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
3화 얼마나 줄 거예요?
바닥을 나뒹군 들개가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컹! 컹컹컹!
그러나 한 대 얻어맞은 것이 경계심을 일깨웠는지, 녀석은 곧바로 덤벼들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놀라서 굳어 있는 꼬맹이에게 말했다.
“방해되니까 빨리 엄마한테나 가.”
“고, 고맙습니다!”
“말만 고맙다고 하지 말고 초코바라도 하나 있음 주던가.”
괘씸한 꼬맹이는 초코바는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나는 들개들이 꼬마를 쫓아가지 못하도록 앞을 가로막았다.
컹! 컹컹컹컹!
대여섯 마리의 붉은 점박 들개가 나를 포위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이 녀석들이 자꾸만 영양탕으로 보였다.
“뭐, 옛날엔 가끔 잡아먹기도 했으니···.”
컹컹컹컹!
내 말에 기분이라도 나빠졌는지 놈들이 일제히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들었다.
나는 들개들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했다. 그리고 적당히 힘을 실어 빠루를 휘둘렀다.
퍼억! 퍽! 퍽퍽!
일단은 몸 컨디션을 점검하기 위한 준비운동이었다.
내 몸이긴 해도 20년 전의 것이니, 적응하는데 어느 정도는 시간이 필요했다.
힘, 유연성, 체력.
전부 다 회귀하기 전인 마흔 살 때보다 형편없이 낮았다.
아무래도 트레이닝이 전혀 안된 몸이니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나은 점도 있었다.
“무릎 안 아픈 거 하나는 좋네.”
공사장 추락사고로 20년 가까이 삐걱대던 무릎이 너무 쌩쌩해서, 점프는 물론이고 전에는 통증을 참아야 했던 동작들도 자연스럽게 가능했다.
휘익!
단숨에 들개 한 마리의 옆으로 돌아간 나는 녀석의 관자놀이에 빠루를 박아 넣었다.
푸-욱!
쇠붙이의 날카로운 부분이 들개의 눈알을 파고들어가 뇌까지 헤집었다.
그때 박힌 빠루를 채 뽑아내기도 전에 좌우에서 들개 두 마리가 덤벼들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점프해 두 녀석의 이빨을 피하고, 몸을 회전시켜 양발을 차올렸다.
퍼억! 퍼억!
튕겨나가는 들개들. 그러나 빈자리는 금세 다른 들개가 채웠다.
컹컹컹컹!
나는 들개들에게 포위당해 한동안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핏물로 시뻘겋게 물든 빠루를 미친놈처럼 휘두르고, 시민을 공격하려는 들개가 보이면 돌을 던져 어그로를 끌었다.
촤르르륵.
왼손에는 망할 놈의 손목시계를 풀어서, 너클처럼 쥐고 들개의 콧등을 후려쳤다.
깨앵! 깨갱!
손목시계는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몬스터의 코뼈를 부러뜨리고도 흠집하나 없었다.
정신없이 싸우다보니 새 쟈켓이 여기저기 긁혀서 엉망이 됐다. 그나마 몬스터 가죽으로 만든 거라 완전히 찢어지지는 않았지만.
뭐,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입어야지.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남은 놈들의 숫자를 가늠했다.
“열 마리···. 대충 반 정도 남은 건가.”
슬슬 숨이 가빠져오기 시작했다. 이런 저질 체력 같으니. 게다가···.
“하아. 진짜 배고프다.”
일어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더니 배고파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빨리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남은 마나를 끌어올릴 때였다.
위이이이이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 고개를 돌리자 경찰버스가 오는 것이 보였다.
버스에서 완전무장한 전투경찰들이 뛰어내려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경찰입니다! 시민여러분은 저희의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경찰은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동시에 붉은 점박 들개 무리를 포위했다. 물론 그 안에는 나도 있었다.
“후우. 빨리도 오시네.”
한숨을 내쉰 나는 들개들이 혼란에 빠진 틈에 포위망에서 빠져나갔다.
