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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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단전에 모이면(1)
즉위식을 며칠 앞두고 무한으로 군웅들이 모여들었다.
저잣거리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드니 장사치들도 함께 모여들었다.
나는 갈사량과 함께 천망회주가 운영하는 불루에서 차를 마시며 길가로 창밖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곳도 북적대겠지만, 천망회주 반서정은 다루의 문을 잠시 닫았다.
그래서 이곳의 손님은 갈사량과 나, 두 사람뿐이었다.
“마봉기가 즉위할 때보다 몇 배는 더 모인 것 같습니다.”
갈사량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아무래도 마교에 대한 공포심 때문이겠지요.”
이번 마철군의 즉위식은 외부의 적이 강하면 내부는 더욱 똘똘 뭉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반서정이 내게 양해를 구하며 갈사량에게 말했다.
“잠깐 저 좀 볼까요?”
“그럽시다.”
두 사람이 주방 앞으로 갔다. 속삭이듯 말했지만 나의 예민한 청각 덕분에 그들의 대화가 다 들렸다.
“오늘 군사님께서 새로 모시는 분을 소개시켜 주기로 하셨잖아요?”
“그랬지요.”
“약속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언제 오시나요?”
갈사량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그를 응시하던 반서정이 흠칫 놀랐다.
“설마?”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모른 척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그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죠?”
“맞소.”
“맙소사!”
그녀는 정말 깜짝 놀란 모양이다. 어지간한 일에도 속마음을 잘 드러내진 않는 그녀였는데, 이번은 달랐다. 그녀의 놀람과 흥분이 여기까지 전해져 왔다.
아마도 갈사량의 주군으로 나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산동 벽씨검문의 벽리단이었다. 갈사량이 지역 문파의 어린 후계자를 주인으로 모실 리가 없지 않는가? 그것도 정의각에 정식으로 들어온 신입군사를.
그녀가 조심스럽게 걸어와서 내 앞에 앉았다.
창밖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그녀는 마치 관상쟁이라도 된 듯,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를 대했던 모습과는 다른 내 본연의 기도를 드러냈다. 책임군사 벽리단이 아니라, 갈사량의 주군이 된 것이다.
내가 의도적으로 기도를 발출하자 주위의 공기가 달라졌다. 기류가 나를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에게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사람을 압도하는 힘을 느끼면서 그녀의 표정이 점점 변했다.
“강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했었는데, 그것이 헛된 자만심이었음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시는군요.”
나에 대한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어요. 천망회주 반서정이에요.”
“벽씨검문의 벽리단이오.”
“산동 벽씨검문에서 걸출한 영웅이 배출되었군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내가 드릴 말씀이오.”
갈사량이 와서 그녀 옆에 앉았다.
“솔직히 갈군사님이 새로운 주군을 모시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어요. 그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는데, 이렇게 젊은 분이라니요?”
“갈군사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이오.”
그러자 반서정이 갈사량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갈군사님은 아무나 좋게 봐주지 않지요. 아주 냉정하신 분이거든요.”
반서정 자신이 느끼는 불만이 장난스럽게 담겨 있었다. 갈사량은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반서정이 묻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갈군사님을 통해 전해들은 말이 있어요.”
내가 일전에 갈사량을 통해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와의 관계를 부정해도 좋다고 전했던 것이다.
“본회를 배려해주시는 너른 아량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결정을 내리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간단하오. 갈군사가 천망회를 아끼고 있어서요.”
“아!”
물론 다른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이유를 말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구구절절 이유를 밝혀서 얻는 이점보다, 갈사량을 위해 힘을 실어주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갈사량이 재빨리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지 귀 회의 충성심이 아니기 때문이오.”
괜히 쑥스러워서 한 말이었고, 반서정은 저것 보라며 이르듯 내게 말했다.
“아시겠죠? 여기 이분은 누굴 좋게 봐주시는 분이 아니랍니다.”
“하하.”
내가 기분 좋게 웃었다.
잠시 나와 갈사량을 번갈아 쳐다보던 반서정이 품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냈다.
