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78
78화 특별한 손님
턱시도로 갈아입은 두 남자는 여자들 방 앞에서 20분 째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한 대인이 방 안에 대고 소리쳤다.
“야 꼬맹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거야?”
그러자 방 안에서 왠지 들떠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쫌만 기다려!”
그러나 문이 열린 것은 그로부터 약 30분은 더 지난 뒤였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금발의 귀여운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릴리였다.
“짜잔!”
이곳에 오기 전에 일행 모두-모드레아는 빼고-금발로 염색을 했는데, 릴리의 금발과 붉은색 드레스는 무척 잘 어울렸다.
소녀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돌자, 풍성한 드레스자락이 살짝 떠올라서 나풀거렸다. 그 아래로 드레스와 색을 맞춘 빨간 구두가 보였다.
“어때?”
릴리가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두 남자를 바라봤다.
“어···. 예쁘다···.”
장영신은 얼굴을 붉히고 말을 잇지 못했다. 릴리는 그 반응이 만족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반면 대인은 릴리를 슥 훑더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음. 드레스가 비싼 값을 하네.”
릴리가 충격 받은 얼굴로 되물었다.
“그게 전부야?!”
“나한테 뭘 더 기대하는···. 오!”
대인은 릴리를 뒤따라 나온 모드레아를 보고 살짝 감탄했다.
“······.”
모드레아는 뒤로 묶었던 흑발을 풀고, 활동성이 좋은 블랙 미니드레스를 입었다. 쭉 뻗은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충 입은 듯 시크한 스타일. 하지만 모델 뺨치는 비율과 아름다운 외모 때문인지 매력이 더욱 부각됐다.
짝짝짝.
대인이 감탄의 박수를 치며 말했다.
“과연 대마법사가 반할만 하네.”
모드레아는 주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 옆에서는 릴리가 팔짱을 끼고 대인을 째려봤다.
“칫!”
입술을 삐죽거린 릴리는 장영신에게 가서 보란 듯이 팔짱을 꼈다.
그 순간, 소년은 모드레아보다 더 인형처럼 굳어버렸다.
“!!”
그 모습을 본 대인이 큭큭 웃고는 말했다.
“준비 다 됐으면 가자.”
잠시 후, 세 사람은 로비보이의 안내에 따라 호텔의 지하로 향했다.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자 도박장 중 한곳으로 유명한 곳.
일행은 도박장으로 가는 동안 로비보이의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은 약 100년 전부터 운영된 유서 깊은 도박장으로, 타국의 왕족들마저 종종 들르실 정도로 그 규모와 수준이···.”
대인은 대충 흘려들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예전에도 와본 적이 있었으니까.
‘조금만 하고 가야지했다가 다음날 새벽에 개털 되서 나갔었지.’
씁쓸한 과거를 떠올리며, 대인은 도박장으로 향하는 길을 둘러봤다.
화려한 것은 여전했다. 형형색색의 장식들과 마법으로 밝혀진 전구들. 주사위 하나까지 사치의 끝을 보여주는 고급제품 뿐이었다.
중앙 홀에서는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미남미녀로 이루어진 직원들이 쟁반을 들고 고객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대륙의 귀족들과 부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만든 도박장다웠다.
‘이곳에서 하루에 오가는 돈이 웬만한 영지의 1년 수입하고 맞먹는다던데.’
일행이 환전소 앞에 도착하자 로비보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수고했어.”
대인은 팁으로 금화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겨줬다. 금화를 받아든 로비보이가 허리를 120도로 굽히더니 신이 난 얼굴로 돌아갔다.
“그럼 총알부터 충전해 보실까.”
대인은 일행과 함께 환전소로 향했다. 그리고 환전소 직원 앞에 묵직한 가방을 올려놓았다.
쿵!
“전부 칩으로 바꿔줘.”
환전소 직원이 가방을 열어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방 안에 값비싼 보석이 가득했던 것이다.
전부 대인이 여기까지 오면서 벌거나 혹은 선물 받은 것의 일부였다.
“이걸···. 다 칩으로 바꾸시겠습니까?”
웬만한 금액에는 놀라지 않는 직원의 반응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졌다.
‘얼마나 되는데 저래?’
‘누구야? 모르는 얼굴인데.’
‘흥. 돈 좀 있는 졸부인가 보군.’
호기심. 경계. 질투.
대인은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가 원하는 반응이나 움직임은 없었다.
아무래도, 돈지랄을 확실하게 해줘야 반응이 올 것 같았다.
