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불꽃의 주인(2)
며칠 전.
“너희들 항복 안 하면! 전부 혼내준다!”
전장의 중심에서 앳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는 것처럼 우습게 들리기도 했지만, 그 목소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 중에서 웃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저, 저 미친···.’
‘바알님에게 반란을 일으킨 정신 나간 마왕!’
‘마왕토끼 니바니바!’
마족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하늘을 불사르고 있는 마왕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르륵!
자기 몸보다 수십 배는 커다란 불꽃 날개를 활짝 펼치고, 무시무시한 불꽃을 쏟아내는 마왕이 정체는···.
가슴에 빨간 리본을 단, 평균보다 조금 더 통통한 마계토끼다.
‘정말 마계토끼라니!’
그것만큼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되는 마족들이었다.
“엣헴!”
나름대로 위엄 가득한 포즈라고 생각하는지, 니바니바는 두 손을 허리에 척 얹고 콧잔등을 찡그리며 지상의 적들을 노려보았다.
“난 경고했어! 분명히 항복하라고 말했어! 어? 이제 난 책임 안 진다아?”
경고를 마친 니바니바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후웁···!”
머리가 뒤로 젖혀지고, 안 그래도 통통한 가슴과 배가 두 배 이상 부풀었다.
흡사 갓 쪄낸 찐빵처럼 변한 니바니바는 하늘까지 젖혔던 머리를 다시 앞으로 가져오며, 들이마셨던 숨을 있는 힘껏 내뱉었다.
-화르르르르륵!
그 숨결이 불꽃으로 변해 지상에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쾅!
바니바니 브레스-릴리가 직접 이름을 지었다-가 전장을 휩쓸었다. 일거에 수천의 마족이 소멸하고,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린 땅에서는 시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히이익!”
“괴, 괴물!”
마족들은 니바니바의 가공할 불꽃에 압도당했다. 적아를 막론하고, 그녀는 전장에서 가장 화려한 존재였다.
“클클. 저 아이는 마계에 온 이후로 무섭게 강해지는구려.”
“우리가 거의 할 일이 없을 정돈데?”
병력을 이끌고 뒤따라온 천무극과 아브락사스는 느긋한 표정으로 하늘 위의 릴리를 올려보고 있었다.
“나도! 나도 언니처럼 날고 싶어!”
웬디는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릴리를 부러워했다.
아브락사스가 소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나중에 나는 법 가르쳐줄게.”
“진짜지?”
“대신 앞으로 이 언니 말 잘 들으면.”
“응! 잘 들을께!”
피식 웃으며 웬디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아브락사스는, 다시 고개를 돌려 릴리를 바라보았다.
-콰콰콰콰콰쾅!
압도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화염비가 지상을 불태우고, 화마가 전선을 휩쓸었다.
적군의 선두에 있던 햇병아리 마왕들은 몸에 들러붙은 불을 끄며 허겁지겁 물러나기에 바빴다.
[퇴각, 퇴각하라-!]덕분에 아브락사스, 천무극, 웬디는 다각요새화된 마왕성의 성벽 위에서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이제 여기만 정리하고 대인에게 합류하면 되겠어.”
“클클. 기대되는구려. 쭉정이밖에 없는 이곳과 달리···. 그쪽에는 강한 마왕이 많다고 하더군.”
릴리 일행은 마계의 최북단에 위치한 벨리알의 영지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마계의 북부를 평정하고 있었다.
그들에 맞서는 적들은 바알에게 충성을 맹세한-사실상 바알이 마왕으로 임명한 것과 다름없는-햇병아리 마왕들의 연합이었다.
스스로 권좌에 올라선 자와 만들어진 권좌에 앉은 자.
그 실력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콰콰콰콰콰쾅!
[커허억!]폭발과 함께 통구이가 된 마왕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릴리는 기절한 마왕을 허공섭물로 들어서 뒤쪽으로 집어 던졌다.
“아스! 걔도 내 부하로 삼을 거니깐 치료해줘!”
“아주 간호사 취급이네.”
아브락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새카맣게 탄 마왕을 받았다.
