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낫지 않는 상처 (1)
이정용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언제나 차가웠다. 넓은 식탁에서 오가는 대화는 자신의 성적에 대한 것뿐이었다.
전교 1등 성적표.
전국 1등 성적표.
어떤 성적표를 가져가도 어머니는 웃는 일이 없었다.
그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을 후계자. 어머니를 아버지의 집에 연결해주는 다리.
그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딱 그 정도 존재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블랙데이가 시작되었던 날.
이정용의 어머니는 그의 눈앞에서 오크의 가위팔에 가슴을 꿰뚫렸다.
그를 감싸다가, 어머니는 죽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지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머니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천룡검신은…….
‘자신이 모든 인간의 부모처럼 굴고 있지.’
초월자가 다시 필멸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다니.
자신의 머릿속을 울린 주시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는 의심의 여지없는 사실이었으나, 그 내용은 차마 믿기 어려웠다.
되짚어 생각할수록 더욱 그러했다.
한 존재로서 경탄스러웠고, 인간으로서 감사했고, 동시에…….
‘멋대로 희생하는 부모라니. 정말 사양하고 싶군.’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었으나, 두 번째로 그런 기분을 맛보고 싶지는 않았다.
무력감. 분노. 상실감.
그리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후회를 곱씹으며 이정용이 최지수를 응시했다.
최지수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날은 상태가 괜찮았나 보군.”
“예.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 것을 물으시는지요? 청룡의 둥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최지수는 몇 번의 부상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백호를 소멸시켰을 때.
계룡을 공격한 혈귀단의 혈왕을 죽였을 때.
마의 삼천에서 현무를 소멸시키고 돌아왔을 때.
서림은 염화검제가 말한 것과 비슷한 상태였다. 특히 백호를 잡고서는 며칠 동안 의식을 잃었었다.
“자네. 선천진기에 대해 알고 있나?”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만.”
“대표의 주력이 내력인데 그 정도 공부도 안 하고 뭐했나?”
“…….”
“선천진기가 무엇인지 천룡검신에게 묻는 것이 좋을 걸세. 검신은 그것을 일종의 필살기로 여기는 모양이니.”
“예?”
“내가 해줄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더 이상 말한다면 천룡검신에게 목이 달아날까 두려우니.”
“예에?”
“자세한 이야기는 그에게 직접 듣는 것을 추천하지.”
최지수의 눈동자는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정용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자신답지 않게 고민이 길었다.
아마 천룡검신은 균열을 닫는 방법에 대해 짐작하고 있을 터.
한 번 초월자가 되었던 존재다. 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다시 초월자가 될 자질을 가진 존재다.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천룡검신은 결국 균열을 닫을 것이다.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
자신이 물심양면으로 돕는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터.
입을 다물고, 균열을 닫으려는 천룡검신을 지원하려 했다.
기대되는 이득은 그쪽이 훨씬 컸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선천진기를 쏟아부어 균열을 닫아? 누구 마음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남겨진 아들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이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기분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부모라면 자식과 대화해야 할 것이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래야 했었으므로.
그리고…….
‘자식은 부모가 불사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겠지.’
***
유재이는 열 수 정도 배우고 무릎이 아작나 비무대에서 실려 내려갔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 증거로,
“저게 정말 마력이 아닙니까?”
“아니라니까요! 내가 아까부터 말했잖아요! 우리 대표님 각성 못 했다고!”
“그러면 지금 저 기술은 도대체……?”
“저게, 삼반공 1절 적(積)이라고 하는데요, 화염탄이랑 비슷한데, 마력보다 시전 시간이 짧고, 위력은 몇 배는 강하죠!”
몇몇 이들이 은영단의 주위에 몰려들어 내력에 대해 캐묻고 있었다.
하하민이 신이 나서 그동안 주워들은 지식들을 주워섬겼다.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듣고 있던 서은창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하 선배. 역시 하수답게 잘못된 지식을 전수하시는군요. 적(積)은 화염탄과 완전히 다른 기전입니다. 애초에 마력과 내력은 근원 자체가 달라요. 내력이란 자연의 기(氣)를 단전에 저장하여…….”
서 후배가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기(氣)는 느끼지도 못하는 녀석이 이론은 빠삭했다.
