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Fallen sword emperor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한밤의 불꽃놀이 (2)
최지수가 마른세수를 했다.
추측이 아니라 확신하는 얼굴.
서림이 선뜻 대꾸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최지수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니, 질문보다는 취조에 가까웠다.
“은창이 말로는 생명력 그 자체로 선천진기를 다 소모하면 죽는다더구나. 그게 사실이냐?”
“어…, 그렇지?”
“염화검제의 말로는 네가 재앙의 둥지를 열면서 선천진기를 사용했다고 하더구나. 그게 사실이냐?”
“와. 그 인간 진짜 입 싸네.”
“말 돌리지 말아라. 사실이냐?”
최지수의 목소리가 낮았다.
마치 살기가 배어 나오는 듯한 느낌.
진짜 살기는 아니지만, 살기라고 느낄 만한 격렬한 기세가 최지수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얘 진짜 화났네.’
평소 얌전한 애가 화나면 무서운데.
서림은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았다.
“네. 맞아요.”
……내 선천진기를 내 마음대로 썼는데 왜 혼나는 걸까.
하지만 은영단 애들이 나처럼 굴었다면 내 기분은 매우 지읒 같을 것이다.
그래서 서림은 얌전히 대답했다.
“그거 딱 한 번이었어.”
“이미 두 번이다. 현무와 청룡.”
“그게 그거지, 하. 하. 하. 중요한 건 과거보다 미래 아니겠어? 앞으로는 절대로 안 할 테니까 걱정 마시라고요!”
“앞으로는? 그러면 림이 너……. 목숨을 걸고 균열을 닫겠다는 생각은…….”
“에이. 그게 되겠어? 세상에 균열이 대체 몇 개인데 내가 목숨 건다고 되냐?”
최지수에게 서림의 말은,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듯 들렸다.
“그리고, 내가 머리에 총 맞았냐? 뒈지면 끝인데 뭐하러 목숨을 걸어? 내가 그 개소리 싫어하는 거 몰라? 별 쓰잘데기 없는 소리를 하고 난리야.”
“…….”
“검제놈이 그래? 내가 선천진기 쏟아부어서 균열 닫는다고? 에이, 그 인간이 하는 소리 다 개소리잖아. 자고로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최지수는 가만히 선 채 서림을 응시했다.
서림의 입에서 끊임없이 말이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첫 번째 증거.
눈을 빠르게 깜박이는 것은 두 번째 증거.
비스듬히 올라간 입꼬리가 평소보다 10도 더 높이 올라간 것은 세 번째 증거.
스스로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겠지.
예전이라면 최지수도 분명 속아 넘어갔을 터.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림아.’
염화검제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지금 서림의 반응을 보니 최지수는 염화검제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고 했구나.”
“아니라니깐?”
“림이 너는, 그것이 정말로 우리를 위한 행동이라 생각하느냐?”
“아니라니까 그러네!”
“네가 그리 떠나면 남겨진 우리는, 나는 어떤 마음이겠느냐?!”
“아, 아니라고오!”
서림이 펄쩍 뛰며 부정했다.
바로 그 순간.
쿠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옥상 문이 박살났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
터진 둑에서 물이 쏟아지듯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부서진 문으로 쏟아져 겹겹으로 바닥에 쌓였다.
한 무더기의 인간 젠가.
가장 꼭대기에 엎어진 단발머리의 여자가 헤실헤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대표님이랑 부대표님 여기 있었네요?”
하하민.
그리고…….
“야! 빨리 비키라고! 졸라리 무겁다고오!”
하하민의 아래 이바름, 그 아래 양범진, 그 아래 조은조, 그 아래 서은창, 그 아래에 전날 만든 햄버거 속 양상추처럼 납작하게 눌려 있는 김강산.
“…니들 거기서 뭐하냐?”
잠시 후.
덕지덕지 묻은 먼지를 털어낸 은영단이 최지수의 옆에 줄지어 섰다.
그들은 한참 전부터 문 뒤에서 서림과 최지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선천진기를 대가로 균열을 닫아? 이번에도 형이 마음대로 굴게 둘 거 같냐?’
김강산은 결심을 다졌다.
그리고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서림을 응시했다. 실로 결연한 마음…….
“야. 지금 와서 분위기 잡아 봤자 거든?”
은 통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얼버무려 넘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겠다. 이번에는 절대로…….
‘근데, 왜 이렇게 덥지?’
발족식을 위해 사람들이 계룡성에 모여들 때부터 김강산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이 발족식이야말로 서림이 길드장들을 후려패고 명실공히 전국 최강임을 확인시킨 결과물.