‘얼마든지 해주지. 예전이랑은 다르거든.’
환전소 직원에게 씩 웃어준 대인이 말했다.
“응. 전부 황금 칩으로 바꿔줘.”
황금 칩은 도박장에서 사용하는 칩 중에서도 가장 고가의 칩이었다.
잠시 후, 황금 칩으로 주머니를 두둑하게 충전한 대인은 일행과 함께 본격적으로 도박장에 입장했다.
“우와···.”
“엄청 신기해!”
두 꼬마는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화려한 색감과 반짝이는 유리들. 샹들리에. 신기한 마법장치들. 아이들 눈에는 이곳이 커다란 장난감 가게처럼 보였다.
대인은 두 꼬마에게 황금 칩을 10개씩 주며 말했다.
“너희들 이거 가지고 하고 싶은 거해. 놀다가 졸리면 먼저 숙소 가서 자고.”
자유 시간을 얻은 두 꼬맹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네!”
대인은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가는 두 꼬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모드레아를 바라봤다.
“넌 쟤들 호위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신호 보내. 알았지?”
“······.”
모드레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아이들을 따라갔다. 대인은 그 모습까지 확인한 후에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 있었다.
“그럼 나도 좀 즐기러 가볼까.”
대인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도박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1층은 어차피 피라미들이나 노는 곳이고.’
의 도박장은 총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층이 도박보다는 파티 홀에 소소한 게임이 추가된 정도라면, 2층과 3층은 진짜 도박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배당이 큰 도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숨겨진 4층으로 가려면 얼마나 필요하려나···.”
대인은 황금 칩 하나를 손가락으로 튕겨 올렸다.
티잉!
*
*
*
대인은 2층에서 적당히 놀다가 3층으로 내려왔다. 3층까지는 별다른 제약 없이 누구나 오갈 수 있었다.
“······.”
3층은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인은 자연스럽게 걸으며 도박장 내부를 슥 훑었다.
제일 먼저 눈에 핏발이 선 채 도박에 빠져있는 호구들이 보였다.
“젠장! 다시 걸겠어!”
가진 걸 다 잃고, 구석에 주저앉아서 넋을 놓은 도박중독자들도 보였고,
“난 이제 끝장이야···.”
간혹 큰돈을 딴 자들이 내지르는 환호소리도 들려왔다.
“으하하하하!”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도박장을 관리하는 자들의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법인데?’
소드 익스퍼트 급의 실력자들이 곳곳에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마법사들, 그리고 암살자의 기척마저 느껴졌다.
대인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도박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내부를 계속 관찰했다.
스스스슷.
예전에 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발달한 감각이 사방을 훑었다.
‘영상수정구도 숨겨져 있고, 함정도 꽤 보이고···. 얼씨구? 마력봉인결계까지 준비해 놨네?’
무슨 도박장의 경비 수준이 웬만한 영지에 육박했다.
대인의 의심은 이제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역시 여긴 단순한 접선 장소가 아니야.’
레드 고블린이 알려준 ‘조직’과의 접선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하지만 대인은 아직 그가 알려준 접선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전에 먼저 몇 가지 조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봐서···.’
그때였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미남자가 대인에게 다가왔다.
“손님. 찾으시는 게임이라도 있으십니까?”
귀족자제처럼 생긴 남자는 도박장의 딜러였다.
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 도박은 잘 몰라서. 내가 돈은 많은데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그러시군요.”
미남자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그럼 제가 간단한 게임을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좋지.”
대인은 딜러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이 멈춰선 곳은 원판이 설치된 테이블 앞이었다.
“룰렛이라는 게임입니다.”
지구의 카지노에도 있는 룰렛과 거의 같은 규칙의 게임이었다. 다만 원판의 숫자는 0~50까지 있었다.
확률은 극악이지만, 그만큼 터지면 배당률이 어마어마했다.
딜러가 말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숫자를 골라서 칩을 걸어주시면, 제가 원판을 돌리고 여기 있는 쇠구슬을 던집니다. 쇠구슬이 멈추는 곳에 손님이 돈을 거셨다면 손님의 승리입니다. 칩은 나눠서 거셔도 되고, 그 외에도 다양한 규칙이 있는데···.”
대인은 중간에 딜러의 말을 끊었다. 안 그래도 찾고 있던 게 딱 이런 게임이었다.
“7에 전부 걸지.”
“···네?”
스윽.
대인은 가져온 황금 칩을 전부 숫자 7에 올인했다.
그 순간 딜러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맺혔다.
