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23
23
12.새출발(2)
끼이이익ㅡ!
“준혁 씨!”
“반갑습니다, 아리 씨.”
나는 아리와 저녁 약속을 잡고, 산본역 사거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가 뚜벅이라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에 올라가겠다 하니, 아리가 곧바로 픽업을 왔다.
“오늘도 되게 예쁘시네요.”
“헤헤헤······.”
아리는 내 칭찬에 방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오늘 입은 옷 스타일은 브라자가 은은히 비치는 하늘색 블라우스에, 둥근 골반을 타이트하게 감싼 흰색 미니스커트, 그리고 맵시 있게 쭉 뻗은 검은색 스타킹이었다.
‘나 검스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지?’
나는 괜스레 딴 곳을 보는 척하며, 화제를 돌렸다.
“이건 그때 탔던 차와 다른 차네요.”
“네. 그때 에프터서비스를 해드린 건 bmw 520d구요, 이건 제 개인차량인 아우디R8이에요.”
“아하······.”
그녀가 타고 온 차는 스포츠카처럼 생긴 2인용 외제차였다. 길거리에 지나가다 몇 번 보던 차량이기도 했다.
‘아리 씨가 돈이 많긴 많나 보네······.’
외제차가 한 대도 아니고, 여러 대인 것 같았다.
부러움인지, 아니면 기대감인지 알 수 없는 마음을 추스르고 조수석에 탑승했다.
“좌석이 생각보다 낮죠?”
“네, 그러네요.”
키가 185인 내가 타기엔 좀 좁은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타기 싫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이런 차를 몰고 싶냐고 한다면 당연히 yes였다.
부우웅ㅡ!
bmw와는 또 다른 승차감을 주는 아우디R8이 우렁찬 배기음을 내며 도로를 달렸다. 무언가 차를 타고 달린다는 느낌이 아니라, 빙판을 미끄러져서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맨날 텔레포트 아니면, 걸어 다녀서만 그런지 꽤나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준혁 씨. 뷔페 가고 싶다고 했죠?”
“뷔페가 아무래도 무난하지 않을까요? 서로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그럼 우리 뷔페가요.”
나는 아리가 뭘 먹고 싶어 할지 몰라서, 그냥 아무렇게나 정했다.
솔직히 호불호가 갈리는 특정 음식보다, 자기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가 더 낫지 않겠는가?
“근데 어느 뷔페로 가시나요?”
내가 창문을 열며 그렇게 묻자, 아리가 운전을 하며 대답했다.
“라세느라고 괜찮은 뷔페가 있어요.”
“라세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내가 아는 뷔페라곤, 동네에 있는 6900원짜리 만남의 광장이랑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있는 빕스 정도였다.
“라떼 호텔에 있는 뷔페인데 괜찮은 곳이에요.”
“호텔이요?”
“네.”
아리는 당황해하는 내 얼굴을 돌아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제 아리 덕분에 큰돈도 무사히 환전하고, 양복도 얻어 입고, 오늘은 밥까지 헤 먹이다니.
누가 보면 기둥부인인 줄 알겠다.
아직까지 우린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물론 나도 오늘 아리에게 줄 선물이 있지.’
나도 양심이 있는 남자다.
이런 미인이, 나를 위해 이렇게 헌신해주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만족할는지는 모르겠지만.
“준혁 씨도 이제 차 사야죠?”
“차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우물쭈물했다. 나는 아직 면허가 없었다. 고딩 때 이계로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진즉에 땄을 텐데.
벌써 내 나이가 33이다.
뚜벅이 할 나이는 아니란 소리다.
내 또래 남자들은 이 나이 때쯤 소나타나 아반떼, 스포티지 같은 걸 사서 출근하고 다닐 텐데.
물론 차가 꼭 필요한 건 아니다. 날아다니는 것도 아닌, 순간이동해서 다니니까.
하지만, 공식적으로 누군가를 만날 때는 외면도 신경을 써야 했다.
“제가 아직 면허가 없어요.”
“네???”
아리는 신호를 기다리면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포커페이스를 되찾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가 운전 가르쳐 드릴게요.”
“바쁘지 않으세요?”
“음······.”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쉬는 날 짬내서 가르쳐 드리면 되죠. 왜요, 싫어요?”
“아뇨, 싫은 건 아닌데···.”
이런 미인이 가르쳐준다고 하면, 운전학원에서 배우는 비용에 100배를 받는다고 해도 남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냥 옆에만 있어도 꽃처럼 좋은 향기가 나고, 보고만 있어도 너무 예뻐서 기분이 좋아지는데 어떤 남자가 거부하랴?
