들었다.
“수군의 강화도 물론 중요하겠습니다만, 그토록 왜가 위험하다면 그들이 육지에 상륙하는 걸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성군은 짐짓 걱정스럽다는듯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혹, 놈들이 운좋게 해군을 뚫고 육지에 상륙해 주상 전하를 노릴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한성의 방어를 위해서라도, 전반적인 군 훈련도를 높일 필요가 있어보이는군요.”
말이야 바른 말이었으나, 여왕은 코웃음을 쳤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번지르르한 말이었으니까.
“수군이 뚫리면 곧장 버리고 육군으로 막겠다고? 그거 참 비횰적이고 냉엄한 정책이군. 그러다 육군도 뚫리면 어쩔텐가? 수도 역시 버리고 도망갈 생각인가? 버릴 생각을 하기 전에, 전력을 강화해 막을 생각을 해야지.”
여왕이 혀를 차자 대신들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조선이 왜의 위협이 수도까지 버리고 도망간다니.
그런 있을 수 없는 모욕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리 타국의 여왕이라도, 말을 가려야 할 것 아닌가.
여왕은 그들의 분노를 뻔히 보면서도,
태연히 그들을 비웃듯 중얼 거였다.
“이런, 조선이 이렇게 겁많은 국가일지는 내 미처 몰랐군.”
“저, 저···.”
조정의 신하들은 더 참지 못하고 그 무례함을 손가락질했다.
어린 주상은 돌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할 뿐이었다.
여왕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조선에서 영국의 이미지는 뻔하지.’
왜와 비슷한, 거칠 것 없고 예의 모르는 야인 국가.
기껏 상대가 그리 생각해주는데, 구태여 성질을 억누르고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더 입 아프게 떠들어대고 싶지도 않군. 내가 말한 내용에 대해서는, 그대 스스로 조사해보도록 하게. 관심만 기울인다면, 충분히 조선에서도 접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니까. 왜에 대한 구체적인 견제는 그 이후에 논의하도록 하지.”
여왕은 그렇게 말하고 당당히 대전을 벗어났다.
어딜 어찌 봐도 원조를 구걸하러 온 나라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하성군은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으르렁거렸다.
‘나와 손잡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요.’
신경쓸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여왕은 가볍게 상대를 무시하고,
조선에서 마련해준 거처로 몸을 향했다.
‘하성군보다, 우리 남편이 더 신경쓰이는걸.’
여왕은 조금 더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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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국 사신들의 숙소.
그 안에서, 여왕은 쭈뼛대고 있었다.
“당신,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알지?”
여왕이 페르디난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물론 페르디난트가 여왕에게 무어라 말한 건 아니었다.
다만, 현상황이 여러모로 여왕의 양심을 찌르고 있었다.
“기껏 관광하러 왔는데, 오자마자 이렇게 복잡한 정치에 휘말려들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
여기까지라면 사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왕의 남편은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속 좁은 자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들의 왕을 보러 가는 길에 당신과 함께 가지 못한 것도 미안해. 이 나라의 문화 탓에···.”
이 부분은 좀 전의 것보다 더 양심에 찔렸다.
여왕은 페르디난트와 함께 대전 회의에 나서지 못했다.
그랬다간, 성리한 질서에 입각한 조선에서 여왕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보단 페르디난트만을 신경쓸까 걱정되었다.
적어도 조선 문제는 여왕 자신이 직접 다루고 싶었다.
“하성군의 제안을 수락할지 여부도, 당신과 한 번 상담하지도 않고 독단으로 결정했으니 당신이 화를 내도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해.”
페르디난트는 한숨을 쉬고, 이내 미소지었다.
내심 서운한 점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여왕이 생각한만큼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그런 걸로 마음 상하진 않으니까요.”
무엇보다도, 페르디난트는 여왕을 믿었다.
“분명 무언가 생각이 있어서 그랬겠지요. 사실 저도, 하성군이라는 자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페르디난트는 그 말을 하며 살풋 인상을 썼다.
조선에서는 여왕을 위해 조용히 빠져 있어주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사교술에 능한 제국의 황자였다.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는 기색 정도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야심이 가득한 찬탈자를 상대하는 것보단, 어리고 순진한 적통을 밀어주는 편이 낫겠지요. 찬탈자쪽이 영국에 더 호의적인 건 걸리지만, 폐하라면 틀림없이 적통쪽도 구워 삶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글쎄.”
여왕은 페르디난트의 말에 더욱 양심이 찔린 기색이었다.
“솔직히, 그쪽을 끌어들일 자신은 없는걸.”
여왕이 기억하는 사림의 학문적 고고함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들이 영국과의 교류에 긍정적이기는 쉽지 않으리라.
“사실 이번 결정은···.”
여왕은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페르디난트였다.
결국, 여왕은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대영제국의 이익에는 반하는 결정이었지.”
여왕이 생각하기에, 이익을 위해선 하성군이 나았다.
