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
1화 사생아(1)
모두가 나를 천재라고 불렀다.
한때는 나도 내가 진짜 천재라고 생각했다.
부모도 없이 헌터 협회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또래의 누구보다도 빠르게 배우고 쉽게 강해졌으니까.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아시아 최강의 혈맹 기업 ‘천무그룹’.
그 정점에 군림하고 있는 주양태 회장의 핏줄을 이었다는 출생의 비밀을 깨닫고. 천무가의 일원이 되었을 때부터.
내 천재성은 오히려 나를 가두는 새장이 되어버렸으니까.
***
“이걸로 서울의 마지막 보루도 무너졌군.”
내려다보는 한 쌍의 붉은 눈동자.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눈동자는, 그가 블랙 가문의 혈통을 진하게 이었다는 가장 큰 증거였다.
“다니엘, 이 빌어먹을 새끼······.”
가슴에 뚫린 주먹만 한 구멍을 부여잡으며.
주현우는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눈앞의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다니엘 블랙.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무력과 세력을 가지고 있는 가문 중의 하나인 블랙 가문의 현 가주.
한 때는 동양의 천무그룹, 서양의 블랙 가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세계를 거의 양분하고 있던 거대한 세력.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인류를 배신하고 마족의 편에 선, 세 가문의 실질적인 수장이 바로 그였다.
“이걸로 끝이군.”
그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
“동아시아 최강의 혈맹 기업 천무그룹은 오늘 서울과 함께 사라진다. 자네의 조부인 주양태 회장이 저승에서 통곡하겠어.”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멈추면 될 텐데.”
“하하!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네.”
짧게 웃음을 터트린 다니엘.
“뭐, 자네로서도 아쉬운 게 참 많을 거네. 그렇게 훌륭한 스킬들을 익혔지만. 결국은 마나가 부족해서 패배하다니 말이야.”
“네가 옹졸하게 싸운 덕분이겠지.”
“나는 그걸 전략이라고 부르네.”
그의 눈이 호를 그리며 휘어졌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결국, 그걸 뒷받침해줄 힘이 부족했어. 그게 자네의 결정적인 패배 요인 아니겠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무가에 이어지는 스킬은 하나같이 가공할 위력을 지닌 대신. 평범한 헌터는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마나 소모를 요구했다.
‘창천신공만 습득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천무그룹 일가의 절기인 창천신공.
막대한 마나를 통제할 수 있는 강인한 코어와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마나 연공법이었다.
“아무리 좋은 엔진이라도. 연료 없이는 아무 의미도 없는 법. 결국 창천신공을 사용할 수 없는 자넨 반쪽짜리 천재에 불과했군그래.”
녀석의 말이 비수가 되어 파고든다.
당장 현우를 죽음으로 서서히 몰아가는 가슴의 상처보다. 반쪽짜리 천재라는 말이 더욱 아프게 심장을 후볐다.
“주양태 회장이 자네를 빨리 발견했다면. 괴물을 둘이나 상대할 뻔했어. 그런 점에서 우리에겐 행운이 따랐다고 봐야겠군.”
현우가 천무가에 들어온 나이는 열다섯.
그땐 이미 보육원과 국립 헌터 훈련소의 초·중급 반을 거쳐 삼류 마나 연공법을 완벽하게 익힌 이후였다.
죽음을 각오하고 이미 단련한 코어를 소멸시키지 않는 이상. 창천신공의 습득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창천신공의 구결과 호흡법 등 모든 것을 달달 외웠다. 최소한 내가 익힌 삼류 마나 연공법을 개량하려고도 시도해봤지만.’
삼류라는 근본은 변할 리 없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현우의 마나 연공법은 창천신공의 발끝조차 따라잡지 못했고.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한 걸음 다가왔다.
현우는 녀석의 재수 없는 상판을 올려다보며 빠득 이를 갈았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진심이네.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나와 우리 모두를 상대한 자네는 정말로 대단했어.”
허리를 약간 숙여 현우를 굽어보는 다니엘.
