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48
48화 라비린토스(1)
“던전 공략권이요?”
마야 카일리가 되물었다.
솔직히 그녀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카일리 가문은 당당히 세계 7대··· 아니, 이제는 6대 가문 중에 하나지만. 그들은 무력 면에 있어서는 큰 명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약 사업으로 중국을 넘어 세계에 손을 뻗었던 샤오 가문처럼. 카일리 가문은 크노스 경매와 각 가문과 국가 간의 중계 무역을 통해 세력을 키운 경우.
“하지만 카일리 가문이 공략권을 소유한 던전 중. 천무그룹이 탐낼만한 것은 없을 텐데요.”
자체적인 던전 공략 팀이 있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외부에 카일리 가문의 무력을 나타내기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 용도의 수단일 뿐. 본업이라고 하긴 어려운 분야다.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손에 들어올 던전 공략권 하나를 양도받고 싶다는 겁니다.”
페르쿠나스의 천둥석.
현우의 손에 들어온 최초의 신화급 아티팩트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선. 2년 후, 로마노프 가문의 영역에서 개방되는 던전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우가 알기로···.
이 던전은 로마노프 가문과 카일리 가문.
두 가문이 힘을 합쳐 공략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카일리 가문의 최고 정예 공략팀이 전멸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해당 던전의 사전 조사 등급은 ‘S+’였다.
낮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카일리 가문의 최고 정예가 전멸할 정도는 절대 아니다. 하물며 로마노프 가문과 함께 공략을 나선다면 더더욱···.
녀석들이 추후 인류를 배신하고.
카일리 가문의 정예가 부재한 틈을 타. 샤오 가문이 카일리 가문의 라비린토스를 습격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현우가 기억하는 결과는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아무리 카일리 가문에 던전 공략의 난이도를 낮출만한 키(Key) 아이템이 있었다고 해도. 고작 S+등급은 로마노프가 도움을 요청할 만한 던전 난이도가 아니었지.’
이 역시도 음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알고 있는 입장에서. 녀석들이 꾸미는 음모에 숟가락을 얹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어떤 밥상을 차려놓았던 간에.
이미 해당 던전의 보스와 공략법을 알고 있는 현우로서는, 놈들의 예상을 넘어 전부 혼자 퍼먹고 올 자신이 있었다.
“어떻습니까?”
“일단 제가 생각하기엔 굉장히 좋은 조건이긴 한데···.”
던전 공략권 하나.
그것도 지금 가진 것이 아닌, 미래의 것을 하나 내어주고 가주의 목숨을 구한다.
물론, 사람 목숨에 가치를 매길 수 없겠지만. 어떤 면으로 생각해봐도 카일리 가문에 이득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은 조금···.”
마야 카일리는 주저하는 눈빛이었다.
현우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은 눈치는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현우와 함께 크노스 섬으로 돌아가기엔 걸리는 점이 있는 모양이었다.
“당장은 아니어도 됩니다. 어차피 마음이 급한 쪽은 제가 아니니까요. 마야 님이 편하실 대로 하시죠.”
“우선 이번 일 같은 경우엔 카일리 가문 내부에서 회의를 거쳐야 할 것 같아요. 크노스 경매랑 다르게. 이건 외인(外人)을 저희 가문의 심부로 초대하는 일이 될 테니까요.”
이해가 어렵진 않았다.
지금까지 카일리 가문이 자리를 잡고 있는 라비린토스는 일부만이 크노스 경매를 위해 공개되어 있을 뿐.
아직까지 카일리 가문이 사용하고 있는 심부에 외부인을 초대한 전례는 없었다.
심지어 중독된 가주가 기거하고 있는 곳이니. 아마 라비린토스의 최심부에 해당하는 곳까지 들어가야겠지.
“이틀 정도만 시간을 주세요.”
“상관없습니다.”
“가문 내부의 사정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원로원을 설득하는 대로 바로 모셔올 사람을 보낼게요.”
“뭐, 감사하실 것까지야.”
현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돕겠다는 것도 아니고. 정당한 거래를 할 뿐입니다. 감사 인사는 가주님께서 완치된 이후에 해주시죠.”
인사 뿐만 아니라 보너스도 얹어주면 좋고.
현우는 마야 카일리에게 들리지 않게 뒷말을 삼켰다. 설마 가주의 목숨을 살린 생명의 은인인데. 그런 보너스쯤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두둑하게 챙겨주겠지.