의식을 잃었는지 몸만 간헐적으로 떨고 있는 불쌍한 녀석에게 응급치료를 하고, 구속마법을 걸고, 대충 감옥에 집어넣어 두라고 시켰다.
천무극은 기꺼운 듯 웃었다.
“클클. 이런 자비심까지 보이니 이미 훌륭한 제왕의 자질이 보이는구나!”
“···저걸 자비라고 해도 되는 거야?”
릴리는 미래의 부하가 될 마왕들을 수집하는 중이었다.
이 싸움이 끝나면, 방금 전 끌려간 마왕의 이마에도 불꽃의 낙인이 새겨질 것이다.
“아스! 하나 더!”
그사이 반송장 하나가 더 늘었다. 아브락사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날아오는 마왕을 허공에서 낚아챘다.
이렇듯 니바니바의 엄청난 활약 덕에, 그들을 따르는 마족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반면 적들은 전투 내내 전전긍긍하며 물러나기 바빴다.
니바니바의 인형 속에서, 릴리가 눈을 빛냈다.
‘기다려 아저씨! 금방 가서 도와줄게!’
“이야아압!”
의욕이 솟구친 릴리는 혼자서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상대가 방심하기를 숨죽이면 기다려왔던 마왕 하나가 움직였다.
휘익!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존재는 새의 형상을 한 마왕이었다.
마계 서열 40위.
천공의 지배자, 라움.
-촤라락!
날개를 활짝 펼친 라움은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니바니바를 향해 날아갔다.
[주제도 모르는 햇병아리! 반란은 오늘로 끝이다!]-쐐애애액!
드래곤의 비늘도 충분히 찢어버릴 수 있는 발톱으로 상대의 심장을 겨냥하고, 날카로운 부리는 상대의 목을 노렸다.
라움은 그동안 니바니바가 상대해온 햇병아리 마왕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이 반란을 제압해 바알 님의 심려를 덜어드려야 한다!’
라움은 바알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 중 하나였다. 반란군의 수괴 니바니바를 제압하기 위해, 주변의 햇병아리 마왕들을 규합한 것도 그였다.
‘허나 이 순간을 위해 계속 내 존재를 숨겨 왔지!’
라움은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며 속도를 더 높였다.
-쐐애애액!
과거 벨리알의 마왕성을 접수한 니바니바는 마계 북부를 휩쓰는 중이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바사고만큼이나 큰 골칫거리가 될 터였다.
‘단숨에 수십 조각으로 찢어주마!’
순식간의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
라움의 특기는 비행.
하늘을 나는 속도에 관해서라면, 그는 10좌에 속하는 마왕들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전력의 속도로 날아가자 순식간에 니바니바의 모습이 가까워졌다.
경악한 듯 커다란 눈을 부릅뜬 것이 보였다.
마왕 라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오른 순간, 니바니바는 반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닭이다!”
[···누구더러 닭이란 말이냐!]새의 형상을 한 라움.
그 자신은 스스로를 매나 독수리에 더 가깝다고 여겼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지구의 조류인 닭과 훨씬 더 닮아 있었다.
특히 머리의 왕관과 같은 벼슬이 매우 닮았다.
츄릅···.
그 모습을 본 릴리의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치킨! 못 먹은 지 너무 오래됐어!”
[죽여주마!]둘의 거리는 이미 지척이었다. 라움은 힘을 집중해 이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이 한 번의 기습으로 끝낸다!’
릴리도 온몸의 불꽃을 끌어모았다.
“릴리!”
“갈!”
아래에서 기습에 놀란 아브락사스가 마법을 캐스팅하고, 성벽을 박찬 천무극이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두 마왕의 충돌이 먼저였다.
휘익- 툭.
라움의 부리가 릴리의 손바닥에 닿은 순간,
휘리릭!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소녀는 이화접목의 수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공격을 흘리고, 반대쪽 손으로 라움의 부리를 움켜쥐었다.
“응? 왜들 그래?”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릴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아브락사스와 천무극을 바라봤다.
깜빡이는 릴리의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얘는 다른 애들보다 조금 세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
“너···.”