그의 입가엔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가 확실하게 서려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무그룹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불리던 주현우. 자네가 우리에게 이렇게 까다로운 적수로 성장할지는 몰랐거든.”
승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다니엘의 입은 한결 가벼워진 모양이었다.
“서울에 첫 공세를 펼치던 날. 수많은 몬스터와 하급 마족들의 머리통을 마치 풍선처럼 터트리던 자네의 모습은, 나조차도 공포를 느낄 정도였지.”
짐짓 제 턱을 쓸어내리는 다니엘.
“자네와 천무그룹만 아니었다면, 서울을 무너뜨리는 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테니. 그건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네.”
“까고 있네.”
“내 진심을 몰라주는군.”
빈정거리는 현우를 향해. 다니엘은 작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우린 오래전부터 이 날을 준비하고 움직였다네. 그리고 그 첫 결과물이 바로 5년 전 주양태 회장의 죽음이었지.”
처음부터 그쪽에 승산은 없었다.
마치 그렇게 단정하는 듯한 다니엘의 말에 현우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조부님의 죽음도 네놈들 짓이었다고?”
“그래, 유감스럽게도 말이지. 천무그룹 내에서 눈치채는 이가 한 명도 없더군. 만약 있었다고 해도 우리가 제거했겠지만 말이지.”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다니엘.
“만약 동아시아의 용이라고 불렸던 주양태 회장이 지금까지 살아 있기만 했다면, 이 전쟁의 판도도 꽤 달라졌을 텐데.”
기분탓일까.
아까 전부터 입안을 맴돌고 있던 비릿한 혈향이 더욱 쓰게 느껴졌다.
‘결국, 천무그룹도 오래전부터 녀석들의 판에서 놀아나고 있었던 건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주 회장, 그 늙은 괴물을 샤오 가문과 함께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중독시켰지. 결국, 마지막엔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중독되고도 괴물 같은 힘은 똑같더군.”
“그런게 가능할 리 없었을 텐데.”
다른 곳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천무그룹 내에서 주양태 회장을 중독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태껏 몰랐던 눈치군. 천무그룹 내부에 우리와 내통하는 배신자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던 모양이지?”
히죽, 휘어지는 다니엘의 입꼬리.
그와 반대로 현우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다니.’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 아무리 조사해도 단서 하나 나오지 않아서 덮어놓았던 의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봤자 의미 없는 일이다.
결국, 천무그룹은 무너졌고.
천무그룹이 마지막까지 사수하고 있던 서울 역시도 마찬가지로 다니엘에 의해 무너질 테니까.
“그래도······.”
다니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네가 창천신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서울 방어전의 판도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군. 자네는 우리에게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 그 자체였으니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는 다니엘.
“물론, 결국 승리한 건 우리 쪽이지만. 이 사실이 저승 가는 길에 소소한 위안이라도 되길 바라네.”
“위안은 개뿔이.”
그래도 녀석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만약 창천신공을 익히기만 했다면.
결과는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테니까.
“만약 10년. 아니, 5년이라도 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 서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였을 지도 모르겠군.”
쯧쯧, 혀를 차는 다니엘.
그건 아쉬움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현우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더 긁기 위한 빈정거림이 분명했다.
“그런데 말야 다니엘.”
하지만······.
어느새 현우의 입가엔 은은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벌써 이겼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뭐라고?”
움찔, 다니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 의심의 빛이 스쳤다.
“그 비상한 머리로 잘 생각해보라고. 내가 왜 죽어가는 마당에 너랑 지루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
“······.”
“답은 간단해.”
최후를 앞두고 수다나 떠는 성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다니엘 녀석이 가볍게 입을 놀리고 있는 꼴을 두고 본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비죽 웃으며 현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범벅인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건 끊임없이 회전하는 일곱 개의 구체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모래시계였다.
“천무그룹의 비고에 고이 모셔져 있던 물건이다. ‘아자토스의 모래시계’라고 하던데. 시간을 되돌리는 아티팩트라더군.”
시간을 얼마나 되돌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돌리는지 같은 자세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현우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방금, 내게 5년이라도 더 시간이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거라고 말했지.”
