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신전, 오르테가 패밀리(2)
‘이건, 계획과 다른데···.’
라파엘 오르테가.
그는 으득, 어금니를 씹으며 지금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늘에는 록펠러 가문의 비공정이.
그리고 지상에는 천무그룹이 있다.
애초에 그가 블랙 가문과 나눈 이야기엔 천무그룹의 인원을 처리한다는 조건 밖에 없었다.
하필 여기서 록펠러라니.
상황이 계획한 것과는 상이하게 흘러가고 있으나. 라파엘은 바로 퇴각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이는 그가 천무그룹과 록펠러조차 상대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물러설 이유는 없다.’
이번 일을 위한 대비는 충분하다.
블랙 가문이 그에게 제공한 비장의 수는, 지금 이 자리의 두 유력 가문과 멘도자의 생존자들을 처리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
[아아, 경고하겠습니다.]두 개의 비공정.
그 중에서도 아이언 나이트, 존 록펠러가 이끄는 기함인 탕그뇨스트 쪽에서 그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라파엘 오르테가, 카르텔의 부하들과 함께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십시오. 그럼 운이 좋다면 목숨만은 건질 수도 있을 겁니다.]살려주겠다도 아니고.
운이 좋다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 거라니. 그건 아무리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해도 살려주겠다는 소리로는 절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제아무리 록펠러 가문이 북미의 패자라곤 하나. 이곳은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카르텔이 지배하는 남미다.
“건방진 소리를 하는군···.”
감히 자신의 본진에서 협박이라니.
“파더, 저들이 비공정에서 공격을 해오면 저희도 곤란해질 겁니다.”
“그런 걱정이라면 일단 접어두게. 어차피 그리 대담하게 나오지는 못할 걸세.”
돌격대장 카를로스 오르테가의 걱정 섞인 진언에, 라파엘은 그리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비공정의 폭격은 주위에 부수적인 피해를 낳을 테고. 저기 서로 손을 잡은 천무그룹 놈들이라고 파편이 피해가진 않을 테니.”
평소라면 정면 대결은 피했겠지만.
록펠러 가문이 비공정이란 이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지금은, 여러모로 라파엘 쪽에게 유리한 점이 많았다.
그는 천무그룹 일행을 가는 시선으로 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자네들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 그러니 우리의 의표를 찔렀다곤 생각지 말게. 어차피 록펠러 가문의 비공정은···.”
“그러니까.”
대뜸, 주영미가 말을 잘라냈다.
그녀는 매서운 눈으로 라파엘 오르테가를 바라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네녀석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란 말이지. 안 그래도 찾아내서 도륙을 내줄까 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서 시간을 아껴줄 줄이야.”
“···주영미 이사.”
라파엘이 비죽 웃었다.
“말이야 그리 오만하게 하지만, 이미 그 상태로는 여기 모인 우리 카르텔의 일원들을 상대하기도 어려운 상태 아닌가.”
“흥, 설령 팔다리가 전부 잘려나간다 해도. 너희들 같이 허접한 미등록 헌터 따윈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어.”
“허허, 몸은 정상이 아니어도. 혓바닥의 독기는 죽지 않는 모양이야. 역시, 한때 천무그룹의 염화라 불렸던 여걸답군.”
하지만···.
라파엘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시건방은 그쯤 떨어두도록 하게. 오늘 이곳에 죽으러 온 것은 우리가 아닌, 바로 자네와 멘도자 가문의 떨거지들이니까.”
라파엘이 손짓했다.
곧, 지면에서 막대한 양의 붉은 혈액이 솟구치더니.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사람의 형상으로 화했다.
도합 서른에 달하는 인형.
그리고 녀석들은 하나같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단순히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어림잡은 것에 불과하지만. 현우가 보기엔 그 기운은 전부, 최소 SSS급 최하위 헌터에 비견될 만했다.
‘혈령수라(血領修羅)···.’
현우는 저게 무엇인지 안다.
그리고 어떤 녀석의 손에서 만들어진 존재들인지 역시, 미래의 기억을 통해 분명히 알고 있었다.
“블러드 서커의 작품이군.”
블러드 서커.
천무그룹 유럽지부에 구금되어 있는 네크로맨서를 제외하면, 이제 블랙 가문의 사흉(四凶)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있는 한 녀석이다.
그리고 혈령수라는···.
녀석이 사용하는 스킬 중에서도. 블러드 서커 본인에겐 위험부담이 거의 없지만, 상대하기는 매우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저 ‘혈령수라’ 자체는 스킬이 아니다.
블랙 가문의 권능과 블러드 서커가 지닌 각종 스킬로 인해 완성된 결과물, 그게 바로 눈앞에 있는 혈령수라다.
‘저건, 일종의 권속화에 가깝다.’
대법 계열과 비슷하나.
블랙 가문의 혈족인 피에르 나반코프가 사용했던. 탈혼귀안이나 마혈폭혼대법과는 그 기초부터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저 혈령수라와 가장 비슷한 것을 찾으라면,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데스 나이트 정도가 있겠지.
