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42
41화
보기엔 복잡해 보여도, 마법진들은 결국엔 하나의 목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파악한바.
‘차오린에 대한 감시.’
현석은 그 사실에 초점을 둔 채 머릿속에서 마법진을 하나씩 지웠다.
전혀 연관이 없거나, 눈속임을 위해 그려지다 만 것들.
문양을 구성하는 마법진 중에서 대략 20%가 사라졌다.
여전히 많았다.
현석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적은 마법진들을 차례대로 지웠다.
가령 ‘감정’을 파악하는 주요 마법진이 있다면, ‘심박수’, ‘체온’ 따위를 파악하는 보조 마법진.
중간중간 처음 보는 문양이나 술식이 보이긴 했으나.
아카르덴 시절 모든 마법에 통달했던 현석이었기에 그 과정이 크게 어렵진 않았다.
단지 그 비중이 높아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었다.
‘내가 마법진은 쓸데없는 것을 추려 최대한 효율적으로 구성하는 거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언젠가 아이젠의 마법진을 보고 했던 조언이었다.
아무래도 그때의 말은 귓등으로 들었던 모양이다.
안 좋은 습관이 이렇게 버젓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내가 무슨 논문 검토해주는 교수도 아니고.’
그리고 어느덧 남은 마법진은 4개.
현석은 시계태엽처럼 서로 맞물리며 회전하는 마법진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제 더 거를 필요도 없었다.
저것이 문양을 구성하는 핵심이자, 진짜 ‘골자’의 모습이었다.
이제 망설일 건 없었다.
현석은 곧장 마나를 운용해 마법진의 구조를 비틀었다.
아이젠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파직-!
그러자 무언가 가볍게 터지는 ᅟᅩᆺ리가 들려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경악한 얼굴로 이쪽을 올려보고 있는 차오린의 모습이었다.
그녀 또한 느낀 것이었다.
지금껏 문양이 자신을 구속하던 힘과 더불어 그로 인한 불쾌한 감각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현석이 문양의 골자를 해석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하긴. 그냥 보고 풀면 되는 건데.”
현석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차오린은 그 말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에게 보고 푸는 것도 못 하는 무능력한 헌터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다.
말투가 어떻든 간에 현석이 도움을 준 건 명백한 사실이었으니.
더불어, 더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떨 필요가 없었다.
몇 년 동안 자신의 숨통을 옥죄던 족쇄가 풀린 만큼, 마음이 너무나도 편했다.
“고….”
“아 참.”
차오린이 감사를 표하려는 그때였다.
현석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차오린을 보고 입을 뗐다.
“근데 문양은 완전히 소멸시키진 않고 내가 좀 비틀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보험이라고 해야 하나?”
만에 하나 차오린이 현석을 공격하려 했을 때 발동되는 마법.
죽지는 않겠지만, 꽤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그 즉시 전류가 방출되며 전신이 굳어버릴 테니.
추가로 리창진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름대로 손을 봤기 때문에, 녀석이 이 사실을 알게 될 일도 없었다.
“그래도 걱정하진 마. 네 동생 건 완전히 없애줄 테니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현석의 설명에 차오린이 체념한 듯이 말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현석을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적어도 그가 자신과 동생의 뒤통수를 치지 않는 이상, 리창진을 잡는데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동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기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
“그런데 내 동생은 어떻게 구해줄 거지?”
이제 남은 건 차오린의 동생 메이린을 구하는 것.
문제는 동생이 지금껏 리창진의 문양으로 연명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리창진이 치료하지 않는 평소엔 그의 문양이 증상을 완화해주고 있었으니까.
만일 현석이 문양을 제거한다면 병이 악화돼, 자칫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래? 동생 병명이 뭔데?”
“그건 아쉽게도 나도 몰라. 아니, 세상의 어떤 의사도 모른다고 하더군.”
그나마 알 것 같은 리창진은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고.
차오린이 분한 듯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증상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냉기.”
현석은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턱짓했다.
차오린이 재차 입을 열었다.