하지만, 나는 아리가 나에게 왜 이렇게 잘해줄까? 하는 생각 밖엔 안 들었다.
“고민 좀 해보고요. 일단 당장 필요한 건 아니라서.”
“헐~”
아리는 대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날 찬 건, 네가 처음이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든지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냥 신경 쓰지 않은 척했다.
‘공적인 일 외에는 거리를 두고 싶어······.’
아리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은 같으면서도 약간씩 달랐다. 예를 들면 귀라던가······.
“이러다 좀 늦겠네요.”
“죄송해요.”
“준혁 씨가 왜 죄송해요?”
“이렇게 차가 많이 밀릴 줄은 몰랐어요. 차라리 약속을 좀 더 일찍 잡을 걸 그랬나 봐요.”
“흐흐흐. 갓수의 여유인가요? 아니면 기만?”
“······.”
아리는 생긋 웃으며 물어 뜯을 걸 찾았다는 마냥, 열심히 디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간지럽고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내 동생 혜은이가 사나운 ‘피라냐’라면, 아리는 작고 귀여운 ‘닥터피쉬’ 같았다.
*
“정말 크네요.”
“히히.”
나와 아리는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있는 라떼 호텔에 도착했다. 그곳은 엄청난 규모의 건물이 멋들어지게 지어진 호텔이었다.
“지상 38층, 지하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에요.”
아리가 운전석에서 설명을 해줬다. 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계에서도 웅장한 건물을 많이 봤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수성(戍城)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피의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건물은 전쟁을 위한 게 아닌, 미관(美觀)과 실용성에 중점을 둔 구조였다.
우리는 지하로 이어지는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런 곳은 한 번도 안 왔었나요?”
“네.”
“제가 그럼 처음으로 준혁 씨를 이런 곳으로 데려온 거네요?”
“그게 또 그렇게 되네요.”
“흐흐흐. 뭐든지 처음이 좋은 거죠.”
“······.”
아리의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로선 별 뜻 없이 가벼운 어조로, 지나가듯 말했겠지만 나는 꽤나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리는 엘리베이터의 2층 버튼을 누른 후 콧노래를 불렀다.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곳엔 불고기나 닭도리탕 같은 것도 많이 있겠네요?”
나는 괜히 뻘쭘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 삼아 그렇게 물었다.
“네? 뭐라고요?”
그러자 아리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마치 ‘너 그런 거 먹으려고 여기 왔니?’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데 왔으면 랍스타나 크랩 요리, 아니면 스테이크 같은 걸 썰으셔야죠~”
아리는 마치 철없는 아이를 훈계하는 듯한 어조로 팔짱을 끼고선 그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오늘 온 김에 많이 드셔보세요. 그럼, 앞으론 동네 뷔페엔 못 가실 거에요. 흐흐흐.”
“글세요.”
사실 이계에선 이보다 더 대단한 음식들도 많이 먹어봤다. 10서클에 오른 이후엔 데미갓이라 불리는 반신들과, 주신 우르메와도 식사를 해봤었으니까.
일명 신들의 만찬.
그러니 이런 호텔 뷔페 같은 건,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저 일부러.
농담 삼아 아리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놀란 척했을 뿐. 씩씩하게 팔짱을 끼고선 가르치려는 태도가 재밌고 귀여웠다..
“괜찮네요.”
“그렇죠?”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인테리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내엔 이름 모를 목조로 만든 아름다운 장식이 있었고, 천장 곳곳엔 샹들리에 같은 아름다운 조명들이 반짝반짝 불을 밝히고 있었다.
게다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보는 즐거움까지 신경 쓴 뷔페 곳곳의 인테리어까지.
외양만 쳐도 수십억은 쏟은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먹을 게 되게 많네요.”
한국 최고의 뷔페답게, 양과 질에 있어선 그 규모가 엄청났다.
“준혁 씨는 고기를 좋아하시니까 이쪽으로 오세요.”
아리는 멀뚱이 서 있는 내게 팔짱을 끼고선. 훈제된 고기를 썰고 있는 쉐프에게로 다가갔다.
“여기 스테이크 한 접시씩 주세요.”
“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하얀색 긴 빵모를 쓴 쉐프가 듬성듬성 고기 뭉텅이를 썰어서 우리 두 사람의 접시에 한 덩이씩 놓아줬다.
“고맙습니다.”
그 위에 쉐프는 초록색 파슬리와, 냄새만 맡아도 군침 도는 소스를 추가로 살짝 뿌려줬다.