역시 조기교육의 힘.
대충 내가 원하는 그림으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아직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나 헛소리로 치부하는 소리는 쏙 들어갔다.
반신반의(半信半疑)도 절반은 믿음이니까, 믿음으로 쳐 주려나.
어찌 돌아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어쨌든 할 수 있는 밑밥은 거의 뿌렸다.
이제 마지막 코스가 남았다.
화룡점정(畵龍點睛). 용을 그렸으면 마지막에 점을 찍어야 하니까.
왁자지껄한 소음 위로 내력을 실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퍼졌다.
“더 도전할 사람? 약속했다시피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는 최우선적으로 각성제를 구입할 권리를 약속합니다.”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세 명 길드장이 박살나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했으니 당연한 결과…….
“도전하겠네.”
라고 생각하겠지만.
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팔을 들었다.
이정용이었다.
최지수와 나란히 서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더니…….
‘최지수 쟤 표정은 왜 저래?’
벙찐 최지수를 뒤로 하고 이정용이 풀썩 비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검신 자네에게 상처를 입히면 승리한다는 조건은 사양하겠네.”
“역시 염화검제님. 그릇이 다르시네요.”
“패배를 시인하는 쪽이 패하는 것으로 하지.”
관객석은 단번에 흥분의 도가니탕이 되었다.
조금 전 세 번의 비무와는 차원이 다른 격한 반응.
“염화검제?! 염화검제 대 천룡검신?!”
“시바류……. 이걸 내가 쌩눈으로 보다니!”
“아우들아! 눈도 깜박이지 말고 봐라!”
제일인자를 놓고 오가는 이름은 해동검도 무등쌍협도 해룡의선도 아니다. 불패도도 빙화신녀도 무적권왕도 아니다.
그 이름은 염화검제와 천룡검신이다.
즉, 내력의 존재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을 선전선동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상대라는 의미.
어깨를 으쓱이며 이정용에게 손짓했다.
“그 도전, 받아드리죠.”
***
스촤앗!
흑염의 불길을 두른 검이 내 코끝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났다. 극한으로 끌어 올린 호신강기를 뚫고 열기가 파고들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나 역시 무사하지 못할 마력이 실린 날카로운 공격.
하지만.
‘안 맞으면 장땡이지.’
어깨를 젖혀 그 공격을 회피하며 상단, 중단, 하단을 연달아 찔렀다.
캉! 캉! 카카카카캉!
한 동작처럼 이어진 열세 번의 공격. 하지만 모두 이정용의 검에 가로막혔다.
오른손으로 연격을 쏟아내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단전에서 출발한 진기가 기맥을 타고 오르고, 흰 강기의 구슬이 왼손에 맺혔다.
하단을 막기 위해 이정용의 검끝이 아래를 향하는 순간.
콰아아아아!
발출한 적(積)이 녀석의 가슴팍에 명중…….
“어딜!”
명중시키지 못했다.
강기의 구슬은 방어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녀석의 가슴팍 앞에서 거세게 폭발했다.
“듣던 바대로 제법이군, 천룡검신!”
세 발짝 물러선 이정용이 호기롭게 외쳤다.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세 걸음 물러난 채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염화검제님도 허명은 아니셨군요?”
거리를 재며 왼쪽으로 한 발자국 이동하자, 이정용이 내 움직임에 따라 거리를 유지하며 왼쪽으로 이동했다.
비무대의 중앙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도는 형국.
실로 팽팽한 긴장감이 비무대에 감돌았다…….
라고 해야겠지만.
“어디, 그 내력으로 내 폭염까지도 받아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지.”
십수 만의 관객들은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초집중한 채 비무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폭염이라면, 염화검제의 비기잖아? 염화검제밖에 못 쓴다던 그 기술?”
“…위험한 거 아닙니까?”
“뭐가? 천룡검신님이?”
“아니, 그렇잖습니까. 각성자가 아닌데. 까딱 잘못하다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힐 받으면 끝나는 염화검제와는 사정이 다르죠!”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은 이제 반신반의에서 7신3의 정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정용이 입을 열 때마다,
내력으로, 내력이, 내력은, 내력가지고,
…라고 지껄였기 때문.
역시 동료로 딱인 녀석이다. 말 잘 알아듣고, 무위 높고.
