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변수와 도화선(2)
의아한 목소리.
네크로맨서는 대체 무슨 해괴한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데?]“말 그대로다.”
현우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블랙 가문과 전쟁을 시작할 거다.”
[···.]네크로맨서는 입을 다물었다.
스켈레톤의 녹색 안광이 조용히 타오르는 것을 보아. 아마 설명을 요구하고 있기라도 한 거겠지.
[그걸 나한테 말하는 거야?]아니면 할 말을 잊은 것일지도 모르고.
“방금 이야기 하지 않았나. 너를 이용할 거라고 말이지.”
“대외적으로 이번 사태는 네크로맨서 네가 일으킨 사건이 될 거다. 그리고 천무그룹은 그 책임을 블랙 가문에게 물을 거고.”
[···하!]헛웃음을 내뱉는 네크로맨서.
그러나 이어지는 현우의 말에 그녀는 이내 입을 꾸욱 닫고 말았다.
“어차피 블랙 가문 측에서도 너를 배신자라 생각할 거다. 미래의 네가 녀석들이 꾸민 계획 하나를 제대로 박살냈거든.”
[···뭐?]알고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그녀가 예정에 없던 깽판을 쳐준 덕분에. 유럽지부가 키메라에게 습격당하는 미래는 바뀌었다.
확신의 계기는 간단했다.
미래의 네크로맨서.
녀석이 부리던 언데드 중에 키메라 또한 끼어 있었으니까.
현우가 그 사실을 간단히 설명해주자.
네크로맨서 역시, 그녀가 얼마나 불리하고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건지. 이제야 정확하게 이해를 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만약, 내가 도망쳐서 블랙 가문 측에 이번 사태의 진실을 알리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질 텐데.]“할 수 있다면 해보시던가.”
평소의 네크로맨서라면 가능하겠지.
그러나 지금 녀석은 고작해야 최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 아무리 애를 써도 이곳에서 들키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니엘 블랙을 설득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쪽에 붙는 편이 생존 확률이 높을 거다. 판단과 선택은 결국 네 몫이지.”
[끙···.]네크로맨서.
그녀는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제 골통을 감싸 쥐었다.
“이미 넌 스스로의 미래를 목격했다.”
[···.]그 말에 그녀의 안광이 흔들렸다.
결국 다니엘 블랙에게 협력을 선택해봐야. 그녀를 기다리는 미래는 뻔했다.
진정으로 바라는 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이용만 당하는 하수인의 삶.
그건 그녀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래서 협력도 거부하지 않았던가.
[조금만 고민할 시간을 줘.]“내일까지다.”
[그거면 충분해.]고개를 끄덕이는 네크로맨서.
‘이번 사태로 유추할 수 있는 한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면. 미래에서 찾아온 네크로맨서의 출현을, 블랙 가문 역시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건 큰 변화를 의미함과 동시에.
어떤 방향으로든 여전히, 블랙 가문과의 경쟁에 있어. 이쪽이 계속해서 한 걸음 이상 앞서 나가고 있음의 증명이었다.
“곧, 세계는 양분된다.”
천무그룹과 블랙 가문.
두 세력의 전면 대결이 될 테니까.
이제 모든 게 바뀌었다.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한 발 앞서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을 활용해서. 모든 방면에서 블랙 가문을 압박하고 짓이겨야 한다.
“편을 잘 골라야 할 거다.”
그건, 제안의 탈을 쓴 경고였다.
***
결국···.
네크로맨서는 현우의 제안 아닌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건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애초에 당장 그녀에겐 선택지가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하루의 유예는 고민할 시간이 아니라. 현우가 그녀에게 주는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그녀가 돌아간 직후.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잠시, 실례하지.”
“실례하겠습니다.”
주진석 부회장.
그리고 성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두 사람이 함께 들어왔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주진석 부회장이었다.
“언데드의 정화가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고개를 젓는 주진석 부회장.
“나보단 성녀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지. 나야 주위의 헌터들을 지휘하는 것밖엔 하는 일이 없었으니.”
“그래도 큰아버지 덕분에 혼란이 빠르게 수습되지 않았습니까.”
현우는 웃으며 말했다.
주진석 부회장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털썩, 테이블 앞의 의자에 앉았다.
몸을 많이 움직인 것은 아니었으나.
정신이 피곤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푸욱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정도 통솔력도 없다면. 천무그룹의 혈통으로서 부끄러운 삶을 살아온 거겠지. 그리고 현우, 네가 아니었다면 이번 일은 훨씬 복잡해졌을 거다.”
