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회귀자(2)
‘천운인가!’
방위대장의 눈빛에 화색이 감돌았다.
방금까지 그들이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천무그룹의 등장은 그 상황을 정반대로 반전시켜버렸다.
그러나···.
희망은 그저 희망일 뿐.
[───!]드래곤이 입을 쩍 벌렸고.
그 사이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나가 모여드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
방심할 틈은 없다.
그렇게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곧, 거룡이 붉은 갈기를 휘날리며 입에서 검푸른 빛을 발산하는 브래스를 쏘아냈다.
그저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위력이 담긴 일격. 즉시 방위대장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속도로 입을 열어 고함을 쳤다.
“서, 선회해라!”
가까스로 내린 명령.
고속정은 앞으로 나아가던 속도를 빠르게 줄이며. 그 자리에서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기수를 틀었다.
퍼엉!
다행히도 첫 발은 아슬아슬하게 선두에 서 있던 기함을 스쳤다.
주위 바다가 일순 끓어오르며 고속정이 한바탕 뒤흔들렸고. 그로 인해 발생한 짙은 수증기가 일대에 안개처럼 퍼졌다.
“바, 방위대장님!”
“난 괜찮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거리가 꽤 벌어져 있는 페일 라이더가 아닌. 오키나와 방위성 헌터들에게 시선이 먼저 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곳에선 선택을 해야 했다.
“젠장···!”
고속정의 기동력엔 한계가 있다.
하물며 상대는 비행 면에서는 현존하는 어떤 비행체 보다 뛰어난 기동성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이다.
“일단 최대한 저 녀석과 거리를 벌린다!”
그렇게 명령을 내린 순간.
머리 위가 뜨끈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설마 또 브래스가 날아오는 걸까.
그런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방위대장의 등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하지만···.
그 감각의 정체는 예상외의 존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타오르는 화염의 거인.
아마도 페일 라이더 위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보이는 그 존재가. 허공에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고 있던 드래곤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곧.
[우랴앗!]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화염의 거인이 휘두른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드래곤, 티아마트가 공중에서 그대로 고꾸라지며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해치웠나!”
쾌재를 부르는 방위대장.
물론, 그의 이성은 고작 이것으로 사태가 끝날 리 없다고 생각했으나. 지금껏 느끼던 긴장감이 일순 풀어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헛···!”
갑작스럽게 울리는 마나 통신기.
방위대장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겨우 숨을 삼키며 진정할 수 있었다.
잠룡, 주현우.
그가 이쪽에 통신을 걸어온 것이다.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매우 두서없는 질문이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고작 이걸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깁니다. 아마 녀석은 금방 다시 기운을 차리고 수면 위로 올라오겠죠.]“그, 그럼···.”
뻔한 이야기다.
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2차전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여유가 많지는 않을 테니. 그동안 최대한 녀석을 토벌할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준비 말이오?”
[예.]현우는 짧게 대답했다.
이런 문답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 이 잠깐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회입니다. 만약, 그 시간 안에 준비를 마치지 못하면···.]현우는 부러 뒷말을 조심스레 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방위대장을 비롯한 헌터들의 안 좋은 상상을 자극시키기 위한 굉장히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무얼 할 수 있겠소?”
방위대장이 침음성을 흘렸다.
저건 최소 SSS급의 위험도를 가진 마족인 드래곤이다. 심지어 그 위에는 위험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마족이 올라타 있지 않았던가.
이런 사태에서 자신을 포함.
현재 이 자리에 출동한 오키나와 방위성의 대원들은, 전투에 있어선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확실하게 승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예상되는 민간 피해부터 줄이는 것이 나으리라.
“이렇게 도우러 와준 것은 고맙지만. 차라리 이곳에서 우리가 버티는 동안, 본섬의 민간인들을 대피시키는 편이 나을 수도 있을 거요.”
물론, 보다 안전하게 시간을 벌 수 있는 쪽은 그들이 아닌 천무그룹이 이곳에서 버텨주는 거겠지만.
이런 긴박한 상황임에도.
그런 염치없는 부탁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대피라는 것은 오키나와 본섬까지 위험이 닥칠 때에 필요한 대처다.