덕분에 내력 어필이라는 내 목적은 거의 달성했다.
“폭염이라. 어디 얼마나 뜨뜻미지근한지 궁금하네요.”
나는 짝다리를 짚고 서서 이정용의 쇼맨쉽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이내 이정용의 검이 흑염(黑炎)의 불길에 휘감겼다.
파아아앗.
한 가닥 검은 불길이 공기를 불태우며 나를 향해 쇄도하고,
의혼검에서 발출된 진기와 격돌했다.
삼반공의 3절, 결(結).
콰카카카카카캉!!!! 콰앙! 콰아아!!!
임시로 만든 비무대의 바닥은 그대로 먼지가 되었다.
결(結)에 의해 잘려나간 흑염의 불씨가 허공에서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폭발, 폭발의 연쇄 속으로 내가 쇄도했다.
깊숙이 오른발을 내딛으며 의혼검을 수평으로 내질렀다.
이정용의 허리를 노린 공격이 그대로 허공을 가르고,
공격을 피한 녀석이 순식간에 내 등 뒤로 돌아왔다.
단번에 회전하며 우하향으로 검을 내리긋자,
카캉!
검과 검이 격돌하며 불꽃이 튀었다.
눈 깜짝할 찰나,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갔다.
녀석의 검이 내 팔꿈치를 종이 한 장 차이로 지나고, 의혼검이 녀석의 가슴팍을 찔러 들어갔다.
마치 합이 잘 맞는 검무(劍舞)를 추는 모양새.
‘이제 슬슬 끝내 볼까.’
내력 어필은 충분히 했다.
이제 한바탕 격렬하게 싸우고는 동시에 검을 물린 뒤에 이정용이
-허허, 천룡검신. 듣던 대로 대단하군. 그것이 내력이라는 건가?
하고 주절거리면, 내가
-깨달으셨다니 다행이군요.
하면 끝나는 판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니까.
내가 이정용에게 눈짓을 하자, 이정용이 알겠다는 듯 눈을 끔벅였다.
쓰촷!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며 내지른 의혼검을 녀석의 검이 가로막았다.
검과 검이 교차한 순간.
검날을 따라 의혼검을 미끄러뜨리다가, 순간적으로 강기를 발출했다.
녀석의 검이 튕겨져나간 틈새를 노려 재빨리 손목을 비틀었다.
방향을 바꾼 검끝이 이정용의 어깨를 거세게 찔러 들어갔다.
파슥!
녀석의 몸을 감싼 화염의 방어막을 뚫고, 의혼검이 녀석의 피부를 스쳤다.
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걸 못 막았다고?’
뒤이어, 날카로운 검격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합을 맞춰 공방을 이어가던 것과는 완연히 다른, 진짜 공격이다.
이 새끼가 또 왜 이러실까.
나는 연신 의혼검을 휘둘러 공격을 비껴 막고 취원보를 운용해 공격을 회피하고 또 반격하며 맛탱이 간 녀석에게 속삭였다.
“…설마 각성제 탐나서 이러는 거?”
“일단 그런 걸로 하세.”
“뒤로 몰래 빼줄게요. 나 일구이언 안하잖아.”
“정정당당하게 구입할 능력이 있는데 왜 굳이 뒷구멍을 이용하겠나?”
“저기요, 상황 아시잖아요. 이거 내가 이겨야 좋게 끝납니다.”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지.”
“야. 너도 내력 갖고 싶잖아. 초월자 되고 싶어 환장한 거 아니었냐고.”
“글쎄. 초월자였다가 돌아온 자네를 보니 초월자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은 듯하네만.”
검격이 오가는 동시에 고요한 입격(口擊)이 오갔다.
검격이 통하지 않는 만큼 입격 역시 통하지 않았다.
염화검제가 사람들 앞이라고 흥분할 수준의 인간은 아니다. 나와 검을 섞는 것이 흥겨워서 이성을 놓았다 보기에는 이것이 첫 대결도 아니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도 진심으로 붙고 싶다면야. 상대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의지에 따라, 단전의 기운이 기맥을 타고 올랐다.
이제 남은 내력이 많지 않았다. 호신강기를 만땅으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분 남짓이 한계.
그러니까, 그전에 끝내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