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38
238화 도쿄 워 프로젝트(5)
며칠 동안 양측이 세부 조항을 조율하며 밀고 당기기를 한 끝에,
대장전 장소는 신주쿠 외곽, 신축될 주일 한국 대사관 앞으로 결정됐다.
그리고 당일.
웅성웅성.
두 사람을 위해 설치된 특별 무대 주변으로, 먼저 온 사람들이 오늘의 주인공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이길까?”
“당연히 일본 최강인 무사시지.”
“글쎄. 신주쿠 레인저도 보통이 아니던데···.”
입회인으로 참석한 다른 도시의 영주들.
방송국 기자들과 카메라맨들.
양측에서 선별된 초인들과 관계자들.
여러 정치인들, 그리고 한국의 외교사절단이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그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고, 하늘 위에도 촬영용 드론들이 날아다녔다.
도쿄를 넘어, 일본 열도 전체가 이 싸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 대결에서 지는 쪽이 항복한다.’
그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즉, 승자가 도쿄를 차지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당사자들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전쟁의 승패를 가리게 될 두 초인이 도착했다.
“무사시다!”
“일본 최강!”
먼저 도착한 것은 무사시 & 이자나미 연합이었다. 두 영주가 리무진에서 내리자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찰칵찰칵찰칵!
무사시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포토존에 섰다. 그는 이런 광대 짓에 어울리고 싶지 않았으나, 총리 측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군.”
짧게 중얼거린 무사시는 인터뷰 요청도 무시하고 그대로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가는 류노스케도 기분이 영 좋지 않아 보였다.
무사시가 사라진 후, 곧바로 대형 밴 한 대가 입구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신주쿠 레인저다!”
“우와아아아!”
커다란 환호성은 관중석보다 뒤쪽에서 터져 나왔다. 경기장 밖에 신주쿠 시민들이 몰려와 있었다.
“꼭 이겨야 돼!”
“박살 내 버리라고!”
마치 아이돌을 따라다니는 극성 팬들 같았다. 피켓이며 플래카드를 흔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바짝 굳은 레인저들이 포토존 위에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레인저 대표로 나선 레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인터뷰를 했다.
“레드 레인저. 오늘 경기에 나서는 소감은 어떠신가요?”
“바, 반드시 이길 생각입니다.”
“상대는 일본 최강이라고 알려진 남자인데요. 필승 전략이 있나요?”
“열심히 수련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신주쿠 거리를 내달리며 ‘오늘도 피스!’를 외치던 레드였지만, 이렇게 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부담감의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오늘 경기에 나서는 사람이 바로 레드였다.
‘어쩌다가 내가···.’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잠시 후면 일본 최강의 초인과 싸우게 될 운명이었다.
꾸욱···.
레드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정면의 카메라를 향해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일본의 평화는 저희 신주쿠 레인저가 지켜내겠습니다! 피스!”
***
[10분 후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우와아아아아!
도시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대기실 밖에서 터져 나왔다. 조용히 명상 중이던 무사시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전쟁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도시는 아직 전쟁 중이었다. 서로의 의견이 조금만 어긋나면, 그대로 총칼이 휘둘러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분위기는 뭐란 말인가.
마치 프로레슬링 빅 매치라도 열리는 것처럼, 상대는 커다란 야외 경기장을 준비해놓고 그들을 끌어들였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승낙하긴 했지만···.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대장전.
다른 표현으로는 일기토(一騎討)
양쪽 진영에서 가장 강한 초인이 한 명씩 나와 승패를 가리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무사시가 느낀 황당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와 일기토를 하자고?”
믿기지 않아서 몇 번이나 되물었으나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적들은 이 한 번의 싸움으로 전쟁을 끝내길 원했다.
모든 것이 그들에게 유리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왜 질 게 뻔한 싸움을 거는 거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함정이었다. 자신을 함정으로 끌어들여 제거하려 한다는 의심.
