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ease the talent Explosively RAW novel - Chapter 1
방출되고 재능폭발 1화
트리온 파이어스.
인천을 연고지로 하고 있는 프로야구 구단이다.
정우는 그 파이어스 2군에 소속되어 있는 투수였다.
퍽-!
“오늘 컨디션 좋은데?”
공을 받아주는 불펜포수의 외침에 정우가 어깨를 가볍게 돌렸다.
“어제 잠을 잘 자서 그런가 어깨가 평소보다 가볍긴 하네요.”
“이러다가 조만간 1군에 올라가는 거 아니야?”
“흐흐, 그럼 한턱 쏘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
포수의 칭찬은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프로에 지명되고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이로는 이제 26살.
같이 지명됐던 동기들은 둘로 나뉘었다.
1군에서 뛰고 있거나 아니면 야구판을 떠나 다른 업계로 뛰어들거나.
자신처럼 2군에 남은 선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올해는 반드시 1군에 올라간다.’
매년 시즌 전에 했던 각오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잔부상도 없고 컨디션도 아주 좋아. 거기에 준비도 완벽했다.’
비시즌기간.
정우는 사설 아카데미까지 다니면서 시즌을 준비했다.
그 결과 2군에서도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후반기에는 콜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한정우 선수!”
그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구단 직원이 서 있었다.
“김 과장님 호출입니다!”
“김 과장님이요?”
“예. 지금 사무실로 오시랍니다.”
“지금 바로요? 아직 연습시간…….”
“연습은 됐으니 바로 오시랍니다. 바로 가보세요.”
“알겠습니다.”
김 과장은 2군을 관리하는 프런트 요직 중 한 명이었다.
연습시간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호출하다니 의아했다.
그때 공을 받아주던 불펜포수 김덕배가 다가왔다.
“야야, 혹시 오늘이 그날 아니야?”
“그날이요?”
“이 시간에 부르는 거라면 하나밖에 없잖아.”
김덕배가 뭘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콜업.
그것밖에 없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정우는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요.”
굳게 닫힌 사무실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경을 쓴 범생 타입의 중년 남자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앉아요.”
“예.”
맞은편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지만, 침묵이 이어졌다.
불편한 침묵을 깬 것은 김태성 과장이었다.
“한정우 선수, 이번 주 중으로 기숙사에서 짐 빼세요.”
“……예?”
“방출입니다. 올해 남은 연봉은 일시불로 다음 달 정산일에 지급될 예정이니 그렇게 아시면 됩니다.”
믿을 수 없는 통보에 정우의 눈이 커졌다.
“자…… 잠깐만요. 갑자기 방출이라니요? 이건 너무 갑작스러워서…….”
“한정우 선수 올해로 입단 6년 차죠?”
“예…….”
“그동안 1군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건 간단합니다. 구단에서는 한정우 선수를 전력 외로 판단했습니다.”
직설적인 말에 정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는 것.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이틀 뒤.
정우는 기숙사에서 짐을 모두 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생했다. 당분간 푹 쉬어라.”
부모님은 그 말씀밖에 하시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들어간 돈이 한두 푼이 아니지.’
정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리틀야구를 지나 중, 고등학교까지 야구를 해왔다.
최소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다른 학원에 다니지 않았더라도 만만치 않은 돈이었다.
그런데 그게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프로에 지명되긴 했어도 하위 라운드는 계약금이 거의 없었다.
연봉은 최저임금에 가까웠고 그것도 군대에 있을 때는 지급되지 않았다.
여러모로 실패한 투자인 셈이다.
‘속상하시겠지. 그런데도 내색조차 하지 않으시고…….’
부모님에게 죄송했다.
그리고 또 한 명, 미안한 사람이 있었다.
“방출됐어?”
“응. 그렇게 됐다.”
동네 근처에 있는 카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귀여운 외모에 단발머리를 한 소연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녀는 정우의 여자친구였다.
고등학생 때 만나 지금까지 교제를 이어오고 있었다.
정우가 군대를 갔을 때도 기다렸고 아직 프로야구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그의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하지만 정우는 그게 이제는 끝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다.
‘미래가 사라진 남자친구 옆에 계속 있을 이유는 없겠지.’
그때 소연이 말했다.
“고생했어. 앞으로 쉬면서 천천히 다른 일을 찾아보자. 나도 주변에 오빠가 할 만한 일이 있는지 물어볼게!”
그녀는 이별을 말하지 않고 미래를 이야기했다.
자신을 떠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 아?”
“응? 뭐가?”
“난 이제 더 이상 프로야구선수가 아니야.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에이~오빠가 야구선수라서 내가 만났나? 나는 그냥 오빠가 좋아. 그래서 지금까지 만난 거야! 그리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나도 그냥 회사에서 월급 주니까, 다니는 거지!”
그녀가 방긋 웃었다.
저 밝은 미소에선 가식이란 느껴지지 않았다.
“오빠는 무슨 일이든 다 잘 해낼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제 다른 일을 찾아보자!”
“……고마워.”
“고맙긴! 다 잘 될 거야!”
자신을 위로해 주는 그녀의 따뜻한 말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았다.
* * *
주변에 좋은 사람만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곧장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섰다.
-어, 정우야. 방출? 하…… 결국 그렇게 됐냐? 안 그래도 파이어스가 투수를 많이 지명하더니. 알았다, 나도 좀 알아보고 연락할게.
-오~정우 오랜만이다. 일자리? 음, 지금 아카데미에 자리가 없는데. 혹시 자리 나면 연락해 줄게!
