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개전(1)
“저게 무슨···.”
월드 타워를 바라보며.
존 록펠러는 몇 번 입을 뻐끔거렸다.
이미 계획이 시작되었다니.
그렇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쪽과 협력을 할 생각은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는 황망한 표정으로 주현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페일 라이더는 상대의 시선을 끌기에 딱 좋은 요소죠. 저는 이걸 최대한 활용했을 뿐입니다.”
이걸 노렸던 걸까.
시선을 이쪽으로 집중시켜서 잠시 다니엘 블랙의 방심을 유도하고. 그 사이에 공격을 시작한다는 선택.
매우 고전적이긴 했으나.
다니엘 블랙 쪽에서 대응하지 못한 것은 확실해보였다. 하지만 기습이 성공했다곤 해도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월드 타워로의 진입.’
이미 선발대가 실패한 전례가 있다.
저 안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적어도 존 록펠러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건 방금 이곳에 도착한 주현우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자신 있게 나설 수 있는 걸까.
‘설마, 자신이 회귀자라던 그 허무맹랑한 주장이 진짜였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는 생각했지만.
존 록펠러는 왠지 모르게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건 그렇다고 치고.
당장은 그 진위 여부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하는 문제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까스로 존 록펠러는 입을 열었다.
주현우의 계획에 끌려가기 시작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하는 부분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긴 했어도.
월드 타워 자체는 엄연히 록펠러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건물이 아니던가.
“잠룡, 방금 분명 월드 타워를 파괴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이건 말했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일단 입구는 뚫어야 할 것 아닙니까.”
현우는 무심하게 답했다.
이게 애들 장난도 아니고, 조그만 손상도 없이 월드 타워의 내부로 진입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 정도면 ‘파괴’ 축에도 들지 않는 매우 신사적인 방식이 아닌가.
“그리고.”
짧은 한 마디.
존 록펠러는 그 순간 주위의 공기가 살짝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혹시 착각하고 있을 지도 몰라서 확실히 하는 건데. 나는 여기에 록펠러 가문을 돕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건 과정일 뿐이다.
현우의 목적은 록펠러 가문을 이 사태에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 블랙,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만, 적대하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으니. 지난 배신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존중을 보이고 있는 것뿐이죠.”
“···.”
존 록펠러는 이렇다 할 반박을 꺼내지 못했다. 냉혈한 같은 이야기였지만, 그의 이야기가 전부 맞았기 때문이었다.
“잠룡, 미안해요.”
보다 못한 안젤라 록펠러가 나섰다.
“저희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기에 가문의 안위를 걱정할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는 물론이고 혈족들과 소속 헌터들까지. 지금 저 월드 타워 안에 인질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갇혀 있으니까요.”
“그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들과 다르게 현우는 알고 있었다.
저 월드 타워 안에 있던 인간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가주인 데이비드 록펠러 역시, 다니엘 블랙에 의해 사망했으리라.
“혹시 괜찮다면, 앞으로의 공략 계획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안젤라 록펠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우는 그의 질문에 가벼운 미소로 화답했다.
“복잡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과장 없는 이야기였다.
녀석이 견고한 성을 만들어 그 안에서 농성을 벌인다면, 현우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
“···.”
여전히 의뭉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존 록펠러와 다르게.
“설마, 지금···?”
안젤라 록펠러는, 이미 현우라는 인간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만큼. 벌써 그의 계획에 대해서 약간은 짐작한 눈빛이었다.
“예, 저 안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위험할 겁니다.”
존 록펠러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미 한 번의 선발대를 아무 소득도 없이 잃었다. 충분한 정보가 없다면, 아무리 대비를 했다고 해도 무의미하다.
“어쩌면 이 월드 타워 전체가 녀석의 함정일 가능성도 있고. 여기서는 가급적 안전한 방법으로 정찰조라도 편성해서 먼저 보내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상식적으로는 옳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런 선택이야말로 다니엘 블랙이 원하는 쪽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게 될 테니까.
