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5
15화 데뷔전(5)
“하!”
주양태 회장의 입에서 웃음이 터졌다.
구동철과 오수진.
오랜 시간을 주양태 회장과 함께해왔던 두 사람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렇게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주일석이 세상을 떠난 이후로 그는 저리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 적이 없었다.
“설마 정말로 보스까지 쓰러트릴 줄이야!”
주양태 회장은 순수하게 놀라고 있었다.
처음 던전 내부에서 현우가 새로운 마족과 마주했을 때만 해도. 거기서 바로 데뷔전을 중지해야 하나 깊이 고민했다.
그런데 새로운 마족에 대해 빠르게 파악을 끝내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대로 밀어붙여서 던전의 공략까지 끝내버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건 적어도 D등급의 던전은 아니에요. 협회 쪽 녀석들은 사전 등급 판정을 완전히 야매로 하네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오수진.
그녀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시 판정하면 못해도 C등급 정도. 여기에 보스가 가진 특수 능력까지 생각해보면, 아마 C+등급까지는 여유롭게 나올 것 같네요.”
C+등급의 던전.
아무리 주양태 회장의 피를 이은 천무가의 위상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첫 데뷔전으로 C+등급 던전을 공략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우니까.
“C+급이라······.”
주양태 회장은 짐짓 턱을 매만졌다.
“동철아.”
“예, 회장님.”
“만약 네가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기술과 기교만으로 저 녀석과 대련한다면. 몇 합 만에 제압할 수 있겠느냐?”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주양태 회장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농담처럼 가볍게 흘릴만한 질문이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으음······.”
구동철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만큼 주현에게선 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노련함과 정교함이 돋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지막지한 양의 마나까지.
‘전투에 대한 감각과 최고의 마나 순응력. 두 가지 모두를 타고났다고 밖엔 표현할 길이 없다.’
만약 이대로 성실히 단련만 하면.
앞으로 몇 년 이내······.
아니, 일 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구동철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실력을 갖추게 될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겠지만. 지금 당장도 쉽게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서로 살초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입니다.”
“확신할 수 없다라······.”
주양태 회장의 입가가 씰룩였다.
구동철의 실력은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기분을 신경 써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상당히 고평가하는군.”
“솔직히 놀라운 재능입니다.”
“하긴, 창천무를 즉석에서 응용하는 감각.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엄청난 마나. 그 두 가지를 갖춘 이상. 평범하다고 하긴 어렵겠지.”
“예.”
구동철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그가 직접 현장에서 뛰어온 기간만 어림잡아 30년이 넘어간다.
주양태 회장을 제외한다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그가 이렇게 간단하게 인정할 만한 재능을 입증해 보인 인물은 아직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딱 한 사람은 있지.’
지금은 세상에 없는 주일석.
그는 데뷔전을 치른 직후부터. 천무그룹의 소룡(小龍)이란 별호로 불릴 정도로 주위를 놀라게 하는 재능을 발휘했다.
“동철이 네가 그렇게 봤다면. 확실히 현우 녀석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원석이겠구나. 내가 조금이나마 기대를 품은 보람이 있군.”
“예, 분명 천무그룹의 위상을 드높여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옥석입니다.”
“좋다.”
이윽고 주양태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로서 제 가치를 증명했으니. 응당 그에 어울리는 보상을 내려주어야겠지.”
***
그리고 같은 시각.
현우는 예상 이상으로 잘 풀린 상황에. 저절로 씰룩이는 입꼬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다.
‘히든 보상이라······.’
현우의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떠오른 빛을 손에 쥐자마자. 무형의 빛이 포도알 크기의 푸른 보석으로 화했다.
[세이렌의 순수한 눈물]현우의 머릿속으로 아이템의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등급 자체는 내가 알던 아이템과 같다.’
본래 ‘세이렌의 둥지’ 던전의 최초 클리어 보상인 ‘세이렌의 눈물’의 효과는 모든 독에 대한 ‘강한 내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세공하기에 따라 ‘강한 내성’의 범위는 천차만별로 변하겠지만. 아무리 완벽한 세공을 거친다 해도 독에 대한 완전 면역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세이렌의 순수한 눈물’은 달랐다.