그러나 그가 이곳에 온 이상.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같은 미래를 반복하게 둘 생각은 절대 없었다.
“그럼···.”
[토벌하면 그만 아닙니까.]“···그 녀석들을 말이오?”
방위대장은 시선을 돌렸다.
그는 거대한 드래곤이 사라진 바다. 지금은 파도마저 잔잔하게 잦아든 수면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긴 어려웠다.
이곳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헌터라고 해봤자. 방위대장 본인이 겨우 SS급 정도의 수준일 뿐이다.
‘SSS급 심사를 앞두긴 했지만···.’
그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았다.
이 사태에 끼어들어 도움이 될 만한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그가 보기엔 말 그대로 거인들의 싸움이었으니.
당장 연륜 있는 SSS급 헌터가 이 자리에 있다고 해도. 저 드래곤을 상대로 승기를 잡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당신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오. 하지만 말은 쉬워도 녀석과의 힘의 차이부터. 지금 주위의 환경까지 전부 유리한 것이 없소.”
방위대장은 이제 어느 정도 돌아온 이성으로 냉철하게 주어진 상황을 분석했다.
“녀석이 지금처럼 심해로 들어가거나 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대처할 방법이 없겠지. 또 만약, 수면 아래서 공격을 해도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을 거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현우는 통신기 너머에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냉정하게 분석을 내놓을 정도면, 이미 현우에게 절반은 넘어왔다고 봐도 좋으리라.
그리고···.
‘실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닐지 몰라도. 상황 파악 능력과 분석력 하나는 확실하다. 확실히 방위대장이라는 직함은 그냥 달고 있는 것이 아니군 ’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저 방위대장은 유용한 인재로 써먹을 수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하지만 어떻게···.”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그의 물음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가령 ‘어떻게 당신의 계획을 믿을 수 있냐’부터 시작하여. ‘대체 어떤 방식으로 저 녀석들을 상대할 것인가’ 따위의 물음 등이 그에 해당하겠지.
[다 방법이 있습니다.]힘으로 찍어 누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이 자리에서 현우가 선택한 방법이 아니다.
단순한 힘으로 녀석을 토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간단한 만큼,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껏 가져온 흐름을 다니엘 블랙이 다시 가져갈 수도 있을 테니까.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 보다는···.
여기서는 다니엘 블랙이 했던 것처럼.
아예 다른 방면으로 접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한 준비 또한, 이미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끝내두었다.
‘철저한 대비와 완벽한 공략.’
따라서 다니엘 블랙이 아닌.
오직 주현우라는 한 사람만이 이 세계를 공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
그게 바로 다니엘 블랙이 공들여 만들어 놓은, 녀석의 무대를 뿌리째 뒤흔드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방법이라면···.”
[이 비공정, 페일 라이더에 탑재된 인공 의식을 통해 이미 녀석에 대한 분석은 완벽히 끝냈습니다. 공략의 단초는 충분히 확보한 셈이죠.]물론, 그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당장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기에 이들로서는 그저 믿는 방법 외에는 주어진 선택지가 없었다.
잠시 눈을 굴리던 방위대장은 이내 꿀꺽 침을 삼키곤 입을 열었다. 아무리 여기서 고민을 한다고 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을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확실한 작전이오?”
[글쎄요.]현우는 가볍게 말했다.
그 대답에 방위대장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로서는 계획에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와 오키나와 본섬 사람들의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현우는···.
[적어도 믿어볼 만은 할 겁니다.]고작 한 마디로 그를 포함해 이 자리의 모든 헌터가 가질 수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일축했다.
[믿기 어렵다면, 반대로 이 상황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여러분에게 저를 믿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그, 그건···.”
질문을 던진 방위대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입만 벙긋거렸다. 도저히 그 이야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모한 계획이 될지도 모르겠지만.]현우는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이들의 협력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더욱 좋은 그림을 만드는 데에 있어선 아주 훌륭한 소재가 되어줄 것이다.
[저라면 가능합니다.]짧은 선언.
이들에게 있어서 그건, 터무니없는 허세로 비추어질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결과로 눈앞에 드러났을 때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리라.
“···알겠소.”
결국 고개를 끄덕인 방위대장.