시간을 끄는 것.
그건 녀석이 타워 내부에 있을 인간을 모두 ‘소화’할 여유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걱정하지 마시죠.”
현우는 다니엘 블랙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잠시 지면에 착륙해 있던 페일 라이더에 다시 오르며 장담했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
미래의 지식.
그것을 다니엘 블랙은 아직 모르고 있다.
만약, 녀석이 두 번째 회귀 사실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면. 이렇게 시간을 끌려는 선택이 아니라 바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다시 말해···.
녀석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
그러니.
이번 총력전은 처음부터 현우에게 매우 유리한 양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 블랙은, 현우가 이미 고지에 서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유리한건 이쪽이니까.”
시간은 다니엘 블랙의 편이다.
그러나 결국, 그건 녀석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라는 소리.
“우리가 협력할 부분은 없겠습니까.”
“없습니다.”
현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현우는 이곳에 혼자 오지 않았다.
이건, 그야말로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 거기에 천무그룹의 최고 전력을 동원한 총력전.
즉, 현우는 녀석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끌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파훼할 방책을 손에 쥐고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개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력이자 수단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주현우 본인이었으니.
사실을 바로, 지금부터 다니엘 블랙에게 각인시켜 줄 것이다.
***
“구멍 한 번 시원하게 뚫렸군!”
‘토르의 형제단’ 길드 마스터.
토르켈 한센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오른손에 그의 상징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썬더 브링어’를 거머쥐었다.
“자, 그럼 가볼까!”
마침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드디어 제대로 날뛸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졌으니. 이제는 사양 않고 몸을 움직일 차례였다.
“잠깐.”
그를 제지한 것은 여러 자루의 검을 패용한 사내. 천무그룹의 검존(劍尊)으로 불리는 구동철이었다.
“아직, 도련···. 아니, 회장님께서 오시지 않았다. 돌입은 계획했던 대로 5분 후에 진행한다.”
“으음.”
지루한 기다림이 끝났나 싶었는데.
또 5분이나 기다려야 한다니. 토르켈은 김이 빠진 표정으로 뒷목을 긁적이며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그때.
“저길 보십시오.”
류한나.
그녀가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궁니르로 인해 뚫린 외벽을 가리켰다.
궁니르에 깃들어 있던 불꽃으로 인해 살점은 재생하고 있지 않으나. 그 구멍 너머로 무언가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저건···.”
구동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구멍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히 눈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언지.
정확하게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았다.
‘마족과 사람의 중간 정도인가.’
구동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으나. 뒤틀린 외형은 분명, 저것이 이제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또한···.
움직임을 보아하니 이성도 없는 모양.
“···끔찍하게도 생겼군.”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패용하고 있던 검을 이기어검으로 허공에 띄워 올렸다.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바는 없었지만. 적의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거, 설마···.”
주건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외벽의 구멍을 통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녀석들에게선, 마족과 같은 기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만, 평범한 헌터들과 같이.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을 뿐이었다.
“하.”
천무그룹의 적마녀.
오수진이 기가 찬 표정으로 짧은 탄식을 흘렸다. 마법사인 그녀의 눈에는 저 존재들의 본질이 누구보다 정확하게 보이고 있었다.
“우리 새로운 회장님이 월드 타워 내부의 인간들은 포기하는 편이 좋을 거라더니. 과연, 이런 상황까지 생각하고 이야기했던 거네.”
그렇다.
주현우는 이미 월드 타워 내부의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던 만큼. 사전에 저 존재들에 대해 이들에게 언질을 주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녀석들의 대응법부터 약점까지. 전부 이미 파악해 두었으니까. 상대하기 어렵지는 않을 거야.’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저 존재들의 본질 정도일까.
“살짝 곤란한데.”
“···곤란하다니?”
구동철의 물음.
오수진은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저것들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너도 짐작은 하고 있잖아. 지금 저기서 튀어나오고 있는 저거 전부 사람이야.”
아니.
