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94
194화 월드 타워(3)
다니엘 블랙의 선언 이후.
뉴욕은 말 그대로 반쯤 죽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뉴욕으로 향하던 수많은 물자가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단번에 끊겼고. 아예 미국 정부 차원에서 위기관리라는 명목 하에 뉴욕의 출입 자체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
아무리 좋게 말해도.
상황은 그야말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뉴욕 가버너스 섬.
끔찍한 살덩어리로 변모한 월드 타워가 잘 보이는 이곳엔, 현재 존 록펠러를 필두로 임시 재난 관리본부가 설치되어 상황을 통제하는 중이었다.
“···끙.”
존 록펠러.
그는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침음성을 흘렸다. 정부 측에서는 이미 뉴욕이 전장이 될 것을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니엘 블랙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무서운 걸까. 민간인을 대피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출입을 통제하며 지금 이 답답한 현상을 유지하려 들고 있다.
‘우리 가문만 멀쩡했다면···.’
정부에 압력을 넣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작금의 록펠러 가문은 다니엘 블랙, 한 사람에 의해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나마 멀쩡한 혈족이라고 해봐야 여기 존 록펠러, 자신과 여동생인 안젤라 록펠러가 전부다.
가문이 운용하는 쌍둥이 비공정 중에서 기함인 탕그뇨스트 역시, 소환을 위한 키(Key) 아티팩트가 그의 아버지와 함께 다니엘 블랙의 손에 넘어갔을 거라 추측되고 있었다.
답이 없다.
솔직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젤라.”
작은 한숨과 함께.
그는 자신의 여동생을 불렀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불평만 늘어놓을 만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이 신경 써야할 것은 다니엘 블랙, 한 사람의 재앙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도심의 상황은 어떻지.”
“우리가 예상했던 거랑 똑같아. 애초에 시민들을 통제할 인력도 부족했고. 덕분에 거의 무법천지에 가까워지고 있어.”
이미 예상했던 상황.
그러나 그에 대한 대응책은 미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뉴욕 헌터협회 지부의 고위급 헌터의 대부분은, 블랙 가문의 영약을 섭취한 것을 확인하여 격리된 상태.
도심에서 시민들로 인해 발생한 혼란까지 일일이 신경 쓸 정도의 인력이 있을 리가 없다.
“다니엘 블랙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요구 사항을 발표하진 않았습니다. 이건, 아마도 잠룡이 이곳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거겠죠.”
머리색과 같은 멋들어진 갈색 콧수염을 기른 사내가 존 록펠러에게 대답했다.
윌리엄 테일러.
그는 임시로 선출된 헌터협회 뉴욕 지부장 대리였다.
이미 블랙 가문의 영약을 복용한 뉴욕 지부장과 부지부장을 대신해. 그나마 경험이 많은 헌터인 그가 현재 뉴욕 지부 소속의 헌터들을 이끌고 있으나.
“월드 타워 내부로 파견된 선발대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쯤이면 중간보고가 들어올 시간일 텐데요.”
“···.”
월리엄 테일러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과 침묵을 통해서 일이 잘못 되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소식도 없단 말입니까.”
“그게, 아무래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아니···.”
존 록펠러는 뭐라 말하려던 입을 그대로 다물었다. 지금 여기서 이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봤자 책망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럼, 전원 실종으로 봐야겠군요.”
“실종보다는 사망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이번에 협회에서 월드 타워 내부로 파견한 헌터들은, 살아만 있다면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했을 이들이니.”
냉정한 판단.
그러나 월리엄 테일러는 선발대로 보낸 이들을 나름 고평가 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그들의 연락이 끊어진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저는.”
그가 짧게 입을 열었다.
“다니엘 블랙, 그 녀석이 대체 뭘 원하는 건지. 도무지 파악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는 저곳에서 잠룡을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정말로 잠룡이 이곳에 올 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음···.”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다니엘 블랙은, 잠룡 주현우를 저 월드 타워에서 기다리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분명히 불리할 것을 알면서도 그가 뉴욕까지 올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록펠러 가문은 그의 신뢰를 이미 한 번 배신하지 않았던가.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군.’
어쨌든, 그가 생각하기에도 주현우에게 그들을 도울 이유 따위는 없었다.
