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개전(2)
‘여기까진 예상대로다.’
월드 타워가 내려다보이는 상공.
현우는 페일 라이더의 갑판에서 가만히 아래를 내려 보았다. 멀리서도 곧, 전투가 시작될 거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다니엘 블랙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월드 타워 내부에서 힘을 온존하고 있는 걸까.
녀석에게 있어서 가장 유리한 전개는, 시간을 끌며 타워 내부의 인간들을 완전히 흡수하는 것일 터.
그런 녀석의 바람과 다르게.
벌써 월드 타워의 외벽을 파괴해버린 현우의 기습적인 수는, 상당히 치명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녀석의 발등에 불을 떨어뜨렸다.’
이제 슬슬, 반응이 나올 차례였다.
저 아래에 대기하고 있는 천무그룹의 전력은, 녀석이 내보낸 괴물···. 그러니까 머지않은 미래 ‘어보미네이션’으로 불리는 것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하다.
그뿐인가.
지금 파악되는 어보미네이션의 수로는 아마 저들을 제대로 막지 못할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에 가까우리라.
그렇게 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녀석이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을 치부이자 치명적인 약점.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저 월드 타워의 코어로 향하는 길이 훤히 열려버리게 될 테니.
이건···.
녀석에게 최선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현우는 그 최선이 선택이 무엇이 될 것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녀석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 맞다면···.’
이제 녀석이 직접 모습을 드러낼 차례다.
이는 현우의 추측이었고, 이게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그때가 바로 현우가 직접 저 전장에 나설 적기였다.
[마스터, 만일 녀석이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글쎄···.”
페일 라이더의 인공 의식 타나토스.
녀석의 물음에 현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니엘 블랙이 여기서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은 아주 없다고는 하기 어렵다.
“아마 그러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현우는 확신했다.
녀석이 승리를 확신했던 순간, 제대로 뒤통수를 먹어주었으니. 녀석 또한, 그와 같은 방식으로 현우를 상대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확신하시는 겁니까.]“나는 녀석을 아니까.”
인간의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현우가 몇 번이고 상대했던 다니엘 블랙은,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회귀자인 녀석에게 있어 버릴 것과 취할 것의 선택은,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고. 이는 항상 최고의 결과로 돌아왔을 테니.
‘그리고···.’
결정적인 하나.
다니엘 블랙은 현우를 단순한 변수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더 많은 회귀를 경험한 회귀자고. 그렇기에 그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현우라는 변수를 자신의 힘으로 통제한다는 선택지 밖에는 없을 것이다.
회귀자에게 있어 가장 큰 독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비틀어 바꾸는 변수의 존재 그 자체니까.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것.’
그것이 현우가 녀석이 자신의 추측대로 움직일 거라고 확신하는 근거였다.
오만함.
현우는 바로 그 오만함이라는, 다니엘 블랙이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을 최고의 맹점을 노리고 있었다.
‘설령, 내 추측이 틀려도 상관없다.’
이미 현우는···.
녀석의 목전까지 도달해 있다.
저 월드 타워를 뚫고.
다니엘 블랙과 직접 서로 얼굴을 마주할 방법이야 이렇게 기다리는 것뿐은 아니니.
녀석이 변수를 통제하려 든다면.
현우는 반대로 그 모든 변수에 대응하는 대책 수단을 이미 손에 쥐고 전장에 뛰어든 상황이었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될 모양입니다.]충돌이 시작되려는 찰나.
현우는 눈썹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아래쪽의 공기가 변한 것이 느껴졌다.
“···.”
[마스터.]타나토스가 긴장이 여실히 드러나는 목소리로 현우를 불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곁에 있던 덕춘이도 ‘쉬익’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녀석입니다.]“알고 있어.”
현우는 추위를 타는 것처럼 부르르 떠는 덕춘이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후 지상을 노려봤다.
800m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느껴지는 압도적인 존재감.
이 정도의 존재감을 내비칠 수 있는 이는, 현우가 아는 한에는 이 세계에 단 한 명 뿐이었다.
‘수고를 덜었군.’
확신에 가까웠던 추측이.
분명한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현우는 전신에 순백의 불꽃을 피워 올리며 갑판 끝에 발을 걸쳤다. 아마 지금 이 순간, 녀석 또한 현우의 존재감을 아주 짙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화륵.
순식간에 현우의 신체 주변으로 순백의 불씨가 휘날린다. 의념으로 발화시킨 불꽃이 다시 한 번 공기를 변화시킨다.
“···자, 그럼 가볼까.”
다니엘 블랙.
피부가 저릿할 수준으로 강렬한 존재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이 짧은 시간에 녀석이 사라지거나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연스럽게.