“맞습니다.”
아그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우님께서 이 자리에 계셨기에 그 재앙을 막아설 수 있었던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주현우님께선 용사의 칭호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용사라?”
주진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교황청에서 외부인에게 그런 칭호를 내렸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
주진석 부회장은 의아한 시선으로 아그네스를 응시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지금 제가 생각해낸 칭호니까요.”
그 말에 현우가 눈을 부릅떴다.
설마 저게 농담인 걸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농담은 아닌 것 같았지만. 현우는 그 소리가 정말 농담이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용사라니.
이게 무슨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솔직히 그런 별호로 불리면 낯부끄러워 어디 가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그녀의 질문에 현우는 짐짓 모르는 척을 했다.
당연히 무슨 소리인지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하며 그냥 이야기를 흘려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용사라는 별호 말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그네스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진지한 기색으로 현우에게 재차 물어왔다.
“어감이 좋지 않습니까.”
“제겐 과분한 별호 같군요.”
“여러 위업을 달성하셨는데. 언제까지 잠룡으로 불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제 슬슬 주현우님께선 더 커다란 별호로 불릴 필요가 있으십니다.”
“···.”
대답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답 대신 현우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대체 내게 왜 이러는 거지.’
라이트닝 펀치.
사막 투기장에서 관중들이 연호하던 그 끔찍하고 오글거리는 별호가. 현우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용사, 라이트닝 펀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용사, 주현우 어떻습니까.”
“···일단 그건 당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네크로맨서에게 회수한 물건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거라면 걱정 마라.”
대답은 주진석에게 돌아왔다.
“내가 직접 보고 있는 가운데 따로 모아두었으니. 하나도 빠짐없이 전리품으로서 네가 가져갈 수 있을 거다.”
“감사합니다.”
“응당 네게 주어져야 할 물건이다.”
주진석은 괘념치 말라는 듯.
현우에게 손을 휘휘 내저어보였다.
‘덕분에 흑린갑··· 아니, 용신갑에 새로 깃든 성화의 신성력을 큰 폭으로 강화할 수 있겠군.’
미래의 네크로맨서가 소지한 아티팩트.
현우는 그 중에서 일부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아마 대개는 죽음이나 타락에 관련된 부정 속성을 지닌 아이템일 것이다.
신성력의 성장법.
이는 일반적인 마나 연공법 등과는 크게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방법.
그건 타락 혹은 죽음과 같은 부정 속성을 지닌 아티팩트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신성력으로 파괴함으로서 강화하는 방법이다.
미래의 네크로맨서가 보유한 아티팩트는 하나같이 신화급이나 그에 준하는 물건들이 대부분일 테니.
‘한 마디로 노다지가 열린 거다.’
파괴했을 때의 리턴 역시.
신화급의 가치에 준하는 수준이리라.
“한데.”
주진석이 석연찮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방금 상대했던 네크로맨서가 미래에서 온 적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이로군.”
그는 침음성을 흘리며 자신의 미간을 주물렀다. 그 역시 어려서부터 각종 게이트와 던전을 전전하며 수많은 상황을 경험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그라고 해도.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걸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다른 네크로맨서라는 존재로 이미 그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나로서도 일말의 감조차 안 잡히는 건 이번이 처음이구나.”
“앞으로는 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날 겁니다. 전부 블랙 가문 녀석들이 벌이고 있는 혼란이죠.”
“···음.”
약간 비약이 들어가긴 했으나.
어쨌든 거짓은 아니었다. 미래든 현재든, 결국 이 모든 혼란은 블랙 가문이 꾸민 일이라는 것만은 사실이었으니까.
“그래서, 내게 원하는 것은 뭐냐.”
주진석은 직설적으로 물었다.
갑작스런 사태가 벌어졌으나.
애초에 현우가 유럽지부에 방문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번 일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블랙 가문과 전쟁을 시작할 겁니다.”
전쟁.
주진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겐 그럴 권한이 없을 텐데.”
“하지만 큰아버지께는 있죠.”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조용히 현우와 시선을 마주 교환할 뿐이었다.
“내게 전쟁을 시작해달란 거냐.”
“꼭, 큰아버지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습니다. 이번 일이 조부님 귀에 들어간다면. 결국 또 다시 가문 전쟁이 벌어질 것은 뻔한 일이니까요.”
“허어.”
주진석은 실소를 흘렸다.
처음부터 그의 조카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유럽지부로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이런 사건이 일어날 것도 알았던 걸까.