발족식이 끝나고 술자리가 시작되자 더욱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매번 서림에게 대가리를 후려맞으며 금쪽이 취급을 받다가 계룡좌룡‘님’이라며 우러러 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니 저절로 술이 넘어갔다.
한 잔 또 한 잔 하다 보니 어느덧 밤이었다.
‘오늘 내가 취하면 안 되는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김강산은 최지수의 신호대로 헐레벌떡 계룡문 본부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얼굴이 벌게진 채 옥상 문에 귀를 대고 있는 이바름, 조은조, 양범진과 마주쳤다.
-김강산! 왜 이렇게 늦…을 수도 있지.
서늘한 시선으로 이바름의 입을 닥치게 만든 김강산이 문에 귀를 붙였다.
곧, 제주도민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던 양범진이 도착하고, 천룡검신 사인회 참석자들에게 수금을 마친 하하민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그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최지수와 서림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지금.
‘아. 화염구 때문에 더웠구나.’
김강산은 자신의 양손에 화염구가 형성되어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검푸른 불길.
눈앞의 서림이 눈을 찡그리며 소리를 쳤다.
“야! 김강산 불 꺼!”
……내가 왜 화염구를 만들었지?
“저 새끼 어둠술사 암주술 걸렸냐? 왜 저래?”
서림이 어이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김강산은 문득, 자신이 화염구를 생성한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형 발목을 박살내고 싶다고 생각했지.’
혼자 훌쩍 떠나지 못하도록.
남겨지지 않도록…….
이 초겨울의 한밤.
김강산은 기분이 좋았고, 소주 열댓병을 마셨고, 태어나 처음으로 취했다.
평소라면 줄곧 그래왔듯 참았을 터.
하지만 오늘의 김강산은 취중진담을 발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김강산은 서림이 수천 번 반복한 가르침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것은 바로, 선빵필승.
그 가르침에 따라,
화르륵!
김강산의 손에서 떠난 검푸른 화염탄이 공기를 불태우며 서림을 향해 쇄도했다.
청염탄를 내던짐과 동시에 김강산이 바닥을 걷어찼다.
단번에 거리를 좁힌 김강산이 상체를 깊숙이 숙이자,
콰가가가가가!!!!
김강산의 머리 위에서 청염탄이 폭발했다.
두꺼운 빛줄기가 검은 하늘을 절반으로 갈랐다.
서림이 결(結)로 청염탄을 방어한 것.
‘일단, 한 번 뺐고.’
기공을 쓰기 위해서는 내력을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積)은 시간차가 없다시피 하지만, 결(結)을 시전하기 전에는 확실히 딜레이가 존재했다.
눈 세 번 정도 깜박이는 시간.
속성 공격을 위해 마력을 모으는 것에 비하면 아주 짧지만, 격렬한 공방이 이어지는 도중에는 시전할 수 없는 것이 기공이었다.
서림과 함께 전투를 치른 것이 수천 번.
그는 누구보다 서림의 능력을 잘 알았다.
그 강함 못지않게, 그 약점까지도.
‘이기는 것은 말도 안 되지. 하지만 발목 하나 박살내는 정도는…….’
김강산은 본능적인 감각에 따라 그대로 대도를 내질렀다.
질풍처럼 빠른 검격이 바닥을 훑었다.
하지만 스치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산아, 위!”
양범진의 외침에 김강산이 재빨리 도를 치켜 올렸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팔꿈치가 날아갔을 아슬아슬한 타이밍.
카앙!
좌룡보도와 의혼검이 격돌했다.
도와 검.
보통이라면 힘으로는 도가 검을 압도하지만 서림을 상대로는 보통이 통하지 않았다.
김강산의 머리 위에서 도와 검이 교차했다.
태산이 내리누르는 듯한 느낌.
도를 놓쳤다가는 단번에 머리가 두 조각으로 쪼개질 듯한 압박감.
엑스자로 교차한 검날과 도날 너머에서 서림이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렸다.
“김강산 이 미친 새꺄. 내 다리 잘라서 계룡성 뒷방 늙은이 만들려고?”
“역시 우리 형이야. 모르는 게 없어.”
콰직, 콰지직.
내리누르는 힘을 이기지 못한 바닥이 시멘트 속을 파고들었다.
‘이게 사람 힘이냐…?!’
김강산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도날과 검날이 교차한 곳.
그 뒤로 서림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던 아까의 표정 대신, 예의 그 여유로운 웃음이 걸려 있는 얼굴.
김강산의 시선이 서림의 어깨로 옮겨갔다.
여전히 서림의 어깨에는 붕대가 매어져 있었다.