‘이번 기회에 카일리 가문의 인심이 어느 정도인지 볼 수 있겠네.’
큰 기대는 품지 않고.
일단 작은 기대 정도만 품는 현우였다.
***
“기다리고 있었어요.”
약속대로 이틀 후.
마야 카일리는 사람을 보내 현우를 크노스 섬으로 초대했다. 여럿이 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엔 류한나 한 명만을 동행했다.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돼요.”
“저번에 그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진 않는 겁니까?”
“그건 크노스 경매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한 거죠. 저희 카일리 가문이 이용하는 워프 게이트는 따로 있답니다.”
하긴, 구분해둘 필요는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걷기를 잠시···.
“가주 대리!”
어디선가 성난 노성이 들려왔다.
목소리의 발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니. 회색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노년의 사내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루카스 원로님, 손님 앞입니다.”
“그래서 더 문제인거요.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타 가문의 사람을 라비린토스 심부까지 들이겠다니···!”
루카스라고 불린 사내가 핏대를 세웠다.
그는 상당히 감정이 격양되었는지. 얼굴을 붉히며 가주 대리인 마야 카일리를 향해 언성을 높혔다.
“내 그렇게 반대를 했거늘! 가주 대리께선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확인되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시려는 거요!”
“이미 원로원 과반의 찬성을 받았을 텐데요. 원로원의 반대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는 말씀이네요.”
“반대도 과반에 가까운 의견이었소!”
가주 대리에게 대놓고 으르렁대는 루카스.
아마 꼴을 보아하니. 카일리 가문 내에서도 꽤나 꺼드럭댈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노인인 모양이었다.
“저건 누구죠?”
현우는 류한나에게 물었다.
“카일리 가문의 원로입니다.”
“아, 그런가요.”
전생에서 본 적도 없는 노인이였다.
애초에 카일리 가문 자체가 라비린토스를 습격한 샤오 가문에 의해 전멸했으니. 내 기억에 저런 노인이 남아 있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기도 했다.
“그런데 원로라고 해도. 가주 대리한테 별로 격식이 없는 느낌이네요. 오히려 막 대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현재 가주가 투병 중이기 때문에. 카일리 가문의 대소사 대부분은 원로원에서 맡아 해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야 님이 가주 대리라곤 해도 가문 내의 영향력은 그들만 못할 겁니다.”
“아하.”
그런 거였나.
한 마디로 수면 아래에서 권력 다툼을 하고 있다는 거다. 원래는 가주인 테오 카일리가 교통정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제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상태일 테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하나 둘 씩 야심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쪽도 서로 끈끈한 편은 아니네요.”
“자세히 파고 들면 대부분의 가문이 그렇습니다. 저희 천무그룹은 주양태 회장님께서 정정하시기에 위계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주형석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긴 하지만. 현우는 굳이 그걸 언급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나 씨는 다른 가문 사정에 되게 자세하시네요.”
“도련님의 오른팔이 되기 전엔 천무그룹 정보부대 소속이었습니다. 당시에 알아두었던 정보들도 있고. 최근에도 계속해서 손에 닿는 정보는 수집해두는 편입니다.”
오른팔?
현우는 의아한 눈으로 류한나를 봤다. 그녀는 약간은 뻔뻔한 표정으로 현우와 시선을 마주쳤다.
“설마, 아니었습니까?”
“···뭐, 그럼 오른팔 하시죠.”
“감사합니다.”
의기양양하게 웃는 류한나.
“굳이 확인받으실 것까지도 없는데.”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녀의 웃음은 곧, 약간 씁쓸한 미소로 바뀌었다.
“요즘 도련님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시는 것을 보니. 제가 가장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는 분야는 이 정도가 전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딱히 그런 생각은 안 가지셔도 되는데. 저는 한나 씨가 지금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제 나름대로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원하시는 정보가 있으면 제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든든하네요.”
현우와 류한나가 훈훈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저쪽의 분위기는 조금 더 험악해지고 있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어 가주님의 용태가 급격히 악화라도 된다면. 천무그룹과 불화의 불씨만 키울 뿐이오. 가주 대리께서 그걸 감당하실 수 있겠소이까!”
“실패하지 않으면 되죠.”
“지금 가주님의 상태를 보고도 아직 그런 말씀이 나오는 거요! 천무그룹에서 얻어온 해독제가 마지막 희망이라고 하지 않았소!”
“···마지막 희망이었다니. 지금 그 말씀이 루카스 원로님의 진심인가요?”