‘그건 아니겠지.’
가슴 속에서 고개를 드는 의심.
주진석은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감정에서 고개를 돌렸다.
만에 하나라도 그 추측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면, 적어도 현우가 노리는 건 주진석이었을 테니까.
“좋다.”
그렇게 곧.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겁도 없이 천무그룹에 칼끝을 겨눈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겠지. 이번 건에 대해서 직접 아버지께 보고를 드린 후. 바로 녀석들과 전쟁을 시작해주마.”
“쉽지 않은 전쟁이 되겠지만. 유럽 쪽 전선엔 카일리 가문과 로마노프 가문이 함께해줄 겁니다.”
카일리와 로마노프.
그 두 가문의 이름에 주진석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벌써, 협력까지 받아냈단 건가.’
혀를 내두르고 싶었으나.
그는 체면을 생각해 가까스로 감정을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그러나 이 자리엔 그걸 숨길 생각이 없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용사···!”
“부담됩니다.”
이번에 현우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만 하세요.”
“···예.”
질색하는 반응 때문이었을까.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는 법이 없는 눈은 그대로였으나. 그녀의 입만큼은 평소답지 않게 삐죽 튀어 나온 것 같았다.
***
그런데···.
막상 주진석 부회장을 통해.
블랙 가문과 전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이후.
현우가 대비해야 할 것은 이제 곧 유럽에서 시작될 블랙 가문과의 전쟁뿐만이 아니게 되었다.
[(속보) 3일간 지속된 부산 폭우··· 일부 지역 침수 피해 속출. 헌터 협회 부산지부, “단순 이상기후 아닌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 염두에 두고 대비중”] [“부산에 물폭탄이 쏟아지고 있다”···때 아닌 이상 기후에 부산 시민 불안감 고조(종합)] [“부산 폭우는 해양 게이트 브레이크 여파일 가능성 높아···” 한국 헌터 협회 윤영기 부산 지부장, 최근 후쿠오카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 재조명]한국에서 쏟아지는 각종 속보.
그 모든 정보가 현우의 눈에는 단 하나의 미래로 이어지는 단서였다.
‘···해신(海神)이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벌써, 3일간 지속된 부산의 폭우.
이는 앞으로 이틀을 더 퍼부을 것이고. 그 후엔 수많은 해양 마족과 함께. 해신, 혹은 레비아탄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보스급 마족이 남해에 출현한다.
그리고 녀석은···.
‘엄청난 해일과 함께 육지에 도착해. 부산 시민 절반을 쓸어버리며. 한국에 씻을 수 없는 대참사의 기억을 남겼다.’
이 시점에서 그 사실을 아는 건.
대한민국 전체에서 오직 현우뿐이리라.
그렇기에 이 사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비하여. 반격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것 또한 오로지 현우 한 사람 뿐이다.
‘해신, 녀석은 상대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마족이지만. 단순히 큰 피해를 수반하는 재해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해신은 SSS급 마족.
그것도 티폰과같이, 최고 등급인 SSS급 중에서도 보스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적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해신에게선 최상급의 소재를 제외하고도. 이무기, 덕춘이의 힘을 비약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신화 등급의 아이템이 나온다.’
용옥.
혹은 여의주라 불리게 되는 아이템.
현우가 알던 미래에선 여유롭게 해신을 상대하지 못했고. 엄청난 피해를 감수한 격전 끝에 녀석의 파괴된 용옥 일부를 획득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경매에 붙어졌던 용옥의 파편 일부는 샤오 가문 측으로 들어갔고.
온전한 용옥이 아닌 일부에 불과했음에도 이무기, 지금의 덕춘이의 힘을 대폭 강화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만약, 이번에 온전한 용옥을 손에 넣기만 할 수 있다면···.’
어쩌면 덕춘이를 현우가 알고 있던 이무기 이상의 존재로 키워내는 것도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니 대비만 철저히 한다면.
예정되었던 것보다 빠른 해신의 등장은, 오히려 또 한 번의 크나큰 이득을 현우의 품 안에 안겨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본래 해신의 등장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정도 후.
본래 미래대로 진행되었다면. 주양태 회장의 암살이 있고서 조금 지난 후에 벌어질 예정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해신이 나온다는 건···.’
블랙 가문 역시.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리.
그렇다면 이번에야 말로 녀석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리며.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서 한꺼번에 전쟁의 포문을 열어젖힐 최적의 기회였다.
‘계획을 살짝 바꿔야겠군.’
현우의 입가엔···.
분명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