하성군은 멍청하지 않으니, 이쪽을 배반하진 않았을 것이다.
동양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면, 그 편이 나았겠지.
“그러나 이건 대영제국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어.”
“그렇다면?”
“과거와,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지.”
페르디난트는 팔짱을 꼈다.
그 추상적이고 거대한 이야기를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주교와 관련된 이야기입니까?”
“으음.”
여왕은 습관적으로 망치를 만지작거리다가,
마지못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대도 이미 아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해두는 편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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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 스티븐 가디너, 그는 상당히 장수했다.
16세기치고는, 정말로 오래 살았다.
여왕에게 관을 씌워주었던 그는,
그 여왕이 영국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지켜보았다.
막무가내 여왕이 어떻게 나라를 확장해가는지,
그가 선물해준 망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보았다.
주교는 여왕의 결혼식을 지켜보았고, 그녀의 아이를 보았다.
그 아이가 자라나 듬직한 청년으로 성장해나가는 걸 보았다.
그러나, 그 세월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스코틀랜드와 마지막 전쟁이 터지기 몇 달 전.
주교는, 과거의 병이 재발하여 병상에 앓아누웠다.
안타깝게도, 여왕이 손 써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주교···.”
직접 병문안을 와 슬퍼하는 여왕에게,
주교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슬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살 날을 다 살고 주님의 곁으로 돌아갈 뿐이니, 그 귀한 눈물은 아껴두시지요.”
주교가 숨을 헐떡이다가 거칠게 기침을 내뱉었다.
말 한마디 이어가기도 힘든 몸 상태였다.
그래도, 그럼에도 주교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수명이 머지 않았기에.
그러니 해야 할 말을 해야만 했다.
“폐하···, 저는 참으로 부족한 인간이었습니다.”
“고해성사는 나중에 하게, 다 낫고 나서 말이야.”
여왕이 다급히 주교를 막았다.
많은 말을 하는 건 그에게 좋지 않았다.
하지만 주교는 꿋꿋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신에게 하는 고해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주교가 할 것은, 여왕에게 하는 고해였다.
주교는 거세게 기침을 떠뜨렸다.
그러면서도, 가냘픈 숨으로 물었다.
“베드로의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폐하?”
“그야, 당연하지 않나.”
예수의 열두 제자 중 맏이 아닌가.
설령 종교가 없어도 이름쯤은 들어봤을 인물이었다.
“그가 저지른 실수 역시,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 그러니 그만 좀 이야기하게.”
이 시대 유럽의 왕이 성경을 모를 리가 없지 않나.
여왕은 주교를 자제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주교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직접 입을 열어, 그 낡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그건 제 목소리로 여왕에게 들려주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 메시아가 유대인의 왕이 되길 원했습니다. 메시아라면 그들의 민족을 바른 곳으로 이끌어주리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지요.”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주교는 말했다.
베드로는 메시아를 위대한 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베드로는 겁에 질려간다.
메시아는 그의 상식 밖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원하던 건 로마를 물리치고, 핍박받는 민족을 구해줄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그보다 더 고차원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이었지요.”
그것은 베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혼란에 빠졌다.
마침내 유다가 예수를 배반했을 때.
베드로 또한 예수를 배반하고 도망치고 만다.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부정했습니다. 그건 거짓말이었으나, 동시에 진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해할 수 없으니, 모른다고 할 수밖에요.”
여왕이 보기에, 이 이야긴 어느순간 신학을 벗어났다.
주교의 말에는 감정이 담겨 있었고, 회한이 담겨있었다.
“폐하, 저는 그 어리석은 배드로입니다. 같은 실수를 범했지요.”
주교는 알고 있었다.
그는 결코 여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왕은 그의 이해를 넘어선 존재였다.
어째서 여왕은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는가.
어째서 여왕의 기준은 저토록 제멋대로인가.
어째서 여왕은 이교도를 척살하지않고 그들을 지켜주는가.
어째서 여왕은,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주교는 끝내 여왕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여왕은 이해하지 못하는 주교를 이해해주었다.
감사한 일이었으나, 동시에 비참한 일이었다.
“폐하, 저는···.”
주교가 쌕쌕거리는 숨결로 말했다.
“저는 배드로처럼 실수를 범했으나, 그처럼 징징대며 죽고 싶지는 않군요. 그러니, 폐하. 부디-.”
주교는 여왕에게 조언을 건넸다.
끊길락말락한 목소리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폐하께서 하고 싶은 것을 행하십시오, 폐하.”
“후계자도 컸으니, 미래에 너무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당당하게 나아가십시오, 폐하께서 원하시는 미래를 향해.”
“보다 자유로워지십시오. 과거를 지우실 필요도 없습니다. 타인의 이해 안에 자신을 속박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폐하”
너무나 따뜻한 당부의 말들이었다.
주군이 아니라, 가족에게 내뱉은 말들이었다.