“저희가 드리는 첫 번째 정보입니다.”
나에 대한 첫인상이 나빴다면 이 정보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갈사량과의 관계가 있다고 해도, 그녀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강호인이고, 자신의 조직이 최우선일 테니까. 상대 수장을 믿기 어려운데, 어찌 함부로 정보를 내어줄 것인가?
종이를 받아들며 그녀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와 손을 잡은 것, 후회하지 않을 것이오.”
* * *
그녀가 준 정보는 이번 맹주 즉위식과 관련한 정보였다.
특히 마철군과 관련된 가문들의 최근 동향에 대한 정보였는데, 갈사량은 그중에서 수상한 점을 찾아냈다.
“여기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독안검(獨眼劍) 황종(黃鍾)이 이번 맹주즉위식에 참여하러 왔다는 점입니다.”
“그게 왜 이상하오?”
“독안검은 이런 공식적인 행사에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극히 싫어해서, 지난번 마봉기의 즉위식에도 오지 않았지요.”
물론 갈사량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마양화의 사람이란 점입니다.”
“마양화라면 천도문의 후계자들 중 하나군요.”
“독안검뿐만 아니라 관외쌍부(關外雙斧)와 소백이검(小白二劍)까지 오고 있습니다. 모두 마양화의 수족이거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입니다.”
“확실히 주목해볼 일이군요.”
“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서 삼안각의 정보까지 합쳐서 살펴보니 움직인 것은 마양화만이 아닙니다. 마궁태가 이끄는 고수들도 함께 움직였습니다. 무정십객(無情十客)과 신비창(神?槍)이 바로 그들입니다.”
언급된 고수들은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었다.
“후계구도에서 밀린 두 사람이 자신의 최고수들을 동원했다? 설마 마철군을 축하해 주려고 부르진 않았을 터이고.”
내 말에 갈사량이 확신하듯 말했다.
“마철군을 죽이려 들거나, 우릴 노리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릴 노리는 것 같소.”
일전에 운남삼수와 궁술의 고수가 내 손에 죽었다. 아마 그 공격의 연장선에 있는 또 다른 암살시도가 틀림없었다.
“이제 이 계속되는 공격의 고리를 끊어낼 때가 된 것 같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수면 아래로 깊숙이 가라앉거나, 수면 위로 떠오르거나.”
잠시 고민에 빠졌다. 분명 양쪽 결정 모두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이제 떠오를 때가 된 것 같소.”
동네방네 내 존재를 알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나를 건들면 적극적으로 너를 건드리겠다는 경고를 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소.”
“그게 뭡니까?”
“지금 내 내공은 이갑자요. 삼갑자에 도달해야…….”
내 말을 갈사량이 받았다.
“육초식 대멸겁을 사용할 수 있으시지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충분히 강하지만 내 모든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내공이 삼 갑자에 이르고 내 무공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면?
“그러면 가라앉아야 할 자들은 저들이 될 거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갈사량이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이내 그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공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 * *
한 대의 마차가 관도를 내달리고 있었다.
마부석에서 마차를 모는 사람은 광두였다.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십니까?”
광두의 외침에 뒤쪽 마차 객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괜찮아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송화린이었다. 마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송화린과 수란이었다.
수란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힘드시면 저와 교대하죠.”
“아뇨, 아직 괜찮습니다.”
그들 세 사람은 이번에 맹주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무한으로 가는 중이었다.
송화린이 송가장을 대표해 무한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광두가 자기도 함께 가고 싶다고 부탁했고 송화린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광두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를 보면 도련님이 정말 좋아하실 겁니다.”
“글쎄요. 저를 보고 싶어 하기나 할지.”
“아가씨가 보고 싶지 않다면 어디 마인들에게 끌려가서 여자로 개조당한 것이겠죠.”
송화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수란이 고개를 내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실없는 소리 말고 마차나 잘 몰아요!”
“네!”
수란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정말 실없는 소릴 잘한다니까요?”
“그래서 유쾌하지 않느냐?”
“그렇긴 하지만요.”