하지만 공식적인 서류가 몇 차례 오가면서 그런 의심은 사라졌다.
저들은 개방된 장소에서, 수많은 증인들 앞에서 일기토를 치르기를 원했다.
즉, 여기에 음모가 끼어들 가능성은 희박했다.
고민 끝에, 무사시와 류노스케는 적의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다.’
그리고 오늘.
미리 통보를 받기는 했지만, 설마 놈들이 이 정도로 무대를 화려하게 꾸며놨을 줄은 몰랐다.
“감히 날 구경거리로 만들다니···.”
“젠장. 뭐가 불만이야.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잖아?”
옆에 있던 류노스케의 말이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계속 저기압이었다.
무사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단순한 놈. 자기가 대표로 나서지 못해서 불만이로군.’
두 사람은 동등한 관계로 동맹을 맺었지만, 오늘 이 싸움에 대표로 나선 것은 무사시였다.
‘일본 최강’이라는 타이틀.
제 잘난 맛에 사는 류노스케도, 실력만큼은 무사시에게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순순히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젠장. 바다였으면 내가 최강인데···.”
투덜거리는 류노스케의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무사시에게 으르렁대며 말했다.
“만약에라도 지면 죽여 버리겠어.”
피식.
무사시의 입가에 비웃음이 맺혔다.
퍼스트 게이트 이후로, 이 사내는 무언가와 싸워 패배해 본 적이 없었다.
츠츠츠츳···!
무사시가 마력을 끌어 올리자 방 안에 그의 존재감이 가득 찼다. 숨이 턱 막혀오는 압박감에 류노스케가 이를 악물었다.
“같은 영주라고 해서, 너와 내가 같은 실력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
류노스케는 불만스레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방을 나가버렸다.
-쾅!
“조용해져서 좋군.”
고요해진 방 안에서, 일본 최강의 사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같은 시각, 신주쿠 레인저의 대기실은 혼란 그 자체였다.
“어,어, 어어어 어떡하지!?”
하야토(레드)는 공황장애라도 온 사람처럼 호흡을 가쁘게 쉬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당장이라도 졸도할 것만 같은 낯빛이었다.
“무사시, 상대는 그 무사시라고! 괴수들을 두부처럼 썰어버리는 초인이라고! 내가 어떻게···.”
달달달 떠는 하야토가 불쌍해 보였는지, 린이 그의 어깨를 잡고 자리에 앉혔다.
“진정해 오빠. 블랙 스승님 이야기 못 들었어? 오빠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했잖아.”
“그, 그렇지만···.”
레드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로 대기실 안을 둘러봤다. 그들의 스승, 블랙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블랙···.”
어젯밤이 마지막 훈련이었다. 훈련이 끝난 후, 블랙은 레인저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오늘이 너희와 만나는 마지막 날이다. 더 이상 날 보는 일은 없을 거다.]‘네? 블랙? 이렇게 갑자기···.’
‘갑자기 왜요!’
당황하는 레인저들에게 블랙은 더 이상 너희에게 가르칠 게 없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사시와 대결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레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레드. 너 자신을 믿어라. 지금 네 실력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다.]‘무리예요. 차라리 블랙이 싸우는 게···.’
블랙이라면 일본 최강이라는 무사시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야토는 확신했다.
그러나 블랙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선 의미가 없어. 이 싸움은 너희가 끝내야 돼.]‘블랙···.’
하야토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믿어준단 말인가.
차마 그 앞에서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야토는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끄덕였고, 블랙은 웃으며 떠났다.
그리고 이제 그는 없다.
“다시는 블랙을 못 보는 걸까···.”
“아마도···.”
“······.”
하야토의 말에, 린과 사카이의 표정도 숙연해졌다. 대기실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그린(신)은 웃음을 꾹 참았다.
“린, 사카이, 신···.”
하야토는 멤버들과 한 명씩 눈을 맞췄다. 그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했다.
