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15
315화 마지막 전투(3)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냐!]마계 서열 4위의 마왕, 가미긴은 자신을 가로막은 상대를 본 순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가미긴은 이 전장에 자신의 적수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바사고야 어차피 아가레스가 상대할 테고, 그 외의 적들은 신경 쓸 것도 없는 송사리들뿐이니까.
‘차라리 이 전쟁에서 아가레스와 바사고가 같이 죽어버렸으면 좋겠군. 그럼 내가 마계의 2인자가 될 텐데···.’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며, 은밀한 계획까지 세워볼 여유까지 있었다.
눈앞에 바사고가 나타나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이리로 온 것이 그렇게 놀라운가?]바사고는 오늘따라 더 불길하게 느껴지는 보랏빛 마력을 온몸으로 흘렸다.
그가 지팡이를 허공에 휘젓자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지며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뼈들이 급속도로 자라나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저적!
뼈들이 서로 맞물리며 점점 거대한 형태를 완성해갔다.
그워어어어어어-!
긴 목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온 마계에 공포를 퍼트리는 짐승.
바사고의 마왕성 ‘본 드래곤’이었다.
어느새 본 드래곤의 머리 위에 올라선 바사고가 한껏 오만하게 말했다.
[한번 볼까? 애송이 가미긴의 마법이 얼마나 늘었는지 말이야.] [언제까지 네가 최고인 줄 아느냐!]바사고가 본 드래곤을 소환할 때, 가미긴도 주문을 외우고 완드를 거칠게 흔들었다.
지이이이잉-!
본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하늘에 거대한 소환진이 생겨나고, 거대하고 미끄덩한 무언가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르르르륵···.
몸을 일으킨 그것은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형상의 괴물이었다.
수십 개의 머리와 팔다리가 잘못 이어붙인 봉제 인형처럼 모든 방향을 향해 존재했고, 미끄덩한 육체에서는 산성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가미긴의 마왕성,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이었다.
[언제 봐도 흉하군. 너에겐 심미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예전부터 네놈의 그 점이 가장 싫었다! 수십 개의 차원에서 가장 강력한 종족들만 모아 만든 내 예술을 모욕하다니!]어보미네이션의 어깨에 올라선 가미긴이 돌격을 명령했다.
수십 개의 다리를 꾸물꾸물 움직인 어보미네이션이 압도적인 질량으로 본 드래곤을 덮쳤다.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쾅!
산과 산이 부딪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두 거체가 충돌할 때마다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비명을 질렀다.
마왕들도 그 위에 서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바사고와 가미긴.
마계 최고의 마법사라 불리는 두 마왕.
그들은 각자의 마왕성 꼭대기에서 경쟁하듯 주문을 외웠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지상의 시체들에게 닿았다.
쩔그럭, 쩔그럭.
그르르르르···.
바닥에서 해골과 시체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숫자는 순식간에 수백, 수천, 수만을 넘어섰다.
두 마왕은 각자가 불러낸 죽음의 군대에 같은 명령을 내렸다.
[[전부 죽여 없애라!]]전장을 가득 메운 언데드들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전장에는 비명도, 고함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서로를 찌르고, 베고, 부수는 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호수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피처럼, 전장을 잠식한 죽음이 점점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아가레스와 니바니바의 싸움처럼 격렬하지는 않지만, 두 마왕의 전장은 그 범위가 가장 넓은 전장이 되었다.
[가미긴이여. 제법 강해졌구나.]바사고는 자신의 공격을 수월히 막아내는 가미긴을 바라보았다. 그의 특기인 흑마법과 저주, 독, 공간 왜곡 등이 대부분 통하지 않았다.
[바사고여! 네 마법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가미긴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마계 최강이자 최고의 마법사는 바사고였다.
가미긴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열 3위와 4위.
두 마왕의 위치는 고작 한 계단 차이지만, 그것이 극복하기 거의 불가능한 차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열등감.
그렇기 때문에 가미긴은 철저하게 바사고에 대해 연구했다.
푸르르르!
가미긴이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외쳤다.
[나는 네 모든 마법을 알고 있다! 너의 뻔히 보이는 노림수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다!]그 순간, 쏟아지던 바사고의 공세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노림수라···. 네가 내 노림수를 알고 있다고?] [크크크크···.]가미긴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트리자 바사고의 몸에서 불길한 보라색 기운이 더욱 뭉클뭉클 피어났다.
힐끗 아가레스와 니바니바가 싸우는 전장을 본 가미긴이 입을 열었다.
[뻔하지 않느냐. 저 애송이 마왕을 미끼로 삼아 아가레스에게서 시간을 번 다음, 우선 나를 빠르게 제거할 속셈이었겠지. 그다음 저 애송이 마왕과 힘을 합쳐 아가레스를 제거할 생각이었잖느냐!] [······.] [크하하하! 너는 이 가미긴을 너무 얕보았다. 나는 너를 상대로 승리할 수 없을지언정, 결코 쉽게 당하지도 않는다. 이 마계에서 너를 가장 잘 아는 마왕이 나다!]자신의 추측을 확신한 가슴을 활짝 펴고 외쳤다.
[저 애송이는 아가레스의 손에 갈가리 찢어질 것이고, 분노한 아가레스는 이리로 달려와 네 뼈를 산산조각 낼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내 승리지! 네 노림수와 정반대로 되는 것이다. 크하하하하!]가미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가미긴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크크. 정곡을 찔려서 아무 말도 못 하는군. 조급한가? 조급하겠지. 그러나 나는 너를 상대로 절대로 방심하지 않을···.] [아가레스는 오지 않는다.] [···뭐?]바사고는 분한 듯하면서도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마왕이여. 저걸 봐도 모르겠느냐. 아가레스는 오지 않는다. 아니, 오지 못할 것이다.]바사고의 한심한 시선을 느낀 가미긴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아가레스가 싸우고 있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화르르르륵!