때로, 가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도 가족이었다.
“제가 아둔하여 이해하진 못했을지언정,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건 그토록 고지식하던 주교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여왕의 코 끝이 찡긋해지는 작별의 인사였다.
“폐하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진 않을 겁니다. 그렇고 말고요.”
주교의 말은 점차 느려져갔다.
“그 여정을···, 저 또한 함께 보았으면 좋겠군요.”
여왕은 울컥하여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따.
“물론 그렇게 될 거야. 그렇고 말고.”
그러나 주교 자신의 눈으로 그 여정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 해 겨울이 채 지나기 전에,
주교는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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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런던과 이역만리 떨어진 조선에서 여왕은 입김을 불었다.
새삼스레, 주교의 생각이 났다.
“이후에 벌어진 일은, 그대도 잘 알고 있겠지.”
아들에게 섭정 자리 주고 영국을 떠났음.
대영제국의 미래를 위해서란 말을 남기고.
“사실 떠날 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떠나니까 시야가 더 넓어졌어. 주교 말이 더 와닿더군.”
이곳까지 오며, 여왕은 수많은 역사의 변곡점을 마주쳤다.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미래는 바뀌었다.
통제할 수 없는 흐름이었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났다.
알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세상은 아니었다.
‘책임감을 느끼지 말라고 하던가.’
어쩌면 주교는 미래를 통제하려는 여왕의 오만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멋진 세상이었다.
여왕은 주교가 그런 말을 하고 싶었으리라고 미루어짐작했다.
‘하여간, 전부터 멀리 내다보는 데엔 도사라니까.’
여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흘러갈 미래라는 건, 내가 보고 겪은 역사와는 다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의욕이 샘솟더라고. 새롭게 쓰여질 미래에, 이 영국이란 나라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하성군의 제안으로 고민할 때,
여왕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제안 받아들이면, 미래엔 어떻게 기록될까?’
눈앞의 이득은 확실했다.
조선을 친영파로 끌어들여 상업적 이득 취할 수 있겠지.
가뜩이나 넘쳐나는 황금에 한 양동이쯤 추가되었으리라.
하지만, 역사의 기록은 좋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가, 우리의 후손들은 타국의 내정에 함부로 참견해 그 나라를 불태운 자들의 후예로 기록되었을지도 몰라.”
여왕 자신뿐 아니라, 해리와 페르디난트에게도 오명이 튄다.
그간 가꿔온 영국의 미래가 그리 되는 건 원치 않았다.
“게다가, 이런 말하긴 그렇지만. 이곳, 조선은 내 고향 같은 곳이니까.”
여왕이 머쓱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성군과 손을 잡으면 조선에선 명분 없는 반정이 일어날 거야. 태평성대라면 모를까, 명이 쇠퇴하고, 일본과 여진이 성장하는 이 혼란기에 세력이 팽팽한 상대가 일으킨 반정이라니. 그리 되면, 조선은 큰 위기에 처했겠지.”
어쨋건 고향이라 느끼는 곳이었다.
구태여 그런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오해는 말아 줘. 난 조선인이 아니라 영국인이고, 영국의 여왕으로 살아갈 거야. 다만, 뿌리는 이곳이 틀림없으니까.”
대영제국의 미래와 여왕 자신의 과거.
“그래서 과거와, 미래를 위한 선택이란 말입니까.”
페르디난트가 웃음을 지었다.
“되었습니다.”
“응?”
“그 정도로 확고하면, 저는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늘 그랬지만, 페르디난트는 제 아내를 지지했다.
여왕은 그런 그에게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아, 그런데 이렇게 되면-.”
여왕은 깜빡했다는듯 질문을 던졌다.
“허락해준 것 맞지?”
“예?”
“조선의 일 말이야.”
“아, 당연하지요. 애초에 폐하의 권한 아닙니까.”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상관 없다는 뜻 맞지?”
여왕이 두번 세법 물어보자, 페르디난트는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별 수 있겠는가.
‘으음···, 별 일은 없겠지.’
결국 페르디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면···.
페르디난트는 결심했다.
‘그러면, 주교의 탓인 걸로 하자.’
주교의 넋이 억울해 승천할 듯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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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달 뒤.
조건,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에 대규모 지원이 도착했다.
수병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지원을 확인했다.
“아니, 이게 다 뭐란 말입니까? 조정에서 언제부터 우리를 살뜰히 챙겨줬다고 이런 걸 다···!”
“그러게나 말이다.”
발포수군만호, 이순신은 진중한 눈으로 지원품을 살펴보았다.
‘대포와 양곡인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지원이건만, 대체 저 배는 무엇이란 말인가?’
얼핏 용을 닮은 괴물의 선수상이 자리잡은 함선.
이순신의 눈 앞에, 그 흥미로운 모양의 함선이 들어왔다.
영국의 거북선과, 조선 이순신 장군의 첫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