지금은 모르겠지만, 방금 그의 선택은 앞으로 이 세계에 큰 전환점을 가져올 작은 시발점이 될 것이다.
다니엘 블랙에게서 빼앗아올 흐름.
그 물길의 선두에서 바로 이들, 오키나와 방위성 대원들이 커다란 본보기 역할을 해줄 테니까.
***
오키나와 제도 인근.
록펠러 가문의 쌍둥이 비공정 중에서도 기함인 탕그뇨스트의 갑판에서. 다니엘 블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다니엘 블랙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원래 그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은 이곳 해역까지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마족 군단으로 득시글한 상태였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무런 이상도 없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오키나와의 바다가 아닌가.
“평화로운 것 같군.”
곁에 있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중얼거렸다.
그것이 일부러 자신에게 들리도록 소리 낸 것이라는 사실을 다니엘 블랙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블랙 가문에서 확보했다던 정보가 틀린 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정확해야한다는 것. 설마 모르고 있진 않을 거라 믿네.”
이번 일은 규모가 다르다.
지금까지가 단순히 밑밥을 깔기 위한 작은 무대였다면, 이번에는 세계에 커다란 참상을 보여주기 위해 찌를 던졌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의 기자.
그리고 이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중계를 통해 어떻게든 유명세를 얻어 보고자 하는 몇몇의 개인 인플루언서들까지.
많은 이들이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만약 잘못된 정보라면···.
록펠러는 물론이고 다니엘 블랙의 얼굴 역시 먹칠을 하는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걱정은 없다.
‘게이트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게이트의 발생이 조금 늦어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수정 가능한 오차범위다.
“조금만 더 서두르지.”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조금 바꾸는 편도 나쁘진 않다.
아예 게이트 발생 초기에 재앙에 가까운 마족을 토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의 민심을 손에 넣는 방법도 있으니까.
그런데.
어느새 목표 해역 인근.
서서히 게이트의 존재가 기감을 통해서 느껴질 때쯤. 다니엘 블랙의 표정도 조금씩 심각하게 굳어져갔다.
위화감.
안 좋은 예감이 등골을 천천히 훑어 내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곧.
게이트가 육안으로 보이게 되었을 무렵.
“다니엘 블랙.”
데이비드 록펠러가 그를 불렀다.
하지만 분명히 들었음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네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같은 정보를 천무그룹 쪽에서 먼저 손에 넣은 모양이군.”
“···.”
하늘을 날아오르려는 드래곤.
그러나 녀석은 날개를 몇 번 퍼덕이지 못하고 수면 위로 엎어졌다. 녀석의 목에 걸린 수십 개의 사슬이 일제히 팽팽하게 당겨졌기 때문이었다.
차르륵─!
사방에 울려 퍼지는 거친 쇳소리와 함께 완벽하게 구속된 드래곤. 탕그뇨스트에 승선해 있던 기자와 인플루언서들이 갑자기 분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잠시 후···.
구속된 드래곤의 머리 위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다니엘 블랙은 어렵지 않게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해역 전체에 울리는 괴성.
아마 그것은 드래곤, 티아마트의 입장에선 분노에 찬 고함이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 다니엘 블랙과 동행한 이들에게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보였다.
그건···.
다니엘 블랙이 ‘재앙’이라 공언한 위험이. 한 사내에 의해서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는 광경이었다.
“···주현우.”
저도 모르게 다니엘 블랙은 시야에 들어온 사내의 이름을 읊었다. 옆에서 데이비드 록펠러가 가볍게 혀를 찼다.
“우리가 한 발 늦은 것 같다.”
설명 따위가 필요한가.
이미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으득, 다니엘 블랙은 제 어금니를 강하게 악물었다.
한 방 먹었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의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분명, 녀석은···.’
미래의 차원에 갇혔을 텐데.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건지.
그리고 이쪽 세계로 귀환한 방법을 떠나. 무슨 수로 게이트의 발생을 자신보다 한 발 먼저 알아낸 건지.
다니엘 블랙은 순간, 머릿속이 뒤죽박죽 혼란에 빠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상황과 감각은, 첫 번째 회귀를 경험한 이후로는 분명히 처음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의문을 꾸욱 눌러 삼키며. 그는 눈꼬리를 파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