사용된 소채에 따라 다르지만.
만일, S급 헌터를 사용해 제작했다면 SS급은 우습게 넘기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혈령수라다.
또한, 섭혼술이나 대법과는 다르게.
대상의 이지(理智)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요구한 명령을 유연하게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까지 가능하다.
전생에 몇 번이고 경험해본 바로는, 저 혈령수라는 솔직히 헌터보다는 마족이 다룰 법한 존재였다.
이른바 살아 있는 언데드.
그게 녀석들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한 단어다.
‘블랙 가문의 혈족에게 내려오는 스킬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꺼림칙하고 불길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들은 언데드처럼 팔다리를 전부 파괴하기 전까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파괴된 부위를 재생하기까지 하니.
어떤 면에서는 언데드보다도 훨씬 상대가 까다롭다고 할 수 있었다.
결국, 각 개체의 힘도 그렇지만.
끈질긴 투지와 재생력.
그 두 가지가 바로 전생에서 혈령수라를 상대하기 어려운 적으로 기억하는 핵심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현우에겐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 고작 그것뿐이었나.”
현우는 헛웃음을 흘렸다.
혈령수라는 명확한 약점을 지닌 존재다.
언데드와 같이 신성력과 상극인 것은 물론.
전생과 다르게 지금까지 한 번도 실전에 투입되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을 핵심적인 약점 또한 존재한다.
“존 록펠러.”
그러니 전생이나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준비와 성장을 거친 현우에겐. 특별히 까다롭게 느껴질 여지도 없는 상대였다.
“이 아래는 굳이 도와줄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블랙 가문은 아직, 현우가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녀석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기도 했다.
유일하게 그걸 목격했던 버서커가 부산 앞바다에서 죽었으니.
“만용을 부리는군!”
“글쎄, 과연 만용일까.”
현우는 픽, 웃음을 머금었다.
“네가 혈령수라를 만능 병기로 착각하는 모양인데. 사실, 약점을 노리면 생각보단 까다로운 상대가 아니거든.”
“···혈령수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나?”
“카르텔이 천무그룹의 정보력을 우습게 봤군. 아니면 그냥 그쪽의 정보력이 그 수준밖에 안 되거나.”
“하···!”
이죽이는 현우.
라파엘에게 있어선 상당히 거슬리는 한 마디였던지. 헛웃음을 흘리는 그의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설령 자네들이 아티팩트를 통해 약점을 노릴 수 있다고 해도. 지금 그쪽 인원들의 상태로는 이 혈령수라 중에서 다섯 기도 상대하기 어려울 걸세!”
“어디 그런지 한 번 보자고.”
두 번째이자 핵심 약점.
그건, 사실 약점이라고 칭하긴 모호하나. 그 점이 바로 맹점이다. 이들은 지금부터 생각지도 못한 혈령수라의 약점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살려달라고 빌지나 말게나!”
라파엘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도합 서른 구의 혈령수라가 일제히 현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는 다분히 그가 현우의 말에 도발되었음을 나타내는 결과였다.
‘그래, 전부 나를 노려주는 편이 오히려 상대하기 쉬워진다.’
투지와 재생력이 문제라면···.
재생을 시도조차 할 수 없도록.
단 일격에 신성력을 담아 터트려 전신을 파괴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지금의 현우에겐 그걸 가능케 할 힘과 마나가 있었다.
“살려달라고 빌게 되는 건 그쪽이야.”
그렇게.
현우는 거센 발길질로 지면을 박찼다.
혈령수라와 거리가 일순 주먹이 닿을 정도로 좁혀졌고. 당연하게도 현우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뻗었다.
퍼억─!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가장 선두에서 앞장서 현우에게 달려든 혈령수라 한 기의 신체가 말 그대로 폭발했다.
방금 전까지.
혈령수라였던 물체들이 비산하는 가운데.
현우의 주위에 신성력을 머금은 푸른 우레불꽃이 위협적으로 번뜩이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믿던 블랙 가문이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게. 지금부터 전부 조곤조곤 밟아주마.”
***
“···하?”
콰직─!
살점과 뼈가 으깨지는 소리, 그와 동시에 또 하나의 혈령수라가 고깃덩이가 되어 지면으로 무너졌다.
“저, 저게 무슨···.”
라파엘 오르테가.
그는 당혹스런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려 서른 구에 달했던 혈령수라가 이젠 절반 밖에 남지 않았다.
아니, 그것도 절반이 남았다고 표현하기엔 민망할 정도였다. 남은 절반 중에서도 이제 멀쩡한 혈령수라는 몇 되지 않았으니까.
더 황당한 점은···.
이게 전부 천무그룹의 광룡, 저 미친놈이 혼자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이었다.
“파더···.”
카를로스 오르테가.
그가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긴장한 목소리로 라파엘을 불렀다.