‘완벽한 세공을 거쳐 장신구로 제작 시. 착용자에게 현존하는 모든 종류의 독성에 대한 완벽한 내성을 제공한다.’
과연 히든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강한 내성에서 완벽한 내성으로. 훨씬 뛰어난 성능으로 업그레이드된 아이템이 손에 들어왔다.
‘이건······.’
그야말로 대박이다.
이 아이템의 존재 하나만으로 배신자 가문 중 하나인, 샤오 가문이 자랑하는 각종 독은 전부 무용지물이 된다.
한 가지 단점을 꼽자면, 발동을 위해 마나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겠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우에게 그건 단점이라고조차 할 수 없었다.
만약 이걸 제대로 세공해서 주양태 회장에게 선물하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5년 후에 일어날 암살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샤오 가문은 빠르게 박살 낼 수록 좋고. 그 선두엔 내가 반드시 서 있어야 하니까.’
간접적인 방법은 원하지 않는다.
주양태 회장의 암살을 막는 방법. 그건 이른 시일 안에 샤오 가문을 박살 내는 것으로 충분할 테니까.
아직 녀석들은 천무그룹의 아래지만.
주양태 회장이 암살되기 2년 전부터. 다니엘이 가주로 등극한 블랙 가문과의 공조를 통해 무섭게 세력을 불려 나간다.
강해지기 전에 숨통을 끊어야 한다.
그러니 굳이 문제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어차피 샤오 가문이 품은 문제는 이미 차고 넘칠 정도로 많다.
‘필요한 것은 하나.’
녀석들을 박살 낼 계기.
그리고 빠르고 충분한 준비.
현우는 앞으로 1년 이내에.
샤오 가문을 확실히 정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축하한다. 현우야.”
짧은 휴식을 취하고.
‘세이렌의 둥지’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현우를 반긴 것은 의외로 주양태 회장이 아니라 주영미였다.
“감사합니다.”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지만.
일단 현우는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이번 데뷔전에서 주건우를 조금이지만, 확실하게 도와주기도 했으니. 딱히 서로 얼굴을 붉힐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건우가 네 신세를 졌더구나.”
“예, 뭐······.”
현우는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주영미는 복잡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이윽고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나는 앞으로 네가 건우에게 큰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단다.”
솔직한 한 마디.
이건 현우라도 약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주영미는 흘끗.
현우의 옆에 서 있는 주건우를 보았다.
“이번 데뷔전에서 건우를 도와준 것은 정말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건우는 보스룸까지 도착하지도 못했을 테지.”
“그건 아니에요.”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건우는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아니었더라도. 조금 고전하긴 했겠지만, 결국 보스룸까진 도달할 수 있었을 거라고 확신해요.”
“형······.”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쪽을 보는 주건우.
“물론 보스는 이기지 못했겠지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주건우의 표정이 급격히 시무룩해졌다.
“······아무튼.”
주영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건우가 네게 진 빚. 이렇게 갚는 건 어떻겠니.”
“어떻게요?”
“그 아티팩트.”
주영미는 현우의 손을 가리켰다.
“히든 보상이라면 유일 등급이겠지. 그걸 가공해줄 최고의 장인을 내가 찾아줄 수 있단다. 국내에서 자타공인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말이야.”
이건 단순한 보답이 아니다.
주영미가 장인을 찾아준다는 건.
그녀의 이름으로 현우와 장인을 연결해 주는 것과 다름없다. 웬만한 S급 헌터도 한 번을 만나기 힘든 최고의 장인과 커넥션을 가질 수 있단 이야기였다.
“마음 써주신 건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가공해줄 장인으로는 이미 생각해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해둔 사람이 있다고?”
주영미의 눈썹이 씰룩였다.
현우가 호의를 거절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유일 등급의 아티팩트.
그걸 완벽하게 세공해낼 수 있는 장인은, 그녀가 알기로 현재 국내에선 단 두 명뿐이다.
한 명은 주영미가 알고 있는 장인이고.
