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290
290화 마계로(3)
차원 연합군-마왕성 본부.
다양한 인종과 종족으로 구성된 백여 명의 인원이, 마왕성 내부의 모처에 모여 있었다.
“후우···.”
“하아···.”
곳곳에 긴장한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 모두 차원 연합군 전체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긴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마계와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선발된, 100인의 결사대였다.
‘우리가 성공해야만···.’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다.’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었다.
깊게 심호흡을 하거나, 무기를 손질하거나,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거나 옆 사람과 가벼운 농담을 나눴다.
하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막는 것도 고작이었는데, 우리가 먼저 저쪽으로 쳐들어간다니···.’
‘예언자님의 말씀이니까 믿지만, 그래도 영 미친 짓 같긴 해.’
다들 입 밖으로는 못 꺼내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합군은 지금까지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싸움을 해왔다.
몇 달 전부터 방어선을 구축하고, 익숙한 지형에서 전투 훈련을 했다. 보급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은 적진 한복판으로 쳐들어가야 한다.
마계(魔界)
괴수와 악마들이 우글거리는 땅.
마왕들이 아가리를 벌린 채, 그들의 살점과 영혼을 뜯어먹기 위해 기다리는 지옥.
‘아마도···. 우리는 살아서 못 돌아오겠지.’
‘각오는 이미 했다. 내 희생으로 가족과 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의 눈빛에 비장함이 흘렀다.
100인의 결사대.
그들은 모두 이 작전에 스스로 지원한 이들이었다.
“여러분은 가장 위험한 작전에 투입될 겁니다.”
“마계에 가서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유서를 미리 써 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연합군의 수뇌부는 이번 작전의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보안상의 이유라며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결사대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이 장소에 나온다면 자세히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모든 위험성을 알고도 이 자리에 나온 이들이었다.
두려움과 불안함에 숨이 가빠져 올지언정,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우리가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장내에 비장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잠시 후 파리한 안색의 청년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는 대인이었다. 대인을 본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한동안 안 보이신다 했더니···.”
“예언자님···.”
대인의 명성과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다.
자신의 수명과 맞바꿔 미래를 보고, 그 미래를 이용해 수많은 재앙들을, 그리고 지금은 마왕들의 침공으로부터 수많은 생명을 지키고 있는 성인(聖人).
차원 연합군 내에서는 물론이고, 지구, 지구와 연결된 수많은 차원에도 대인과 관련된 소문이 하루도 쉬지 않고 퍼져 나갔다.
“다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이 자리에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는 대인이 이렇게만 말해도,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알아서 감격하는 지경이었다.
“당신의 희생에 비하면 저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죽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덕분에 대인은 편했다.
일부 광신도들 같은 눈빛들은 좀 부담스러웠지만.
‘함께 죽긴 누가 죽어?’
대인은 큼큼, 헛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다들 듣고 오셨겠지만, 여러분은 가장 먼저 마계에 투입될 겁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임무에도 투입될 겁니다.”
“이 작전은 무척 중요하기에, 여러분 전원에게 드래곤을 재료로 제작될 최상급 디바인 슈트와 무기가 지급될 예정입니다.”
“아, 장비는 나중에 반납하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이 할 개고생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보너스로···. 농담인데 아무도 안 웃으시네요. 그럼 그냥 반납하실래요?”
사람들 사이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번져나갔다.
대인은 씩 웃으며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중에는 백창수, 왕구호를 비롯한 초인들도 있었고, 가이아 대륙과 무림에서 인연을 만든 얼굴들도 있었다.
얼굴만 알고 잘은 모르는 얼굴들도, 회귀하기 전에는 이름만 들어봤던 대단한 영웅들도, 아예 낯선 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대인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거 부담 무지하게 되네.’
하지만 그런 부담감도 이제는 꽤 익숙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대인은 농담도 섞어가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주도했다.
“전쟁이 끝나고 이곳으로 돌아오면, 여러분은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게 될 겁니다. 전쟁을 끝낸 100인의 영웅이니 뭐 그런 이름으로요. 그럼 나중에 늙어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자랑할 수 있겠죠?”
그때 누군가가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살아서 돌아오길 바라지 않습니다! 목숨을 바쳐 이 전쟁을 끝내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동조했다.
“저희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그런 거로 동기부여 해주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광스럽게 죽겠습니다!”
대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저기, 진정들 좀 하시고 제 말 좀···.”
‘정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자꾸 재수 없게 같이 죽자고 하지 말고!’
결국 대인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러분들 중 대부분은 멀쩡히 살아서 돌아올 겁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부와 명예와 권력을 다 누리게 될 거고요. 물론 저도 살아야죠.”
그것은 모두에게 하는 말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대인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제가 그런 미래를 봤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예언입니다.”
“예···?”
“하하···.”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대인을 바라보던 사람들 사이에, 이내 허탈한 웃음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저희를 안심시키려고···.”