-콰콰콰콰콰!
치솟아 오른 불꽃과 아가레스의 검은 마력이 대등하게 맞서고 있었다.
[설마···.]그 순간 가미긴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가정이 떠올랐다.
바사고가 아가레스가 아닌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온 이유.
그것이 노림수가 아니라면···.
[설마 저 애송이가 너보다 강하다는···.] [그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스산한 목소리로 바사고가 가미긴의 말을 끊었다.
작전 회의에서 니바니바가 아가레스를 상대하겠다고 했을 때, 바사고는 속으로 니바니바를 비웃었다.
‘멍청한 것. 힘에 대한 과신이 너를 파멸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애송이가 아가레스와 대등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자, 바사고는 초조함에 휩싸였다.
만약 니바니바가 아가레스를 이긴다면?
바알을 권좌에서 끌어내린다 한들, 그 자리에 앉는 마왕은 자신이 아닐 것이다.
[···가미긴이여. 네가 나를 잘 안다고 했느냐?]마계 최강의 마법사의 몸에서 뭉클뭉클 보라색 기운이 흘러나와 주변을 잠식했다.
[무슨···!]그 숨이 막힐 듯한 기세에 가미긴은 움찔하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주인의 위험을 감지한 어보미네이션이 여러 개의 팔로 그를 감쌌다.
[오늘 너는 무지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본 드래곤의 새하얀 뼈에 보라색 문신이 새겨졌다. 그그그극. 뼈가 더 굵어지고, 이빨과 발톱이 더욱 길게 자라고, 날개뼈에서 한 쌍의 날개가 더 자라났다.
-크워어어어어어!
포효를 터트린 본 드래곤이 어보미네이션을 덮쳤다. 그 아래에서는 수만의 해골 군단이 덜그럭거리며 진격하기 시작했다.
“······.”
대인은 그 전장을 조용히 지나쳤다.
***
과장스러운 몸짓과 말투의 미청년은 검에 맺힌 핏물을 바닥에 털어냈다.
촤아악···.
바닥에 튄 핏물은 선명하도록 붉었다. 사실 직접 검으로 상대를 베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 이른 지 오래였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베는 쪽을 즐겼다.
그래야 상대의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니까.
마르바스가 검날에 남은 피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아. 이 감촉이야말로 검술의 묘미지. 천마여. 그렇지 않은가?]“클클. 본좌도 피를 마다하는 편은 아니지.”
천무극은 피가 흐르는 복부를 지혈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복부 외에도 그의 온몸에는 베이고 찔린 상처가 여럿이었다.
“클클···.”
패색이 짙은 모습이었으나, 천무극의 두 눈은 승부욕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상대는 마계 서열 5위의 마왕이자, 마계 최강의 검호, 마르바스.
그 명성을 천무극은 자신의 몸으로 확인했다.
‘드디어 검의 극의에 닿았다고 생각했거늘···. 그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단 말이냐.’
천무극은 제자에게 잠시 빌려온 천마검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계속할 셈인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마르바스는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천무극을 바라봤다. 그 태도에서 나오는 여유가 천마의 흉성을 자극했다.
“클클···. 이렇게까지 얕보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어젯밤, 제자에게 자신 있게 마르바스를 상대하겠다고 말했다.
꼭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천마가 적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츠츠츠츳···.
천무극의 몸에서 가공할 마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검황 이후로 본좌를 이토록 고생시킨 것은 네놈이 처음이니라.”
마르바스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아직도 그만한 힘이 남아 있다니···. 그런데, 그 힘은 무척 불안하군.]불안할 수밖에.
지금 천무극이 끌어 올리는 무공은 천마신공이 아니었다.
과거 그를 주화입마로 몰아넣었던 역혈마공.
여기에 지금까지 천무극이 얻은 깨달음과, 천마비록에 적혀 있던 초대 천마의 가르침을 녹여내 창안한 새로운 무공이었다.
이론으로만 완성했기에,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신공.
“쿨럭···.”
죽은 피를 토해내자 속이 좀 편해졌다.
끓어 넘치는 힘이 사지백해로 뻗어 나갔다.
천무극은 흔들리는 검극을 들어 마르바스를 겨눴다.
천무극은 눈을 감았다.
마왕이 뭐라고 지껄이는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 어젯밤 제자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스승님. 아마도 이게 마지막 싸움이 될 거예요. 다 끝나고 지구로 돌아가면, 다 같이 휴가나 가는 게 어때요?’
창백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던 제자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 아이는 목숨을 걸었다.
그러니 스승인 자신도 마땅히 걸어야 할 것이 아닌가.
“클클. 제자야. 이 스승은 한동안 앓아누워야 할 것 같구나. 휴가는 늙은이는 빼고 너희끼리 재밌게 다녀오려무나.”
과거와 같은 부작용은 없어졌기에, 이 무공을 사용한다고 폐인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면, 자신은 더욱 높은 경지에 올라설 것이다.
“스승은 저 마왕 놈의 목을 베개 삼아 쉬어야겠다.”
번쩍!
다시 눈을 뜬 천무극이 한줄기 벼락이 되어 마르바스에게 달려들었다. 마르바스 또한 힘을 아끼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까가가가가강!
두 검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검풍이 일대의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
대인은 그 전장도 조용히 지나쳤다.
한동안 스승의 뒷모습에 시선이 머물렀지만, 걸음을 멈추거나 싸움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더 안쪽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