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87
187화 회귀자(1)
사람들은 영웅을 원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세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변이 몇 번이고 발생하며. 기존의 상식이 뒤틀리는 시기엔 더더욱, 그 위기를 타파할 존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기 마련이다.
다니엘 블랙.
그는 지금, 세상이 원하는 영웅을 완벽히 연기해냈다.
그 연기는 전례 없는 초대형 게이트의 등장이라는 위기 요소에 힘입어 매우 성공적으로 먹혀들어갔다.
그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 벌써 전 세계의 수많은 군소 길드는 물론, 일부 국가의 헌터 협회까지 그와 뜻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그 까닭에는 단순한 정의감이나 영웅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외적으로 블랙 가문이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약. 이것이 많은 이들은 다니엘 블랙에게 열광하게 만들었다.
제조법을 비롯해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물건이었지만, 그 효능 하나 만큼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했다.
마나와 체력의 비약적 증진.
심지어 이 영약을 소화해내기 위해서 특별한 수련이나 과정조차 필요 없고. 효능 역시 아직까지는 반영구적, 혹은 영구적이라 알려진 상황.
이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결국, 이 영약으로 인해 소속된 헌터 몇몇의 실력으로 위치와 취급이 좌우되는 군소 길드를 포함.
비교적 약소국에 해당하던 몇몇 국가의 헌터 협회의 위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정도였으니.
[헌터 협회 미국 중앙본부, “블랙 가문의 영약은 헌터 사회의 새로운 단계를 불러올 완벽한 신문물.” 우리는 신세대로 나아가고 있다 선언.] [제3세계 국가, 이제는 게이트 위험지대서 벗어나나. 헌터 전력의 전반적 보강으로 안보 강화 꿈꿔··· “블랙 가문과의 협력만이 우리의 살길”]매일같이 그에 대한 기사는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다니엘 블랙의 평가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수직 상승하는 중이었다.
‘아주 순조롭군.’
뉴욕, 월드 타워의 최상층.
지금 당장은 록펠러 가문의 거점이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발아래에 확실하게 놓일 그곳에서. 다니엘 블랙은 조용히 벌써부터 진하게 풍겨오는 성공의 향취를 느끼고 있었다.
‘이쪽의 나는 그저 기간토마키아와 멸망을 앞당겨 다음 세계로 넘어가고자 했던 모양이지만. 그건 고작해야 한 수 앞을 내다본 결정이었을 뿐이다.’
기간토마키아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를 극복한다고 해도 결국, 다음 세계에서 같은 결말을 맞이할 뿐이다.
매번 반복되는 같은 결말을 막을 방법은 오직 하나 뿐. 그가 직접 외신의 반열에 올라, 이 빌어먹을 유희라는 게임 판 그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 밖에는 없다.
그때.
방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다니엘 블랙.”
강건한 신체를 가진 사내.
록펠러 가문의 가주, 데이비드 록펠러였다.
“나를 찾았다고 들었다만.”
“음, 이제 슬슬 움직여야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일세. 오키나와 제도 쪽에서 심상치 않은 정보가 하나 손에 들어왔거든.”
“심상치 않은 정보?”
되묻는 데이비드 록펠러.
다니엘 블랙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군.”
하지만 데이비드 록펠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 거렸다.
세간에서 다니엘 블랙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고 있지만, 그와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한 데이비드 록펠러는 아직까지도 그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에 각자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고 있을 뿐.
“우리 록펠러 가문의 정보망에는 별다른 건수가 잡히지 않았는데 말이야. 이거, 블랙 가문은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정보망을 가진 모양이군.”
“뭐, 그런 셈이지.”
빙긋 웃어 보인 다니엘 블랙.
‘당연히 모르겠지.’
그는 작게 혀를 찼다.
애초에 지금 전 세계에 발생하는 초대형 게이트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다니엘 블랙, 그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일종의 무대에 불과했다.
‘당분간은 살려주마.’
데이비드 록펠러.
록펠러 가문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저 녀석조차. 다니엘 블랙, 그에게 있어선 그저 하나의 장기말일 뿐.
녀석이 자발적으로 ‘월드 이터’의 씨앗을 심기만 한다면, 이는 그의 계획에 또 한 번의 커다란 도약을 이끌어내게 된다.
썩 마음에 들진 않으나···.
적어도 녀석에게는 아직 저렇게 멀쩡한 상태에서 이용해먹을 가치 역시도 꽤나 남아 있었다.
“그래서 믿지 않을 건가?”
“···그럴 리가.”
고개를 젓는 데이비드 록펠러.