“아, 아무래도 여기선 후퇴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파더, 한시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으음···.”
후퇴는 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짧은 고민을 하던 순간, 또 한 구의 혈령수라가 폭발했다.
“헉!”
폭발의 여파로 날아오른 팔다리가. 조금 떨어진 이쪽까지 날아와 라파엘의 발치에 쓰레기처럼 떨어졌다.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
그와 동시에 라파엘은, 지금은 전략적인 사고보단 본능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 퇴한다!”
후퇴라기 보단 도망이다.
그걸 알고 있는 라파엘이었으나. 카르텔의 수장으로서 남아 있는 일말의 자존심이 그 사실에서 눈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그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건 바로, 이미 도망을 선택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딜.”
작게 읊조린 현우가 연달아 지면을 박찼다.
아주 정직한 움직임이었으나.
그걸 막을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한 번의 도약에 정확히 한 구의 혈령수라를 박살내며. 현우는 빠르게 라파엘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저, 전원 나를 보호해라!”
다급한 외침.
그러나 그의 오르테가 패밀리와 카르텔 소속 헌터들은 물론. 그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심복인 카를로스 마저. 파죽지세 같은 현우의 돌진에 일순 위축되어 빠른 반응을 하지 못했다.
“쏴! 저 놈을 쏘란 말이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이들이 현우를 향해 총탄을 쏟아냈지만. 그건 어림도 없는 발버둥에 불과했다.
이루 셀 수 없는 수의 마탄(魔彈) 너머로 번쩍, 푸른 번갯불이 섬광을 내뿜었다. 이어 그 불꽃은 총탄을 모조리 삼켜버리며 이쪽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더!”
카를로스가 고함을 쳤으나.
그 고함과 동시에 라파엘의 발치에 번개가 내리꽂혔다. 압축된 공기가 일시에 밀려나며 폭압을 형성했고. 그는 정면에서 우레폭풍을 맞은 듯이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끄아악!”
멋들어진 하얀 정장이 구겨지고 흙으로 더럽혀졌다. 그러나 진짜 굴욕과 고통은 지금부터였다.
“말했지.”
뒷목을 우악스럽게 붙잡는 손길.
몸이 부웅 떠올라 허공에서 발을 몇 번 휘적이고서야. 라파엘은 자신이 주현우에게 벗어날 수 없게 단단히 붙잡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려달라고 빌게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네 쪽이라고.”
“말파리도(Malparido)···!”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비틀었지만.
현우의 손아귀가 풀릴 일은 없었다. 오히려 손아귀에서 흡사 헤일처럼 거센 마나의 격류가 그를 제압하기 위해 밀려들어올 뿐이었다.
“꺽!”
단말마와 같은 비명이 그의 입에서 절로 튀어나왔다.
‘무, 무슨 마나가···.’
단순히 접한 것뿐인데.
속이 뒤틀리고 코어가 터져나갈 것만 같은 고통이 라파엘의 뇌리를 엄습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격통이었다.
“어때, 이제 살려달라고 빌어볼 마음이 조금은 들어?”
“사, 살려주게!”
이번엔 고민하지 않았다.
목숨만 붙어 있다면···.
어떤 수모를 겪든 목숨만 붙어 있다면 다음 기회를 도모할 수 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 오르테가 패밀리와 카르텔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런 수모와 굴욕을 딛고 목숨을 부지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근데 어쩌냐.”
우두둑─
현우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고. 라파엘의 목은 그가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색하게. 참으로 쉽고 허무하게 비틀려버렸다.
“살려준다곤 안 했는데.”
그것이···.
카르텔의 수장이자 오르테가 패밀리의 파더, 그리고 블랙 가문의 남미 최대 협력자가 될 예정이었던 미래의 골칫거리.
라파엘 오르테가라는 사내의 최후였다.
이윽고.
현우는 축 늘어진 라파엘의 시체를 손에서 놓고. 천천히 이 자리에 적으로 남은 이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 모습은 마치 타인의 피로 흥건히 젖은 야수와 같아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에 가까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다음은 너희 차례다.”
남아 있는 혈령수라와 오르테가 패밀리.
그리고 카르텔 소속의 친 오르테가파 인원들까지. 그들에게 떨어진 사형 선고가 떨어졌고···.
“얘들아! 조져요!”
로이스 멘도자가 꽥 소리치며 애병, 마탄의 사수의 방아쇠를 당겼고.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총열을 벗어난 은빛 마탄이 공포로 굳어 있던 카를로스 오르테가의 왼쪽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큿, 싸워라! 살고 싶으면 싸워!”
“···어차피 다 죽을 텐데.”
카를로스의 발악과도 같은 외침에, 초췌한 안색의 주건우가 미래를 내다본 듯이 홀로 중얼거렸으나.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렇게.
대지 모신의 신전 보상에 다가가기 직전.
천무그룹과 록펠러, 그리고 멘도자 가문까지 더해진 전례 없는 협동 정리 작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