먼저 은퇴하거나 방출된 선배들에게 연락했다.
-그래? 그럼 내일 사무실에 잠깐 들려.
그중 한 곳을 운영 중인 선배에게서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김중호 아카데미.
정우는 간판을 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운동선수 시절과 다르게 후덕해진 선배가 반겨주었다.
현역시절 날렵한 체형으로 베이스를 훔치던 김중호 선배였지만, 은퇴 이후 아카데미를 설립.
다양한 인맥과 타고난 인싸력으로 현재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아카데미 중 한 곳이 되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회원이 크게 늘어나고 있어서 직원을 새로 뽑을 생각이었거든. 때마침 너한테 연락이 와서 나야 땡큐지.”
“그렇게 영업이 잘됩니까?”
“최근에 TV에서 방영하는 야구의 신이랑 너튜브에서 은퇴한 선배들이 대박이 나면서 사.야 인구가 크게 늘었어.”
야구의 신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야구 예능이었다.
은퇴한 슈퍼스타들과 대학리그나 독립리그 선수를 데리고 팀을 창단, 실제 프로구단이나 독립리그 팀과 경기를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야구팬들은 물론 일반인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면서 사회인 야구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늘어난 야구인들은 실력향상을 위해 아카데미를 찾았고 아카데미 산업은 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우리 쪽은 인센티브 제도라서 기본급은 높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겠어?”
“예! 일만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잘해보자.”
그렇게 김중호 아카데미에서 코치로 일하게 되었다.
* * *
코치는 신이다.
리틀야구부터 시작해 중학, 고교 그리고 프로를 경험한 정우에게는 그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아니었다.
파앙-!!
“회원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상체와 하체가 따로 놀고 있어서 볼 끝이 살지 않고 있어요. 제가 말씀드렸던 프로그램을 집에서도 하고 계십니까?”
“스쿼트요? 하고는 있는데. 아니, 그것보다 코치님. 볼 끝은 됐고 기가 막힌 슬라이더 하나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예? 갑자기 슬라이더를요?”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같은 팀의 범수 녀석이 어디에서 슬라이더를 배우고 와서 자랑을 하더라니까요? 거기에 감독은 녀석의 변화구면 충분히 통하겠다고 저 대신에 선발로 쓰겠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하체를 쓰는 건 투구의 기본이다.
그런 기본도 잡혀 있지 않은데, 변화구라니?
어불성설이었다.
“회원님은 지금 슬라이더가 문제가 아니라, 기본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변화구를 던져봐야 제구가 되지 않아서 실전에서는 써먹을 수 없어요.”
“아…… 그렇습니까?”
회원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게 코치의 권위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성훈 회원님이 코치 교체를 요청해 왔는데. 무슨 트러블이 있었어?”
“예? 코치 교체요?”
“어, 좀 까다로운 회원이긴 하지만, 한 번 교육에 바로 교체를 요구하다니. 이건 좀 드문 일이라서 말이야.”
“그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자 김중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정우야, 여긴 프로구단이 아니야. 회원들 한 명, 한 명이 자기 돈 내고 와서 배우는 거야. 그들이 원하는 걸 우린 들어줘야 먹고 살 수 있다.”
사설 아카데미에서의 코치는 일종의 서비스직인 셈이었다.
그러나 한 번 박힌 고정관념은 발바닥에 박힌 가시처럼 쉽사리 빠지지 않았다.
“회원님, 스윙은 상체로만 돌리면 안 됩니다.”
정우는 기본을 중시하는 타입이었다.
“하체를 더 단련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그가 배운 야구의 근간이었으니까.
“변화구도 좋지만, 기본적인 포심부터 손에 익히셔야 다른 구종들도 더 잘 익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기반으로 회원들을 가르쳤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회원들의 불만도 높아졌다.
“코치 좀 바꿔주세요.”
“저 신인 코치는 저와 맞지 않는 거 같습니다.”
“이전에 같이했던 최 코치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사장인 김중호는 회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결국 정우에게 남은 회원들은 개인레슨을 받지 않는 단체회원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선배님! 월급이 지난달보다 덜 들어온 거 같은데요? 백만 원밖에 안 들어왔습니다.”
“그게 맞아. 처음 아카데미와 계약할 때 기본급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지?”
“아…… 예.”
“첫 달에는 레슨 회원들이 조금 있어서 삼백이 들어갔지만, 두 번째 달부터는 레슨이 전혀 없었잖아. 그러니 기본급만 들어가는 거지.”
사설 아카데미는 PT샵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소속되어 있는 코치는 PT샵의 트레이너와 같은 위치였다.
기본급을 받고 샵에 소속되어 있지만, 개인레슨을 하지 않으면 기본급 이상의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
“네가 너만의 고집을 가지고 하는 건 좋지만, 코치로서 너는 아직 햇병아리에 불과해. 간단히 생각해 봐. 프로 경험도 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구단의 코치로 와서 이래라저래라 시키면, 넌 따를 수 있겠어?”
“……하지만 전 프로였지 않습니까?”
“사설 아카데미에 얼마나 많은 전 프로 코치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들 중에는 1군에서 뛰었던 애들도 있어. 냉정한 말이지만, 비슷한 돈이라면 걔네들한테 가서 배우는 게 더 낫지.”
냉정한 말이었지만, 맞는 말이었다.
“네가 하는 건 일종의 서비스업이야.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넌 앞으로도 어려울 거다.”
생각이 많아지는 정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