나머지는 경찰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쩝. 이거 꽤 비싼 건데···.”
여기저기 긁힌 쟈켓을 살펴보는데, 경찰간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초인님! 시민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뭐···.”
“소속과 성함을 알려주시면 추후 정부에서 보상금이 지급될 겁니다.”
소속이라.
혼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초인들도 있긴 하지만, 여러 면에서 소속이 있는 것이 편했다.
전리품 처리, 세금 관리, 그리고 정보력 면에서 개인이 단체를 능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뭐, 나야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임대인. 소속은 아직 없어요. 아직 초인등록도 안 했고요.”
“네?”
당황한 표정으로 되묻는 경찰간부. 아마 당연히 내가 길드에 소속된 초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말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조금 크게 해서.
“제가 오늘 각성했거든요.”
“···오늘 말입니까?!”
“네. 몇 시간 안 됐어요.”
경찰간부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든다. 그는 나와 내가 만들어 놓은 광경-붉은 점박 들개들의 시체-를 번갈아보더니 중얼거렸다.
“대단하시군요. 각성 당일에 이런 실력을···.”
사실은 20년 전에도 한번 했었거든.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겸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상금은 바로 제 계좌로 넣어 주시면 되요. 아, 지금 바로는 못 받죠? 우선 연락처랑 계좌 남겨드리면 되나요?”
“아, 네!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경찰간부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줬다. 아마 몇 푼 안 되겠지만, 그래도 보상금 챙겨준다는데 받아야지.
“저기···.”
경찰간부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벌써 짐작이 갔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다른 시선들도 마찬가지.
많은 시선이 군침을 흘리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소속이 없다.’ 라는 말 때문이겠지.
그럼 좀 더 애를 닳게 해줄까.
나는 경찰간부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죄송한데 제가 좀 바빠서요.”
“잠시면 됩니다! 드릴 말씀이···.”
“그럼 이만.”
나는 그대로 바닥을 박찼다.
타닷!
그리고 빠르게, 하지만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사람들이 충분히 알 수 있는 속도로 현장에서 벗어났다.
***
임대인이 현장에서 떠난 뒤.
경찰간부는 곧바로 상부에 보고를 올렸다.
“새로운 각성자를 발견했습니다. 이름 임대인. 현재 소속은 없으며, 연락처만 확보하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그들은 전화기에 대고 빠르게 말했다.
“여보세요. 거기 피닉스 길드죠?”
“각성한지 얼마 안 된 초인을 봤는데요.”
“나이는 스무 살 정도로 보이고요.”
“실력이 상당한 것 같아요. 혼자서 서른 마리나 되는 몬스터를···.”
초인은 귀하다.
국가 기관, 기업의 후원을 받는 길드들은 항상 초인을 필요로 했다.
때문에 새롭게 각성한 초인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치열한 영입경쟁이 벌어졌다.
특히 길드들은 영입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평소에도 많은 광고를 하고, 각성한 초인을 제보하기만 해도 사례금을 지급했다.
그 결과가 만들어낸 것이 이 광경이었다.
“방금 종로시청 쪽으로 갔어요!”
“근데 사례금은 언제까지 줘요?”
“연락처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현장 목격자들에 의해 ‘임대인’이라는 이름이 서울에 있는 모든 길드로 퍼져나갔다.
새로운 각성자.
여기에 그가 몬스터를 상대하면서 보여준 실력이 엄청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뛰어난 루키의 등장!
길드끼리 경쟁이 붙는 건 당연했다.
즉, 몸값이 마구 올라간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당사자는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다.
*
*
*
지이잉! 지이잉!
나는 조금 전부터 쉬지 않고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봤다. 전부 모르는 번호였다.
“자식들. 빠르기도 하네.”
내 입장에선 급할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회귀한 시기는 ‘퍼스트 게이트’가 발생하고 2년 후.