고작 살점이 뜯겨나간 부상이 아직도 낫지 않은 것.
그런 주제에 강하고,
자신이 강하다는 이유로 가장 위험한 곳에 찾아 들어간다.
‘이러다가는 조만간 형 시체를 마주치겠지.’
염려도 추측도 아닌, 확신.
그렇게 두지는 않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하며 김강산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르르르륵!!!!!
진룡보도를 휘감은 불길이 살아 있는 불꽃처럼 꿈틀거리며 서림을 덮쳤다.
흑빛에 가까운 푸른 불꽃.
어두운 하늘을 불사르듯 치솟아 오른 불길은 마치 흑룡이 승천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하지만.
‘업데이트 무지하게 했네!’
서림에게 닿지는 않았다.
허공으로 솟구친 서림이 빠르게 의혼검을 휘두르자,
검푸른 화염이 검막에 가로막혀 허무하게 소멸했다.
“김강산 네가 드디어 돌았구나? 너 술 깨고 이거 어떻게 감당할래?”
“내가 형한테 후려맞은 게 하루이틀이냐?”
김강산이 진룡보도를 움켜쥐었다.
발목을 박살내서라도, 서림이 홀로 훌쩍 떠나는 일을 다시는 겪지 않겠다.
절대, 절대로……!
라고,
김강산이 결연하게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그 순간.
최지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얌전히 듣고 있는 줄 알았던 은영단의 갑작스러운 난입.
그리고 김강산의 행패……, 아니, 대가리 백만 대 예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강산의 이야기에는 솔깃한 구석이 있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계룡성에 묶어 놓는다?’
최지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김강산이나 떠올릴 만한 생각이다. 자신은 절대로 생각조차 못할, 실로 참신한 아이디어.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돼.’
어떻게 해서든 다시는 서림이 훌쩍 떠나지 못하게 하겠다 여러 번 작정했었다.
서림이 각성해서 돌아오겠다며 보육원을 떠났을 때.
그 후 혈귀단의 본거지를 찾아 계룡성을 떠났을 때도.
또 훌쩍 제주로 떠나버리고 연락이 두절되었을 때도.
‘……그래도, 아니, 그래도……!’
최지수와 김강산의 시선이 교차했다.
서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최지수의 옆에 섰다.
조은조와 이바름이 엉거주춤 그 옆에 서고,
“뭐야? 대표님이랑 한 판 붙는 거야?”
하하민이 풀썩 뛰어 김강산의 옆에 섰다.
서림이 은영단에 포위된 모양새.
“…니들 이거 하극상인 거 알지?”
“필요하다면 해야겠지.”
“에이. 대표님 왜케 빡빡해요? 쫄았어요?”
“림아. 내가 그때의 백록검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은영단에서 정말로 많이 배웠어.”
“사형. 우리가 얼마나 컸을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본격적인 대결은 오랜만이잖아요.”
저마다의 생각을 담은 병장기의 끝이 서림을 향했다.
“됐고, 니들 술이나 깨고…….”
하지만 서림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김강산이 형성한 청염구가 서림을 향해 짓쳐들었기 때문.
“시발! 뭘 지껄여! 선빵필승이라고!”
파바바바바바바밧!
눈에 보이지 않은 속도로, 서림이 검을 휘둘렀다.
조각난 불길이 소멸한 사이로 조은조가 짓쳐들었다.
내리그은 철퇴가 의혼검과 격돌하는 순간.
스촤앗!
최지수의 검이 서림의 발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바위도 자를 만큼 날카로운 검격.
그러나 서림의 현란한 발놀림에 모두 가로막혔다.
연환퇴(連環腿)에 이은 무상각(無上脚).
기습이 무위로 돌아간 최지수가 한 걸음 물러서 검을 움켜쥐고,
그 자리를 메우듯 서은창의 검이 서림의 허벅지를 찔러 들어갔다.
동시에, 하하민의 빙창이 서림의 어깨를 향해 날아들었다.
파바밧! 퍼엉! 쿠콰콰콰!
박살난 얼음 조각이 수증기가 되어 기화하고,
의혼검에 팔목을 꿰뚫린 서은창이 피를 흩뿌리며 뒷걸음질쳤다.
서림이 서은창에게 바싹 따라붙는 찰나.
콰가가가!!!!
옥상 바닥이 토네이도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서림의 발을 묶기 위한 진강주(眞鋼柱).
그러나, 서림은 이미 그곳에서 사라져 있었다.
‘형은?!’
김강산이 본능적으로 화염벽을 생성했다.
검푸른 청염벽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졌다.
그 불길을 가르며, 서림이 걸어 나왔다.
“이야, 제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