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외전) 나랑 같이 하지 않을래?
시험장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모두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휙 하고 돌아갔다.
-지이이잉!
시험장 중앙에서 붉은 게이트가 열리고, 그 안에서 전신에 흑색의 갑옷을 두른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가 등장하자 넓은 시험장이 단숨에 꽉 찬 기분이었다.
마나에 예민한 응시생들일수록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공할 마력···!’
‘무슨 인간이 존재감이 이렇게 무지막지해?’
-쿵! 쿵!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산이 통째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거구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극도로 절제하고 있음에도, 아니 그렇기에 더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사내.
“반갑습니다.”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된 것을 확인한 사내는 목소리를 낮추고 투구를 들어 올렸다.
그 안에는 의외로 순박하게 생긴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허억!”
“저분은!”
사내가 얼굴을 공개한 순간, 새하얗게 질렸던 응시생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곧, 응시생들에게서 엄청난 흥분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왕구호 님!”
“인류 최강의 벽!”
“임대인의 방패!”
최종 시험장으로 오기 전, 응시생들은 마왕으로 변장한 영웅들을 만나 시험을 통과하고 왔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도 왕구호는 특별한 존재였다.
위대한 영웅 임대인을 최후까지 곁에서 지킨 최고의 동료!
또한 현재 진행형으로 전설을 쌓아가고 있는 WH-7팀의 팀장!
“반갑습니다. 저는···.”
왕구호가 나직하게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너희들 그거 알아?”
갑자기 한 응시생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주변의 응시생들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임대인 님이 마계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왕구호 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 구호 군! 앞으로 우주의 평화는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팀장님은 그런 말 한 적 없어!’
-라고 왕구호는 외치고 싶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필사적으로 근엄한 표정을 유지해야만 했다.
“흠흠. 저는···.”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
왕구호는 다시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고 했지만, 그 응시생의 목소리에 곧바로 다시 묻혔다.
응시생은 단상 위에 올라선 웅변가처럼 응시생들을 돌아보며 열변을 토했다.
“임대인 님이 마왕의 공격에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지셨을 때였어! 왕구호 님이 그분을 안고 수백 km의 적진을 돌파해서···.”
‘팀장님이 어떤 사람인데 부상을 입어? 그리고 포션은 뒀다가 국 끓여 먹을래?’
···진실이야 어떻든지 간에,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왕구호는 어마어마한 영웅이었다.
개인의 명성과 인지도라면, 지구 최강의 사나이라 불리는 백창수보다 오히려 더 높았다.
아니,
“세상 사람들은 백창수 대표님을 최강이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왕구호 님은 WH그룹이 자신 때문에 둘로 분열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힘을 숨기고 계실 뿐이야!”
‘제발 그만해 줘···.’
왕구호는 아까부터 자신을 과할 정도로 찬양하는 응시생을 황당한, 그리고 조금은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깡마른 외모에 안경을 낀 남학생-아마 안경은 패션일 것이다-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좌중을 설득하고 있었다.
더구나 이미 응시생의 절반 이상이 소년의 이야기에 감동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물론 소년이 달변이긴 했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왕구호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특이한 개성을 가진 아이구나. 내 등장에 응시생들이 놀라서 심리적으로 흐트러진 순간을 노리고···.’
“그 순간 왕구호 님께서 말씀하시길···.”
왕구호는 저 소년의 개성이 흥미롭긴 했지만, 언제까지 자신만 부끄러운 이런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또한, 아직 시험은 시작되지 않았다.
“그만.”
-쿵!
왕구호가 마력을 담아 발을 구르자, 소년의 말에 홀려 있던 학생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방금 전까지 뭘 당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왕구호가 안경 소년에게 말했다.
“제 소개는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왕구호 님이 저의 우상이라 그만···.”
“······.”
안경 쓴 소년이 허리를 거듭 숙이며 사과했다.
혼을 내기에는 너무나 순진무구해 보이는 얼굴.
왕구호는 그 속에 담긴, 어린 소년치고는 지나치게 영악한 면을 보았지만,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 순간, 소년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스쳤다.
눈치 못 챘네?
그런 의미가 담긴 미묘한 비웃음과 함께.
···조금 불쾌감이 치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화를 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쌓인 경험은, 왕구호를 신체도 정신도 더 단단한 초인으로 만들었다.
자신을 조금 이용하려고 했다고 해서 어린 소년에게 화를 내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직접 나설 일은 아니지.’
안경 쓴 소년을 일별한 왕구호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응시생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휴. 이게 다 팀장님 때문이야.’
대인은 자신의 죽음을 조작하면서, 자신이 세운 업적의 대부분을 동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럼에도 임대인은 불멸의 영웅으로 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수혜자이자 피해자(?)가 바로 왕구호였다.
“반갑습니다. 최종 미션 장소에 도착하신 응시생 여러분. 여러분께 최종 미션에 대해 설명해드릴 왕구호입니다.”
우와아아아아!
또 한 번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왕구호는 그것이 잦아들길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최종 미션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딱!
왕구호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좌우로 수십 개의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게이트는 하나같이 불길한 붉은색을 띠고 일렁였다.
응시생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바라봤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저 안에 들어가서···.”
그때였다.
-콰앙!
최종 시험장으로 들어오는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열리고, 마지막 팀이 시험장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상당히 특이한 조합의 파티였다.
