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샤오 가문(3)
“···참으로 우릴 우습게 보는군.”
까드득─
샤오 가문의 가주.
샤오 리는 살벌한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만약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벌써 서넛은 절명했을 만한 분노어린 시선으로 그는 주양태 회장을 비롯한 천무그룹의 일원들을 노려봤다.
“얼마가 오든 이곳은 샤오 가문의 총본산. 너희들은 독사굴 속으로 머리를 들이민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눈빛만으로 사람은 죽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눈앞에서 벌어진 천무그룹과의 본격적인 전쟁 역시도. 살기와 분노만으로 승리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른다.
샤오 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천무그룹과는 언젠가 이렇게 생사결을 내야만 했다. 다만 그 시기가 한참 앞당겨졌고. 준비하려던 계획이 상당히 틀어졌을 뿐.
바라던 결과만 만들어낸다면···.
아무것도 달라질 건 없다.
오히려 시간을 훨씬 아낄 수 있을 테니. 본래 계획보다 조금 더 희생을 늘리고. 조금만 더 손해를 감수하면 그만이다.
“이 자리에서 모두 죽여주마!”
“···어림없는 소리.”
구동철의 한 마디와 함께.
그의 등 뒤에서 도합 열 자루의 검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SS급 이상의 헌터 중에서도 검에 통달한 검사들이 겨우 사용할 수 있다는 어검술 스킬.
그러나 아무리 검에 통달했다고 해도.
고작 하나의 검을 통제하는 것도 기예에 가까운 집중력을 요구한다. 때문에 웬만한 검사들은 어검술을 주력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소모되는 마나와 집중력 모두.
도저히 실제 전투에서 사용하기에 효율적이라곤 할 수 없는 기술이니까.
“주제를 알아라. 독이나 다루는 떨거지들.”
구동철이 턱 끝을 까딱였다.
그의 의지에 따라 열 자루의 명검이 일제히 허공을 갈랐다. 선명한 푸른 강기를 머금은 검신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긴 궤적을 남기며 사방을 휩쓸었다.
“장로 이하는 뒤로 물러나라!”
샤오 가문의 장로 셋이 중후한 마나를 발산하며 어검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분명 실전에서 주력으로 사용하기 까다로운 어검술 스킬이지만. 구동철의 어검술은 다루는 검의 개수부터 움직임까지. 모든 것이 보통을 훨씬 웃돌았다.
샤오 가문의 장로들조차.
변칙적으로 휘둘러지고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어검의 궤적을 간신히 쳐내며. 천천히 구동철을 향해 접근해야 했다.
“동철이 실력이 아직 녹슬진 않았군.”
“우리 동철 씨는 잘 때도 검을 끌어안고 잔다니까요. 아마 앞으로 20년은 더 쌩쌩할 걸요?”
“이 주양태의 오른팔인데. 응당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는 주양태 회장.
그는 어느새 전선에서 물러나 현우와 오수진의 곁에서 전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숨조차 헐떡이지 않으시네.’
현우는 그를 보며 내심 감탄을 삼켰다.
방금까지 홀로 압도적인 무위를 선보인 사람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샤오 가문의 수많은 전력을 홀로 상대했음에도. 그에게는 가벼운 준비 운동 수준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조부님. 정말 이 정도로 충분한 겁니까? 샤오 가문에서 무슨 술수를 사용할지 모를 텐데···.”
“그럼, 당연히 충분하다!”
주양태 회장은
“이깟 일에 천무그룹의 전력을 전부 사용할 것도 없다. 샤오 가문 놈들이야 지금 있는 전력으로도 충분하지.”
“어머, 이유가 그것 뿐은 아니잖아요?”
“으음?”
묘한 미소를 띠는 오수진.
그녀의 뜻 모를 한 마디에 주양태 회장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속뜻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주양태 회장의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이 자리에 영미도 아니고 진석이를 부르게 된다면. 우리 주 회장님 귀염둥이 손주 현우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이 줄어들 테니까?”
“···하!”
“호호, 아니면 말고요.”
쥘부채를 탁 펼치며 입가를 가리는 오수진.
그녀는 현우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감아 보였다. 평소라면 소름이 돋을 행동이었지만. 현우는 신경 쓰지 않고 물끄러미 주양태 회장을 바라봤다.
“정말입니까?”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아까 입은 내상은 완벽하게 회복했나 보군. 젊은 놈이 언제까지 턱 받치고 앉아 구경이나 할 게냐?”