“클클···.”
아군인 두 사람조차 말문을 잃을 지경인데, 당사자인 라움이 겪은 충격은 훨씬 더 컸다.
‘방금 내 공격을 그토록 쉽게 막다니!’
설령 마계의 10좌라고 해도 방어가 쉽지 않았을 공격을, 이 마계토끼는 장난하듯이 한 손으로 잡아챘다.
덜덜덜···.
부리가 잡힌 채로 덜덜 떠는 라움의 눈동자에, 태연한 마계토끼의 모습이 비쳤다.
[이 괴물···!]라움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 하찮은 마계토끼 따위가, 자신이 영혼을 바쳐 충성하는 군주 바알에게 느꼈던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을.
[너 따위가 바알 님에게 대적할 수 있을 것 같으냐!]그래서 더, 강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너의 반란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마계를 지배하는 분은 오직 바알 님 한 분뿐! 너는 처절한 대가를 치르고 소멸당할 것이다!]“아니거든?”
패배가 불러온 공포는 마왕을 광기에 빠지게 만들었다.
[크흐흐.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너 하나일 줄 아는가? 네가 가진 모든 것, 네가 총애하는 수하들, 네가 아끼는 자들···! 너에게 소중한 존재들이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사냥될 것···.]그 순간 릴리의 두 눈에 불꽃이 치솟았다.
“아니라고!”
소녀는 함부로 나쁜 말을 떠드는 마왕에게 응징을 가했다.
조금 감정적이 되어서, 조금 더 과하게 힘을 썼다.
“아무도 안 죽어! 내가 마왕이 돼서 못 하게 할 거니까!”
-화르르르르륵!
[크아아아아악!]불길에 휘감긴 라움은 고통에 몸부림치다 이내 축 늘어졌다.
“얘는 못 살리겠는데?”
라움의 상태를 본 아브락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마침 잘됐어. 바사고한테 갖다 줄 선물이 하나쯤 필요했으니까.”
그녀는 라움의 시체에 회복마법을 건 후, 그나마 알아볼 만해진 얼굴을 잘라 아공간에 넣었다.
라움이 당한 후, 이어진 전투는 싱거울 정도로 쉽게 끝났다.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니바니바 만세!”
“만세에-!”
마족들이 앞다투어 엎드려 니바니바의 이름을 외쳤다. 햇병아리 마왕들은 당황해서 도망쳤고, 일부는 사로잡혔다.
마계의 절대적인 지배자는 바알.
그 규칙이 조금씩 깨져나가고 있었다.
“왕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왕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고위 마족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마족은 강자를 경배하고 두려워하는 종족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마계토끼의 모습을 한 릴리였다.
-쿵! 쿵!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니바니바에게 사로잡힌 마왕들도 충성을 맹세했다.
치이익···!
그들의 이마에 있던 바알의 낙인이 지워지고, 그 위에 새로운 불꽃 낙인이 찍혔다.
릴리는 기뻤다.
‘이제 아저씨한테 갈 수 있어!’
그러나 아직 기뻐하기엔 좀 이른 모양이었다.
[어머. 내가 조금 늦었나 봐?]“!!”
멀리서 들려온 뾰족한 목소리에 릴리, 아브락사스, 천무극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휘익!
동시에 돌아본 세 사람의 시야에, 검은 드레스 차림의 미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또각또각.
늘씬한 키에 피처럼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
어깨선이 돋보이는 오프숄더 드레스에 아찔한 킬 힐.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운 목소리.
[빨리 온다고 왔는데. 설마 벌써 당해버렸을 줄은 몰랐지 뭐야.]-화르르륵!
바닥에서 불꽃이 피어올라 그녀의 드레스를 감쌌다.
검은 드레스 위로 넘실거리는 불꽃이 더해지자 매혹적이고도 화려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웃으며 코를 가볍게 찡그리는 표정조차 무척이나 매혹적이었다.
“아···.”
그 순간, 릴리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적발의 미녀를 바라봤다.
갑자기 든 어떤 ‘이상한 느낌’ 때문이었다.
[···음?]파이몬 또한,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내 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