“처음부터 천무그룹의 도움을 받은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염치나 자존심을 떠나.
그는 더 이상, 철지난 영웅담을 믿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세상은 결국 이익을 쫒아 돌아가기 마련이니.
천무그룹이 그들을 도와 얻을 이득이 없는 이 상황에서. 타인의 도움을 기대한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극복 의지를 좀먹는 행위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잠룡,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아니라. 주어진 수단을 최대한 활용해 눈앞의 시련을 돌파할 방책을 찾아내는 겁니다.”
그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적어도 이 순간의 존 록펠러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때···.
“아···!”
짧게 터져 나오는 탄성.
임시 재난 관리본부의 텐트 바깥에서 들린 소리에 의문을 가지기도 잠시. 헌터 하나가 밖에서 황급히 텐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 잠깐 나오셔야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그게···.”
그는 대답 대신 텐트의 입구를 활짝 열어 바깥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곳엔 이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나 같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난 순간.
존 록펠러는 상상하지 못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허드슨 강 상공을 날아.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하나의 비행체.
‘저건···.’
존 록펠러의 눈이 커졌다.
지금 그에게 저것은, 알량한 자존심을 떠나. 이 상황을 완벽하게 뒤집어줄 수 있는 하나의 조커 카드로 보였다.
“···예상과는 다르군요.”
윌리엄 테일러가 조용히 말했다.
존 록펠러와 다르게 그의 눈빛은 약간의 복잡함을 담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변수가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히 사태가 긍정적인 방향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더욱 악화될 가능성 또한 품게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도시, 뉴욕이 정말로 두 거인의 전장으로 변모할 거라는 선고와도 같았으니까.
곧, 멀리 떨어져 있던 탓에 작은 점처럼 보이던 비행체가 윤곽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고도를 낮추며 가버너스 섬 외곽에 천천히 착륙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마치 깊은 심해 속에서 들려오는 고래의 울음과 같은 기묘한 소리. 이는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는 천무그룹의 비공정, 페일 라이더 특유의 소음이었다.
“···.”
침묵 속에 감도는 묘한 기류.
이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마도 존 록펠러뿐만이 아니리라.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기괴한 살덩이로 뒤덮여 있는 월드 타워를 바라봤다.
‘진짜 전쟁이 시작되겠군.’
잠룡, 주현우.
천무그룹이 이곳에 왔다.
그 소식은···.
이곳 뉴욕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퍼져나갈 것이다.
***
“간만이군요.”
“···으음.”
산뜻한 미소와 함께.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 오는 주현우의 눈을, 존 록펠러는 자신도 모르게 한 번 피하고 말았다.
“간만이에요. 잠룡.”
대신 나선 것은 안젤라 록펠러.
그녀는 심각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빙긋 웃으며 주현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일단, 예의상 안부라도 묻는 게 먼저인가 싶긴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서로 정리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었죠.”
그게 무엇인지.
이 자리에서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일전에 아버지의 결정으로 두 가문 간의 신뢰를 깨트린 일.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제가 대신 진심으로 사과하도록 할게요.”
“···.”
현우는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이렇게 엎드려 절 받는 느낌의 사과라고 해도 받아줄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용기를 내준 것은 감사합니다.”
다만, 사과라는 것은 응당한 보상이 함께 따라와야 하는 법. 그건 현우가 가지고 있는 불변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말 뿐인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지난 일에 대해서는 차후 양 가문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 확실하게 해결하고 넘어가는 걸로 하죠.”
“···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안젤라 록펠러.
솔직히 이런 문제는 당장 해결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겠지만. 현재 록펠러 가문의 상황이라면, 현우가 만족할만한 보상을 내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테니.
“지금은···.”
우선순위가 높은 것부터다.
“저 월드 타워에 내부에 도사리고 있을 다니엘 블랙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른 문제들은 그 전까지 잠시 묻어두도록 하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안젤라 록펠러는 조금 전보다 굳은 표정으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뿐이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다니엘 블랙, 녀석은···.”
존 록펠러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다니엘 블랙은 최초의 변이 이후. 특별한 사건을 벌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뉴욕에는 충분한 혼돈을 가져다주었다.