주양태 회장이 눈을 부라렸다.
현우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긴 그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때였다.
‘일단은···.’
전황을 둘러봤다.
천무그룹의 전력이 수로만 따지면 압도적으로 적다. 하지만 구동철과 주영미 두 사람만으로도 전선은 충분히 유지되고 있다.
이윽고 현우의 시선은 주형석 쪽을 향했다.
이 자리에서 주양태 회장 다음으로 강한 자를 뽑으라면 주형석 아니면 구동철이다. 그러나 주형석은 그 평가가 무색하게. 꽤나 소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젠 확신해도 될 것 같네.’
주양태 회장이 중독되었다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밝혔을 때. 현우는 그가 도망가거나 샤오 가문의 편에 붙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형석은 그러지 않았다.
아마 자신의 배신 행각이 드러났으리라곤 생각지 않았거나. 만약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빠져나갈 구석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이겠지.
‘일단 주형석에 대한 처분은 이걸 마무리하고 나서다. 이미 그가 배신자일 지도 모른단 사실은 조부님께서도 알고 계시니까.’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다.
우선 지금 중요한 것은 샤오 가문.
녀석들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뿌리 뽑아 버려야 한다.
현우는 전신에 마나를 일주(一周)시켰다. 비무로 입었던 미약한 내상은 아그네스 그레고리오 덕분에 이미 전부 회복했다.
몸과 기분도 가볍고 상쾌했다.
그때였다.
“독무만상(毒霧萬象)을 사용하라!”
“존명!”
샤오 리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 샤오 가문의 장로들을 필두로 흑사대 인원과 헌터들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방진을 형성했다.
“비루한 독사는 궁지에 몰리면 독니를 드러내는 법이지. 이제야 제대로 샤오 가문답게 싸우려 드는구나!”
어쩌면 전황이 변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양태 회장은 오히려 큰 소리로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샤오 가문이 형성한 방진에서 각종 독과 독강기가 치솟아올랐다. 이내 거대한 운무(雲霧)를 형성한 독기가 파도처럼 이쪽으로 밀려왔다.
주영미와 주형석.
두 사람이 선두에 나서 샤오 가문이 만들어낸 검푸른 운무와 마주했다. 두 명의 혈족이 만들어낸 창염이 거세게 타오르며 대기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격렬한 충돌.
극독으로 이루어진 운무가 순식간에 끓어오르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단 두 명의 혈족이 독무만상 전체를 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딱 그 순간이···.
현우가 다시 전장에 뛰어들기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두 발로 가볍게 지면을 차고 뛰어오른 현우는 스읍 숨을 들이쉬었다.
“덕춘아!”
마나가 실린 외침이 대련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편에서 현우의 부름에 반응한 듯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존재가 있었다.
샤오 가문의 전투원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형의 존재를 보고 기겁하며 물러났다.
“요, 용!?”
아니, 용은 아니었다.
1970년 게이트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여러 영물들 역시 세계 각지의 게이트나 던전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마족인 드래곤을 제외하고.
동양에서 흔히 신수로 전해져 내려오는 용은 아직 모습을 드러낸 바가 없다. 그렇다면 저 영물의 정체는···.
“이무기인가···!”
크노스 경매에서 놓쳤던 영물.
샤오 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천무그룹의 손에 들어간 것까진 알았지만. 설마 녀석들이 부화까지 성공했을 줄이야.
‘빌어먹을 천무그룹 놈들!”
천무그룹의 이무기···.
주덕춘이 샤오 가문을 향해 입을 쩍하고 벌렸다. 독무만상에서 비롯된 검푸른 운무가 녀석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불과 몇 초가 지났을 무렵.
운무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저, 저게 무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샤오 가문의 일원들. 덕춘이는 빠르게 지면을 기어 현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 아이는···.”
“덕춘입니다.”
“아, 안 본 사이에 많이 커졌구나.”
주영미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작은 뱀 크기였을 때엔 귀여웠던 것 같은데. 저렇게 거대해지니까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샤오 가문 본가라. 이것저것 먹을 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먹을 게 많았다니···.”
“여기 도착하자마자 틈을 봐서 덕춘이를 풀어뒀으니까요. 아마 지금쯤 녀석들이 독을 보관하던 창고가 텅텅 비어있을 겁니다.”
“···그, 그렇구나.”