수란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광두가 함께 가는 것을 수란은 반대했다. 아무래도 외인과의 동행이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함께 가다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웃을 일도 많았고, 말이 실없지 사람은 실없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광두의 행동은 빠릿빠릿했고 사람을 대하는 데 예의가 있었다. 정말 사람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사람은 평범한 종복이 아니다.”
“그런 것 같아요.”
송화린은 광두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벽리단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라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면도 있지만, 광두 자체로도 아주 매력 있는 사람임을 이번 여정을 통해 확신하게 된 것이다.
“아가씨, 이번 즉위식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도착하셔서는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았으니 걱정 마.”
벽리단의 아버지인 벽도준과 아버지인 송우경은 이번 새 맹주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앞서 마봉기도 그랬고, 이번 마철군 역시 맹주가 될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즉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송화린
이 대신 다녀오겠다고 나섰다.
마교 문제도 있고, 사람들이 몰려든다는 소문도 들리고 해서 송화린을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무한에 있는 벽리단을 만나고 오겠다는 말에 허락을 해준 것이다.
마차 밖을 바라보는 송화린의 눈빛에 그리움이 차올랐다.
송화린은 벽리단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입맞춤하던 그날의 꿈을 벌써 여러 번 꾸었다. 어떤 날은 입맞춤에서 좀 더 진도가 나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온종일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솔직히 즉위식은 관심도 없었다.
* * *
나와 갈사량은 무한 남쪽에 있는 소망평(所望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탑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곳은 사람들이 탑을 쌓으며 소원을 비는 곳이었다.
이곳은 나와도 관계가 깊은 곳이었다. 이곳이 소망평이라 이름 붙은 이유가 나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와 혈천신교 교주와의 최후결전이 있던 날, 무한 인근의 모두가 이곳에 모여 나의 승리를 빌었다.
내가 마교주를 죽이고 승리하자, 이후 이곳은 소망평으로 불리며 소원을 비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 맹주님을 위한 안가가 있습니다. 오직 전대 맹주님과 저만이 알고 있는 곳입니다.”
무림맹주인 나를 위해 중원 곳곳에 여러 안가들이 있었다. 반란이 나거나 적들에게 큰 부상을 당해서 무공을 잃었을 때를 대비한 장소였다.
“이곳은 안가 중에서도 특별한 곳입니다. 일반적인 안가가 단지 몸을 숨기기 위한 곳이라면, 이곳은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는 특별한 안가입니다.”
“특별하다고?”
“네,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갈사량이 탑 사이를 걸어 들어갔다. 높고 낮은 수천 개의 탑들이 쌓여 있어서 어디가 어딘지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갈사량은 마치 아는 길을 걸어가듯 목적한 곳으로 정확히 걸어갔다.
그를 따라가면서 이곳에 대해 들었던 그날이 기억났다. 어떻게 안가를 찾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사실 맹주 시절의 나는 안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 무공에 자신이 있었고, 내가 안가를 찾을 일은 평생 없을 것이라 자신했으니까.
멀리 있는 거목을 기준으로, 갈사량이 특별히 만든 기준이 되는 탑들이 있었다. 다시 그 탑을 중심으로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규칙이 있었다.
오래전에 만든 것임에도 갈사량은 정확히 안가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돌탑 사이를 이리저리 오간 후, 우린 하나의 돌탑 앞에 섰다. 그냥 봐서는 여타의 탑과 다르지 않았다.
갈사량이 가운데 박힌 돌을 꺼냈다. 빠질 것 같지 않았던 돌이 쑥 빠져 나왔다.
“이곳은 오직 맹주님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맹주님의 내공을 주입해야만 문이 열리니까요. 그리고 같은 무공을 익힌 주군께서도 들어갈 수 있지요.”
한마디로 특정한 내공으로만 열 수 있는 기관인 것이다.
내가 구멍에 손을 넣어 평평한 돌에 손을 올린 후에 내공을 주입했다.
그러자 바닥이 덜컥 소리를 내며 열리며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녀오십시오,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알겠소.”
내가 천천히 계단을 걸어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