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43
243화 거대 괴수 사냥(1)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아직은 좀 어색하군.’
무사시는 뺨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떼어 냈다. 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후우···.”
잘려 나갔던 오른팔이 다시 붙던 모습이 아직도 그의 뇌리에 생생했다.
‘앞으로 평생 외팔이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몇 시간 전, 이계에서 왔다는 블랙이라는 녀석이 잘려나간 자신의 오른팔을 들고 왔을 땐, 무슨 고약한 장난이라도 치는 건가 싶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개소리 말고 꺼···.”
옆에 있던 류노스케가 미처 반응할 시간도 없었다.
휘익!
순식간에 다가온 블랙은 두 사람을 떼어놓고-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팔의 절단면에 잘려나간 팔을 갖다 댔다.
그리고 품에서 꺼낸 어떤 물병 같은 것을 열어 절단면 위에 액체를 붓자,
스르륵···.
마법처럼 상처가 아물고 팔이 붙었다.
지금은 이렇게 멀쩡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계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치료약이라고 했지. 큰 은혜를 입었어.”
무사시는 손가락을 하나씩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그 광경을 목격한 후, 블랙이 이계에서 온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
해발 2,000미터. 후지산 중턱.
차로 올 수 있는 가장 높은 장소에, 도쿄의 주요 세력이 뭉친 군대가 바리케이드를 펼쳤다. 산 아래에도 속속들이 병력이 집결하고 있었다.
병력이 전부 이곳으로 모인 이유는, 고개를 들어 후지산 정상을 올려다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르르!!!
하늘 위에 뚫린 붉은 게이트에서, 원근감을 무시하는 거대한 괴물이 게이트를 찢고 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찌이이이익···.
괴수는 게이트 밖으로 앞발을 내밀어, 사납게 마구 휘저어댔다. 놈이 그럴 때마다 이곳까지 강풍이 몰아쳤다.
‘놈이 도쿄에서 저런 짓을 했다면···.’
도시의 건물이 다 박살 나고 땅이 뒤집어졌을 것이다. 놈은 살아있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크워어어어어어-!!
천지를 찢어발기는 포효에, 마력이 없는 병사들은 귀를 틀어막고 고통스러워했다. 귀마개를 하고 있어도 그 정도였다.
괴물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이트를 이곳으로 옮겨서 천만다행이지···.’
블랙은 도쿄에 있던 게이트의 위치를 후지산 정상, 그 위의 하늘로 옮겼다.
정확히는 신의 능력으로 한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자세한 부분까지는 알지 못했다.
“저거 곧 나오겠는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무사시는 검 자루에 손을 올리며 돌아섰다.
흠칫한 류노스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어색하게 웃었다.
“같은 편끼리 너무 날카롭게 굴지 말라고. 팔은 움직일 만해?”
“네놈···!”
그 순간 무사시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을 잘랐던 레드보다 류노스케가 더 싫었다.
스르릉.
카타나를 반쯤 뽑으며 무사시가 말했다.
“죽기 싫으면 다시는 내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이런 찜찜한 상태에서 전투가 시작되면 너나 나나 뒤통수가 불안해서 제대로 못 싸울 것 같아서 말이야.”
“······.”
화해하자는 뜻이었다.
무사시가 레드에게 패배한 직후, 류노스케는 그를 배신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무사시의 목을 틀어쥐고 협박하고 있었다.
중간에 나타난 블랙이 아니었다면, 무사시는 지금도 류노스케에게 붙잡혀 협박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뻔뻔한 놈···.”
“그건 나도 아는데. 지금은 일단 협력해야 될 거 같아서 그래.”
류노스케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우리도 저렇게 안 되려면 말이야.”
그곳에는, 한동안 실종됐었던 만다라의 영주 키요시가 서 있었다.
병자처럼 수척해진 얼굴의 키요시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크흑흑···.”
한때 도쿄의 북쪽을 지배했던 영주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사죄하고 있었다. 두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흘렀다.
그러다 키요시의 두 눈에 잠깐 초점이 돌아왔다.
“저, 정말인가요? 오늘 적을 많이 죽이면···. 정말 용서해 주시는 거죠?”
그리고 뭔가 대답을 들은 듯, 키요시는 미친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네, 네, 네! 할게요! 잘할게요!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 그리고 계속되는 혼잣말.
그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녀석···.”
“망가졌군. 철저하게.”
한때 자신들과 동급으로 평가받던 남자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으면 저렇게 되는 거지?”
“모르지. 실종됐던 녀석이 땅에서 솟은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던데···. 듣기로는 동생도 상태가 비슷하대.”
“······.”
“······.”
잠시 침묵.
무사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케다는 어떻게 됐는지 들었나?”
“그 자식이야 원래 이럴 때 안 나서잖아. 또 어디 숨어있겠지.”
“글쎄···.”
무사시는 고개를 돌려 오로치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장소를 바라봤다.
다른 어느 곳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가 보였다.
그 비결은 초인으로 이루어진 트라이브의 간부들이었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무리하다가 다치지 마라, 이 자식들아!”
“무슨 일 있으면 전부 우리한테 말해! 도와줄 테니까!”
오로치의 간부들은 열심히 뛰어다니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그들은 초인인데도 민간인 병사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마치 그러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이.
다른 곳의 병사들은 오로치의 병사들을 부러운 듯 바라봤다.
영주가 부재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기강이 잘 잡힌 모습.
‘어쩌면 다케다는 숨은 게 아니라···.’
망가진 키요시의 모습을 보고 나자, 그 모습도 심상치 않게 보이는 무사시였다.