마야 카일리는 황당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눈빛엔 황당함 뿐만 아니라 은근한 분노의 기색도 엿보였다.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었다.
“진심을 떠나 사실을 말하는 거요. 괜한 희망을 좇으면서 타 가문에 빚을 지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단 소리요.”
“현재 가주 대리는 저, 마야 카일리입니다. 아무리 당신이 가문의 원로라고 해도. 제 결정에 반대하기 위해선 원로원 절반의 동의가 필요하죠.”
“···흥!”
노인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마야 카일리의 말에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진 못했다. 카일리 가문의 내규가 그러했으니까.
“가주 대리, 당신은 어디까지나 가주님의 혈육일 뿐. 조만간 진짜 차기 가주를 정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결정권은 원로원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마시오.”
“아버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신다면. 그럴 일은 없을 거에요. 그리고 가장 먼저 루카스 원로님의 처우부터 결정하시겠죠.”
“새파랗게 어린 것이···.”
결국 루카스는 제대로 감정을 드러냈다.
마야 카일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젊은 나이긴 하지만. 그녀 역시 가주 대리라는 자리를 허투루 꿰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꼭 아버지께서 이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바라는 것 같네요. 루카스 원로님의 태도가 원로원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에요.”
“하! 그건 협박인가?”
코웃음을 치는 루카스.
그를 향해 마야 카일리는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실 거에요.”
“해독제로도 불가능했소. 헛된 희망을 품기보다는 앞으로 카일리 가문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편이 나을 거요.”
“아버지가 카일리 가문의 미래죠.”
“말이 안 통하는군.”
휘휘 고개를 젓는 루카스.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가주님의 용태가 악화되는 것은 시간문제겠지. 나 또한 가주님께서 하루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길 바라지만. 세상이 늘 원하는 대로 돌아가진 않소.”
마야 카일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노기 어린 눈빛으로 루카스를 쏘아 보았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도 불구하고 루카스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쪽이 천무그룹에서 오신 분이로군.”
“예, 맞습니다만.”
“내 면전에서 언성을 높인 것은 사죄하겠소. 이번 일이 잘못되어 혹시라도 천무그룹과 불화가 생길까 지레 걱정이 되어 그랬을 뿐이오.”
다행히 그는 현우에겐 저자세로 나왔다.
“가문 내부의 민감한 일이니. 제가 한발 물러나 이해하겠습니다.”
“넓은 아량에 감사드리오. 한데···.”
루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여 카일리 가문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가주 대리의 억지에 어울려 주는 거라면. 굳이 이렇게 위험을 무릅쓸 필요까진 없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의 의미요.”
흘끔 마야 카일리를 곁눈질한 루카스.
“만일 부득이한 사정으로 카일리 가문의 권력을 내가 쥐게 된다면. 천무그룹과는 지금보다 훨씬 긴밀한 관계를 추구해 나갈 생각이오.”
그는 은근한 눈빛으로 현우에게 속삭였다.
“그럼 잘 생각해보시오.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편이 천무그룹과 당신에게 큰 이득으로 돌아올지 말이오.”
“그런 말씀이었군요.”
뒤는 더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현우는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죄송해요.”
루카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진 후. 마야 카일리는 현우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대신 사죄했다.
“고개를 숙이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제 부탁으로 방문하신 거니. 손님께 폐를 끼친 것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에요. 이후로는 이런 일이 절대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쓸게요.”
현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이 많으실 것 같군요.”
“···보시다시피 카일리 가문은 내부적으로 혼란한 시기에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마야 카일리.
외인 앞에서 가문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내 버린 셈이니. 그녀의 얼굴엔 수심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루카스 원로님은 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 저렇게 노골적으로 차기 가주 자리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고 계시고요.”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을 하려 든다. 한국에 그런 속담이 있는데. 딱 그런 상황인가 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엔 사자일지도 모른다.
카일리 가문의 혈사자(血獅子).
그게 현재 투병 중인 카일리 가문의 가주. 테오 카일리의 전성기 시절 별호였으니.
“···그런 셈이네요.”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마야 카일리는 불안한 표정이었다. 루카스 원로가 현우에게 했던 제안이 가까이 서 있던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혹시 주현우 님께선···.”
“걱정 안 하셔도 거래를 없던 일로 하진 않을 겁니다.”
어느 쪽이 이득일지.
이미 계산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기왕 손을 잡을 거라면 여우보단 호랑이···.
아니, 사자가 훨씬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