“메이린은 어릴 적부터 몸이 차가웠어. 처음엔 단지 체질이 그런가 싶었지.”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체온은 점차 떨어졌고.
어느 순간부턴 발작을 하거나 의식을 잃는 등.
위험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엔 한 달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던 일이었지만, 이는 곧 일주일로 줄어들었고.
그렇게 삼일… 하루….
리창진을 만나기 직전엔 한 시간 간격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마침 내가 화염계 각성자라 불의 정령까지 소환해 가며 냉기를 물리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
차오린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지간히도 동생을 아끼는 모양이었다.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미안해할 줄이야.
그건 그렇고.
‘에단 아무래도 그거 같지?’
-맞다. 증상이 딱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군.
현석은 증상을 듣는 것만으로 무슨 병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아카르덴에 있을 때 종종 보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차오린의 이야기로 추측건대.
만일 그녀의 말대로라면 메이린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뭐?”
“말 그대로다. 앞으로 남은 수명은 길어봤자 한 달 정도겠군.”
콰앙-!
현석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차오린이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곧바로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동생과 과련된 발언에만 신경 쓰는 모습.
“똑바로 말해. 대체 그게 무슨 개소리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니!”
“먼저, 네 동생이 앓고 있는 병은 ‘구음절맥’이라는 거다.”
“…구음절맥?”
“신력이 몸에 깃드는 증상이지.”
쉽게 말해 일종의 신병이었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평범한 인간의 몸으론 신의 힘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냉기가 정령의 힘으로 잡히지 않던 것도 그 때문이지.”
차오린 정도의 실력자가 부리는 불의 정령이라면, 어지간해선 대부분의 냉기는 중화될 터.
하지만 상대는 무려 신의 힘이었다.
정령왕인 에단조차도 구음절맥을 100% 치료할 수 있다 확신할 수 없는 힘.
신력을 누르기 위해선 최소한 그것과 동등한 힘이 필요했다.
때문에.
현석이 아카르덴에서 봤던 이들은 대부분 얼마 가지 않아 숨을 거두곤 했었다.
차오린이 말했던 증상을 똑같이 보여주며.
“그런데 그런 힘을 리창진 따위가 치료하려 했다고?”
어불성설이었다.
빠드득.
차오린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흘렀다.
분한 마음에 입속을 씹은 탓이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
현석은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도 내심 알고 있었을 텐데? 리창진이 치료할 수 없다는 걸.”
“….”
정곡이었다. 차오린이 시선을 내리깔며 침묵했다.
“처음에는 차도가 있었겠지. 리창진이 약한 불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아카르덴에서 손에 꼽히는 대마법사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현석의 심장 조각을 습득하며 기본적인 능력치 자체가 상승했다.
더불어 그곳에 내재해 있는 신의 힘 또한 미약하게나마 흡수했으니, 일시적으론 병세가 나아진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구음절맥은 동등한 신의 힘이 아니면 억누르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언제부턴 다시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왔을 거야. 맞지?”
차오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혈된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슬픈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악에 받친 듯한. 리창진에 대한 깊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생에게 새긴 문양도….”
“너를 구속할 용도거나 아마 보여주기식이겠지. 동생 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현석의 말에 차오린은 말없이 바닥에 마력을 방사(放射)했다.
그러자 차오린의 문양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양이 그려졌다.
자신이 봤던 어떠한 그림이나 글귀 따위를 몸 어딘가에 기록하는 [메모라이즈] 마법이었다.
“동생 것도 해제하기 위해 따로 마법으로 기록해 뒀었어. 완전하진 않겠지만…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될 만한 마법이 있어?”
말하는 걸 보니 조금의 위안이라도 얻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지금까지 헛수고한 게 아니라는 식의.
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
“아니 전혀. 아까 말한 것처럼 잠깐 좋아진 것처럼 보이기만 할 뿐. 수명에는 일 초의 영향도 주지 못했을 거야.”
“아, 아아아아….”
현석의 단호한 말에 차오린의 표정이 무너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죄책감과 허탈함.
