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872
상남자 872화
민망했던 기억을 떠올린 강봉석 회장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흠흠.뭐 그렇긴 하지.근데 나보다 서 회장이 한 대표 덕을 더 본 거 같은데.”
“저요?”
“그래.요새 LJ 온라인 유통이 그렇게 잘 나가잖아.영상 서비스까지 대박이 터졌고.그게 다 한 대표 조언 덕분 아니냔 말이야.”
“맞긴 하죠.저도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으니까요.”
바로 수긍한 LJ 유통 서재환 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리비버 연합을 통해 실력 있는 벤처기업들을 연결하여 온라인 사업을 강화시키라던 유현이 앉아 있었다.‘그간 막혔던 체질개선이 단숨에 이뤄질 줄이야.’
LJ 유통은 오프라인 시장에선 강자였지만, 온라인에선 외국 공룡 기업들에게 밀려 힘을 쓰지 못했었다.
보수적인 문화로 인해 변화에 뒤쳐졌던 회사가 벤처들의 힘으로 반전을 만들어냈다.
데이터 공유가 이끌어낸 기적 같은 결과였다.
이들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리비버에게 혜택을 받았다.
분명 다들 처음엔 취지 자체에 부정적이었고, 리비버 연합에 속하고 나서도 데이터 독립의 장점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바뀐 체계로 인해 불편하다며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이젠 앞 다투어 데이터들을 위드C로 옮길 뿐만 아니라, 주도적으로 데이터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왜일까?
얼마 전 IT 업계를 뒤흔든 뉴스가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디지털 자산을 정식화폐로 인정하자는 힐러리 클린턴의 공약이 현실화 될 조짐을 보이자, 클라우드 컴퓨팅의 최강자인 아마존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마존을 시작으로 미국의 거대 IT기업들이 리비버 연합에 속속 합류했다.
이로 인해 실사용에 가장 근접한 디지털 자산인 리비버 포인트의 가치가 폭등하며, 더불어 기존에 잘 잡혀 있던 선순환 구조가 폭발적으로 확장됐다.
그 결과, 먼저 선점해 있던 사람들과 기업들이 큰 수혜를 입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득을 본 곳이 있었으니 바로 유현을 도왔던 이들이었다.
한성, 일성, 알리바바, 소프트뱅크, 메르손AB, 와이콤비네이터 등등.
칼 아이칸과의 전쟁에 동참했다가 막심한 피해를 입었던 회사들이 리비버의 지분을 분배 받았다.
리비버의 지분가치는 블록체인 기업의 선두주자이자, 모든 기업들을 아우르는 초대형 플랫폼으로의 확장성을 인정받으며, 이미 국내 최정상을 넘어섰다.
덕분에 리비버를 지원한 회사는 그간의 희생을 충분히 보상받게 됐다.
-리비버 투자는 장로회도 인정했어요.이제 그 노인네들이 회장 자리 가지고 왈가왈부 할 일은 없을 거예요.칼 아이칸이 무너졌으니 더 이상 힘도 없고요.
한때 회장 자리를 위협받으며 궁지에 몰렸던 크리스티나 메르손은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고, 비로소 가문 전체로부터 인정을 받게 됐다.
이젠 정말 그녀가 최고 경영자로서 결정권을 가지고 회사를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유현이 달라질 메르손AB의 미래를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얼마 전 일성 그룹의 신임 회장 자리에 오른 최민용 회장과 눈이 마주쳤다.
유현은 최진철 전 회장에게 약속했던 대로 최민용 회장을 지원했고, 덕분에 그는 큰 구설수 없이 회장직을 인계받을 수 있었다.
나름의 신뢰관계가 생긴 그가 유현에게 불쑥 물었다.
“한 대표.오늘 회의가 무척 기대 되는군.강연부터 할 거지?”
“공감대는 이미 형성된 거 같으니, 바로 회의 진행하시는 게 어떠신가요?”
여기 있는 모두가 리비버 연합의 중요성을 이제는 인정하고 있었다.
유현은 그런 그들과 리비버 연합에서 한국 대기업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회의할 예정이었고, 기술적인 분석 자료를 기조 강연을 통해 먼저 공유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실무로 들어가도 무방해 보였다.
이런 유현의 생각에 일부 동의하는지, 신경욱 회장이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럼 딱딱한 이야기는 본 회의에서 따로 하고, 가볍게 한 마디 하는 게 어떤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던 만큼 할 이야기도 많을 거 같은데.”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람들도 한 마디씩 던졌다.
“그거 좋겠군.이번 일 겪으며 인생수업도 톡톡히 치렀지 않나.”
“기왕이면 그때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 좀 해봐.이번엔 귀 담아 들을 테니까.”
“하하.생각해보면 한 대표 참 당돌했어.”
작년 초였나?
미국에서 복귀했던 유현은 10대 총수들 앞에서 변화에 뒤처지면 망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데이터 독점을 막아야만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가 있을 거 같은 절박함에 내놓은 승부수였다.
그런 무모함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
‘정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
다이내믹했던 과거를 회상한 유현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칵.
조명이 켜지며 단상 위로 불빛이 들어왔다.
유현은 준비했던 기술적인 강연내용을 싹 지운 채 10대 총수들 앞에 섰다.
벤처기업 생태계 조성, 리비버 연합의 시작, 리비버의 위기에 모두 함께해준 사람들이다.