그 5년을 벌어주길 바라며.
현우는 이미 녀석과의 마지막 전투에 앞서 아티팩트를 발동시킨 후였다.
“혹시, 이미 눈치챈 건진 모르겠는데. 이게 발동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더라고.”
녀석이 승리에 취해 제멋대로 주절거려준 덕분에 과거로 가져갈 훌륭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자네, 설마!”
“주절주절 떠들어준 덕분에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진 않더라. 네가 흘려준 정보는 내가 과거에서 유용하게 써줄게.”
“이런······!”
황급히 손을 뻗는 다니엘이었지만.
이미 현우의 손에서 모래시계는 빠르게 무너져 내리며 격렬한 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또 보자, 과거에서.”
마지막 남은 힘으로 다니엘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인 현우.
이내 그의 신체와 의식은 모래시계가 내뿜는 눈 부신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현우는 돌연 몸이 쑤욱 바닥으로 꺼지는 것만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곧······.
“웨에엑!”
전신을 뒤흔드는 격통.
많은 전투를 겪으며 고통엔 익숙해졌다고 자부한 현우였지만. 급작스럽게 찾아온 오장이 뒤틀리는 고통에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끄으으······.”
하지만 살아 있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만큼.
다시 빠르게 사라져가는 통증을 의식하며, 현우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폐로 공기가 밀려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황급히 두 손으로 가슴을 더듬어봤다.
다니엘에 의해 시원하게 구멍이 뚫려 있던 그의 가슴은 어느새 멀쩡하게 돌아와 있었다.
이변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전체적으로 몸이 예전보다 가볍다.’
상처가 회복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현우는 빠르게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쉼 없이 전투를 반복하며 누적된 상처와 흉터들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현우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걱정스러운 티가 역력한 여성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현우의 뺨에 일순 경련이 일었다.
‘······류한나.’
이미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천무그룹 소속으로 젊은 나이에 SS급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헌터이자 현우의 수행원이었던 여성.
현우의 기억보다 상당히 앳된 티가 역력한 그녀는, 이미 몇 달 전에 벌어졌던 강남역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게 주마등이 아니라면.
정말로 과거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티팩트의 힘은 진짜였군.’
현우는 슬쩍 자신의 손등을 꼬집었다.
통각은 분명 느껴진다.
적어도 꿈은 아니라는 증거였다.
“도련님?”
대답이 없는 현우에게 재차 묻는 한나.
그제야 현우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것보단 지금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현우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전신에 마나를 한 바퀴 돌리며 현재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려 했다.
“오늘은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단련은 이 정도로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시죠.”
알겠다고 하고 일어서려는 찰나.
현우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뭔가가 이상했다.
‘뭐야?’
현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어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코어가 없고. 거기에 더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심장 주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만, 이건······.’
아자토스의 모래시계를 감싸고 있던.
끊임없이 회전을 반복하는 일곱 개의 구체.
체내를 훑은 마나를 통해. 이질적인 감각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아냈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진 않았다.
아무리 과거로 돌아왔어도.
코어 대신 다른 무언가가 체내에 존재하는 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형언하기 어려운 의문이 밀려왔다.
바로 마나의 움직임을 멈추려는 순간······.
—화악!
구체의 회전이 빨라지며.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양의 마나가 뿜어냈다.
마치 아슬아슬하게 무너져가고 있던 댐이 폭발한 것처럼. 현우의 체내에 마나의 격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어?”
현우의 입에서 놀란 소리가 나왔을 때.
터져 나온 마나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전신을 일주하고 있었다. 도무지 통제할 수 있는 양이나 속도가 아니었다.
기혈이 단숨에 확장되고.
의식이 아득해질 정도로 뜨거운 감각이 전신을 휘감는다. 웬만한 고통엔 익숙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른 격통이었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어쩌면 무한한 양의 마나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며 신체를 내부에서 두드리는 감각.
“이런 미, 친······.”
주륵, 코에서 피를 쏟으며.
현우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