후회와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얼굴에 역력히 드러났다.
그건 그렇고.
‘…생각보다 더 다재다능한데?’
현석은 차오린이 [메모라이즈]로 그린 문양을 보며 사뭇 감탄했다.
[메모라이즈]가 단순히 기록용 마법이라고 알려진 건 맞지만.문양처럼 마법적 기술이 들어간 경우에는 얘기가 좀 달랐으니까.
[메모라이즈]를 사용하는 시전자가 상대보다 마법적 역량이 비슷하지 않은 한 마법은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쉽게 말해 차오린의 능력이 리창진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물론 문양이 완전히 복사되지 않은 걸 보면 차오린이 리창진보다 마법적 역량이 아래이긴 했지만.
‘리창진의 나이가 차오린의 다섯 배는 훌쩍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재능인 거지.’
리창진은 아카르덴에 있을 때부터 마법에 발을 들였으니.
‘확실히 탐나긴 하네.’
-동료로라도 받아들일 생각인가?
‘미쳤냐?’
에단의 말에 현석이 곧장 반응했다.
이미 가장 믿었던 동료들에게 배신당한바.
현석은 두 번 다시 동료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노예라면 모를까.’
-…차라리 부하라고 해라 현석.
‘그게 그거지 뭐.’
-그래서 거두려고?
‘고민 중이야.’
확실히 탐나는 재능인 건 맞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일단 메이린부터 치료해야 했다.
때마침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제격이기도 했고.
태양의 신과 달의 신.
현석은 두 신의 권능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특히 ‘태양의 불’은 냉기 속성인 구음절맥을 치료하기에 최적인 능력이었으니까.
문제는 치료까지 할 만한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젠이 언제 수호신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여유롭게 치료까지 하고 있을 순 없어.’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스윽.
현석이 이화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구음 절맥의 음기와 격돌할 불의 기운은 없을지 몰라도, 그것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신력을 지닌 존재.
그녀는 물 속성의 정령이었기에 상성은 썩 좋지 않았지만.
구음절맥을 물리치는 방법만 알려준다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할 터였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이화영의 힘만으론 살짝 부족하다는 건데.’
구음절맥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운이 가파르게 증가한다.
메이린의 발작 주기가 빠르게 줄어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메이린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이 말인즉슨 구음절맥의 기운이 절정에 치달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석이야 괜찮지만, 구음절맥이 접촉자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감안하면, 치료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화영에게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기운이 크게 상하게 되겠지.
‘신력도 크게 감소할 거고.’
이화영의 말에 따르면 수호신의 존재만으로 몬스터의 개체수가 줄어든다고 했다.
당장 북쪽만 해도 몬스터의 수가 대폭 증가했다고 하고.
만일 이번 일로 그녀의 기운이 쇠한다면, 남쪽 또한 비슷한 환경이 구성될 수 있었다.
현석이 어느 정도 정리하긴 했지만, 아직 속리산의 모든 몬스터가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화영마저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면.
어쩌면 던전 브레이크보다 심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가족들이 위험해.’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탐나긴 하지만 차오린을 버리는 수밖에.
-그래도 괜찮은 건가 현석?
‘괜찮고말고. 지금은 이화영의 안위가 훨씬 더 중요해.’
-하지만 천지로 가는 방법은 저 여자가 알고 있지 않은가?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차오린을 생포한 것도 천지로 들어가는 방법을 듣기 위함이었고.
그러나 더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건 걱정하지 마.’
이미 알아냈으니까.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차오린의 문양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얼핏 보기엔 단순히 차오린을 감시하는 용도이지만.
‘동시에 열쇠의 기능이 숨겨져 있어.’
-열쇠?
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 위로 문양을 띄웠다.
입체적으로 구현된 문양이 손바닥 위에서 천천히 회전했다.
그리고 어느 곳의 열쇠인지는 명확했다.
문양을 해독한 결과 열쇠가 적용되는 위치는 다름 아닌 백두산이었으니까.
신을 죽인
대마도사의 귀환