“언론에 당신을 기다리겠다고 발표했던 대로. 그동안 저곳 월드 타워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런 다니엘 블랙이···.
저곳 월드 타워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면, 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걸까.
그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흠.”
현우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물론, 예상했던 행보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녀석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냥 기다린답시고 시간만 죽이고 있진 않았을 겁니다.”
그건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이미 현우는 네크로맨서를 통해 ‘월드 이터’라는 존재에 대하여 가능한 소상히 파악해두었다.
다니엘 블랙.
그가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그 정도는 여기서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마 녀석은 월드 타워 내부에 있던 헌터와 데이비드 록펠러를 자신의 양분으로 흡수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그걸 끝내기 전까지.
최대한 저 내부에서 나오지 않으려 하겠지.
“방법은 하나.”
현우는 검지를 들어보였다.
“저 월드 타워를 공략하는 겁니다.”
그리 대단한 파훼 법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과 현우의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면. 현우는 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법한 방법이 통하게 만들. 확실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
“공략이라니···.”
존 록펠러가 중얼거렸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협회 측의 협조를 받아 선발대를 투입. 내부의 정보를 손에 넣으려고도 이미 시도해보았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다면, 어중간한 대비로 저곳에 돌입하는 행위 자체가 자살에 준한다는 것이었다.
“계획은 있는 겁니까.”
그래서 존 록펠러는 물었다.
이곳에서 특별히 의미 있는 정보를 수집한 것은 없으나. 지금 막, 뉴욕에 도착한 주현우 역시 별반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이미 협회 측에서 저곳으로 선발대를 보내봤지만. 안타깝게도 투입된 전인원이 별다른 소득 없이 사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는 상황이라. 그리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씨익 웃는 현우.
“설마, 제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준비라면?”
“공성전.”
짧은 대답.
그게 바로, 현우의 계획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존 록펠러에게 설명이 불충분한 모양이었다.
“···예?”
“설마, 월드 타워를 파괴할 생각인가요.”
존 록펠러가 되묻는 순간.
안젤라 록펠러가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물었다. 현우는 그녀를 향해서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성을 공격해 부수고.
녀석을 이쪽에게 유리한 밖의 전장으로 꺼내온다. 그것이 지금 현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지금부터 월드 타워를 부술 겁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여기서 부숴지는 것은 월드 타워 하나만이 아니다.
현우가 이번 일을 통해 계획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눈앞에 잠식된 월드 타워를 파괴하는 것 이상이었다.
다니엘 블랙이 선사한 공포.
그 공포를 완벽하게 부수고 전 세계의 분위기에 반전을 선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저 안에는 우리 록펠러 가문의 혈족과 헌터들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월드 타워를 파괴한다면···.”
“그 정도야 이미 알고 있습니다.”
바보도 아니고.
괜한 희생자를 만들지도 모르는 방식을 현우가 택할 리가 없다.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저는 월드 타워를 밖에서부터 부순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파(內破).
그게 바로 현우의 목표였다.
‘녀석의 의표를 찌른다.’
현우가 파악해둔 미래.
그가 없는 세계의 다니엘 블랙은 오만했고. 자신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단서를 몇 가지나 남겨두었다.
따라서 이미 현우는···.
이 월드 타워 공략전에서 녀석이 사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수단에 대한 대비를 완벽에 가깝게 끝내둔 상황.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녀석의 계획은 걷잡을 수 없는 내리막을 걷게 될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녀석에게 보란 듯이 허드슨 강 위를 비행해 이곳으로 온 이유. 그건, 녀석의 시선을 이쪽으로 끌기 위함이었다.
“이미 제 계획은 시작됐습니다.”
쿠르르─
기괴한 살덩이로 점철된 월드 타워를 뿌리째로 흔들어 버리는 진동. 그와 동시에 멀리 떨어진 월드 타워에 순백의 섬광이 내리 꽂혔다.
세계급 유물 궁니르.
현우의 신화를 담은 필중의 창이 살덩이로 뒤덮인 외벽을 관통하여 내부로 침투할 길을 만들어낸 것.
다니엘 블랙과의 총력전.
현우는 이 자리에서 지금 막, 그 초탄을 쏘아올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