“대범하시군요.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딜러는 상대가 말을 바꾸기 전에 바로 원판을 돌렸다. 그리고 원판에 쇠구슬을 던졌다.
데구르르르르-.
구슬이 원판의 경사면을 타고 굴렀다.
“전부 건다고?”
“미쳤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대며 이쪽을 바라봤다. 많은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쇠구슬은 원판의 경사면을 타고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데구르르르···.
툭.
쇠구슬이 숫자 7위에 멈춘 순간, 대인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나이스!”
구경꾼들 사이에서도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인은 축하와 질투어린 시선들을 받으며 활짝 웃었다.
“나 오늘 운이 좋은가 봐.”
미남 딜러도 웃으며 대인을 축하해주었다.
“축하드립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대인 앞에는 걸었던 것의 50배나 되는 황금 칩이 쌓여 있었다.
딜러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이때까지는 말이다.
“한 게임 더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게임을 추천해 드릴까요?”
“한 게임 더.”
대인이 씩 웃었다. 그리고 50배로 늘어난 황금 칩을 전부 같은 곳에 밀어 넣었다.
“이번에도 7. 올인.”
“······.”
이젠 칩이 너무 많아서 숫자 위에 다 놓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테이블 주변에서는 난리가 났다.
“제정신이야?”
“그 돈 버릴 거면 나한테나 줘!”
주변 사람들의 원성에도 대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면에 있는 딜러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
잠시 침묵하던 딜러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하죠.”
다시 원판이 돌아가고, 그 위로 쇠구슬이 구르기 시작했다.
데구르르르르-.
어느새 수십 명으로 불어난 구경꾼이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원판과 경사면을 타고 아래로 점점 내려가는 쇠구슬.
한 순간, 딜러의 입가에 가느다란 맺혔다.
‘멍청한 놈.’
그리고,
데구르르···. 툭.
쇠구슬은 또 다시 숫자 7위에 멈췄다.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고, 폭발하듯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말도 안 돼!”
“저게 진짜 가능한 거야!?”
구경꾼들이 질러댄 소리가 얼마나 큰지, 2층에서도 무슨 일이냐고 내려와서 볼 정도였다.
대인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이야. 오늘 운이 정말 좋은데?”
“······.”
그 앞에서 미남 딜러는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금이 간 것처럼 보였다.
딜러는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이 새끼 방금 속임수를 썼어!’
확실했다. 왜냐하면, 방금 전 그 쇠구슬은 절대로 7에서 멈출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상대가 마법을 사용한 기미는 전혀 없었다. 아티팩트도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이 주변에서는 마력반응 자체가 없었다.
대인이 딜러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돈은 언제 주려고?”
미남 딜러가 억지로 환하게 말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워낙 액수가 많아서 수표를 써드리겠습니다.”
미남 딜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대인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축하하네 젊은이!”
“우리 통성명이나 하지! 자넨 어느 가문 자제인가?”
뭐 떨어질게 없나 우르르 몰려오는 도박쟁이들.
그들을 상대하기 귀찮았던 대인은 테이블에 있는 칩 일부를 허공에 뿌렸다.
“옜다! 기분이다!”
황금 칩이 비처럼 쏟아지고, 사람들이 체면도 없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칩을 마구 줍기 시작했다.
“이건 내 거야!”
“내가 먼저 주웠어!”
대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돈지랄이 이런 기분이구만.”
그리고 손등에 있는 정령에게 말을 걸었다.
“너 제법이다?”
드레이츠의 지하실에서 흡수한 합성정령.
룰렛의 쇠구슬을 두 번이나 움직여준 범인은 바로 이 녀석이었다.
꾸물꾸물.
손등 위에서 반투명한 슬라임 같은 것이 꾸물대는 것이 느껴졌다. 대인의 눈에만 보이고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
툭툭.
대인은 정령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이따가도 잘 부탁할게.”
그때 미남 딜러가 누군가를 데리고 돌아왔다.
반백의 머리를 올백으로 깔끔하게 넘긴 노신사였다. 그가 대인에게 수표를 내밀며 말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손님.”
수표에 찍힌 어마어마한 액수에 대인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주는군. 솔직히 워낙 액수가 많아서 걱정했는데···.”
그러자 노신사가 사람 좋게 웃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정도는 저희에게 푼돈이니까요.”
“이게 푼돈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대인은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노신사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손님.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 그는 자연스럽게 대인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사실 저희는 손님처럼 특별한 분들을 위해 특별한 공간을 따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말?”
난생처음 들어본다는 듯, 대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