주영미는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가문 회의를 위해 방문했을 때부터. 주현우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예상했던 걸까.
‘아니, 어쩌면 아버지와 사전에 이야기를 모두 끝내두었을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녀가 보기에 주현우는 범상치 않은 아이였다.
대체 무엇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건지. 주영미는 이번 일이 끝나면 한 번 제대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덕춘아.”
“쉭, 쉬익!”
덕춘이가 붉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기는 무지막지하게 커졌지만. 여전히 귀여운 모습이 조금은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현우는 거대해진 만큼, 웬만한 호신강기보다 단단하게 성장한 녀석의 비늘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저놈들 싹 조져.”
“쉭!”
현우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검푸른 독무가 덕춘이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방금 빨아들였던 운무와 비슷하지만···.
한층 정제되고 위험해진 것 같은 느낌.
“브레스···!”
“조심해라! 독이다!”
선봉에 서 있던 흑사대 한 명이 외쳤다.
다른 건 몰라도 샤오 가문의 독과 약에 대한 지식만큼은 세계 제일이다.
아무리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곤 해도. 눈앞으로 밀려오는 끈적한 브레스가 극독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모두 항마단을 사용하라!”
“존명!”
당연히 독에 대한 대비책도 만전.
완전한 해독과 내성을 위해선 독의 종류에 맞는 해독제를 찾아야 하지만. 이런 전투에서 일일이 독의 형태와 종류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독을 다루는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바로 중독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샤오 가문의 모든 전투원은 만능해독제로 사용할 수 있는 항마단을 상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능이라는 것도 결국은 통할 때에나 만능이 될 수 있는 법. 항마단을 섭취하고 안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전투원들의 안색이 하나둘 시퍼렇게 질려갔다.
“수, 숨이···!”
“항마단이 효, 효과가 없다!”
“모두 숨을 최대한 참고··· 커헉!”
경지가 낮은 이들부터 차례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샤오 가문 소속인 이상 항마단을 섭취하지 않더라도 웬만한 독엔 내성이 있다. 그 내성은 직계 혈족에 가까울수록 진하다.
하지만 지금 덕춘이가 내뿜은 브레스는···.
지금까지 샤오 가문에서 제조한 어떤 독과도 판이하게 다른 종류의 독. 당연히 항마단이나 내성 따위로 독기를 중화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가주님···!”
“이런 쓸모없는 놈들!”
샤오 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녀석들에게 대단한 걸 기대한 것도 아니다. 그저 목숨을 바쳐 주양태 회장에게 가는 길을 뚫는 정도만 해내면 그만인데.
‘방계들이고 장로들이고 제 목숨들을 챙기는 데에 급급하군!’
당장 목숨을 바쳐 싸워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든 이번 전쟁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가주 자리와 가문의 권력을 꿰차려는 놈들로 가득했다.
마음 같아선 전원 자리에서 목을 쳐내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았다.
“빌어먹을···.”
누군가 본보기를 보여야 했다.
그렇게 샤오 리가 거대한 독강기를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였다.
“비켜라!”
갈라진 고함소리.
원기왕성한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그 음성엔 분명히 심후한 마나가 담겨 있었다. 샤오 가문의 일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터져나온 붉은 강기가 독무를 밀어냈다.
콰아아─!
뒤이어 한줄기 붉은빛이 전장에 내리꽂혔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흙먼지 속에서. 붉은 안광이 현우가 있는 방향을 향해 번뜩 빛나는 것이 보였다.
“애송이!”
샤오 가문의 권마.
샤오 랑이었다.
주양태 회장과 일합을 나눈 후. 어디론가 날아가 보이지 않는다 싶었는데. 그동안 빠르게 내상을 회복하고 복귀한 모양이었다.
“동방무패···.”
현우의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이미 주양태 회장과 일합에서 패배한 그다. 양심이 있다면 더 이상 동방무패라는 별호는 사용할 수 없겠지.
“아니, 이제는 동방유패라고 불러 드려야 합니까?”
“이놈···!”
샤오 랑의 눈동자 속에 불꽃이 타올랐다.
그는 격노를 숨기지 않으며 성큼 현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걸음에 맞춰 흑사대와 샤오 가문의 전투원들이 전진했다.
“···아까는 운이 좋았지만. 이번엔 확실하게 그 숨통을 끊어주겠다!”
샤오 랑이 붉은 강기를 흩뿌리며 현우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