녀석이 자신의 존재감으로 장악하고 있던 공간의 틈바구니에 신화의 불꽃을 퍼트렸을 뿐이었다.
‘녀석과 징그러운 인연이 여기서 끝나면 좋겠군.’
타악─
가벼운 도약.
중력은 착실하게 현우를 끌어당겼고.
뺨을 스치는 창공의 바람 너머에서. 현우는 이쪽을 향한 다니엘 블랙의 시선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
“흐음.”
갑작스레 나타난 다니엘 블랙.
천무그룹의 최고 전력들을 그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긴장하게 만든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다름 아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곳엔···.
당연하게도 이제는 천무그룹과 주현우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비공정, 페일 라이더가 유유히 고도를 낮추는 중이었다.
“역시, 궁니르 말고도 여러 세계급 유물을 손에 넣었군. 이쪽 세계의 내가 그렇게까지 내몰렸던 까닭이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겠어.”
뜻 모를 중얼거림.
그는 이곳에 있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를 보였고. 그에 가장 먼저 모욕감을 느낀 것은 검존 구동철이었다.
“무슨 헛소리를···.”
구동철이 허공에 띄운 검을 움직였다.
하나같이 SSS급에 해당하는 보검들이 전부 녀석의 급소를 향해 조준되었다.
만일, 구동철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 즉시 예리한 검강을 두른 검들이 쏘아져 다니엘 블랙을 흡사 종이처럼 조각조각 찢어발길 것이다.
“엄한 생각은 그만두게.”
“···뭐?”
“내가 굳이 설명해줄 필요도 없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자네들은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어.”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니엘 블랙이 구동철을 향해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챙그랑─!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매섭게 녀석을 노리고 있던 도합 열 두 자루의 검이 전부 통제력을 잃고 지면에 떨어졌다.
‘내 어검술이···.’
구동철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어검술이란 의지를 통해 검과 하나가 되고. 이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서 의식을 검과 동화시켜 조종하는 기술이다.
한 마디로 검에 의지를 깃들이는 것.
그런데 다니엘 블랙은 그것을 그저 손짓 한 번만으로 흩뜨려버린 것이다.
쉽게 말하면 타인의 수족을 건드리지도 않고 비틀어 뽑아버린 셈.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제를 알라는 이야길세.”
다니엘 블랙이 이쪽을 응시했다.
구동철은 등골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기분 나쁜 감각을 느꼈다. 직감이 그에게 시끄럽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준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천무그룹의 모든 전력들도 마찬가지였다.
검존이라 불리는 자신을 포함.
이곳의 모두와 일시에 최고의 호흡으로 협공을 펼친다고 해도. 그 순간에 머릿속에 그려지는 미래는 처참한 패배와 죽음밖엔 없었다.
“여기 있는 자네들은 그저 무대를 만들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네. 이 세계의 진짜 주역은 나와 광룡, 주현우뿐이지.”
오만한 선언.
그러나 이를 반박할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방금 그가 보여준 기예와 존재감에 일순, 모두가 압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는군.”
다니엘 블랙.
그의 시선이 다시 하늘로 향하는 순간.
─쐐에엑!
순백의 섬광이 그와 천무그룹 일동의 사이로 내리꽂혔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피어오른 불꽃과 흙먼지가 채 걷히기 전에 알 수 있었다.
주현우.
다니엘 블랙이 기다리고 있던 주연.
“다니엘···.”
“귀염둥이!”
현우가 입을 열려는 그때.
꺄악 하는 소리를 내며 현우에게 달려들어 등 뒤로 숨는 오수진. 착지 후 천천히 몸을 일으키던 현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오수진, 그녀가 이런 상황에서까지 주책을 부릴 줄이야.
“···쯧, 주책이군.”
과연, 이번에는 다니엘 블랙도 질렸다는 표정으로 오수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현우도 녀석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다니엘 블랙.”
잠깐의 침묵.
먼저 입을 연 쪽은 현우였다.
“네가 이렇게 빨리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살짝 의외야. 솔직히 조금 더 추잡한 방법을 사용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음, 그런 방법도 있긴 하지.”
다니엘 블랙은 가볍게 웃었다.
“지금도 자네의 추측과 같은 선택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네. 이미 내게 있어서는 뉴욕 전체가 인질이나 다름없으니.”
“그래서.”
현우는 짧게 말했다.
“그렇게 할 거냐.”
녀석이 뉴욕 전체를 인질로 잡는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까지 포장하지는 않겠으나.
결국, 뉴욕에서 이 사단이 나게 된 원인은 록펠러 가문의 가주 데이비드 록펠러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니까.