오수진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는 얼마 전까지는 사람이었던 것들이라고 해야 맞겠네. 이미 신체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뒤틀려버렸으니까.”
“으음.”
구동철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살짝 돌려 말하긴 했지만, 오수진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론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월드 타워에서 다니엘 블랙에 의해 희생된 인간들이라는 사실.
“과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견 무심한 듯한 태도였으나.
그의 눈빛엔 전과 다르게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인간을 사용해 마족을 만든 건가.”
“그런 게···.”
가능한 일인가.
의문을 꺼내려던 주건우는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었다.
오수진이 잘못 판단했을 리는 없다.
그리고 지난번 교토에서 목격한 녀석의 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현실로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렇다면 타워 내부의 생존자는 없다고 판단하는 편이 좋겠군요. 녀석이 인질극을 펼치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류한나 역시, 굳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끔찍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서 공포나 연민 따위를 느끼진 않았다. 어설픈 감정은 전투에 있어 독이 될 뿐이니까.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는 거요?”
토르켈이 물었다.
오수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저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아마 저렇게 만든 다니엘 블랙 본인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은 가지고 있지 않을 걸.”
확신까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오수진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러니까 괜한 동정심 같은 건 버려둬. 그런 감정 때문에 손속이 무뎌지는 것이 바로 다니엘 블랙, 그 재수 없는 애송이가 원하는 걸 테니까.”
“으음···.”
토르켈은 마치 똥을 씹은 것 같은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그 역시 산전수전 모두 겪어본 SSS급의 헌터. 사정을 안다고 해서 손속이 무뎌질 정도로 아마추어는 아니다.
그러나.
기분이 더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는 그뿐만 아니라 이 자리의 모두가 같은 기분일 테니까.
“거 참, 사람 목숨을 파리보다 못하게 생각하는 녀석인 것 같소. 덕분에 다른 거는 몰라도 그 녀석을 죽일 때엔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아도 되겠군.”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어느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썬더 브링어에는 격렬한 뇌기가 서려 있었다.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곳에서는 지금부터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모두가 그 사실을 직감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토르켈은 가볍게 손에 쥔 썬더 브링어를 빙글 돌렸다. 곧, 위협적인 뇌기가 주위로 뻗치며 그의 머리칼을 쭈뼛 곤두세웠다.
“적어도 우리 회장님이 오시길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을 모양이오.”
“뭐, 그렇기야 하겠지.”
심드렁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오수진. 그녀의 주위로 수 십 개는 족히 될 법한 화염구가 떠올랐다.
“어떻게 할까?”
그녀는 구동철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구동철은 잠시 입을 다물고. 어느덧 외벽에 뚫린 구멍에서 쏟아지듯 나오고 있는 괴물들을 바라봤다.
‘전부 이쪽을 향해 달려들려고 하지는 않는 모양이군. 일부는 자신의 몸으로 저 외벽을 복구시키려고 하는 건가.’
날카로운 시선.
그는 빠르게 놈들의 행동을 파악했고. 이에 현우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론 내렸다.
“뚫는다.”
간단한 목표.
그리고 그건, 이들에게 있어선 매우 간단한 주문이었다.
토르의 형제단과 검존(劍尊) 구동철.
거기에 적마녀라는 별호로 불리는 마법사 오수진에 전투를 직감하고 곧바로 거대한 불꽃의 거인으로 화한 주건우까지.
말 그대로 현재 천무그룹의 최고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전부 이곳에 모여 있으니.
그런데···.
최선두의 구동철과 토르켈, 두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이 돌격하려는 순간. 우뚝, 모두의 걸음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추었다.
압도적인 존재감.
그건,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렵지만. 흡사 그들의 머리 위에서 재앙이 강림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
뒷목이 서늘해진다.
오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쩔그럭─
그곳에는 검은 사슬을 밟고 지상을 향해 천천히 내려오는 한 사내가 있었고. 그의 정체는 추론할 것도 없이 명백했다.
“다니엘 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