‘누군가에게 제거됐을지도.’
무사시의 추측은 절반만 맞았다.
과거 오로치의 영주였던 다케다 노부는 죽었지만, 대신 대인의 권속으로 다시 태어난 겐지가 그곳에 있었다.
도쿄를 사 등분 해 지배하던 네 명의 영주들.
하나하나가 강력한 세력을 이루고, 개인이 지닌 힘 또한 막강했던 초인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모습은,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류노스케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살아남아야지. 그러니 지난 일은 잊고 다시 협력하자고. 그래야 훗날을 도모할 거 아냐?”
“···멍청한 놈. 우리한테 도모할 훗날이 있을 것 같나?”
한숨을 내쉰 무사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쁘게 돌아다니는 초인들, 병사들, 그리고 진지 구축을 위해 이곳까지 올라온 민간인 기술자들이 보였다.
그들 중 누구도, 도쿄 4대 트라이브의 영주인 두 사람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저곳을 봐라.”
무사시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신주쿠 레인저가 있었다.
‘블랙도 저기에 있군.’
블랙. 그가 이 모든 작전의 중심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의견을 구했고, 이야기를 나눴으며, 계획이 진행되었다.
블랙을 중심으로 레드, 블루, 옐로도 바쁘게 움직였다. 그들에게서는 어떤 후광이 나는 것만 같았다.
무사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시대는 끝났다. 난 네놈 뒤통수에 관심 없으니, 계속 추해지고 싶으면 너 혼자 해라.”
“빌어먹을···.”
류노스케를 이를 갈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무사시는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이 피를 흘리며 찢어지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괴수가 게이트 밖으로 얼굴을 반쯤 내밀고 버둥거렸다. 게이트가 점점 넓어지며 녀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곧 괴수가 밖으로 나온다!”
“전투 준비-!!”
다들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대공포가 하늘을 겨냥하고, 자주포의 포신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초인들은 마력을 끌어 올리며 곧 시작될 싸움에 대비했다.
다들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저 괴물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무사시는 마음이 호수처럼 고요한 것을 느꼈다.
“···차라리 편하군.”
그는 오늘 ‘일본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잃었다.
그리고 이 싸움이 끝나면, 그가 일군 세력은 정부에 자연스레 흡수될 것이다.
더 이상 신경 쓸 것이 없기 때문일까.
항상 굳어있던 어깨가 무척이나 가볍고, 머리는 맑았다.
지금 무사시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녀석이 보여준 마지막 검. 정말 멋졌지.’
오른팔을 되찾은 후부터, 레드가 펼친 마지막 검술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검술. 정말 저 레드라는 녀석이 펼친 것이었을까? 그 순간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개입한 것 같았는데···.’
무사시의 시선은 자연스레 블랙을 향했다.
‘설마?’
의문이 들었으나, 이제는 어찌 됐건 좋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진 싸움을 무효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으면···. 혼자 산속에 들어가 수련이라도 할까.’
무사시.
역사가 원래대로 흘러갔다면, 결국 모든 경쟁자를 꺾고 일본을 통일했을 사내.
하지만 역사는 바뀌었다.
무사시는 일본을 얻지 못했다.
대신, 그는 예정된 운명대로였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경지를 향해 한걸음 내디뎠다.
‘더 강해지고 싶다. 다시는 지지 않을 정도로···.’
결과적으로 어떤 것이 더 행복한 미래가 될지는, 결국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무사시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려면···. 일단 오늘 살아남아야겠지.”
산처럼 거대한 괴수가, 기어이 하늘을 찢어발기고 지상에 강림했다.
―콰아아아아앙!
***
수십만 톤에 달하는 질량을 가진 생명체라는 건, 가볍게 제자리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재앙을 일으킬 수 있다.
아바돈이 지상에 떨어진 순간,
-콰드드드드득!
반경 수 km의 크레이터가 발생할 정도로 막대한 압력이 발생했다.
그 압력에 후지산의 지형 자체가 바뀌었다. 거목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나가고, 바위가 산산조각 났다. 흙먼지가 수백 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산을 뒤덮었다.
마계의 대괴수는 등장만으로 자연재해를 일으켰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치솟은 흙먼지 속에서 괴수가 포효했다.
“전 포대 사격 준비!”
“전투기 출격시켜!”
지휘관들은 혼란을 수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들도 두려운 마음에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후우우우웁-!
시야를 뿌옇게 가리던 흙먼지가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아바돈이 주변의 흙먼지를 들이마신 것이다.
“뭐, 뭐가 저렇게 커···.”
산 정상에 모습을 드러낸 아바돈은 100미터를 훌쩍 넘는 크기의 괴물.
전체적으로 드래곤과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상체가 훨씬 더 크게 발달했고, 날개는 퇴화해 흔적만 남아 있었다.
온몸은 갑각류의 외골격처럼 검은 비늘로 두껍게 뒤덮여 있었다. 정수리에서 척추를 타고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까지, 상어 이빨 같은 가시가 빽빽하게 돋아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아바돈이 고개를 치켜들고 포효하자 산이 통째로 흔들렸다. 산사태가 일어나 대량의 토사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런 미친···!”
“온다! 대비해!”
파도처럼 밀려 내려오던 토사는 산 중턱에 이르러 천천히 멈췄다. 미리 설치한 진법과 바리케이드 덕분이었다.
“휴우···.”
“살았다···.”
한 번 막았으니, 이제 공격할 시간이었다.
괴수가 등장했을 때부터 조용히 상황을 주시하던 블랙이 말했다.
[갖고 있는 거 전부 쏟아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