처음에는 그도 다니엘 블랙의 정보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의 예언에 가깝게 매번 맞아 떨어지는 정보는, 그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다니엘 블랙을 신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하도록 하지. 이미 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번 게이트가 전 세계를 휘어잡을 승부처다.”
“음.”
이미 세계의 이목을 끌어당긴 상황.
여기서 전 인류의 경각심을 이끌어낼 만한 재앙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오로지 다니엘 블랙, 그 뿐이란 사실을 각인시킨다.
이걸로···.
여전히 천무그룹에게 상당 부분 양분되어 있는 세계의 구도는, 완벽히 그의 쪽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다니엘 블랙은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꿈꿔오던 목표가 전에 없을 정도로 목전까지 다가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
그 시각···.
현우는 페일 라이더의 갑판에 서 있었다.
뺨을 스쳐 지나가는 서늘한 칼날 같은 상공의 바람.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현우의 시선은 갑판 아래 펼쳐져 있는 푸른 바다에 고정되어 있었다.
서태평양.
오키나와 제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한중일 세 국가에 동시에 인접해 있는 바다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꽤나 잠잠해 보였다.
‘과연, 폭풍전야라는 것이 이런 풍경을 두고 말하는 걸까.’
현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은 평화롭게 보이지만, 앞으로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급변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시간 후.
이곳에는 지금까지 이 세계가 경험한 바 없는 초대형 게이트가 열릴 예정이니까.
‘전조 증상은 있었다.’
벌써 이곳을 지나던 화물선이 두 척.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공격을 받아 침몰한 바가 있으나. 아직, 이는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우가 알고 있는 전조증상이란, 결국엔 미래에서 수집하여 가져온 정보. 이는 사실 다니엘 블랙이 직접 만들고 있는 무대였다.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는···.
다니엘 블랙,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숨겨진 사실이자. 그걸 알고 있는 유이한 존재인 현우에게 있어선 최고의 무기가 되어줄 정보였다.
이른바 ‘오키나와 제도 참변’으로 불리는 끔찍한 사건.
현우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다니엘 블랙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전환점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양분되어 있던 세계의 구도가 완벽히 그의 손아귀 안에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니엘 블랙, 네 녀석이 승리를 확신하는 그 순간.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악의 반전을 선사해주마.’
그 반전은···.
서서히 녀석의 계획대로 흐르고 있던 이 세계의 기류를, 단숨에 그 반대로 바꾸어 놓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
새롭게 기류가 흐를 방향은 바로 현우, 자신과 천무그룹 쪽이 되리라.
남은 것은 기다림 뿐.
“현우 형.”
뒤에서 부르는 목소리.
그건, 이번 계획을 위해 현우와 함께한 주건우였다.
“진짜로 여기 초대형 게이트가 발생하는 거야?”
“어.”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예정인 마족은 두 마리. 바로 거대한 드래곤인 티아마트와 기간테스인 엔키두. 녀석들로 인해 오늘, 오키나와 전역은 파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될 거야.”
“···강해보이는 이름이네.”
“실제로 굉장히 강했으니까.”
이번 사건이 ‘오키나와 참변’으로 불리게 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두 마리의 마족을 필두로.
초대형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셀 수 없는 마족의 군단. 이들이 오키나와 제도 전역을 습격했기 때문.
그 결과···.
대략 1,400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오키나와 제도 전역이. 단 반나절 만에 한 명의 생존자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오키나와 참변’이 발생한 직후.
다니엘 블랙은 기자들 앞에서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협력을 호소했고. 결국, 마족들을 토벌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서 전 세계에 영웅으로 각인되었다.
‘녀석의 계획은 아주 손쉽게 이루어졌다.’
다만, 한 가지.
지금의 다니엘 블랙이 놓친 맹점이 있다면. 그건 현우가 이미 녀석이 손에 들고 있는 패를 훤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뭐, 이번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
“하긴 그렇겠네.”
주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알고 있는 미래와 다르게. 지금 여기에는 형이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계획은 뭐야?”
“별건 없어.”
사실, 거창한 계획은 아니다.
회귀자의 행동 법칙은 간단하다.
본래 내 것이 아니었던 기연, 혹은 사건을 한 발 앞서 가로채 손에 넣는 것.
“똑같이 돌려주는 거지.”
그러니···.
이미 한 번 다니엘 블랙의 손아귀에 들어간 흐름. 그것을 강제로 빼앗고 두 번 다시는 녀석이 탐내지 못하도록 만들어준다.
녀석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게 현우의 첫 번째 계획이었다.
***
오키나와 본섬 근처의 해역.
그곳에 세 척의 고속정이 빠른 속도로 같은 방향을 향해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하.”
최선두 고속정의 갑판.
헌터 하나가 불안에 잠긴 한숨을 흘렸다.