“혹시 오늘 내가 죽더라도, 섣부르게 복수하려고 하지 마. 내 복수보다 중요한 건 일본의 평화···.”
“진짜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퍼억!
린이 휘두른 주먹이 하야토의 복부에 제대로 꽂혔다. 하야토는 한동안 허리를 숙이고 꺽꺽댔다.
“컥! 야! 무슨 짓이야! 조금 있으면 싸우러 가야 되는 사람한테!”
얼굴이 시뻘게져서 소리치는 하야토에게, 린은 픽 웃으며 말했다.
“방금처럼 덜덜 떠는 것보단 지금이 훨씬 나은데?”
“끙···.”
하야토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린에게 한 대 맞으니 긴장이 좀 풀린 것은 사실이었다.
“하야토. 우린 널 믿는다.”
사카이가 다가와 하야토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그는 묵언수행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대신 말보다 행동이 빨랐다.
퍼억!
“컥···. 너는 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는 하야토에게, 사카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긴장 풀라고.”
“린한테 맞고 다 풀었어 인마!”
세 사람은 곧 평소처럼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활발한 성격으로 팀을 이끄는 하야토.
과묵하지만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카이.
팀의 막내지만, 때로는 엄마처럼 오빠들을 챙겨주는 린.
그 셋이 만들어내는 따듯한 분위기를, 신은 한 걸음 뒤에서 빙긋 웃으며 바라보았다.
‘좋은 사람들이야.’
임대인 아저씨가 왜 이 사람들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약했을 때나 지금이나 그들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 막내. 이리 와. 시합 가기 전에 안아보자.”
하야토가 신을 불러서 꽉 안았다. 사카이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고, 린은 아예 뺨을 마구 부볐다.
“귀여워···.”
“우리 막내가 귀엽긴 하지.”
“으···.”
소년은 멤버들 중에서 블랙 다음으로 강했지만, 엄격한 스승님 같은 느낌이 강한 블랙과 달리, 그린은 모두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대기실로 진행요원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3분 후에 무대로 올라가셔야 합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후우···.”
하야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심호흡을 길게 했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청년은 표정을 굳혔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공포에 굳은 표정이 아니었다.
분명한 각오를 다진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다녀올게.”
헬멧을 쓴 하야토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우와아아아아!
레드 레인저의 등장에, 무대가 떠나갈 듯 커다란 함성이 쏟아졌다.
***
특설무대 위에 두 사내가 마주 섰다. 관중석을 꽉 채운 사람들이 각자가 응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연호했다.
“무사시! 무사시!”
한 명은 각성과 동시에 일본 최강으로 군림한 사내.
퍼스트 게이트가 일본을 덮쳤을 당시, 무사시가 단신으로 수많은 괴수들을 학살한 전설은 아직도 종종 회자되고 있었다.
“레인저 레드! 레드! 레드!”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청년은 최근 급격히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신성. 수도권 전역을 누비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희망을 전파하는 정의로운 히어로.
마이크를 든 사회자의 질문에, 총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편 좌석에 앉은 류노스케는 미간만 찌푸릴 뿐 일어나지도 않았다.
“······.”
[저기, 동의를···.]“동의한다.”
대신 대답한 것은 무사시였다. 사회자는 잠시 그와 류노스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눈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양측 간에 공식적인 서류는 이미 오갔다. 게다가 증인도 이렇게 많았다. 질문은 그냥 의례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럼 도쿄의 운명을 건 결투, 지금 시작하겠습니다!]사회자가 뒤로 물러나고, 레드는 검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상황이야 어쨌든, 한 명의 검사로서 당신을 존경합니다. 오늘 좋은 승부를···.”
“애송이.”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무사시가 카타나를 빼 들었다. 스르릉. 칼날이 햇빛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빛났다.
무사시가 성큼 간격을 좁혀오며 말했다.
“넌 오늘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