마나와 [개성]을 가진 초인들이 군대와 경찰을 대체하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길드들이 세력을 갖추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던 시기.
몬스터 대응 매뉴얼은 아직 한참 부족하고, 제대로 된 초인훈련 기관은 아직 생기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또 뭐가 있더라···.”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이 시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떠올려 봤다.
“초인 범죄조직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도 대충 이때쯤 부터였고···.”
훗날 등장하는 중 몇 가지는 이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딴 건 몰라도 재앙은 잘 피해 다녀야지.”
재앙에 잘못 말려들면 그냥 개죽음이다.
뭐, 예전에도 나랑 상관없이 막아냈던 것들이니, 굳이 신경 안써도 되겠지.
그때 식당이 눈에 보였다. 작은 국밥집.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 국밥 두 그릇을 시켰다.
배가 든든히 차오르자, 앞으로 뭘 어떻게 할지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 은퇴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었다.
최대한 빨리 은퇴해서···.
“평생 놀고먹으면서 게으르게 사는 거지.”
그냥 혼잣말이었는데, 옆 테이블에 있던 아저씨가 그 말을 들었는지 혀를 찼다.
“쯧. 하여튼 요즘 젊은 것들은 고생할 생각을 안 한다니까.”
“···뭐? 고생을 안 해? 아저씨가 20년 동안 미래에서 좆뺑이 치고 온 내 심정을 알아?!!”
-라고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외치는 대신 나는 주방 이모를 불렀다.
“이모. 여기 소주 하나 주세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렀다.
은퇴 후의 내 인생도 저렇게 푸르고 맑을 줄 알았는데.
“하아. 날씨는 존나 좋네.”
어쨌든, 중요한 건 다시 은퇴하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은퇴플랜부터 세워야 한다.
다행히 내겐 미래의 지식이 있고, 남들이 모르는 정보도 가지고 있었다.
돈, 건강, 힘, 기반, 인맥.
행복한 은퇴 라이프를 위한 필수요소들.
예전에는 20년이나 걸렸지만 지금이라면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늦어도 3년 안에는 은퇴하는 거야.”
그렇게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혹시 임대인 씨 맞으신가요?”
고개를 돌리자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남자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가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저는 로얄패밀리 길드의 매니저 김길수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 말을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데, 내 바로 앞에서 새하얀 리무진이 멈춰 섰다.
리무진에서 내린 것은 미모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살짝 비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임대인님 맞으시죠? 화이트하우스 길드의 스카웃담당자 백영희라고 해요. 혹시 시간 되시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왼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워리어스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아무리 봐도 조폭으로 보이는 사내가 내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온갖 길드에서 보낸 사람들이 나를 포위하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순서를 두고 싸운다.
“비켜! 내가 먼저 왔어!”
“헛소리! 내가 먼저 왔거든!”
“아니거든!”
“맞거든!”
장날의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그들에게 말했다.
“다들 입 다무세요. 한 마디라도 더하면 그 길드는 절대로 안 들어갈 겁니다.”
“······.”
언제 떠들었냐는 듯 합죽이가 되는 매니저들. 나는 그들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말하긴 뭐하니까, 일단 따라오세요.”
나는 가까운 카페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나를 제외하고 비싸게 차려입은 남녀가 우르르 들어오자, 카페주인은 무척 당황한 눈치였다.
“여기 가장 비싼 걸로 주세요. 디저트도 적당히 주시고···. 계산은 누가 하실래요?”
내 한마디에 서로 돈을 내겠다고 난리가 났다.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카드 여기 있습니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떡밥을 잔뜩 뿌리고 온 보람이 있네.
나는 가장 긴 테이블의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길드 매니저들은 초조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들 어떻게든 날 자기네 길드로 데려가고 싶겠지.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건 자칫 악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말하기 편하게 해줘야지.
나는 다리를 반대로 꼬며 말했다.
“긴말 할 것 없고 계약금부터 불러 봐요. 얼마나 줄 거예요?”
내 말에 매니저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