이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들이 나서서 정부의 압박을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칼 아이칸이라는 거대한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무너졌을 터다.
유현은 그 고마운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
“먼저 저를 지지해주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쉽지 않은 결정을 해주신 덕분에 난관을 극복하고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인사로 운을 띄운 유현은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에 선 이들의 면면을 바라봤다.
예전에는 얼굴도 마주할 수 없었던 그들의 호의적인 눈빛이 달라진 유현의 입지를 보여줬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잘되기 위해서 모든 걸 독식했다면,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단순히 돈만 많이 버는 건 가능했겠지만 거기까지였다.
-자네가 내게 말했던 대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지 않나?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흐름에 뭔가를 추구하고 싶지 않느냐는 말일세.
그랬다면 결코 가슴속에 새겨둔 스티브 잡스의 물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없었을 터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했기에 결과적으로 더 큰 돈을 벌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얻었으며, 세상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원대한 꿈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더 행복해졌다.
유현은 이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전하고 싶었다.
“전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시 한 번 가장 소중한 자산은 사람이라는 걸 느꼈습니다.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성에서 일했을 때의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유현은 스마트폰이 성공할 걸 알았지만, 직접 유니크를 만든 게 아니었다.
세련된 디자인, OS 및 SW 최적화, 뛰어난 하드웨어, 고성능 디스플레이 및 카메라 등등.
이미 한성엔 스마트폰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 기술들이 있었다.
또한 그걸 하나로 모아 멋진 결과물로 만들어낼 능력 있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유현은 단지 이들이 능력을 펼치게끔 도왔을 뿐이다.
신화반도체 인수 또한 마찬가지다.
유현이 반도체 인수가 꼭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그걸 위해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달려들어 결국 성공해낸 건 직원들의 공이었다.
과거 유현이 미처 몰랐던 사실이고, 많은 리더들이 놓치는 부분이다.
회사의 미래는 직원들이 만든다.
그 생각과 함께 유현이 말을 이었다.
“한성은 반도체 사업을 단기간에 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이 또한 직원들의 힘입니다.그리고…….”
“그건 한성 혼자 한 게 아니야.많은 협력업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본이 핵심 물품 수출을 금지했을 때 버티지 못했을 걸세.”
신경욱 회장이 한 마디 거들자, 유현이 바로 받았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대기업이라고 혼자 독식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습니다.수많은 업체들과 힘을 합해야만 세계와 경쟁할 수 있습니다.”
유현의 말대로였다.
한성 외에도 곳곳에서 협업이 이루어졌다.
현일 자동차는 많은 벤처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뒤쳐졌던 자율주행 기술을 단숨에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협력업체들과의 상생은 대기업이 베푸는 인정이 아니다.
사회적 책무이자,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걸 대기업들은 알아야 했다.
그걸 말해줬을뿐이다.
유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을 언급했다.
“그런 제가 리비버를 창업하며 결심한 바가 있습니다.한국의 많은 기업들을 세계 시장에 진출시킬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고요.”
한성 전자는 리비버를 통해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유현이 이렇듯 한국 기업들의 교두보를 자처한 이유?
대기업들이 국내의 작은 파이를 더 차지하겠다고 직원들을 자르고 협력 업체를 갈취할 게 아니라, 원대한 꿈을 가지고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앞으로 10년, 가상현실이 대중화 되고 AI가 현실화 되는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그 시대를 이끌어가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빨리 세상의 중심에 깃발을 꼽아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산업이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한 태풍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나 온 길을 쭉 훑은 유현의 뇌리에 옛 동료들의 얼굴이 스쳤다.
박승우 차장, 김영길 팀장, 김현민 전무 등등.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변방에 있었던 그들은 지금 한성의 중심에서 누구보다 인정받으며 더 나은 회사의 미래를 꽃피우고 있다.
그걸 기억한 유현의 목소리에 더더욱 힘이 실렸다.
“직원들이 바로 회사의 미래입니다.그들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시고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큰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벤처기업들.
그들로부터 만들어지는 혁신을 떠올린 유현이 말을 이었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을 믿고 상생의 길로 나아가셔야 합니다.작은데 머물지 마시고 함께 세계를 바라 볼 때, 비로소 미래가 있습니다.”
스윽.
유현은 10대 기업 총수들의 면면을 다시한번 눈에 담은 후, 다시금 당부했다.
“직원들을 아끼고, 사회적 책무를 다하며, 세계를 꿈꾸는 그런 회사를 만들어 주십시오.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이 인류의 발전을 이끌고 독점적 기술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그게 리비버의 존재 목적이자 제가 진정 이끌어가고 싶은 미래입니다.”
“…….”
유현이 남긴 강렬한 메시지 앞에서 회의장이 침묵했다.
단 한 번의 말로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안다.
유현은 뱉은 말을 행동으로 증명해 보일 생각이었다.
그런 유현의 진심이 닿은 걸까?
짝.짝.짝.
최진철 회장에 이어 신임 전경련 회장에 오른 강봉석 회장이 천천히 손뼉을 부딪쳤다.
짝짝짝짝짝.
곧이어 다른 회장들이 동조하며 회의장엔 박수소리가 울렸고,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며칠 후.
유현이 전경련 회의장에서 했던 발언이 기사화 됐다.
분명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였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내용도 다소 과장된 면이 있는데다가, 너무 유현에게 좋은 이미지로 써줬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기업 회장들이 유현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오해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