나는 대충 그릇을 받아 들고 돌아섰다.
“밥은 어디 있어요?”
“네?”
신들의 만찬이고 나발이고, 사실 오늘은 아침부터 점심까지 입맛이 없어서 지금이 첫 끼니였다. 그래서 배가 많이 고팠다.
“스테이크 먹으면서 밥 찾는 사람 처음 보네요.”
“지금 봤으니 앞으로도 자주 볼 거에요.”
“호호. 그랬으면 좋겠네요. 자주 볼 생각입니다.”
아리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으며 각종 밥 종류가 있는 코너로 나를 이끌고 갔다.
그곳엔 흰밥 뿐만이 아니라, 잡곡밥, 보리밥, 카레밥, 볶음밥, 콩나물밥, 해물밥 등등······.
밥으로만 퍼담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게끔, 아주 여러 종류의 밥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각각의 종류를 조금씩 퍼담아서 컬렉션으로 만들었다.
“풉······.”
스테이크마저 뒤덮어버린, 산처럼 쌓인 밥 컬렉션을 보며 아리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반찬은 새 그릇에 퍼야겠네요~”
“네, 그러죠.”
놀리는 듯한 아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에 밥 접시를 내려놓은 다음 나는 다른 메뉴도 추가로 접시에 잔뜩 담아왔다.
“우와, 욕심쟁이!”
“뭐, 다 먹으면 그만이죠.”
“다 드셔야 해요. 남기면 벌금 나와요.”
“정말요?”
“흐흐흐.”
이런 고급 호텔에서 남기면 벌금이라니?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냥 피식했다.
“맛있긴 정말 맛있네요.”
우리 두 사람은 밥 접시를 바로 앞에 놓고, 눈과 입이 즐거운 식사를 만끽했다.
“후······.”
그리고 적당히 배를 채울 만큼 음식을 먹은 후, 본격적으로 일 얘기로 들어갔다.
“준혁 씨가 거래할 귀금속들이 현재 얼마나 남았죠?”
“금괴랑 보석 종류가 있는데, 이걸 다 처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나는 아리의 질문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막상 있는 대로 다 털어놓으면, 아리 쥬얼리샵 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의 금액이 나온다.
게다가, 나는 정당하게 파는 게 아닌, 우회하는 방식으로 팔 거고 되도록 현금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 곤란했다.
“얼마나 있는데요?”
아리의 재촉에 결국 사실대로 실토했다.
“10kg짜리 24k 금괴가 319개고요, 60캐럿 이상의 다이아가 130개 있고, 컬러 다이아 또한 60캐럿 이상으로 몇십 개 있고요.”
땅그랑!
아리는 놀라 썰고 있는 스테이크용 칼을 떨어뜨리며 입을 쩍 벌렸다.
“잠깐만요. 그거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죠? 거짓말 아니죠?”
“리얼입니다.”
오히려 축소했다.
진짜 ‘아티펙트’들은 꺼내지도 않았으니까.
저것들은 그냥 말 그대로 ‘관상용’으로 쓰이는 것들만 나열한 것이다. 이계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신 지구에선 없어서 못 사는 그런 물건들이었다.
“단순 계산만 해도 수천억 원은 넘겠어요. 어쩌면 1조 가까이 될지도······.”
“이것들을 팔아서 1조 가까이 된다고요?”
나는 약간 실감이 안 나서 얼떨떨하게 말했다.
“네. 일단 금괴만 해도 정말 수량이 그 정도라면 1600억 가까이 되잖아요.”
“그렇네요.”
“만약에 준혁 씨가 지닌 다이아몬드가 모두 진품이라면 세계 보석 경매에서 수천억 원 이상 나올 수 있어요.”
아리는 메고 왔던 백에서 파일철을 꺼내더니 휘리릭 넘겼다.
“준혁 씨를 위해 제가 짜온 앞으로의 플랜이 있는데, 그걸 수정해야겠어요.”
“왜 수정해요?”
나는 썰어 놓은 스테이크를 한 점 입에 넣으며 그렇게 물었다.
“사실, 수십억 수준으로 맞춰서 스몰 플랜을 짰었는데요······.”
“······.”
수십억이 스몰 플랜이면, 빅 플랜은 수천억이려나?
아리가 생각하는 스케일은 나와 다른 세상에 있는 얘기 같았다.
“플랜을 블록버스터 수준으로 올리려고요.”
“블록버스터요?”
나는 아리의 황당한 말에 스테이크를 씹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