다른 한 명은 벌써 10년도 전에 종적을 감추고 헌터 업계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생각해둔 장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만날 수 없거나.
유일 등급의 아티팩트를 다루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의 장인일 게 분명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렴.”
주영미는 차분하게 말했다.
비록 그녀가 현우를 탐탁잖게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빚을 대충 갚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그게 원한이든, 은혜이든 말이다.
“실력이 없는 장인에게 맡겨서는 안 돼. 기껏 손에 넣은 아티팩트인데. 본래 가치의 절반조차 살리지 못할 거란다.”
“알고 있습니다.”
“유일 등급의 아티팩트를 다룰만한 실력을 가진 장인은 찾기 쉽지 않아. 그리고 국내에서 그걸 다룰 수 있는 장인은 고작 다섯 명도 안 된단다.”
“고모님.”
현우는 조용히 주영미를 불렀다.
“제가 나중에 건우에게 무리한 요구라도 할까 봐 그러시는 거라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단호한 태도에 결국 주영미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빚을 진 쪽은 이쪽이다. 강요가 가능한 입장도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이 바뀐다면 언제든 이야기하렴. 나는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니까. 다른 부탁이라도 무리가 아닌 선에서 들어주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주영미의 언약도 받았겠다.
때가 되면 거리낌 없이. 현우는 받아내야 할 빚을 이자까지 쳐서 징수할 생각이었다.
“현우 도련님.”
주영미가 주건우를 데리고 돌아서자마자.
누군가 현우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류한나였다.
“성공적인 데뷔전을 축하드립니다.”
“보고 계셨나요?”
“네, 정말 완벽한 활약이었습니다.”
그녀의 입에서 보기 드문 칭찬이 나왔다.
하지만 현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스스로도 정말 완벽한 활약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본가로 돌아가나요?”
“그 전에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멈췄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현우야말로.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
***
“왔군.”
강릉의 바다가 보이는 5성급 호텔.
주양태 회장은 그곳의 스카이라운지를 통째로 대관하고 현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나는 잠시 나가 있거라. 둘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예, 회장님.”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류한나.
얼마 전, 창천무의 비급을 받았을 때와 똑같이. 현우는 주양태 회장과 함께 단둘이 되었다.
“식사는 했느냐.”
“아직입니다.”
이제 막 던전에서 나왔으니.
당연히 식사를 했을 리가 없다.
“그럼 들고 가거라.”
“······감사합니다.”
애초에 밥을 먹일 생각이었던 건가.
마침 배가 고프기도 했고.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가 연달아 나오는 30분 동안. 현우와 주양태 회장은 서로 이렇다 할 대화 없이 식사에 집중했다.
“주현우.”
그리고 어느 정도 배가 찼다 싶었을 때.
주양태 회장의 입이 먼저 열렸다.
“이번 데뷔전에서 상당히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더구나. 내 솔직하게 말하면 조금 놀랐을 정도였다.”
“그럼, 제 가치가 충분히 증명되었겠군요.”
“하!”
돌연 주양태 회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나.”
“예, 최선을 다해 가치를 증명하면. 합당한 보상을 쥐여주겠다고 하셨죠.”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주양태 회장.
“보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그럼, 한 가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해보거라.”
이걸 기다렸다.
현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틀 후에 크노스 경매장이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에 참석해서 한 가지 아이템을 낙찰받을 권리를 보장받고 싶습니다.”
“크노스 경매라?”
주양태 회장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크노스 경매.
천무그룹을 포함한 전 세계 일곱 가문.
그리고 그들을 제외하고도. 세계 각지에서 나름의 입지를 가진 길드나 집단들이 모두 눈독을 들이는 세계 최대의 경매장.
현우가 그곳에서 원하는 아이템은 하나.
본래대로라면 샤오 가문의 손에 들어가. 녀석들의 세력을 훨씬 강성하게 키워줄 예정인 ‘이무기의 알’이었다.
‘그게 내 손에 들어온다면······.’
샤오 가문의 성장을 억제함은 물론.
세이렌의 순수한 눈물에 더해. 녀석들을 손쉽게 상대할 완벽한 준비가 갖춰지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