“아니, 무슨 게이트가 전조 증상도 없이 발생한답니까. 이거 아무래도 예감이 진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그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야지.”
그의 볼멘소리에 방위대장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근 연달아 벌어지는 이변 때문에 이들 모두의 불안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빠르게 본토에 지원 요청을 넣어두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 하지만 최근 본토 쪽도 꽤 소란스러운 모양이야. 협회 측에서도 여유가 없다고 하더군.”
웬만한 사태가 아니고서야.
본토의 방위성이나 협회에게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끙···.”
헌터가 침음성을 흘렸다.
“그쪽 상황도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아예 지원 받을 일이 생기지 않는 쪽이 좋겠군요.”
“그렇지.”
잠시 감도는 침묵.
그 사이에 고속정은 이미 목적지에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저기··· 보이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게이트가 맞군.”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어느 정도 접근했을 무렵.
이들은 게이트와 거리가 가까워지는 동안, 계속해서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보다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거대한 크기.
그리고 섬뜩한 붉은 빛으로 넘실거리는 저 모습은,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평범한 게이트의 형태가 아니었다.
“붉은 게이트···.”
후임 헌터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
누가 봐도 불길해 보이는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게이트는, 그들이 평생 목격한 어느 게이트보다 위험해보였다.
그리고.
곧, 그 직감은 적중했다.
“···!”
쩌어억─
마치 맹수의 입처럼 확장되는 게이트.
이건, 문외한이 보기에도 명백한 이상 현상이라고 밖엔 볼 수 없었다. 고속정 위에서 긴장하고 있던 헌터들 전원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 무슨···!”
방금 생성된 게이트가 어째서 바로 게이트 브레이크 과정으로 접어드는 건지. 1차로 긴급 출동한 이 자리의 헌터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해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는 오키나와 제도 전역을 덮칠.
그들과 같은 범부의 힘으로는 어찌 대적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사상 최악의 인공적 재해였으니까.
이윽고···.
안 그래도 거대했던 게이트의 크기가 두 배 가까이 불어나며. 그 내부에서 무언가를 토해내듯이 방출시켰다.
“···드래곤!”
짧은 경악.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을 뿐이다.
육중한 드래곤의 몸체가 게이트를 거의 빠져나왔을 무렵. 고속정의 갑판 위에서 반쯤 굳어있던 방위대장은 또 하나의 이질적인 감각과 마주해야했다.
‘온 몸이 떨리고 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드래곤 피어.
단순히 존재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에 간섭해 생물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유발하는 드래곤 특유의 기운.
하지만, 드래곤 피어는 S급 정도의 헌터만 되어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SS급 헌터인 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눈앞의 드래곤이 기존에 그가 알고 있던 존재를 아득히 뛰어넘은 무언가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런 미친···!”
욕지거리를 내뱉는 순간에도 경험이 많은 헌터답게.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최선의 대처법을 내놓았다.
“젠장! 후퇴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러기엔 이미 늦었어!”
그는 곧, 통신기를 꺼내 고함치듯이 명령을 내렸다.
“다들 바로 전투 준비를 해라!”
“아니, 전투 준비라니. 저거랑 말입니까!”
“그래!”
그게 최선이다.
이곳에서 모두가 등을 돌려 도망간다면, 저 드래곤이 향할 곳은 뻔했다.
‘가장 가까운 오키나와 본섬이 위험하다. 엄청난 인명 피해가 일어날 것쯤은 안 봐도 자명한 사실이야.’
물론, 자신을 포함해 이 자리에 출동한 헌터 모두에겐 최악이겠지만. 어떻게든 이쪽 상황을 알려 지원을 요청하고, 그 사이에 최대한 버티는 방법 밖에는 답이 없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본토에서도 이 정도로 사태가 심각한 것을 알면 가능한 빨리 지원을 보낼 거다!”
적어도 SSS급 헌터 하나 이상을 포함한 부대가 빠르게 지원을 온다면 희망이 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SSS급 헌터가 상주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지역이 구마모토현. 이곳에 도착하는 데엔 아무리 빨라도 2시간은 걸릴 게 분명했다.
‘그 2시간을 어떻게든 버틴다.’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그렇게.
어금니를 악물며 각오를 다지던 순간.
“바, 방위대장님!”
“뭐냐!”
“저기···!”
헌터가 하늘을 가리켰다.
덩달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몇몇 이들이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저건!’
방위대장 역시, 두 눈을 크게 떴다.
“푸른 비공정!”
“천무그룹의 잠룡이다!”
페일 라이더.
이제는 천무그룹과 주현우의 상징과도 같아진 비공정이 창공을 고고히 날아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