“그런 거짓말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덕분에 긴장은 많이 풀렸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인이 자신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라니까 그러네.”
대인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장비를 지급받은 100인의 결사대는 맹훈련에 들어갔다.
그사이, 차원 연합군의 모든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가진 기술력을 총동원해 두 가지 병기를 완성했다.
“자, 이게 바로 완성된 롱기누스야.”
아브락사스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히야···.”
대인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의 기억 속에 있던 롱기누스는 수십 미터 길이의 황금빛 창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보이는 완성품에는 은은한 붉은 빛이 함께 감돌고 있었다.
붉은 용을 사냥해 얻은 드래곤하트, 그리고 뼈, 비늘, 발톱 등을 사용해 더욱 강력한 무기로 거듭난 것이다.
창날 부분에는 다섯 개의 신의 보석이 오망성을 이루며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동력원이 불안정했던 문제는 드래곤하트로 완벽하게 해결했어. 이제 사용 도중에 폭발할 가능성은 제로야. 그게 전부인 줄 알아? 그 빨간 녀석이 남긴 뼈로 구조 자체를 강화했다고. 특히 그 녀석 척추랑 두개골이 꽤 쓸 만해서···.”
“잠깐만.”
신이 나서 설명을 하는 아브락사스에게, 대인은 조금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 걔 죽을 때 꽤 심란해하지 않았어?”
묵시록의 붉은 용 사냥이 끝난 후, 차마 동족이 도축당하는 모습은 못 보겠다며 먼저 자리를 떴던 아브락사스였다.
그랬는데, 지금은 눈빛이 새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애처럼 초롱초롱하다.
“그건 그거고. 이미 죽어버린 걸 활용하지 못하는 게 바보 아냐?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드래곤 사체를 실컷 만져보겠어?”
‘역시 이 녀석도 제정신은 아니야.’
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거나 아브락사스가 열심히 노력해준 덕분에, 롱기누스는 대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기로 완성되었다.
“어쨌든 고마워. 이걸로 승산이 두 배는 올라간 것 같아.”
“당연하지. 누가 만든 건데.”
아브락사스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아티팩트를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그리고 그게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녀를 기쁘게 했다.
“사실 처음에는 저렇게 커다란 무기를 네가 어떻게 쓸지 의문이었어. 저게 인간이 휘두를 만한 사이즈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대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롱기누스는 길이만 해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무기, 아니 무기보다는 병기란 말이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물론 이기어검처럼 사용한다면 사용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러기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인이 롱기누스를 저렇게 크게 제작해달라고 부탁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 와서, 저 괴물을 보고 나서 납득해 버렸지.”
아브락사스는 고개를 돌려 반대편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장영신이 기술자들과 함께 거대한 전투로봇에 달라붙어 있었다.
성창 롱기누스와 한 쌍으로 제작된 최종 병기.
거신병 기가스(Gigas)
수십 미터 크기의 체고를 지닌, 사람과 거의 같은 형태의 관절을 지닌 전투로봇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인간의 근육처럼 복잡하게 생긴 내골격 위로 붉은색 특수 장갑이 장착되고 있었다.
저쪽도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빨간 용 그 녀석. 정말 비늘 하나 발톱 하나까지 아낌없이 주고 갔네. 게다가 롱기누스에 쓰고 남은 드래곤하트까지 장착했으니···.”
아브락사스는 곧 완성될 기가스의 힘을 가늠해 보았다.
드래곤의 뼈, 힘줄, 비늘을 재료로 삼아, 여러 차원의 과학, 마법, 기술이 집대성된 최강의 마도 공학 병기.
그런 괴물이 롱기누스까지 들고 휘두른다면···.
“···그냥 생각 안 하는 게 낫겠어.”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그녀는, 아까부터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 표정으로 로봇을 바라보는 대인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아?”
“당연히 좋지.”
대인은 로봇의 가슴 부분에 장착되고 있는 두꺼운 장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라는, 대인의 영어 이름 스펠링의 약자가 큼직하게 양각돼 있었다.
대인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말했다.
“드디어 내 로봇이 생겼으니까!”
“···말을 말자.”
어쨌거나, 연합군의 비밀병기가 모두 완성되었다.
***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대인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마법통신기를 꺼냈다.
잠시 후, 통신기 너머에서 보랏빛 로브를 뒤집어쓴 황금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골의 뻥 뚫린 눈구멍에서 시퍼런 귀화가 타올랐다.
[언제쯤 연락이 올까 기다렸거늘···. 드디어 준비가 끝난 건가?]바사고의 목소리에는 들뜬 기색이 느껴졌다. 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은 준비가 끝났다. 그쪽은?”
[이쪽도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마계와의 전쟁을 끝내려는 대인,
바알과 아가레스를 끌어내리고 마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려는 바사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그들은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철저하게 그 사실을 숨겼다.
덕분에 그들은 서로 간에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럼 시작하자고.”
그들은 동맹을 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