“흠.”
다니엘 블랙은 제 턱을 쓰다듬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녀석은 이내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럴 생각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아니라고 답할 수 밖에 없겠군. 인질이라는 것도 결국엔 자네가 신경을 써야 성립할 테니까.”
“잘 알고 있네.”
“다만.”
녀석의 웃음이 뒤틀린다.
“인질로서의 가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이용가치가 아주 없는 것만은 아니잖은가.”
“뭘 어쩔 생각이지.”
“미안하지만 나는 행동력이 좋은 편이라 말이야. 이미 자네가 이쪽에 도착할 때쯤에 실행으로 옮겼다네.”
쿠우웅─!
기다렸다는 듯이 울리는 지면, 현우는 고개를 돌려 진동의 근원이라고 추측되는 방향을 보았다.
“저건···.”
가버너스 섬.
임시 재난 관리본부가 설치되어 있던 그곳에 어느새 나타난 거대한 살덩이 거인이 몸을 일으켜 발을 구르고 있었다.
‘기간테스인가.’
격리 차원에서 보았던 거인.
아마 그 녀석들을 다니엘 블랙이 모종의 방법으로 가공한 결과물인 모양이었다.
“저기 보이는 한 마리로 끝은 아니라네. 지금부터 녀석들이 뉴욕 전역을 휩쓸며 살육을 시작할 테고. 희생자들은 고스란히 나의 양분이 되어줄 걸세.”
그건 즉, 시간을 끌면 끌수록.
다니엘 블랙에게 유리해진다는 소리였다.
‘지금 록펠러 가문이나 뉴욕 헌터 협회의 전력으론 저 거인을 하나 상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현우는 그 정도로 상황이 악화 되었다곤 생각지 않았다.
이곳에는 천무그룹의 최정예가 있으니까.
“···구동철 씨.”
“예, 저 녀석들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현우의 부름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자세한 명령 없이도 구동철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천무그룹의 전력이 구동철과 함께 자리를 뜨고. 이 자리에는 현우와 다니엘 블랙, 오직 두 사람과 주위를 에워싼 괴물 ‘어보미네이션’들만 남았다.
“빠른 판단은 칭찬해주고 싶지만. 고작 저들만으로 전부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글쎄.”
부족하더라도 상관은 없다.
“나도 아직 보여줄 패가 남았거든.”
천무그룹은 조금 손을 빌려줄 뿐.
덕분에 이렇게 다니엘 블랙과 오롯이 마주보게 되는 구도가 나왔으니.
솔직히 현우의 입장에서는 반갑다고 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불리한 구도가 되지는 않은 셈이었다.
“자, 이걸로 오로지 나와 자네 둘만 남은 셈이로군. 설마 이제 와서 일대일은 자신이 없다고 하진 않겠지.”
“그럴 리가.”
현우는 픽, 웃었다.
“오히려···.”
다니엘 블랙의 발밑에 가득 돋아나 있던 사슬이 쏘아진다. 그러나 그것보다 한 발 먼저 현우는 녀석을 향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고 있었다.
“바라던 바지.”
짧은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
다니엘 블랙은 즉시, 자신에게 달려드는 현우를 향해 발치에서 꿈틀거리고 있던 수많은 사슬을 쏘아냈다.
차르르─!
빈틈없이 쏘아지는 사슬.
그 공격에 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 걸음 현우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사슬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그의 동선을 파고들었다.
하나하나가 경시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급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현우는 차분하게 지면을 내딛으며 녀석을 향한 길을 열기 시작했다.
신화와 녀석의 사슬, 어느 것이 우위라고는 할 수 없으나. 몇 번의 합을 통해 현우는 느낄 수 있었다.
충분히 부딪혀볼 만한 싸움이다.
빗발치는 사슬과 주위로 흩날리는 화염. 두 가지 힘은 서로 만나는 순간 상쇄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 희미하게 점멸하는 투로가 보인다.
말아 쥔 주먹을 펼치며 현우는 생각했다.
틈이 없다면···.
강제로 틈을 비집어 만들면 그만이다.
‘지금.’
확신을 가지고.
현우는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흡사 창처럼 쏘아진 한 무더기의 사슬을 빗겨 피한다. 그리고 바로 몸을 빙글 돌려 덩굴을 잡아채듯 거머쥔다.
‘잡았다.’
녀석의 의념으로 빚어낸 사슬.
그런데 현우가 사슬을 당기며 녀석과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려던 찰나.
“···!”
퍽─!
작은 소리와 함께 사슬을 붙잡은 현우의 오른팔이 폭죽처럼 터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