세 명의 소녀과 한 명의 기사.
그리고···. 소녀들이 타고 온 커다란 개.
소신한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린 릴리가 왕구호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들었다.
“앗! 호구··· 읍! 선생님 안녕하세요!”
릴리는 중간에 스스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모두에게 “호구”라는 단어가 들린 후였다.
웅성웅성.
‘호구라니. 미친 거 아냐?”
‘오렌지 둘에 그린 하나. 화이트가 둘? 무슨 파티가 저래?’
릴리 일행은 시험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몇 시간 동안이나 민재와 치고받은 덕분에 그들의 옷차림은 누구보다 너덜너덜했다.
게다가 그들이 손목에 찬 밴드.
오렌지 밴드 둘도 이곳에선 흔한 편인데, 하나는 그린, 심지어 둘은 화이트였다.
이곳에 있는 응시생들의 평균 수준을 한참 밑도는 수준.
즉,
‘운 좋게 통과한 애들이네.’
‘수준 떨어지게 진짜···.’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그들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그중에서도 장영신과 쿠로다마 신의 반응이 가장 격렬했다.
“···릴리.”
“역시 왔구나!”
그들은 반가운 마음에 씩 웃으며 릴리를 바라봤지만, 이미 두 소년에 대한 오해가 쌓일 만큼 쌓인 응시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쟤들 엄청 화났나 봐!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어···.’
‘살인하기 직전 싸이코패스의 눈빛이야!’
‘둘 다 저쪽으로 걸어가는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사랑에 눈먼 두 소년이 성큼성큼 릴리를 향해 걸어갈 때였다.
-콰아아앙!
“···집중해 주시길.”
왕구호는 특히 두 소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너희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릴리랑 친한 척할 생각은 아니지?
릴리를 향해 걸어가던 소년이 왕구호의 전음에 멈춰 섰다. 둘 다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상황을 정리한 왕구호가 떨떠름하게 릴리를 바라봤다.
“···방금 온 팀까지 이번 미션에 참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네! 호···구호 선생님!”
‘호구호가 뭐야. 호구호가.’
왕구호는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이 게이트들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가서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게이트 너머는 아공간 마법과 가상현실 기술이 결합된 가상의 공간입니다. 저 안에는 가상의 도시, 사람, 몬스터, 여러 종족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은 저 안에서 메인 미션을 클리어해야 합니다. 기한은 하루. 하지만 저 안에서는 시간이 이곳보다 10배 정도 빠르게 흐르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입니다.”
20개가 넘는 게이트는 전부 다른 지형과 설정을 가지고 있으며, 직접 들어가 보기 전에는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저 안은 가상현실이지만, 여러분은 저 안에서 실제로 부상을 입거나 병에 걸리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꿀꺽.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니 반드시 저 안의 세계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행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왕구호는 ‘진짜’라는 단어를 유독 강조했지만, 응시생들 대부분은 그 ‘진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최종 미션은 여러분의 전투력만이 아닌 다양한 능력을 시험할 것입니다. 팀원 간 협동 능력,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임기응변,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할 때, 무엇을 선택하는지···. 모든 것이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의례적인 설명이라고 생각했는지, 몇몇은 표정에 지루함이 드러났다.
‘뭐야. 지금까지 한 거랑 똑같네.’
‘그래 봤자 전투가 메인이겠지.’
다음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하나의 게이트에 세 팀씩 들어가 경쟁하게 됩니다.”
“!!”
“경쟁 팀들보다 먼저 최종 미션을 완수하십시오. 패배한 두 팀은 포인트가 깎인 후 재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순간 응시생들의 표정이 굳었다.
패배하면 포인트가 깎인 후 재시험이라니.
입학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현격히 줄어든다는 이야기였다.
한 응시생이 급히 손을 들고 물었다.
“함께 들어갈 상대팀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이곳에 있는 응시생들은 거르고 걸러낸 옥석이지만, 그 안에서도 수준의 차이는 있었다.
예를 들어 장영신이나 쿠로다마 신의 팀과 붙게 되면,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어떤 팀은 5명에 불과하고, 어떤 팀은 10명이 넘었다.
대진운이 나쁘면 아무것도 못 해보고 질 수도 있는 것이다.
왕구호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건 여러분이 직접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24팀이니 총 8개 조가 나오겠군요.”
“···네?”
“뭐라고요?”
“무책임해!”
왕구호는 단호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는 응시생들이 불만을 터트릴 시간도 주지 않았다.
“시험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빨리 미션을 완수한 팀일수록 가산점이 붙습니다.”
응시생들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경쟁 미션에서 무조건 피해야 할 팀은 단연 장영신과 쿠로다마 신.
그럼 무조건 잡아야 할 팀은?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릴리 일행에게 시선이 향했다.
‘쟤들이랑 해야 돼!’
‘가장 약한 팀!’
‘숫자도 5명밖에 안 되고 그중 화이트 밴드가 둘!’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누구보다 먼저 움직인 소년이 있었다.
“안녕?”
왕구호가 처음 시험장에 나타났을 때, 기이한 능력으로 응시생들의 혼을 빼놓았던 안경 소년.
“이번 미션. 나랑 같이 하지 않을래?”
안경 소년은 선량하게 웃으며 릴리에게 말을 걸었고, 릴리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같이 하자!”
그 순간, 두 소년의 눈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